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교사 한모(27)씨는 성공한 ‘서학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개인 투자자)’다. 한씨는 임용고시를 치고 은행에서 대출받아 2018년부터 미국 주식에 투자했다. 또래 여성에게 유행하는 룰루레몬뿐만 아니라 구글·테슬라·넷플릭스·스타벅스를 사 모아 지난해 말 차익 실현에 성공했다. 한씨는 “꾸준한 미국 주식 공부를 바탕으로 서학개미가 돼, 3억원이 넘는 계좌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2020년부터 동학개미가 하나둘씩 서학개미로 변신하면서 미국 주식 투자 규모는 지난해 정점을 찍었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SEIBro)에 따르면 2021년 미국 주식 결제 대금은 3700억4650만달러(약 443조3158억원)로 집계됐다. 2020년 1781억4812만달러(약 213조4927억원)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올해도 1월 24일 기준 결제 대금이 벌써 216억3667달러(약 25조9315억원)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투자 가운데 미국 주식은 약 93%(2021년 기준)를 차지한다.

그러나 장밋빛 미래만 보장할 것 같았던 뉴욕 증시는 이제 서학개미를 망연자실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해 말과 올해 1월 4일(이하 현지시각)까지 ‘사상 최고 마감’ 랠리를 기록한 뉴욕 증시가 최근 글로벌 통화 긴축 우려로 연일 급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 증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이르면 오는 3월부터 올해 최대 일곱 차례까지도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신호에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 등락을 기록하는 변동 장세를 보인다. 1월 26일 기준으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연초 대비 6.61%, 나스닥지수는 14.47%,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9.31% 하락했다. 최근 고점 대비 48% 하락한 넷플릭스에 투자한 직장인 이모(32)씨는 “단기 조정이라고 믿고 싶지만, 어디가 ‘바닥’일지 모르겠다”라며 “크게 손실이 나 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장기투자하는 셈 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검은 호랑이해인 임인년(壬寅年) 새해를 맞은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서학개미는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가야 할까 고민하며 밤잠을 지새우고 있을 것이다. 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이후 이어진 제롬 파월 미 연준의장 기자회견이 매파적으로 해석되면서 시장 긴장감이 여전한 탓이다. 한편에서는 “오히려 저가매수 기회라고 생각해 주시하고 있다”는 주부 김모(61)씨처럼 박스피(코스피+박스권)를 피해 지금이라도 서학개미로 변신하려는 투자자도 많다. 올해는 어떤 전략으로 미국 주식에 투자해야 수익을 낼 수 있을까. 보다 근본적으로, 현 상황에서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게 맞는 선택일까. ‘이코노미조선’은 여기에 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서학개미 가이드’를 기획했다.


‘그런데도’ 미국 주식이 매력적인 이유

최근 하락장에도 해외 주식 전문가들은 미국 주식을 포트폴리오에 꼭 가져가라고 조언한다. 글로벌 투자 전문가인 국내 펀드매니저 A씨는 “주식 투자를 그만둘 게 아니라면, 투자자가 미국 주식을 포트폴리오에 안 넣을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도 올해 연준이 긴축 정책으로 이동하더라도 미국 주식 ‘비중 확대’를 권했다. 샤민 모사바르-라흐마니 골드만삭스 개인자산관리(PWM) 최고투자책임자(CIO)는 1월 13일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의 우위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투자자는 고평가 우려로 시장에서 빠져나오다 큰 수익을 놓칠 위험이 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크게 네 가지 이유로 미국 주식을 권한다. 첫째, 미국은 저성장 시대에도 성장이 계속 이뤄지는 곳이다. 전문가들은 신흥·개도국은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으로 인한 피해를 극복하기에 경제 성장률이 충분하지 않지만, 미국은 성장 여력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또 미국은 애플·테슬라·아마존·알파벳·넷플릭스 등 글로벌 1등 업체를 보유하고 있는 시장이라는 점도 성장성에 힘을 실어준다. 펀드매니저 A씨는 “뉴욕 증시가 이처럼 조정받는 일은 흔치 않다”라며 “장기 수익을 생각한다면 글로벌 1등 업종과 주식을 할인된 가격에 매수할 기회”라고 말했다. 펀드매니저 B씨는 “미국 기업 펀더멘털(기초 체력)이 국내 기업보다 더 나아 성장 가능성이 있다”라며 “패권국이자 최대 소비 국가인 미국 특성상, 한국보다 매크로 리스크(위험)에도 덜 취약하다”고 말했다.

