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세계 시장을 주도했던 소니는 이후 혁신에 실패해 2000년대 한국·대만 등 아시아 국가의 기업들에 추격을 허용했다. <사진 : 블룸버그>
1990년대 세계 시장을 주도했던 소니는 이후 혁신에 실패해 2000년대 한국·대만 등 아시아 국가의 기업들에 추격을 허용했다. <사진 : 블룸버그>

“선두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위기다.” 일반인이라면 경쟁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을 위기라고 부르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위에 있는 것 자체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다.

그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92년 이래 이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1984년 MIT 교수들과 전자 및 통신 부품업체를 설립해 회장직을 수행했고, 2000년 이후에는 2개의 컨설팅 회사를 설립해 경영했다. 또 기술과 기업 혁신에 대해 창의적이고 명쾌한 통찰력을 담아낸 혁신 이론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실무적으로, 학술적으로 화려한 전적을 지닌 그는 ‘파괴적 혁신’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그의 파괴적 혁신 이론에 의하면, 아무리 업계 1위를 달리며 잘나가는 기업이라도 한순간에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주로 일반적인 업계 1위 기업들은 선도하는 기술을 기초로 신제품 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해 프리미엄 제품을 고가에 파는 전략을 구사한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 <사진 : 블룸버그>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 <사진 : 블룸버그>

저가 시장 공략한 중국 기업 급성장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과거 단순한 제품만을 취급해왔던 기업들이 성장을 거듭하며 조금씩 1위 업체의 시장 점유율을 빼앗고 있고, 이런 현상이 누적돼 결국 1위 기업들도 몰락하는 계기가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이다. 20세기 후반 높은 성장기를 거치며 일본 대기업들은 혁신을 통해 미국을 추월했다. 소니와 도요타는 수준높은 기술 없이도 만들 수 있는 라디오, 소형차 같은 단순하고 값싼 제품을 가지고 시장의 하위수준에서 경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1990년대가 되자 일본 기업들의 시장지배력은 정점을 찍고 각 분야에서 으뜸가는 제품과 솔루션을 만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고기술(하이엔드·High-end) 시장을 점령한 모든 기업들이 겪는 것으로, 업계 최고 자리에 오르면 과거와 같은 기업성장률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대기업들도 세계 1위 자리를 미국으로부터 빼앗았지만, 경제 성장이 멈추기 시작하면서 주변 아시아 국가(한국·대만·싱가포르 등)의 기업들에 마치 과거 일본이 미국을 쫓았던 것처럼 무서운 속도로 추격을 당하기 시작했다.

일본 사례처럼 하이엔드 시장에서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기업은 언젠가는 시장의 낮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로엔드(Low-end) 시장에서 성장한 기업으로부터 추격을 당할 수 있다. 특히 현재 중국 기업들은 꾸준히 저가 시장을 공략하고 있고, 이러한 하위 시장으로부터의 잠재적인 위협은 무시할 수 없는 실정이다. 실제로 일부 중국 기업의 기술은 이미 하이엔드 시장을 넘보고 있다.


스마트폰과 같은 특정 제품의 성능이 점점 고도화되는 것은 지속적 혁신의 결과다. <사진 : 블룸버그>
스마트폰과 같은 특정 제품의 성능이 점점 고도화되는 것은 지속적 혁신의 결과다. <사진 : 블룸버그>

새로운 시장 만드는 파괴적 혁신

이처럼 새로운 기회의 발견 가능성과 성장 가능성은 시장 밑바닥에서 나오는 것이다. 현재 잘나가고 있는 기업들은 이 점에 착안해 스스로 시장의 낮은 부분으로 내려갈 필요가 있다. 이 행위로부터 성공을 거두는 것이 바로 파괴적 혁신이다.

그렇다면 크리스텐슨 교수가 주장한 파괴적 혁신이란 정확히 어떠한 의미일까. 그의 혁신이론이 개념화되기 전, 슘페터와 드러커는 혁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지프 슘페터는 혁신을 창조적 파괴라고 일컬었으며, 피터 드러커는 많은 부를 만들 수 있도록 자원에 새로운 능력을 부여하는 활동이라고 했다. 이처럼 기존의 혁신에 대한 관점은 혁신을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행위로 보았다. 그러나 크리스텐슨은 이러한 혁신의 개념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혁신을 세분화시켜, 혁신에 대한 개념을 보다 더 정교하게 구분했다. 혁신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으며 하나는 지속적 혁신(sustaining innovation)이고 다른 하나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다. 지속적 혁신은 일반적으로 특정 기술이 경쟁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지속적으로 그 기술의 성능을 다양한 방법을 통해 향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능을  계속 향상시켜 늘 하이엔드 시장을 만족시키는 기술 개발을 지속적 혁신이라 한다. 간단한 예로, 스마트폰과 같은 특정 제품의 성능이 점점 고도화되는 현상이 바로 지속적 혁신의 결과다.

