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스포츠 구단’ 맨유(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는 불황이 없다. 영국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미 불황이 심하고, 세계 정상급 축구 리그인 영국 프리미어리그도 타격이 심각하다. 몇몇 구단은 유니폼에 넣을 스폰서조차 구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맨유만은 예외다. 영국 ‘데일리텔레그래프’는 지난해 맨유가 20% 이상 성장하며 사상 최초로 매출 3억파운드(약 6600억원)를 돌파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유니폼 스폰서인 AIG가 계약 재연장을 포기했는데 스폰서 자리를 놓고 경쟁이 치열하다. 인도의 미디어·보험·은행 재벌인 사하라를 비롯, 사우디텔레콤·말레이시아항공 등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데이비드 길(Gill) 맨유 사장은 Weekly BIZ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아무하고나 손을 잡지 않을 것”이라고 여유를 보였다.

맨유의 브랜드 파워는 압도적인 핵심 역량(축구 실력)에서 비롯된다. 길 사장은 “우리는 축구라는 본분을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다른 모든 것은 축구를 위한 부차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맨유의 힘은 축구 실력에만 머물지 않는다. 맨유는 스토리텔링과 커뮤니케이션, 피드백을 전략적으로 구사하는 마케팅의 강자이기도 하다.

맨유의 직원은 약 500명. 6600억원의 매출을 감안하면 직원 1인당 매출이 10억원을 넘는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약 9억원을 능가한다. 이처럼 놀라운 생산성은 맨유가 ‘제품’이 아니라 ‘브랜드’를 생산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리고 브랜드 가치를 지키기 위해 깐깐하게 ‘물관리’를 한다.

길 사장은 “우리가 하는 일은 맨유 브랜드에 걸맞은 파트너를 고르는 일”이라며 “전 세계 기업들로부터 굵직한 스폰서십을 끌어들일 수 있는 원인 중 하나는 아무에게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불황마저 이겨내는 맨유의 저력은 무엇일까? Weekly BIZ가 영국 맨체스터 올드 트래포드 현지를 방문해 맨유의 마케팅팀과 스태프, 맨유 스폰서(금호타이어)들과 동행하며 그 비결을 취재했다.


스토리가 가장 강력한 마케팅

맨유는 스토리를 자신의 상품에 섞어 파는 기업이다. 예를 들어 맨유 구장 투어에 참여하는 관람객은 선수가 돼보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선수 대기실에서 루니나 박지성이 앉는 자리에 앉아보고, 녹음된 관중의 환호 소리에 맞춰 마치 선수인 것처럼 경기장에 입장한다. 맨유의 가이드는 이 밖에도 선수들의 방송 인터뷰 장소, 기자 회견장, 원정팀 대기실 등 구장 곳곳으로 관람객을 안내한다.

맨유의 스토리텔링에는 전·현직 스타들도 동참해 극적인 효과를 높인다. 3월 18일 풀럼전에 앞서 맨유 수비수였던 데니스 어윈(Denis Irwin)이 플래티넘 라운지에 나왔다. 그는 1990년부터 2002년까지 529경기에 출장했다. 그가 연단에 올라 “오늘 경기는 맨유가 이길 것”이라고 말하자, 박수가 터졌다. 그는 팬들과 사진을 찍고, 다양한 화제로 대화를 나눴다.

올드 트래포드를 방문해 보면 맨유가 구장 설계에서부터 ‘스토리’를 얼마나 중시했는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올드 트래포드 앞에 서면, 처음 관람객을 맞이하는 것은 맨유의 ‘영광’이다. 구장 정면에는 1945년부터 1969년까지 맨유의 첫 번째 황금기를 연 매트 버스비(Matt Busby) 전 감독의 동상이 두 팔을 벌리고 있다. 구장 건너편에는 버스비 감독과 함께 뛰었던 3명의 명선수(보비 찰튼·조지 베스트·데니스 로) 동상이 있다.

