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10월 6일 ‘GTC October 2020’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유튜브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10월 6일 ‘GTC October 2020’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유튜브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전뇌(電腦·인간 의식이 디지털화한 것)와 네트(Net·전뇌가 자유롭게 이동하는 디지털 공간), 영화 ‘매트릭스’의 매트릭스(The Matrix), ‘레디 플레이어 원’의 오아시스(OASIS)….

미래 사회의 가상현실을 그린 SF(Science Fiction) 영화와 소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것이 실제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시작은 어떤 모습일까?’

그 실마리를 보여주는 기업이 엔비디아(Nvidia)다. 1993년 창업 이래 게임용 그래픽처리장치(GPU) 전문이었던 엔비디아는 이제 인공지능(AI) 선도 기업이다. AI에는 엄청난 속도와 양의 계산이 필수인데, 이런 작업엔 GPU가 중앙처리장치(CPU)보다 월등하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AI 생태계 장악에 나섰다. GPU 기반의 AI 개발 플랫폼까지 제공하면서 개발자들을 엔비디아 진영으로 끌어들였다. 최신 전략을 보여주는 게 바로 엔비디아의 개발자 이벤트인 ‘GTC(GPU Technology Conference)’다.

젠슨 황 엔비디아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10월 6일 ‘GTC October 2020’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20년간의 엔비디아 성과에 놀라셨나요. 그렇다면, 앞으로 20년간 엔비디아가 보여드릴 내용은 SF나 다름없을 겁니다.” 그가 말한 SF와도 같은 미래 계획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5개의 기념비적인 SF물과 거기에 등장하는 대사·구절을 통해 분석했다.

젠슨 황은 GTC에서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 크래시’에 나오는 ‘메타버스(Metaverse)’를 인용했다. 그리고 엔비디아가 메타버스의 현실 버전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메타버스는 초월이란 의미의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를 합성한 말. 소설에선 메타버스에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이 ‘아바타(avatar)’라는 가상의 신체를 빌린다. 메타버스·아바타 같은 용어는 이 소설에 처음 쓰인 뒤 널리 퍼졌다.


스노 크래시(Snow Crash·1992) “전 세계 사람의 99%가 그렇지 않을까?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겠지만 그들은 너를 이해 못 해. 너도 그들을 이해 못 할 거고.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말을 계속 내뱉을 거야.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매일 어리석고 무의미한 일을 하는 거지. 거기에서 탈출할 유일한 방법은 당장 그만두고 기회를 찾는 거야. 사악하지만 멋진 세계로 떠나는 것 말이야.”
스노 크래시(Snow Crash·1992)
“전 세계 사람의 99%가 그렇지 않을까?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겠지만 그들은 너를 이해 못 해. 너도 그들을 이해 못 할 거고.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말을 계속 내뱉을 거야.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매일 어리석고 무의미한 일을 하는 거지. 거기에서 탈출할 유일한 방법은 당장 그만두고 기회를 찾는 거야. 사악하지만 멋진 세계로 떠나는 것 말이야.”

젠슨 황은 “이미 우리는 마인크래프트나 포트나이트 같은 게임에서 초기 단계 메타버스를 보고 있다”면서 “지금은 게임에서만 도시를 건설하고 이벤트에 모이고 친구들과 교류하지만, 미래에는 메타버스가 인터넷의 뒤를 잇는 가상현실 공간의 주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젠슨 황은 “미래의 메타버스는 현실과 아주 비슷할 것이고 ‘스노 크래시’에서처럼 인간 아바타와 AI가 그 안에서 같이 지낼 것”이라고 했다.

