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의 보다콤 대리점에서 한 여성이 모바일 머니 서비스 엠페사 계정을 만들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의 보다콤 대리점에서 한 여성이 모바일 머니 서비스 엠페사 계정을 만들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지난 9월 영국 BBC에는 ‘현금이 멸종되고 있는 놀랄 만한 곳(The surprising place where cash is going extinct)’이라는 르포 기사가 올라왔다. BBC가 소개한 이 나라의 전통시장에서는 현금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신용카드가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전통시장에서 물건을 고른 사람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서 무언가를 입력한 뒤에 물건을 가지고 떠났다. 이 모든 과정이 단 몇 초 만에 이뤄졌고 지갑도, 현금도, 카드도 없었다. BBC의 표현대로 이곳이 ‘놀랄 만한 곳’인 이유는 또 있었다. 모바일 머니 서비스가 일상 깊숙이 파고든 이곳이 여느 선진국이나 잘 알려진 국가가 아닌, 소말릴란드라는 이름조차 낯선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였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모바일 머니 계정 1억개 넘어

소말릴란드는 1991년 소말리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지만, 아직 국제적으로 자치권도 인정받지 못한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다. 하지만 모바일 머니라는 첨단 결제 시스템이 일상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아프리카는 모바일 머니를 전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지역이다.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에 따르면, 전 세계에 282개 모바일 머니 서비스가 있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인 143개 서비스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 있다. 계좌를 만든 이후 90일 동안 유지된 모바일 머니 계정의 숫자도 아프리카가 1억10만개로 다른 지역을 압도한다. 두 번째로 많은 지역인 남아시아는 4040만개에 불과하다. 모바일 머니 계정을 가진 성인 인구 비율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가 11.5%로 남아시아(2.6%), 라틴아메리카(1.7%), 동아시아(0.4%) 등보다 월등히 높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는 아프리카를 “금융서비스 지형의 중요한 요소가 된 모바일 머니의 글로벌 리더”라고 칭하기도 했다.

소말릴란드에서 모바일 머니가 현금을 대체한 과정은 아프리카에서 왜 모바일 머니의 인기가 높은지를 잘 보여준다. 소말릴란드는 실링이라는 자체 통화를 사용하는데, 독립 과정에서 국가가 돈을 마구 찍어내다 보니 화폐 가치가 급락했다. 시장에서 장을 보려면 손수레 가득 지폐를 쌓아 와야 할 정도였다. 더군다나 소말릴란드는 국제 사회에서 소외된 지역이어서 글로벌 금융회사들도 진출하지 않았다. 이때 대안으로 떠오른 게 모바일 머니였다. 지난해 기준으로 소말리아인의 88%가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었고, 소말릴란드만 봐도 도시 인구의 81%가 휴대전화를 보유하고 있었다. 손수레 가득 지폐를 들고 다니거나 제대로 된 은행이 들어오길 기다리기보다 소말릴란드 사람들은 모바일 결제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서 모바일 머니가 성행하게 된 이유도 소말릴란드와 비슷하다. 아프리카는 다양한 소득 수준을 가진 국가들로 구성돼 있지만, 전체적으로 금융 인프라가 열악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프리카 대륙에서 인구 10만명당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수는 평균 4.8개에 불과하다. 아프리카에서 ATM이 가장 많은 남아프리카공화국도 10만명당 10개에 그쳤다. 한국의 경우 10만명당 290개의 ATM이 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모바일 금융을 제외한 제도권 금융기관을 이용할 수 있는 성인 인구 비율은 24%다. 반면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에서 휴대전화 보급률은 80% 정도에 달한다. 하루종일 걸어도 은행 하나 찾을 수 없는 광활한 아프리카 대륙에서 모바일 머니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케냐 나이로비의 한 전자제품 대리점에 엠페사 광고가 붙어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케냐 나이로비의 한 전자제품 대리점에 엠페사 광고가 붙어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케냐·탄자니아가 이끄는 모바일 머니 시장

아프리카에서 모바일 머니가 확산된 건 지난 10년 사이의 일이다. 처음 모바일 머니 서비스가 시작된 건 200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이었지만,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건 2007년 케냐의 이동통신 사업자인 사파리컴(Safaricom)이 ‘엠페사(M-Pesa)’라는 모바일 머니 서비스를 내놓으면서부터다. 엠페사의 엠(M)은 모바일(Mobile)을 의미하고, 페사(Pesa)는 스와힐리어로 돈을 뜻한다. 말 그대로 모바일 머니다.