파괴적 혁신은 크리스텐슨이 새롭게 정의한 혁신 개념으로, 앞서 설명한 지속적 혁신에 대응할 수 있는 혁신이다. 파괴적 혁신은 이미 지속적인 혁신을 이뤄 상위 시장, 즉 주류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기업과 어떻게 경쟁하며 시장에 진입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우선, 신시장형 파괴와 로엔드형 파괴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신시장형 파괴는 주류 시장과는 다른 가치의 기준을 갖는 새로운 시장에 자리잡은 후 혁신을 시도하거나 시작하는 파괴다. 대표적인 예로 부유층의 소유물이었던 자동차를 표준화 작업 공정으로 가격을 낮춰 대중에게까지 자동차 시장을 넓혔던 포드의  모델 T와 연극에 서커스를 접목시켜 새로운 시장을 만든 ‘태양의 서커스’가 있다.


연극에 서커스를 접목시킨 태양의 서커스는 파괴적 혁신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만든 대표적인 사례다. <사진 : 블룸버그>
연극에 서커스를 접목시킨 태양의 서커스는 파괴적 혁신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만든 대표적인 사례다. <사진 : 블룸버그>

기존 시장 벗어나 신시장 개척해야

이 두 사례가 바로 비소비자를 소비자로 부상시킨 신시장형 파괴전략이다. 다음으로 로엔드형 파괴는 지속적 혁신을 선도하는 기업의 기술 발전과 실제 경쟁 시장의 욕구(니즈) 사이에서 간극(Gap)을 발견하고, 성능이 다소 떨어지지만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파괴적 기술로 이 간극을 메우며 혁신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때 파괴적 기술이 로엔드 시장 진입에 성공하게 되면, 급격한 기술 개발이 시작되고, 기술 개발과 성장을 거듭하며 주류 시장(하이엔드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는 수준까지 이르게 된다. 즉, 시작은 파괴적 기술로 로엔드 시장에서 자리잡았으나, 결과적으로 이 파괴적 기술이 상위 시장에도 수용될 가능성이 생긴다. 이처럼 기존 시장의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혁신을 파괴적 혁신이라고 한다. 나아가 이 파괴적 혁신은 로엔드 파괴적 전략뿐만 아니라, 아예 기존 시장을 벗어나 신규 시장을 개척해내는 혁신의 개념도 포함하고 있다.

크리스텐슨 교수에 따르면, 하나의 기업이 무한경쟁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택해야 할 전략이 지속적 혁신인지 파괴적 혁신인지 명확히 고민할 필요가 있고, 이와 연관된 실행 방안과 프로세스를 확립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전략에 대한 이해와 프로세스 확립은 무한경쟁과 무한기술발전이 이뤄지고 있는 제조업 시장에 필수적인 조건이다.


지속적 혁신과 파괴적 혁신 동시 구사해야

각기 기업 상황에 맞는 전략을 택하는 모습은 자동차 산업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높은 기술력, 서비스 품질과 시장점유율을 바탕으로 하이엔드 자동차 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도요타자동차는 기존 시장에 더 나은 제품을 끊임없이 공급하려고 하는 지속적(존속적) 혁신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지속적 혁신을 통해 도요타는 경쟁사의 하이엔드 시장 진입을 방어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무한경쟁 시장에서 이 전략이 100%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나라 현대자동차의 경우, 도요타에 비해 기술이나 자본, 시장, 네트워크 수준이 다소 낮기 때문에 기존 시장에서 저가제품 선호 고객들을 끌어들이는 로엔드 파괴적 전략을 구사하며 지속적인 개발에 힘쓰는 동시에 하이엔드 시장으로의 진입 기회를 계속해서 엿보고 있다.

한편 중국의 경우 전기자동차 상용화에 주력하며 아예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자 하는 파괴적인 전략을 사용하며 신규 영역에서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Plus Point

‘몽골’에서 태양 에너지 성공한 이유

몽골 초원의 게르에 설치된 태양광 전지판. <사진 : 블룸버그>
몽골 초원의 게르에 설치된 태양광 전지판. <사진 : 블룸버그>

태양 에너지는 미래 전도유망한 대체 에너지 중 하나로 많은 선진국에서 이 에너지를 개발·상용화하려고 공을 들이고 있다. 일부 선진국에서는 태양 에너지 상용화를 위해 정부가 투자비용을 보조하거나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서기도 한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전력 사용량이 많은 국가일수록 대체 에너지에 대한 수요가 높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국가에서 태양 에너지가 경쟁력을 발휘했을까. 미국, 일본, 싱가포르, 유럽일까. 아니면 우리나라일까. 모두 아니다. 정답은 바로 몽골이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시장에서는 매우 값싼 태양전지판을 팔고 있는 상점이 많고, 이 태양전지판과 함께 안테나와 6인치짜리 흑백 텔레비전을 같이 포장해 팔기도 한다. 그 패키지 상품이 성공적으로 팔리고 있다.

