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있는 스탠퍼드대는 벤처가 생활화된 학교다. 학교 측에 따르면 1930년대부터 2011년까지 스탠퍼드대 졸업생 중 설문조사에 응한 2만8917명 중에서 29%인 8385명이 창업 경험이 있다. 이들이 만든 회사는 3만9900개이며, 창출한 일자리는 약 540만개, 매출액은 약 3000조원에 이른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학생들의 창업 능력을 확실히 가늠해 주는 수업이 있다. 바로 조엘 피터슨 교수의 ‘성장하는 기업 경영하기(Managing growing enterprise)’다. 이 수업은 스탠퍼드 경영대학원(MBA) 과정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수업이다. 창업부터 기업 경영의 ‘A~Z’를 모두 배우는데, 다른 MBA 수업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실제 벤처기업에서 벌어진 인간관계에 대한 문제들을 가지고 학생들끼리 역할극을 해본다는 것이다. 역할극의 상황은 실제 기업에서 일어난 일이며, 실제 케이스의 주인공인 기업가들이 수업 시간마다 참석해 자신의 실제 경험을 이야기해 주고 조언해준다.

그린 리버 인바이런먼트(Green River Environment)란 회사의 창업자 도슨은 자신의 친구이자 자신을 멘토로 여기던 최고재무책임자(CFO) 낸시를 해고한 경험을 풀어놨다. 도슨은 낸시와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문제는 사업이 너무 커져서 더 전문적으로 재무를 담당할 CFO를 데려와야 했다는 것이다. 낸시는 업무상 치명적인 실수를 했고, 부하 직원들의 존경을 잃었다. 하지만 친구이자 파트너였던 낸시에게 말을 꺼내는 건 쉽지 않았다.


수업 중 ‘해고 연습’하다 울음 터트리기도

이때 피터슨 교수가 “자, 여러분 중 누가 도슨이 돼 보겠나”라고 말했다. 공부도 운동도 다 잘하고 인기도 많은 알렉스가 번쩍 손을 들어 도슨 역할을 맡았다. 낸시는 평소에 말수도 없고 소극적인 아담이 맡기로 했다.

알렉스: “낸시, (망설이다가) 사실 할 말이 있어. 아무래도 네가 계속 CFO 자리에 있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

아담: “도슨, 그게 무슨 소리야. 누가 나를 험담했니. 그런 말이 어딨어. 이 회사를 여기까지 오게 하는 데 내가 얼마나 애썼는지 네가 누구보다 잘 알잖아. 난 잘할 수 있어. 내게 기회를 줘.”

알렉스: “낸시, 내게도 너무 어려운 결정이야. 지금 회사에서는 더 경험 있는 사람이 필요해.”

아담: “(울면서 소리를 지르며) 난 배울 수 있어. 갈수록 나아지고 있다고. 지금까지 그래 왔듯 나는 잘 해낼 거야. 넌 내가 두 아이의 학비를 대기 위해 이 일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잖아.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누구도 그 조용한 아담이 울면서 소리 지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세등등하던 알렉스가 당황한 상황. 지켜보던 피터슨 교수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아담, 정말 잘했어. 실제로 해고는 가장 어려운 대화이고, 근본적으로 감정적인 과정이야. 절대로 상대방에게 틈을 줘서는 안 돼. 짧게 두괄식으로 할 말을 확실히 정리하고 그 전에 기록부터 다양한 이슈를 다 정리해 놔야 해. 그리고 ‘업무 능력’을 해고하는 것이지 그 ‘사람’을 해고해서는 안 돼. 즉 인신공격은 절대 피해야 하지.”

당사자였던 도슨이 말을 이었다. “실제로 낸시를 내보내는 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나는 미리 모든 서류를 준비했다. 그리고 낸시를 보자마자 모든 이야기를 10분 안에 끝마쳤다. 낸시는 예상했던 대로 매우 감정적으로 나왔지만, 며칠 후에 다시 만난 낸시는 훨씬 더 안정된 모습으로 모든 걸 받아들이겠다며 해고를 받아들였다. 우리는 여전히 좋은 관계로 남아 있다.”


역할극 통해 경영 난제 해결법 배워

보노보스(Bonobos)란 기업 창업자인 앤디가 수업에 초청됐다. 전자상거래로 남성 정장 바지와 캐주얼 바지를 파는 보노보스는 창업 6년 만에 직원 수가 수백명에 이르는 중견기업이다. 스탠퍼드대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보노보스 이사회 임원이 된 최초 투자자 새뮤얼슨은 1000만달러(약 110억원)를 회사에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돼 있었다.

문제는 창업자가 욕심을 내면서 불거졌다. 공동 창업자인 앤디와 브라이언이 1500만달러로 투자금을 올려줄 것을 이메일로 통보했다는 것이다. 새뮤얼슨은 이에 반발한 상황이다.

존이 손을 들었다. “그게 뭐가 문제인가요. 원치 않으면 떠나면 되는 것 아닌가요. 어차피 1500만달러에 투자하겠다는 투자자가 줄을 서 있는데 말입니다.”

피터슨 교수가 존을 호명했다. “자네가 앤디, 내가 투자자 새뮤얼슨이 돼 보겠네. 나한테 전화를 걸게.”

존: “기존 구두 약속을 깨서 미안하지만 기업이 더 잘되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피터슨: “정말 유감이네. 이건 신뢰와 약속의 문제야.”

존: “정말 죄송한데 기업 가치를 다시 수정할 마음이 없습니다.”

피터슨: “좋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닐세. 난 이사회를 탈퇴하고 기존 투자도 회수하겠네. 내 기존 지분은 현금화해 돌려주게!”

존: “아, 그건. 갑자기 그렇게까지는. 그렇게 하시면 다른 투자자들도 이탈할 텐데.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 있나요.”

피터슨: “끊네.”

일류 컨설팅펌 출신으로 화려한 언변을 자랑하던 존도 더 이상 할 말을 잊어버리는 순간이었다. 얼굴이 벌게져 어쩔 줄 모르는 존을 앞에 두고 피터슨 교수는 말했다. “지금 사례에서 봤듯이 투자자의 경중을 잘 헤아리지 않으면 처음에 잘 키워 놓은 기업도 망하게 된다.”

피터슨 교수는 “여러분, 이런 상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일으킬 오만은 누구에게나 오게 돼 있다. 잘나간다고 전화나 이메일로 대응할건가. 가급적 직접 만나라. 그리고 무조건 사죄를 구하고 용서를 구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투자처를 잃을 뻔했던 앤디가 말을 이어갔다.

“어떻게든 (투자 철회를) 막아야 했기에 무조건 빌었다. 직접 찾아가서 잘못했다고 빌고 어떻게든 살려달라고 했다. 교수님께 쓴 생각 없는 이메일 하나가 그 모든 화를 불러일으켰다.”


▒ 조엘 피터슨 Joel Peterson
스탠퍼드대 MBA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