영어학원에서 회화지도(E-2) 비자를 발급받은 원어민 강사의 소득을 사업소득으로 불법 신고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 연합뉴스
영어학원에서 회화지도(E-2) 비자를 발급받은 원어민 강사의 소득을 사업소득으로 불법 신고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 연합뉴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K팝 프로듀서가 되고 싶어서 한국에 건너왔어요. 정식으로 취업하려면 25세 이상이어야 한대서 3년 동안 원어민 강사로 뼈 빠지게 고생했습니다.  그런데 원장님이 절세 목적으로 소득을 불법 신고했다는 이유로 제가 불법체류자가 된다고 합니다.”

미국인 에밀리 브론즈(가명·25)는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업체에서 근무하겠다는 꿈을 안고 2017년 22세의 나이에 한국 땅을 밟았다. 브론즈는 취업 관문으로 영어학원에서 원어민 강사로 일했다. 한국에서 업종과 관계없이 자유롭게 취업하려면 거주(F-2) 비자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나이·소득 등의 요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 높은 점수를 받는 나이는 만 25세 이상. 그때까지 일할 곳으로 채용과 동시에 회화지도(E-2) 비자를 대리로 발급받아주는 영어학원을 골랐다.

그런데 올해 브론즈가 F-2 비자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들었다. 그간 영어학원에서 일한 경력이 모두 무용지물이라는 이야기였다. 심지어 법무부에선 브론즈에게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영어학원 업주가 E-2 비자 요건에 위반되게 브론즈의 소득을 사업소득으로 신고한 탓이었다. 브론즈는 영문도 모르는 채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브론즈는 “퇴근 후에도 교재와 파일을 집에 가져가서 연구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면서 “한국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내쫓길 위기에 놓이니 허탈감과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조선’ 취재 결과 영어학원 업주의 불법 소득 신고로 원어민 강사들이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C학원과 M학원 등 유명 어학원에서 이와 같은 불법 관행이 확인됐다. 법무부에선 해당 원어민 강사들을 구제하는 한편 학원 업계에 시정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원어민 강사들 “졸지에 프리랜서? 열심히 일했는데 불법체류자”

C학원과 M학원의 가맹점 업주들은 원어민 강사 채용 공고와 고용계약서에 E-2 비자를 대리 발급받아준다고 명시했다. E-2 비자는 법무부 장관이 정하는 자격 요건을 갖춘 외국인으로서 외국어 전문학원, 초등학교 이상의 교육기관 및 부설 어학연구소, 방송사 및 기업체 부설 어학연수원, 기타 이에 준하는 기관 또는 단체에서 외국어 회화지도를 할 수 있는 비자다. 외국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이들을 고용하는 업주도 비자를 대리 신청할 수 있다.

문제는 업주들이 E-2 비자를 받은 원어민 강사 월급을 근로소득이 아닌 사업소득으로 대리 신고해왔다는 점이다. E-2 비자 소지자는 현행법상 사업소득자(프리랜서)가 아닌 근로소득자로만 일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를 어길 경우 출입국관리법 제17조 1항과 제46조에 따라 이들은 불법체류자로 분류돼 강제 퇴거 대상자가 된다.

업주들이 원어민 강사를 불법체류자로 내몰면서 사업소득자로 대하는 이유는 절세 때문이다. 학원 업계에선 절세, 보험 미가입, 퇴직금 미지급 등 비용 경감을 노리고 강사와 프리랜서 계약을 하는 관행이 있다. 국내 강사의 경우 합법이지만, E-2 비자를 발급받는 외국인 강사의 경우 불법이다.

