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11월 9일 주총 직후 Q&A에서 “가정용 냉난방기 사업에 진출한다”고 밝혔다. 사진 유튜브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11월 9일 주총 직후 Q&A에서 “가정용 냉난방기 사업에 진출한다”고 밝혔다. 사진 유튜브

세계 1위 전기자동차 회사인 테슬라가 가정용 냉난방기 사업에 진출했다. 이미 테슬라는 전기차를 폐차할 때 나오는 폐배터리를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가정의 에너지저장시스템(ESS·Energy Storage System)으로 활용하는 사업을 준비 중인데, 여기에 냉난방기까지 더한 것이다.

테슬라는 올해 초 시판된 테슬라의 보급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모델 Y’에 기존 제품보다 더 작고 효율이 높은 히트 펌프식 냉난방기를 탑재했는데, 이것을 전용(轉用)할 것으로 예상된다. ESS, 태양광 패널, 전기차에다 고효율 냉난방기까지 조합하면, 가정 전체의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왜 테슬라는 가정용 냉난방기까지 만드는 것일까? 거기에는 테슬라가 마주칠 새로운 환경 규제에 대한 장기적 포석이 깔려 있다. 새로운 환경 규제란 바로 전과정평가(LCA·Life Cycle Assessment)다. LCA는 원재료 채취로부터 가공, 제품화, 유통·소비, 폐기·재활용까지,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 전반에 걸친 환경 부하를 정량 평가하는 것이다. 국제표준화기구(ISO)의 평가 규격도 있다. 최근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보고서에 채용되는 경우도 늘었다.

특히 주목받고 있는 것이 자동차의 이산화탄소(CO2) 배출에 대한 LCA다. 자동차의 생산과 에너지 생성, 주행, 폐기, 재활용 등 라이프 사이클 전체에서 CO2 배출량을 평가하는 것이다. 2019년 3월 유럽의회·유럽위원회가 자동차의 LCA 적용 검토를 유럽연합(EU) 당국에 요청했고, 2023년까지 결론이 날 예정이다.


차량 환경 규제, 기업별 평균 연비에서 제품 전과정평가(LCA)로

유럽에선 현재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인 ‘유로6’보다 훨씬 더 엄격한 ‘유로7’을 2025년부터 실시하는데, 유로7 다음 단계 규제로 LCA가 도입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에서도 2025년 이후의 규제 도입을 염두에 두고 자동차 분야의 LCA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그럼 두 번째 의문. 테슬라의 가정용 냉난방기와 LCA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이는 자동차 배출가스 낮추기 경쟁이 현재의 기업별 평균 연비(CAFE·Corporate Average Fuel Efficiency) 기준에서 LCA로 옮겨가는 것과 직결된다. 테슬라 차량의 폐배터리가 태양광 패널 가정에 사용되고, 가정에서 가장 많은 전력을 잡아먹는 냉난방기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면, LCA에서 테슬라 차량의 전체 CO2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CAFE 기준, 즉 주행 중 상황만 평가하는 현행 규제로는 전기차의 CO2 배출량이 제로지만, LCA에서는 제조·발전·폐기 단계의 배출량 등이 더해진다. 업계에 따르면, 전기차 제조 시 CO2 배출량은 내연기관차의 두 배에 가까운데 그 차이 대부분이 배터리 제조 때 발생한다. 배터리를 만들 때 많은 전력을 쓰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기차의 CO2 배출량을 줄이려면 재생 가능 에너지를 사용해 차량을 조립하고 배터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테슬라 냉난방기는 LCA 대비한 장기 포석

하지만 유럽과 달리 재생에너지 비율이 낮은 아시아, 특히 중국에서는 LCA 기준으로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CO2 배출량 차이가 크지 않다. 최근 테슬라가 LG화학에 배터리 제조 시 CO2 배출량을 확인한다든지, 또 자사 전기차 폐차 때 나오는 배터리를 태양광 발전과 결부된 ESS로 재활용하려 하는 것 등이 전부 LCA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테슬라가 LCA에서 CO2 배출량 관리를 등한히 한다면, 도요타처럼 전기차를 거의 팔지 않은 상태에서도 유럽 배출가스 기준을 맞추는 회사와 LCA에서는 CO2 배출량의 차이가 크지 않을 우려가 있다.

향후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가 LCA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환경 보호의 명분은 물론, 유럽·중국 등이 자국 자동차 산업을 살리는 데 최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미 LCA를 염두에 둔 하이브리드카 보급 정책을 확정했다. 10월 27일 중국 정부는 2035년까지 전체 신차 판매에서 신에너지 차(전기차·플러그인·수소차) 비율을 50%(이 가운데 전기차가 95% 이상), 하이브리드카 비율을 50%로 높일 계획이다. 2035년부터 순수 엔진 차량은 퇴출시킨다는 것이지만, 역으로는 엔진이 들어간 하이브리드카가 2035년 중국 신차 시장의 50%를 차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은 유럽보다 재생에너지 비율이 낮아서, 2035년 모든 차량을 전기차로 바꾼다 해도, LCA 규제, 즉 실질적으로 차량 제조·사용·폐기 전 과정의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는 효과가 덜하다.

따라서 전기차만이 아니라, 하이브리드카를 대량 보급하고 자국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중국은 하이브리드카에 주던 혜택을 폐지했다가 최근 부활시켰는데, 이 역시 향후 LCA 규제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LCA 준비 못 한 자동차 회사, 10년 뒤엔 차 아예 못 팔 수도

물론 테슬라와 도요타 등 일부 업체를 뺀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는 당장 내년 실시되는 유럽 배출가스 규제를 맞추기에도 역부족이다. 내년부터 자동차 회사별로 신차(승용차)의 대당 평균 CO2 배출량을 95g/㎞ 이하로 맞춰야 하며, 못 맞출 경우 1g/㎞ 초과할 때마다 95유로(약 12만5000원)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

테슬라를 제외하고 유럽에서 차를 파는 기업 중 기준을 맞출 수 있는 기업은 도요타 정도이며, 나머지 기업 대부분은 거액의 벌금을 내야 할 처지다. 2019년 배출량을 기준으로 단순 환산해보면, 폴크스바겐은 내년 한 해에만 6조원, 현대·기아차는 1조원가량의 벌금이 예상된다.

폴크스바겐 등 유럽 회사, 현대·기아차 등이 내년에 서둘러 전기차를 대거 내놓는 것도 유럽에서 맞을 벌금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 큰데, 전기차를 많이 판다고 해도 벌금을 완전히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유럽 당국에서 자동차 회사끼리 연합해 대당 배출가스 기준을 낮추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에, FCA(피아트·크라이슬러)는 이미 테슬라와 연합해 벌금을 피할 방침이다. FCA는 대가로 테슬라에 분기당 약 1500억~2000억원을 지불할 예정이다. 그러지 않으면 내년 한 해만 3조원 이상 벌금이 예상되기 때문에, 테슬라에 돈을 줘도 이익이다. 최근 혼다도 테슬라에 비용을 지불하고 벌금을 피하기로 했다.

그러나 현재의 CAFE 규제에만 집중하고 LCA 대비를 등한히 한다면, 일부 자동차 회사는 10년쯤 뒤엔 아예 차를 못 팔게 될 가능성도 있다. 테슬라처럼 완전히 전기차만 만드는 회사나 도요타처럼 세밀한 LCA 대비를 하는 회사는 문제없이 차를 팔겠지만, 전기차로 전환도 못 하고 LCA 대비도 못 한 회사는 엄청난 벌금을 피하지 못해 아예 차를 팔지 못하게 될 것이다.

최원석 조선일보 국제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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