여기서 신기한 점은 몽골 인구의 절반 이상이 전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몽골의 현 전력 사정이 이러한 상황이기에, 태양전지판에 대한 숨겨진 수요가 있었던 것이다. 또 태양전지판을 만드는 데 어려운 기술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몽골인들로 하여금 해당 제품에 대한 접근성을 높였던 것이기도 하다.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태양전지의 경쟁력은 유명 대학을 나온 기술자들의 신기술 개발력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태양전지와 관련한 성공 발판은 판매하고자 하는 국가의 기업들이 이용하기 쉬운 단순한 제품을 더 저렴하게 제공하기 위해 고민하면서 개발해내고 개선해나가는 프로세스였던 것이다.

즉, 현대의 제조업에서 기업의 성공과 파괴적 혁신은 어떤 혁신적인 기술을 만들어내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는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라기보다 단순한 혁신으로 시장의 아래 단계에서 공략을 해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교훈은 세계를 선도하는 제조업 기업과 새로 진입하고자 하는 기업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우선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은 충분한 유휴 자원(투자금·기술력 등)과 좋은 시장 네트워크를 가지고 오랜 기간 연구·개발을 해 기존보다 더욱 복잡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우를 범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반면 신규 시장에 진입하고자 하는 기업은 시장을 파괴하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기존 제품보다 더 단순하고 접근성과 이용성이 뛰어난 솔루션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결국 어떠한 경우에도 앞으로 모든 제조업에 있는 기업들은 파괴적 혁신에 대해 적극적인 검토를 해야 한다.

Plus Point

중국 기업 역습에 대응한 다우코닝

다우코닝 기술연구소에서 연구원이 소재를 개발하고 있다. <사진 : 다우코닝>
다우코닝 기술연구소에서 연구원이 소재를 개발하고 있다. <사진 : 다우코닝>

제조업 파괴적 혁신의 핵심은 기술 자체에만 있지 않다. 다우코닝 사례는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파괴적 혁신에 시사점을 준다.

다우코닝은 미국 실리콘 제조 화학회사로 전 세계 2만5000개 이상 고객사의 다양한 요구에 부합하는 혁신적인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또 소비자들에게 적합한 제품 만들어 내기 위해 다양한 부분에서 맞춤화된 제품을 개발, 차별화에 주력하는 회사다.

또 다우코닝은 실리콘 및 규소 기반 기술과 혁신의 세계적인 선두주자로서 7000여종 이상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쟁력을 가진 회사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오면서 중국 기업들이 유사한 제품(로엔드 제품)을 20%나 싸게 출시하기 시작했고, 다우코닝은 이러한 중국의 로엔드 파괴적 전략에 저가 시장에서 중국 기업들에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저가 시장 내 불리한 상황 속에서 다우코닝은 기술에 집중해 더욱 더 복합적인 하이엔드 제품 및 솔루션 개발에 집중하기보단, 파괴적 혁신을 기반으로 중국 기업들과 경쟁하는 전략을 짜냈다. 바로 손해보지 않으면서 중국보다 20%나 더 저렴한 가격의 제품을 만들어 팔 수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한 것이다. 이 신규 비즈니스 모델은 기존 다우코닝 체제와 달리 소비자들이 모든 주문을 인터넷을 통해 하고, 그 주문에 기반을 둔 제품을 생산하고 배송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규 모델을 개발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파괴적 혁신이라 하기엔 2% 부족해 보인다. 다우코닝은 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자이아미터(Xiameter)라는 새로운 사업부로 만들어 기존 조직과 분리시키는 진정한 파괴적 혁신을 시도했다.

결국 동일한 기술력을 가진 하나의 조직에 내 두 개의 사업부를 둬 각 사업부가 자신에게 맞는 로엔드 또는 하이엔드 제품 및 솔루션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기존 기술력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접목시킨 것이다.

기존 하이엔드 다우코닝을 원하는 고객에게는 기존 다우코닝 제품과 솔루션을 계속해서 판매했고, 기존 다우코닝 제품 가격에 불평하는 고객들에게는 자이아미터의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며 새롭게 공략한 것이다.

이를 통해 다우코닝은 기존과 똑같은 품질의 실리콘을 20% 낮은 가격에 제공할 수 있게 됐고, 신규 사업부를 설립한 지 1년 만에 출하량은 40%, 이익은 900%나 늘었다.

이렇게 파괴적 혁신은 수많은 제조업 기업들에 성장을 위한 단서를 제공한다. 혁신의 파괴적인 방안은 단순히 기술력의 향상만이 아닌, 로엔드 제품 개발 및 저가제품 시장 개척 또는 신규 니즈 발견을 통한 새로운 시장 창출 또는 신규 비즈니스 모델 및 조직 개편을 통한 파괴 등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