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주의 한 셰일오일 유전에서 작업자들이 일하고 있다. 미국에서 셰일오일 개발 붐이 불면서 예전처럼 국제유가가 급등하는 일이 사라졌다. <사진 : 블룸버그>
미국 텍사스주의 한 셰일오일 유전에서 작업자들이 일하고 있다. 미국에서 셰일오일 개발 붐이 불면서 예전처럼 국제유가가 급등하는 일이 사라졌다. <사진 : 블룸버그>

연초부터 국제유가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 25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된 3월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65.51달러를 기록했다. 작년 하반기 이후 꾸준히 오르고 있다. 지난 2016년 2분기 이후 국제유가는 일시적인 등락은 있었지만 대체로 45~55달러 수준을 유지했다. 산유국들이 적정 수준의 원유 생산을 유지하는 동시에 석유 수입국 입장에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이라는 의미에서 국제유가가 스위트 스폿(sweet spot·최적화된 상태)을 찾았다는 분석도 나왔다.


1만4000여개 유전 생산 데이터 분석

하지만 작년 하반기부터 들썩이기 시작한 국제유가가 70달러 선을 위협하면서 뉴노멀이나 스위트 스폿이라는 말은 자취를 감췄다. 세계 경제가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면서 석유 수요가 늘고 있고,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 기간을 연장하면서 국제유가 상승세가 더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제유가는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때 아랍 지역의 산유국들이 석유를 무기화하는 전략을 쓰면서 국제유가를 단기간에 네 배나 올렸다. 국제유가가 급등하자 미국의 실업률은 두 배로 치솟았고, 전 세계 경제가 휘청였다. 1979년과 1991년에도 국제유가가 출렁이면서 세계 경제가 얼어붙었다.

이렇게 국제유가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한데,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이 국제유가가 어떻게 결정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나 금융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골드만삭스나 JP모건 같은 세계적인 투자은행(IB)들이 내놓는 국제유가 전망도 틀릴 때가 많다.

왜 이렇게 국제유가 전망이 부정확한 걸까.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의 세르지오 레벨로(Sergio Rebelo) 교수는 “국제유가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국제유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충분한 데이터가 없다”고 지적했다. 석유시장의 폐쇄성 때문에 국제유가 관련 데이터를 충분히 구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반대로 충분한 데이터만 있으면 국제유가와 관련된 불확실성이 사라질 여지도 많다는 뜻이다.

레벨로 교수는 이와 관련 스톡홀름대학교의 퍼 크루셀(Per Krusell) 교수와 함께 진행한 최신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레벨로 교수는 3년 전 3200개 석유회사가 운영한 유전 1만4000여개의 생산 데이터를 입수했다. 레벨로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1970년부터 2015년까지 각 유전의 생산량과 국제유가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레벨로 교수가 입수한 자료에는 석유회사들이 유전에 매년 얼마의 돈을 투자하는지도 나와 있었다. 국제유가 수준에 따라 석유회사들이 투자를 얼마나 늘렸는지, 줄였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분석 결과는 석유시장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들이 실제와 차이가 있다는 걸 보여준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 상장을 앞두고 석유수출국기구는 국제유가를 높이려고 애쓰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 상장을 앞두고 석유수출국기구는 국제유가를 높이려고 애쓰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공급 요인이 유가에 미치는 영향 제한적

레벨로 교수의 연구 결과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석유회사들이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투자를 단행하는 시점과 실제 생산량이 늘어나는 시점 사이에 평균 12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석유회사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기존의 유전에서 더 많은 석유를 추출하거나 새로운 유전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유전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결국 기존 유전에서 생산량을 늘려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평균 12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레벨로 교수는 “국제유가가 오르면 석유회사들은 더 많은 이익을 위해 투자를 늘렸지만, 평균적으로 투자와 생산 증가 사이에는 12년이라는 시간 차이가 존재했다”며 “짧은 시일 안에 석유 생산량을 늘리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다”고 설명했다.

이런 분석 결과는 국제유가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변수가 공급 요인이라는 상식을 깨뜨린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국제유가가 오르거나 내릴 때 OPEC을 언급한다. OPEC은 지난 2016년 11월에 회원국과 비회원국을 아우르는 대규모 감산 합의에 성공했다. OPEC 회원국이 하루에 116만6000배럴을 감산하고, 러시아 같은 비OPEC 회원국도 자발적으로 감산에 나서기로 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제유가가 오름세를 보이면서 OPEC의 감산 합의가 국제유가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레벨로 교수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OPEC 감산 합의 같은 공급 측면의 요인이 국제유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레벨로 교수는 “국제유가가 오를 때 공급 측면의 요인이 미치는 영향은 절반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며 “단기간에 생산량을 조절하는 게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급 측면보다는 수요 측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국제유가 상승세의 배경에는 글로벌 원유 수요 증가가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석유 수요는 하루에 9834만배럴로 전년 대비 1.4% 증가했다. 선진국·개발도상국 할 것 없이 세계 경제가 회복되는 흐름을 보이면서 석유 수요가 증가한 것이다. 이런 흐름은 올해도 이어질 전망이다. EIA는 올해 미국 석유 수요가 2.1%, 중국 석유 수요가 2.6% 증가하는 것에 힘입어 전 세계 석유 수요도 전년 대비 1.6%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레벨로 교수는 “안정적인 수요 증가가 예상된다면 공급 측면과 무관하게 석유에 투자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전 세계 석유 수급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인 미국의 주간 원유 재고도 2015년 8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 주간 원유 재고는 지난해 3월 이후에만 1억배럴 넘게 줄었다. 오정석 국제금융센터 원자재팀장은 “세계 경기 회복 속도가 빨라질 경우 전 세계 원유 수요도 당초 예상보다 늘어날 것”이라며 “세계 경제성장률이 상향조정되면 세계 원유 수급이 공급부족으로 전환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셰일오일, 국제유가 안정에 기여