엠페사는 영국의 국제원조기구인 국제개발부(DFID)와 영국계 다국적 통신회사인 보다폰이 주도해서 만든 모바일 머니 서비스다. 엠페사가 출시되기 전에는 케냐에서도 제대로 된 금융 서비스가 없다시피했다. 엠페사 출시 전 송금 방식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게 손에서 손으로 직접 전달하는 것(58%)이었고, 버스를 통한 전달(27%)이나 우편환(24%)도 많았다. 케냐 나이로비는 범죄율이 높은 도시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늘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현금 뭉치를 품속에 숨긴 채 종종걸음으로 골목길을 지나쳐야 했다.

이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케냐 정부는 모바일 머니를 활용한 새로운 결제 시스템을 적극 지원했다. 케냐의 1등 이동통신 사업자인 사파리컴이 독점적 지위를 활용해 서비스 확산을 주도한 것도 성공 요인이었다. 모바일 머니 서비스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보다폰의 지원도 큰 도움이 됐다. 엠페사는 케냐에서 출시 14개월 만에 270만명의 이용자를 모으는 데 성공했다. 지금은 엠페사가 가장 보편적인 송금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보다폰은 케냐에서의 성공을 밑거름 삼아 아프리카 다른 지역에도 엠페사를 출시했고, 지금은 아프리카 전역에서 1900만명의 실이용자를 확보하고 있다. 엠페사가 벌어들이는 연간 수익만 5억5000만달러에 달한다.

탄자니아도 아프리카의 모바일 머니 시장을 이끄는 선두 국가 중 하나다. 작년 말 기준으로 탄자니아에 등록된 모바일 머니 계정은 1800만개에 달한다. 성인 인구 중 모바일 머니를 사용하는 인구 비율이 84%로 모바일 머니가 시작된 케냐보다도 높다. 탄자니아의 경우 모바일 머니 서비스가 처음부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케냐에 비해 반응이 저조하자 모바일 머니 사업자들이 공과금 납부 서비스를 추가하고, 마케팅을 강화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 끝에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다.


은행보다 이동통신 회사가 사업 주도

아프리카에서 모바일 머니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모든 국가에서 환영받는 건 아니다. 인구 대국인 나이지리아는 모바일 머니 서비스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대표적인 국가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관계자는 “나이지리아에서 모바일 네트워크 사업자는 은행이 주도하는 모바일 머니 사업에 파트너 형태로만 참여할 수 있어서 제약이 많다”며 “전반적으로 법률 규제가 강해서 확산 속도가 저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아프리카에서 성공한 모바일 머니 서비스는 이동통신 사업자가 주도한 경우가 많다. 사파리컴의 엠페사나 MTN 모바일 머니, 티고 머니(Tigo Money) 등이 대표적이다. 이동통신 사업자가 은행과 손을 잡고 만든 모바일 머니 서비스도 있다. 서비스 출시 18개월 만에 이용자 1000만명을 모은 ‘엠샤와리(M-Shwari)’는 사파리컴과 케냐의 중견 은행인 CBA가 함께 만든 서비스다. 이 경우도 이동통신 사업자인 사파리컴이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이외에 은행이 주도해서 만든 케냐의 이퀴텔(Equitel)이나 은행에서 독자적으로 만든 FNB 같은 모바일 머니 서비스도 있지만, 이용자 수가 많은 편은 아니다.

맥킨지는 이동통신 사업자가 아프리카 모바일 머니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은 원인을 세 가지 정도로 분석했다. 우선 광범위한 네트워크다. 은행 지점보다 이동통신 사업자의 대리점 네트워크가 훨씬 막강했다. 예를 들어 케냐의 사파리컴은 엠페사 이용자가 현금을 입출금할 수 있는 대리점을 13만개 정도 보유하고 있다. 반면 케냐의 은행 중 1위 사업자가 확보한 대리점의 수는 1만5000개에 그쳤다.

휴대전화 보급률이 높은 것도 이동통신 사업자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는 이유였다. 아프리카 최대 이동통신 사업자인 MTN은 가입자만 1억7100만명에 달한다. 아프리카 최대 은행들인 에코뱅크, 스탠더드뱅크 등은 가입자가 1100만~1500만명 수준에 불과하다. 맥킨지는 “아프리카 상위 5개 이동통신 사업자가 아프리카 전체 이동통신 가입자의 60%를 가지고 있는 데 비해 상위 5개 은행 사업자가 확보한 가입자는 22%에 불과하다”며 “이동통신 사업자가 은행보다 더 독점적인 지위를 가진 것도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마지막 이유는 직관적인 이용자 경험이다. 규제에 의존해 성장한 은행들과 달리 아프리카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 성장했다. 이들은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고 이용자 경험을 개선할 수밖에 없었다. 모바일 머니 서비스도 마찬가지였다. 엠페사의 경우 어떤 휴대전화로 접속하든 6번만 클릭하면 돈을 보낼 수 있다. 결제 수수료가 없고, 가입 절차도 간단해 인기를 끌 수밖에 없었다.