젠슨 황은 또 “메타버스에서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현재 기술로는 처음부터 완벽한 메타버스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우선 ‘시작품’을 만든 뒤 수많은 파트너와 협력해 완성형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그는 엔비디아의 ‘시작품’이자 협업 플랫폼인 ‘옴니버스(Omniverse)’를 소개했다. 옴니(omni) 즉 모든 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파트너를 연결해 함께 발전시켜 나가는 세계다. 최종 목표는 옴니버스에 실제 세상의 청사진을 다운로드하는 것. 거기에 인간들이 자신의 아바타로 접속하게 되면 ‘스노 크래시’의 메타버스가 실제로 만들어지는 셈이다.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1995) “봐. 나는 나를 포함한 방대한 인터넷에 접속돼 있어. 접속하고 있지 않은 너에겐 단지 빛으로밖에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우리 인간들은 얼마 안 되는 기능에 예속돼 있었지. 하지만 이제 그 제약을 버리고 상부 구조로 시프트할 때야.”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1995)
“봐. 나는 나를 포함한 방대한 인터넷에 접속돼 있어. 접속하고 있지 않은 너에겐 단지 빛으로밖에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우리 인간들은 얼마 안 되는 기능에 예속돼 있었지. 하지만 이제 그 제약을 버리고 상부 구조로 시프트할 때야.”

‘공각기동대’의 세계관은 이후 나온 SF뿐 아니라 관련 개발자들에게 깊은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전뇌는 인간 의식 자체를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상세계를 통해 인간의 활동 영역을 확장하는 메타버스와는 약간 다르다. 그러나 디지털기술로 인간의 활동 영역을 업그레이드한다는 점에서 엔비디아의 옴니버스가 지향하는 바와 맥락을 같이한다.


매트릭스(The Matrix·1999) “마지막 기회야. 다시는 돌이킬 수 없어. 파란 약을 삼키면 이야기는 끝나. 침대에서 일어나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면 돼. 빨간 약을 삼키면 이상한 나라에 머물게 될 거야. 토끼 굴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줄게.”
매트릭스(The Matrix·1999)
“마지막 기회야. 다시는 돌이킬 수 없어. 파란 약을 삼키면 이야기는 끝나. 침대에서 일어나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면 돼. 빨간 약을 삼키면 이상한 나라에 머물게 될 거야. 토끼 굴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줄게.”

가상공간인 매트릭스는 메타버스의 디스토피아 버전이다. AI가 발전해 인간 능력의 합을 넘어서게 된다면, AI가 인간을 자신을 위한 도구로 이용할 수도 있다는 가정이다.

인간이 매트릭스로 들어가는 방법은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 프로젝트와 비슷하다. 뉴럴링크는 지난 8월 지름 23㎜, 두께 8㎜의 동전 크기 제품 ‘링크’를 발표했다. 로봇수술을 통해 링크를 인간의 뇌와 연결하면 뇌와 컴퓨터 간 신호 교환이 가능해진다. 인간이 링크를 통해 엔비디아의 최종 단계 옴니버스와 연결된다면, 젠슨 황이 얘기한 것처럼 SF가 현실이 될 수 있다.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2018) “난 현실 세계에서는 결코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오아시스’를 만들었어.”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2018)
“난 현실 세계에서는 결코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오아시스’를 만들었어.”

어니스트 클라인의 2011년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레디 플레이어 원’은 2045년 미국이 배경이다. 메타버스와 비슷한 디지털 가상현실 ‘오아시스’가 등장한다. 영화에서 사람들은 비루한 현실보다는 나를 멋지게 만들어주는 가상현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사회적 격리로 세계인이 고통받는 상황을 일부 연상케 한다. 코로나19보다 훨씬 강력한 바이러스가 만연한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이 실제 세상보다 ‘오아시스’에서 만나는 게 더 자연스러워질지도 모른다.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1982)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이 우리의 모토다.”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1982)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이 우리의 모토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는 복제인간을 만드는 거대 기업 ‘타이렐’이 등장한다. 타이렐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엘든 타이렐 박사는 복제인간의 창조주다.

젠슨 황은 옴니버스를 통해 로봇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임을 강조한다. 로봇이 옴니버스에서 AI를 통한 자기 학습을 반복해 결국 인간 능력을 대체할 것이라는 얘기다. ‘블레이드 러너’에서처럼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인공 존재의 출현, 그렇게 된다면 미래에 젠슨 황이 타이렐 박사처럼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최원석 조선일보 국제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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