이어서 방문객이 만나는 콘셉트는 ‘고난’이다. 구장 왼편에는 날짜가 1958년 2월 6일에 고정된 시계가 있다. 맨유 선수·스태프 15명이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진, 이른바 ‘뮌헨 참사’를 추모하는 것이다. 당시 팀을 이끌었던 버스비 감독은 부상에도 굴하지 않고 팀을 재건해 1960년대 영국 리그, 영국 컵 대회, 유러피언컵을 휩쓸었다. 관람객이 경기장 내 박물관에 들어서면 1940~1960년대의 맨유와 1990년대 이후 영광스러운 장면들을 보다 입체적으로 만나게 된다. 특히 1990년대 이후 각 메이저 대회 우승 장면을 시간 순서대로 배열해 관람객들이 한눈에 맨유의 위업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면 관람객은 리그 우승컵을 들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출구는 맨유 캐릭터 상품 상점으로 연결돼, 맨유의 영광에 흠뻑 빠진 팬들의 주머니를 유혹한다. 특히 유아용 상품이 다양하다. 맨유의 로고와 색을 자유롭게 변형한 의류는 물론, 휴대전화 액세서리와 인형, 학용품까지 마련돼 있다. 미래의 팬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매장에서는 신용카드와 보험 등 금융상품까지 판매한다.


숫자를 활용한 多채널 커뮤니케이션 전략

맨유의 스토리텔링에는 다양한 전략과 채널이 동원된다. 맨유가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강력하게 활용하는 무기는 ‘숫자’다.

맨유는 경기 전 관중에게 최근의 이슈를 총정리한 잡지 ‘유나이티드 리뷰(3파운드, 귀빈석은 무료)’를 판매한다. 여기 실린 기사들은 숫자를 충실하게 활용해 경기의 의미를 풀어준다.

3월 18일 풀럼전을 앞둔 ‘유나이티드 리뷰’의 표지 인물은 맨유의 골키퍼 반데사르였다. 그는 풀럼전 직전까지 1122분 무실점 행진 중인데, 풀럼전 한 경기(90분)만 무실점으로 막아내면 영국 4개 프로 축구리그 역사상 최장 기간 무실점이라는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 만약 두 경기만 더 무실점으로 막아내면 그는 1990년 벨기에 브루헤의 대니 베를린덴이 작성한 유럽 기록(1390분)을 넘어서 ‘세계 기록의 사나이’가 된다.

숫자를 활용한 커뮤니케이션은 감독과 선수들도 모두 활용한다. 퍼거슨 감독은 지난해 자체 유소년 시스템의 중요성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이렇게 답했다. “대표적인 선수인 긱스는 우리 팀에서 21년간 뛰었고, 스콜스와 게리 네빌은 19년간 뛰었다. 이들은 충성심이 경기와 팀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맨유는 다(多)채널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도 남다르다. 맨유는 자체 TV 방송국(맨유TV)을 가진 몇 안 되는 프리미어리그 구단 중 하나다. 하루에 18시간 프로그램이 짜여 있으며, 42개국 1억4000만 명의 시청자에게 공급된다. 올드 트래포드에는 프리미어리그 중계권사인 스카이스포츠의 TV 스튜디오 외에 맨유 스튜디오가 별도로 있다.

또 맨유는 홈페이지를 영어와 스페인어·독일어 외에도 한국어·중국어·일본어로도 운영하고 있으며, 온라인 쇼핑몰과 커뮤니티도 만들어 놓았다. 경기 직전이면 퍼거슨 감독이 직접 자신의 소회를 정리해 온라인과 유나이티드 리뷰에 칼럼으로 올린다. 풀럼전을 앞두고 상대방인 로이 호지슨 감독에게 경의를 표하고, 최근 팀 분위기를 전하는 칼럼을 올렸다.

광범위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맨유는 세계 전역에 팬을 확보하고 있다. 맨유에 온·오프라인으로 가입한 서포터스(공식 팬)는 약 450만 명. 하지만 번거로운 가입 절차 없이 세계 각국에서 성원을 보내는 비공식 팬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맨유 측에선 TV 시청률과 자체 설문 조사를 바탕으로 약 3억 명 정도로 추산할 뿐이다. 금호타이어 영업 총괄 김병추 사장은 “‘맨유 효과’를 따로 정리하고 맨유의 경영 노하우를 적극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