맥킨지 “금융의 미래는 모바일” 전망

맥킨지는 아프리카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금융의 미래는 모바일에 있다고 전망한다. 맥킨지는 “은행이 시장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모바일 머니 서비스를 위한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며 “모바일 분야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은행들이 멀티채널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들이 이동통신 사업자의 모바일 머니 서비스에 맞설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다섯 가지다. 인도나 터키의 은행 사업자들처럼 직접 모바일 머니 서비스를 출시해서 경쟁하는 방법이 있다. 인도나 터키의 은행들은 디지털 채널을 통한 금융 상품 판매 비율을 18~25%까지 끌어올렸다. 지점을 줄이고 디지털 은행을 늘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체코나 폴란드 같은 동유럽 국가의 은행 사업자들이 디지털 은행을 통해 많은 고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맥킨지는 “디지털 은행이 지점을 운영하는 것보다 비용 측면에서 10~30% 정도 더 효율적”이라며 “모바일 머니 서비스와 경쟁을 펼치는 데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은행이 혼자 힘으로 하기보다 파트너십을 체결해도 된다. 이때 결정해야 할 건 누구와 파트너십을 맺느냐다. 아프리카의 경우 다양한 핀테크 사업자들이 활발하게 영업을 하고 있다. 파가(Paga)의 모바일 결제 서비스는 나이지리아에서 600만명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고, 주모(Jumo)는 아프리카 전역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이런 핀테크 사업자와 협력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온라인 전자상거래 업체나 정보기술(IT) 업체와 협력할 수도 있다. 중국이 대표적인 경우다. 알리바바는 전자상거래를 이용하는 고객의 데이터를 활용해 수억 명에게 모바일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텐센트도 위뱅크(WeBank)라는 금융 서비스를 출시해 인기를 끌고 있다. 마지막 방법이 이동통신 사업자와 협력하는 것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이동통신 사업자에게 주도권을 내줄 수 있지만,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맥킨지는 “각각의 은행이 처한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서 가장 좋은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며 “유일하게 은행이 선택할 수 없는 방법은 예전처럼 사업하는 것뿐”이라고 지적했다.


Plus Point

하나금융, 탄자니아 진출
통신회사 보다콤과 업무협약

김정태(오른쪽 다섯 번째)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지난 7월 탄자니아를 방문해 현지 통신사 보다콤과 모바일 머니 활성화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사진 : 하나금융그룹>
김정태(오른쪽 다섯 번째)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지난 7월 탄자니아를 방문해 현지 통신사 보다콤과 모바일 머니 활성화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사진 : 하나금융그룹>

지난 7월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탄자니아를 찾았다. 김 회장은 탄자니아 1위 이동통신 사업자인 보다콤(Vodacom)의 음와나히디 마자르(Mwanahidi Majaar) 회장을 만나 엠페사(M-Pesa) 결제 활성화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국내 금융업계 최초로 아프리카 시장에 진출하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하나금융그룹을 비롯해 우리은행, 신한금융지주 등 여러 국내 금융사가 아프리카 진출을 노렸지만, 실제 성과로 이어진 건 없었다. 아프리카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데다 금융 인프라가 열악해 국내 금융사가 쉽게 접근하기 힘들었다. 하나금융그룹도 2013년 아프리카 진출을 시도했다 철수한 경험이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이번 업무협약을 통해 보다콤의 엠페사에 하나금융그룹이 개발한 모바일 결제 플랫폼인 1Q페이(원큐페이)의 다양한 기능을 접목한다는 계획이다. 송금 기능에 특화된 엠페사에 원큐페이의 QR코드, 근거리무선통신(NFC) 기능 등을 탑재해 활용도를 높인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모바일 머니가 활성화돼 있는 케냐의 대형 통신사와의 제휴사업도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등 동아프리카를 중심으로 그룹 내 하나카드의 온·오프라인 결제·지급 기술을 이전하고 금융권 최초의 통합멤버십인 하나멤버스와 연계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