한국은행은 지난해 12월 공개한 보고서에서 “국제유가가 상당폭 올랐기 때문에 셰일밴드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셰일밴드 효과는 국제유가가 셰일오일의 손익분기점을 기준으로 일정 구간에 갇히는 현상을 말한다. 셰일밴드 효과가 나타난다는 건 세계 석유시장의 주도권이 OPEC에서 셰일오일 최대 생산국인 미국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셰일오일은 전통적인 원유와 달리 셰일층(유기물을 포함한 암석)에 갇혀 있는 원유를 말한다. 채굴에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경제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아왔는데, 20세기 말에 수압파쇄법(fracking)이 등장하면서 셰일오일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4년까지만 해도 셰일오일의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80달러 수준이었는데 이후 치열한 경쟁을 통해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금은 40~50달러 수준까지 내려왔다.

국제유가가 최근처럼 셰일오일 손익분기점을 넘어서서 오르면 미국의 셰일업체들이 생산량을 늘리고, 이렇게 되면 다시 국제유가는 떨어진다는 게 셰일밴드 효과다.

레벨로 교수의 연구에는 셰일밴드 효과를 뒷받침하는 분석 결과도 있다. 석유시장에서 공급 측면의 영향력이 제한적인 이유는 투자와 실제 생산 증가 사이에 시차가 너무 커서다. 하지만 셰일오일은 이런 시차가 거의 없다. 레벨로 교수는 “셰일산업에서는 투자와 생산 증가 사이에 평균 1년 정도의 시차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셰일오일 업체들은 국제유가 상승기에 추가적인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올해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을 제치고 세계 최대 석유 생산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19일 공개한 보고서에서 “지난해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셰일업체들의 생산 재개로 미국의 석유 생산량이 하루 60만배럴 정도 늘었다”며 “올해 미국의 하루 원유 생산량이 1000만배럴을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셰일오일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셰일밴드 효과는 강해지기 때문에 국제유가가 셰일밴드에 갇힐 가능성도 크다.

실제로 최근 국제유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여러 기관은 올해 국제유가가 60달러 선을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골드만삭스가 올해 국제유가를 62달러로 보고 있고, UBS·JP모건 등은 60달러로 전망하고 있다.


Plus Point

국제유가 결정할 다섯 명의 키맨

이종현 기자

차가울 것만 같은 국제 석유시장에서 한 편의 브로맨스(bromance·남자들끼리 나누는 연인보다 진한 우정)가 피어났다. 주인공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킹핀으로 불리는 칼리드 알 팔리(Khalid Al-Falih)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장관과 푸틴의 오일맨으로 불리는 알렉산더 노박(Alexander Novak) 러시아 에너지장관이다. 시티그룹은 둘의 파트너십이 너무나 강력하다며 브로맨스라는 별칭까지 붙여줬다.

알 팔리 장관은 이미 세계 석유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명인사다. 2016년 OPEC 회원국이 8년 만에 감산 합의를 한 데에는 알 팔리 장관의 공이 컸다. 알 팔리 장관은 더 나아가서 러시아를 주축으로 한 비(非)OPEC 산유국들까지 감산에 끌어들였다. 알 팔리 장관과 노박 장관의 브로맨스가 시작된 시점이다. 둘은 공식적인 협상 자리 말고도 왓츠앱을 통해 개인적으로도 꾸준히 의견을 교환하며 감산 합의를 이끌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노박 장관은 알 팔리 장관에 비하면 인지도가 낮다. 하지만 OPEC과 러시아의 석유 감산 동맹이 체결되면서 노박 장관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캐나다 투자은행인 RBC 관계자가 “노박은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우리는 노박의 모든 말을 분석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둘의 브로맨스가 오래 이어지려면 올해를 잘 넘겨야 한다. 알 팔리 장관은 OPEC 회원국들의 불만을 잠재우면서 국제유가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


베네수엘라와 테슬라도 관심

니콜라스 마두로(Nicolas Maduro) 베네수엘라 대통령도 중요하다. 베네수엘라의 석유 매장량은 세계에서 가장 많다.

베네수엘라는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 물가가 급등하면서 국민들은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고, 베네수엘라 정부도 1500억달러가 넘는 부채 때문에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몰려 있다. 베네수엘라는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하루에 350만배럴의 원유를 생산했는데 최근에는 반토막이 났다. 밥 더들리 BP CEO는 “석유시장에서 베네수엘라가 차지하는 영향력을 많은 사람이 간과하고 있다”며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국제유가를 결정할 키맨이다. 전기차가 빠르게 확산되면 그만큼 석유 수요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BNEF)는 전기차 시장이 매년 60% 증가한다면 2023년에는 하루 원유 소비량이 200만배럴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테슬라가 야심차게 내놓은 모델3가 예정대로 매주 5000대씩 생산이 가능해진다면 이런 전망이 현실화될 수도 있지만, 모델3 양산은 차질을 빚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셰일업체인 파이오니어내추럴리소스의 팀 도브 CEO도 블룸버그가 선정한 석유시장 키맨 다섯 명 중 한 명이다. 팀 도브가 이끄는 파이오니어내추럴리소스는 미국 셰일산업의 중심지인 페르미안(Permian) 지역의 핵심 업체 중 하나로 기업가치만 240억달러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