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조직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예의를 갖춰야 한다.
기업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조직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예의를 갖춰야 한다.

스타트업 업계에는 소위 ‘짭스병’이라는 말이 있다. 애플의 창업자인 고(故) 스티브 잡스를 어설프게 따라하는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를 비꼬는 표현이다. 잡스는 생전에 제품 개발이나 마케팅에서 천재적인 감각을 보여줬다. 동시에 잡스는 신경질적이고 독선적인 성격으로도 유명했다. 스타트업 업계의 전설인 잡스를 동경하는 CEO들이 그의 천재적인 감각은 따라가지 못하고 비뚤어진 성격만 닮으면서 ‘짭스병’이라는 말이 유행한 것이다.

그런데 생전의 잡스를 잘 아는 사람들은 ‘짭스병’이라는 말의 전제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한다. 잡스와 25년 동안 함께했던 픽사 창업자 에드 캣멀(Ed Catmull)은 잡스에 대한 악명은 커리어 초반에 한정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캣멀은 “애플에서 쫓겨난 뒤에 넥스트와 픽사를 거치면서 잡스의 성격은 변했다”며 “지금의 성공적인 애플을 만든 건 커리어 초창기의 가혹한 잡스가 아니라 그 이후의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배려심이 많은 잡스”라고 말했다. 캣멀의 설명대로라면 부하직원들에게 무례하게 굴어도 잡스처럼 성과만 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뿌리부터 잘못된 셈이다.


리더의 무례함은 조직에 악영향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는 실제로 무례한 리더들은 조직에 많은 부담을 준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조직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고 대하는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직장 내 무례함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나고 있다. 맥킨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 달에 최소 한 번 이상 직장에서 무례한 행동을 경험했다고 답한 사람의 비율이 1998년 49%에서 2016년 62%로 늘었다. 맥킨지와 함께 조사를 진행한 크리스틴 포래스(Christine Porath) 미 조지타운대 경영학과 교수는 “직장 내 무례함은 세계화와 세대 차이 때문에 더 악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한 사무실에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이 섞여서 일하게 됐고, 문화적 차이로 인해 서로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늘었다는 것이다. 세대 차이로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들이 제대로 된 소통에 실패하는 것도 직장 내 무례함이 확산되는 이유다.

직장 내 무례함은 단순히 기분이 나쁜 데서 끝나지 않는다. 상사나 동료 직원에게 무례한 행동을 경험한 이들은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의지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로버트 서튼(Robert Sutton) 미 스탠퍼드대 교수는 “무례하고 모욕적인 사람을 맞닥뜨리면 생산성, 창의성 같은 역량이 떨어진다는 수많은 연구결과가 있다”며 “직급이 올라갈수록 타인에게 더 둔감해지고 불친절해지는 만큼 리더들은 항상 그런 문제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서튼 교수의 말대로 직장에서 예의를 갖추는 것이 업무 성과와 직결된다는 다양한 연구 결과가 있다. 포래스 교수가 영국 엑서터대학교 비즈니스스쿨, 콜롬비아 로스안데스대학교와 함께 진행한 연구 결과를 보면, 응답자들은 예의 없는 사람보다 예의 있는 사람에게 정보를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59%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일자리를 추천할 때도 예의 있는 사람을 추천하는 경우가 그렇지 않을 때보다 1.22배 많았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가 전 세계 직장인 2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직장 상사가 자신을 존중한다고 느끼는 직원의 조직 만족도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89% 정도 높았다. 포래스 교수는 “직원들은 그들의 상사로부터 존중받고 더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받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며 “부하직원을 존중하면 그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고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故)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는 알려진 것과 달리 공감 능력이 높고 배려심이 많았다고 한다. <사진 : 블룸버그>
고(故)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는 알려진 것과 달리 공감 능력이 높고 배려심이 많았다고 한다. <사진 : 블룸버그>

