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멋진 건배사는 조직을 하나로 묶고 기운을 북돋는 역할을 한다. <사진 : 조선일보 DB>
리더의 멋진 건배사는 조직을 하나로 묶고 기운을 북돋는 역할을 한다. <사진 : 조선일보 DB>

‘리더여, 건달이 되라.’ 난데없이 무슨 말인가 할 것이다. 건달은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거나 게으름을 부리는 짓 또는 그런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필자가 뜻하는 ‘건달’은 ‘건배사의 달인’이다. 평소에 샌님 같은 이미지가 강하다면 창조적인 건배사를 시도해보라. 당신을 달리 볼 것이다.

한국 문화가 일률적, 획일화니 어쩌니 해도 사실은 창조적이다. 해마다 겹치지 않는 건배사가 매년 탄생한다. 건배사 차례는 노래방에서 자신의 노래 순서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초조함이 있다. 내가 준비한 ‘비장의 건배사’를 앞사람이 해버렸을 때의 실망감은 ‘내 18번 애창곡을 남이 불렀을 때 김빠지는 것’에 비할 것이 아니다. 신세대와 기성세대의 차이를 건배사를 하느냐 안 하느냐로 가른다고 한다. 아예 건배사를 ‘위하여’로 통일해 그 외의 것을 금지하는 회사도 있다. 건배사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창의적 건배사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은근한 기대는 술자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깨알 재미’다.

건배사는 작은 차이로 큰 인상을 남기는 강력한 언어 권력이다. 폭탄주가 짧은 시간에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처럼 건배사도 같은 효과를 낸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쓰이는 용어로 에반젤리즘(Evangelism)이 있다. ‘좋은 소식을 널리 퍼뜨린다’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에서 차용한 말로, 어떤 제품과 서비스가 삶을 얼마나 향상시킬 수 있는지 세상에 설명하는 제반 활동을 일컫는 말이다. 잡담과 여러 가지 친밀한 활동을 통해 조직에 기름칠을 한다.


건배사는 리더의 로망

한국 조직 문화에서 건배사가 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건배사에 칙칙하고 우울한 내용을 담는 경우는 드물다. 긍정적이고 기분과 기운을 끌어올려준다. 씩씩하고 싹싹한 건배사는 직원들에게 당신의 리더십을 증명하고, 영감을 북돋아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사람임을 보여줄 수 있다. 기운을 한바탕 넣어주는 필살 구호다.

건배사는 너와 나를 우리로 묶어 주고, 탄탄하게 조여 주고, 한마음으로 엮어 주는 촉매제다. 30초짜리 메시지 안에 구성원들의 사기를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다. 자리의 의미와 재미가 딱딱 들어맞아 솔깃하고 쫄깃하게 먹히는 건배사는 리더의 로망이기도 하다.

얼마 전 한 모임에 갔다. 시인이 합석해 한시 구절을 인용, 건배사를 했다. “주봉지기천배소 화불투기반구다(酒逢知己千杯少 話不投機半句多).” ‘좋은 친구를 만나면 천 잔의 술도 모자라고 말이 서로 통하지 않으면 반 마디 말도 많다’는 뜻이다. 각각 다른 일행이 모여있던 그 자리는 일순 천 잔의 술도 모자란 자리로 화기애애해졌다. 그 시인은 물론 자리의 품격까지 올라갔다.

이처럼 창의적 건배사는 그 사람을 다시 보게끔 한다. 심기석 세일ENS 사장은 ‘건달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그는 ‘건배사는 리더십이다’라고 말한다. 여성 리더로서 그는 술자리에서 늘 새롭고 재미있는 건배사로 자신만의 분명한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여자 후배들을 교육시킬 때도 ‘건배사 제대로 하는 법’부터 가르칩니다. 차례가 돌아오길 기다리기보다 먼저 자원하라고 말합니다. 또 두루 쓸 수 있는 범용 건배사와 자신만의 특성을 살린 필살 건배사 두 가지를 구분해 준비하라고 합니다. 각자 맡은 분야에서 실력은 노력하면 되지만 네트워킹, 사회 적응 훈련은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은 선배에게 배우는 게 효과적이니까요.”

입에 척척, 귀에 쏙쏙 감기는 건배사가 허투루 즉흥적으로 튀어나온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책, 신문을 읽다가도 응용할 것이 있으면 메모하고 변형하고 외우고 연습한다. 사자성어로 신조어 건배사를 만들기도 한다. 모임의 성격, 분위기와 일치시키는 것은 기본이다. 최근의 히트 건배사는 ‘인사불성(인간을 사랑하라는 말은 불경에도 나와 있고 성경에도 나와 있다)’, ‘적반하장(적당한 반주는 하느님도 장려하신다)’ 등이다.

창의적이고 품격 있는 건배사에는 의미와 재미의 폭탄이 장착돼 있다.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축 처져 있던 자리가 건배사 한 번으로 생생하게 생명력을 되찾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당신은 어떤 필살기를 갖고 있는가. 건배사 꽝이 아닌 짱의 리더들이 가진 내공의 건배사 법칙은 3C로 요약된다. 3C란 캐릭터(character), 콘셉트(concept), 컴패션(compassion)을 뜻한다.


잡담과 여러 친밀한 활동은 조직을 더욱 활동적으로 만든다.
잡담과 여러 친밀한 활동은 조직을 더욱 활동적으로 만든다.

장광설 말고 30초 안에 끝내야

먼저 캐릭터는 본인과 어울리는 것을 말한다. 남들이 하는 건배사를 듣고 따라했는데 영 썰렁했던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왜일까. 본인의 캐릭터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반전의 매력도 있을 수 있겠지만 리더가 명심해야 할 것은 ‘웃기지는 못할 망정’ 우스워지진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건배사는 꽝이다.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고 주목을 받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평소 캐릭터와 어우러진 건배사다.

콘셉트는 자리의 분위기, 성격과 잘 어울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컴패션이 통해야 한다. 구성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상한가(상심하지 말고 한탄하지 말고, 가슴을 펴자)’ 등 기를 살려주는 건배사가 여기에 해당한다. 건배사는 단지 구호를 넘어 술도 푸고 마음의 빗장도 풀고 싶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요즘은 건배사를 넘어 ‘건배화’라고도 한다. 화(話) 글자를 분해해보면 말씀 언(言)과 일천 천(千)과 입 구(口) 자로 구성돼 있다. 말은 1000번 연습해야 자연스럽게 들린다고 해석해볼 수 있다. 그만큼 연습해야 한다는 뜻이다. 본인의 입에 착 붙어야 구성원의 귀에도 잘 들어온다.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고 나서야, 주섬주섬 스마트폰에서 건배사를 찾아 읽듯이 하지 말라.

당신의 입에 붙지 않은 건배사는 상대의 귀에도 들어오지 않는 법이다. 장광설을 늘어놓아 술잔을 든 사람들의 팔을 떨어지게 하지도 말라. 성공한 리더는 멋진 30초의 승부를 위해 품을 들인다. 품을 들여야 폼이 나는 건배사가 나올 수 있다. 술자리에서는 풍류 넘치는 ‘건달(건배사의 달인)’이 돼보라.


▒ 김성회
연세대 국문학과 석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경영학 박사, 주요 저서 ‘성공하는 ceo의 습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