원어민 강사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채용 당시 자신이 사업소득자로 계약한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한다. 고용계약서에 근로소득자 혹은 사업소득자 등의 고용 형태가 명시되지 않은 탓이다. 원어민 강사 A씨는 “원장이 여태 대신 소득을 신고해왔다”면서 “비자를 새로 발급받는 과정에서 서류를 떼본 이후에야 근로소득이 아닌 사업소득으로 신고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실제 M학원의 고용계약서엔 근로 시간, 임금 지급, 휴가·휴일·휴게, 퇴직금, 해고 등 세부 사항이 명시돼 있다. 모두 근로자성이 인정되는 조건이다. 김건희 노무사는 “근로자성이 인정되는 내용을 규율하면서도 노동관계법상 의무를 피하기 위해 형식만 사업소득자인 프리랜서 계약을 하는 것은 문제”라면서 “내국인도 잘 모르는 내용을 외국인 근로자가 의문을 가지고 접근하기는 더욱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원어민 강사가 사업소득을 근로소득으로 변경하는 것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업주가 소득을 재신고해야 하는데 보험료 등 추가 비용을 문제 삼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원어민 강사가 업주를 직접 설득하기도 어려운 구조다. 업주가 고용을 해지하면 E-2 비자가 효력을 잃어 마찬가지로 이들이 강제 퇴거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A씨는 “소득 신고 변경을 원장에게 요구했다가 학원에 피해를 입히는 직원이라는 소리를 들었다”면서 “혹시나 계약을 해지당할까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원어민 강사가 근로소득자로 근무할 영어학원을 찾기도 어렵다. 원어민 강사 B씨는 채용 과정에서 근로소득자로 일하는 조건을 학원 측에 요구했으나 고용 취소 답변을 들었다. E-2 비자 발급 업무를 담당하는 이원중 비전행정사 행정사는 “과거부터 영어학원 업계에서 업주가 원어민 강사의 소득을 사업소득으로 신고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꼼수’를 부리는 업주로 인해 원어민 강사가 고스란히 위험을 떠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법무부, “비자 발급 심사 불충분 인정…시정 조치 할 것”

사업소득자로 근무하는 원어민 강사에게 E-2 비자가 발급되는 원인은 법무부의 관리 소홀 때문이다. 법무부는 E-2 비자 심사 시 학력증빙서류, 범죄경력증명서, 건강검진확인서, 고용계약서 등의 서류를 받는다. 이 서류에는 근로소득자, 사업소득자 등 구체적인 고용 형태가 나와 있지 않다.

제대로 심사하려면 근로소득, 사업소득 등 소득의 성격을 보여주는 소득금액증명서나 원천징수영수증이 필요하다. 해당 서류는 국세청에서 관리하므로 법무부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이원중 행정사는 “학원이 법무부와 국세청 사이 업무 분담 현황을 악용해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코노미조선’이 취재에 들어가자 법무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F-2 비자 발급 과정에서 한시적으로 원어민 강사의 사업소득을 인정하기로 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내년 학원연합회에 해당 내용의 불법성을 사전 공지하고 계도 기간을 가지겠다”면서 “E-2 비자 재발급 과정에서 소득금액증명서 등 증빙 서류를 종류별로 구체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불법 관행이 일어났던 C학원 관계자는 “일부 가맹점에서 편법 소지의 고용 형태가 발생했다”면서 “가맹점이어서 고용 계약을 통제할 권한이 없지만, 문제를 인지한 만큼 내부 대응책을 세워 적극적으로 시정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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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취업 비자 대한민국에서 90일 이상 장기적으로 취업 활동이 가능한 비자는 크게 E 비자와 F 비자로 나뉜다. 교수(E-1), 회화지도(E-2) 등 E 비자 소지자는 지정 업종에서만 근무해야 하지만, 거주(F-2), 재외동포(F-4) 등 F 비자 소지자는 근무 가능한 업종이 다양하다. E 비자 소지자가 F 비자를 취득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점수제에 의한 우수 전문인력’으로 인정받아 거주(F-2) 비자를 받는 것이다. 1년 이상 합법 체류하면 신청 자격이 생긴다. 이후 연령·학력·한국어 능력·소득에 따라 점수를 배합해 80점이 넘으면 된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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