직장 내 무례함 없앨 네 가지 행동 지침

반대로 직장 내 무례함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로버트 사폴스키(Robert Sapolsky) 스탠퍼드대 교수는 “사람이 무례함을 오랫동안 자주 경험하면 면역 체계까지 영향을 받는다”며 “다른 사람의 몰지각한 행동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심장 질환이나 암·당뇨 같은 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10년 동안 여성 근로자의 근무 환경과 건강 사이의 상관관계를 추적한 한 연구 결과를 보면, 일과 관련한 스트레스가 심장 질환 발병 확률을 38%나 높이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직장 내 무례함은 한국에서 특히 심각한 문제다. 유교적 가치관에서 기인한 뿌리 깊은 상명하복 문화 때문이다. 글로벌 마케팅 업체인 유니버섬(Universum)이 2016년 전 세계 57개국 직장인 20만명을 대상으로 행복도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한국은 49위를 기록했다. 아시아 주요국 중에서도 최하위권이다. 중국(27위), 필리핀(34위), 태국(40위), 일본(47위)보다 낮았고, 인도(55위) 덕분에 겨우 아시아 최하위는 면했다. 김용근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한국 직장인이 받는 스트레스의 가장 큰 원인은 직장 내 상사와 동료로부터 받는 비매너 행위”라며 “직장 내 비매너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차원의 리스크로 보고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사실 자체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절반 이상의 직장인이 직장 내에서 지속적인 괴롭힘이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직장에서 누군가를 괴롭힌 적이 있다고 털어놓는 사람은 1%에 불과했다. 맥킨지는 “많은 사람이 자신이 잘못했다는 걸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며 “직원들이 예의 있게 행동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맥킨지는 이를 위해 리더들이 지켜야 할 네 가지 행동 지침을 제시했다.


지침 1 | 전염을 조심하라

무례함은 전염성이 강하다. 무례함은 감기 같아서 조직 내에 단 한 명의 무례한 사람만 있어도 조직 전체가 무례함에 감염될 수 있다. 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미 메릴랜드대의 트레버 폴크(Trevor Foulk) 교수는 모의 협상장에 무례한 협상 파트너를 한 명 투입했다. 무례한 파트너와 만난 사람들은 무례한 행동을 시작했고, 무례하지 않은 파트너와의 협상에서도 무례하게 굴기 일쑤였다.

이렇게 무례함이 만연한 조직에서는 누구나 무례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크다. 맥킨지는 이런 조직을 ‘파리대왕 조직’이라고 부른다. 조직원들이 서로에게 이기적이고 잔인하게 구는 데다 배신할 가능성도 크다는 의미다. 맥킨지는 “이런 조직은 환경을 바꾸지 않으면 누구나 무례한 행동을 하게 된다”며 “조직 내 투명성을 높이고, 모두가 지켜야 하는 행동 규범을 만드는 등 무례함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디자인 회사 아이디오의 사무실에는 CEO의 개인사무실이 따로 없다. <사진 : 블룸버그>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디자인 회사 아이디오의 사무실에는 CEO의 개인사무실이 따로 없다. <사진 : 블룸버그>

지침 2 | 권력에 물들지 말라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할 가능성도 크다. 과거에 예의를 갖추고 있던 사람도 직위가 높아지면서 권력을 쥐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다른 사람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채우는 데에만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권력의 유혹에서 벗어나려면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을 우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글로벌 디자인 회사인 아이디오(IDEO)의 팀 브라운 CEO는 자신의 자리를 사무실 문 바로 앞에 배치했다. 개인사무실을 나와서 직원들과 일상적인 교류를 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앤 멀케이는 제록스 CEO 재임 시절 자신의 문제점을 비판할 수 있는 팀을 직접 만들었다. 맥킨지는 “브라운과 멀케이 모두 자신이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부하직원과의 거리를 줄이는 방법을 찾았다”고 평가했다.


지침 3 | 과도한 업무 부담을 피하라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으면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라도 바보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다. 기업의 리더들은 업무 부담이 많기 때문에 늘 예민한 상태에 있다. 포래스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직장에서 무례하게 군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의 절반 정도는 ‘일이 너무 많아서 친절하게 대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서튼 교수는 회의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 이른바 ‘아미팅겟돈(Armeetingeddon·아마겟돈과 미팅의 합성어)’에서의 탈출이다. 드롭박스는 전 직원의 온라인 일정표에서 고객과의 만남을 제외한 모든 회의 일정을 삭제한 적이 있다. 서튼 교수는 “회의 일정 삭제를 통해 드롭박스 직원들은 자신들의 업무량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를 사용하는 것도 업무량을 늘리는 원인 중 하나다. 특히 스마트폰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으면 주변 사람을 퉁명스럽게 대하게 된다. 맥킨지는 “각종 전자기기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리더들이 스스로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침 4 | 제때 사과하라

무례하게 굴었다는 걸 깨달았다면 즉시 사과해야 한다. 잘 정돈된 사과는 오히려 관계를 회복시키고 평판을 좋게 만들 수 있다. 제대로 된 사과는 자신의 잘못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포함해야 한다.