둘째, 안전자산이자 기축통화인 ‘달러화’ 투자까지 병행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변동성이 클 때일수록 사람들은 달러화나 금 등 안전자산에 투자하는 경향이 짙다. 미국 주식은 달러화가 기반이 되는 투자 자산으로, 달러화가 오르면 일종의 ‘환 헤지(환율 변동으로 인한 위험 회피)’ 효과도 볼 수 있다. 펀드매니저 B씨는 “자산 배분 차원에서 달러화 표시 자산을 보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셋째, 2023년부터 ‘국내 주식에 대한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이 이뤄진다. 현재까지 국내 주식엔 대주주가 아닌 소액주주에게는 양도세를 물리지 않았지만, 미국 등 해외 주식은 이익과 손실을 합쳐 연간 250만원 넘게 벌면 22%(지방소득세 포함)의 양도세를 내야 했다. 해외 주식 세금 부담 때문에 국내 주식에만 집중하던 개인 투자자가 많았지만, 2023년부터 국내 주식도 연간 매매 차익이 5000만원을 넘으면 20~25%의 금융투자소득세가 부과된다. 펀드매니저 C씨는 “국내 주식에도 양도세가 부과된다면 세금 이점이 사라지기 때문에 더더욱 국내 주식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넷째, 더욱 폭넓은 투자 전략을 짤 수 있다. 각 국가(한국·멕시코 등)나 섹터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도 국내보다 많이 상장돼 있으며 국내에는 없는 3배 레버리지 상품도 다양하게 상장돼 있다. 또 과거 미국 투자를 어렵게 했던 정보 접근성이 좋아졌다. 최근 기사와 유튜브, 책에 나와 있는 심층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미국 주식 투자 전략을 짜는 것도 용이해졌다.

다만 증권가는 올해 연준의 금리 인상 등 긴축 정책이 예정돼 있고, 러시아와 서방 간 지정학적 긴장도 높아지는 등 여러 리스크 요소가 있기 때문에 2020년이나 지난해와 같은 단기 수익률을 기대하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종목이나 섹터를 선별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올해 상반기 또는 올해 안에 무조건 수익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미국 주식은 매력적이지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공격적 성향의 장기 투자자라면 펀더멘털이 튼튼한 성장주를 분할 매수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Plus Point

[Interview] ‘오히려 좋아, 인플레이션’ 저자 신동원
“내가 국내 주식 말고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이유”

이다비 기자

신동원 금융사관학교 대표 현 비즈파트너즈 이사, 전 미래에셋금융서비스 지점장 사진 신동원
신동원 금융사관학교 대표
현 비즈파트너즈 이사, 전 미래에셋금융서비스 지점장 사진 신동원

‘오히려 좋아, 인플레이션’ 저자인 신동원씨는 2017년부터 미국 주식에 투자해 왔다. 그는 2020년 말 국내 주식을 모두 정리하고 현재 주식 포트폴리오의 100%를 미국 주식으로만 채웠다. 최근 S&P500지수 ETF 저가 매입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그는 인터뷰에서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이유를 소개했다.


1|돈은 성장성이 높은 곳(미국)으로 이동한다.

“국내 증시는 2020년 많이 올랐지만, 작년부터 매력이 없어졌다. 그전까지는 한국은 다른 주요 선진국보다 경제 성장률 측면에서 선방했는데, 이제는 미국이 작년에 한국보다 1%포인트 이상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올해도 미국의 경제 성장률이 한국보다 높을 것으로 보인다(미국 3~4%, 한국 2~3%). 또 미국 금리 인상은 미국 경제가 꽤 회복됐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기축통화국인 유로존과 일본은 저성장이 고착화해 금리를 올릴 수 없다. 연준이 금리를 빨리, 그리고 많이 올리면 시장이 일시적인 충격을 받겠지만, 연준도 자산 가치가 폭락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시장이 기절할 정도의 충격이 오래가지 않으리라고 봤다.”


2|주주에게 우호적인 시장이다.

“미국 기업은 주가 상승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시가총액이 커져야 자금 조달이 수월해서다. 주가가 하락하면 자사주 매입 등으로 주가를 적극 방어하려 한다. 그러나 국내 기업의 자금 조달 방식은 조금 다르다. 주가를 끌어올려 시가총액을 늘리기보다 유상증자나 물적 분할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려는 측면이 강하다. 이는 모두 기존 투자자에게 악재다. 최근에도 LG화학이 물적 분할을 통해 LG에너지솔루션을 상장했다. LG에너지솔루션 청약은 대박이 났지만, LG화학 주가는 내리막길이다. 배터리를 보고 LG화학 주식을 샀던 기존 주주만 손해다. 개인도 이를 알아서 국내 주식을 장기 투자하지 않는다. 국내 시장에서 금리 이점과 뚜렷한 성장성이 모두 충족되지 않으면 미국 시장이 더 매력적일 수 있다.”

이다비 기자

이선목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