최악의 사과는 부하직원이 자신의 상사를 대신해서 그의 본뜻을 설명하고 다니는 것이다. 어떤 회의 시간에 리더가 화를 내고 참석자들을 비난했다고 가정하자. 리더는 직접 사과하지 않고 그의 부하직원 한 명이 사무실 여기저기를 다니며 자신의 상사가 진짜 하려던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설명한다. 이때 보호받는 건 무례하게 군 리더뿐이다. 리더의 말에 상처를 입은 직원들이나 회사는 보호를 받지 못한다.


Plus Point

interview 크리스틴 포래스 조지타운대 경영학과 교수
“예의 갖춘 사람이 리더 될 확률 두 배 높아”

크리스틴 포래스(Christine Porath) 미 조지타운대 경영학과 교수는 20여 년간 직장 내 예의(civil)에 대해 연구해왔다. 포래스 교수는 상사의 무례한 행동이 어떻게 조직을 망치는지 다양한 사례와 통계를 통해 보여줬다. 포래스 교수는 “세계화와 세대 차이로 인해 직장 내 무례함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포래스 교수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직장 내 무례함을 없애기 위한 방법은.
“예의는 직장 내에서 무례하지 않은 행동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이 직장에서 친절하게 굴면 성공하지 못할까봐 걱정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최근에 실시한 연구에서는 예의를 갖춘 사람이 리더가 될 확률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두 배 높았다.”

리더는 무례하게 굴어도 된다는 생각이 있다.
“무례한 사람들은 그들의 무례함 때문에 성공하는 게 아니라, 무례함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것이다. 부하직원에 대한 몰이해나 거친 태도, 오만함은 당장 직원들이 자신의 지시를 따르게 만들 수는 있어도 중요한 순간에는 문제를 일으킨다. 부하직원들의 지원이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에 그들은 무례한 상사를 외면할 수 있다.”

일부러 무례하게 구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텐데.
“사람들이 나쁘게 행동하는 이유 중 가장 흔한 것이 스트레스다. 무례하게 굴지 않으려면 스스로를 돌보는 것부터 신경써야 한다. 영양 상태를 좋게 유지하고, 충분히 잠을 자면서 스트레스를 관리해야 한다. 또 자신의 행동이 무례한지 아닌지를 계속 살펴야 한다. 일기를 써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직장 내 무례함이 만연한 다른 이유가 있을까.
“세계화와 세대 차이도 영향을 준다. 단순히 문화적 차이 때문에 다른 사람의 행동을 예의 없다고 느낄 수 있다. 오해일 뿐이지만 이런 오해가 직장 내 무례함을 더 심각한 문제로 만들고 있다. 세대차이도 마찬가지다. 밀레니얼 세대는 소셜미디어에서 보다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문제를 막으려면 회의 시간에 스마트폰을 하지 못하게 한다든지 적당한 규범을 만들 필요가 있다.”

한국 회사에는 상명하복 문화가 강하다. 이런 환경에서 무례함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의사소통 과정에 직원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직장 내 예의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규범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직원들은 서로를 예의 바르게 대하고, 상사에게도 지지를 보낼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한 로펌은 직원들끼리 서로를 어떻게 대할지 논의한 뒤에 10개의 규칙을 정해서 회사 입구에 배치했다. 이렇게 규범을 정한 덕분에 그 로펌은 오렌지 카운티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회사 1위에 오를 수 있었다. 또 중요한 건 직원들에게 정중한 태도를 가르치는 것이다. 듣기와 말하기, 피드백 방법 같은 기본적인 소통 과정에서 정중하게 대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워크숍을 하거나 공식적인 교육 과정을 제공하는 게 해법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