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미 애리조나주 챈들러에서 구글 웨이모의 자율주행차 시범운행 프로그램에 참가한 한 여성이 차량의 파워버튼을 누르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지난 7월 미 애리조나주 챈들러에서 구글 웨이모의 자율주행차 시범운행 프로그램에 참가한 한 여성이 차량의 파워버튼을 누르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자율주행차가 앞으로 10년이나 20년 후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2년 정도만 있으면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타날 것 같습니다. 먼 미래가 아닙니다.”

기술 스타트업 투자회사인 미슬토(Mistletoe)의 손태장(孫泰·46, 일본명 손 타이조) 회장은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이코노미조선 글로벌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자율주행차가 현실이 되기까지 2년 정도 남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최고 부자인 손정의(孫正義·62, 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의 동생이며 세계 11개국 120여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2000억원 이상 투자했다. 각국 기업의 투자 동향과 비즈니스 기회를 살펴보고 있는 손태장 회장이 보기엔 자율주행차는 이미 우리 눈앞에 와있는 현실이다.

손 회장의 말대로 미국, 독일 등 선진국 자동차회사들은 2020년을 전후해 부분적인 자율주행차를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운전자가 한산한 도로에서는 특별히 핸들이나 브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도 차선을 변경하면서 자율주행을 할 수 있고 자동주차도 할 수 있는 단계의 자율주행차다.

이미 미국 구글의 자율주행부문 자회사 웨이모(Waymo)는 자체 개발한 자율주행차로 미국 25개 도시에서 1000만마일(1609만㎞)의 시범운행까지 마쳤다.

자율주행차가 나오면 사람들은 운전해야 하는 시간에 영화감상이나 독서, 밀린 업무 등을 할 수 있다. 또 자율주행 시스템이 알아서 노인이나 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한 교통약자를 피해서 운전하기 때문에 교통사고의 가능성도 지금보다 훨씬 낮아질 수 있다. 많은 사람의 일상이 이렇게 변하기 때문에 자율주행이 차세대 자동차 기술 중 가장 혁신적인 분야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자율주행차량 개발에서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 크게 뒤처지고 있다. 기술과 개발인력 영입에 천문학적인 돈을 투입하는 선진국들에 비해 소극적으로 대응한 결과다.

자율주행차를 도로 위에 달리게 하기 위해서는 차량 주위에 어떤 물체가 있는지 감지하는 센서(sensor, 레이더·카메라), 자동차의 위치를 인식할 수 있는 초정밀 위성항법장치(GPS), 센서와 GPS 등으로 파악된 위치와 주행 상황을 판단해 브레이크를 조정할 수 있는 알고리즘 반도체 등 다양한 기술이 필요하다.

각국 기업들은 이런 기술 하나하나에서 최고의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승부를 걸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인텔이 지난해 153억달러(약 17조원)를 주고 이스라엘의 벤처기업 모빌아이를 인수한 것이다. 인텔이 벤처기업 인수액으로는 이례적일 정도로 큰돈을 주고 모빌아이를 산 이유는 모빌아이가 자율주행의 핵심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모발아이는 카메라와 센서를 이용해 차량이 차선을 벗어나지 않고 주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첨단 운전자 보조시스템(ADAS)’을 개발해 세계시장을 석권(점유율 90%)했다. 이 기술이 고스란히 인텔로 접수된 것이다.


완성차 업체, M&A 통해 핵심기술 확보

세계 1위 자동차 회사인 일본 도요타가 지난해 미국 엔비디아(NVIDIA)를 제휴 파트너로 택한 것도 도요타가 자율주행 기술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 보여준다. 엔비디아는 컴퓨터용 그래픽처리장치 회사다. 자율주행차가 카메라나 센서로 영상을 받아들이면 그 영상을 빠른 속도로 그래픽 처리해서 운행정보형태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 분야에서 엔비디아가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2015년 12월 일본 소니가 개발한 자동차 카메라전용 CMOS센서(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을 전기신호로 바꿔 저장해 주는 장치)는 어두운 밤에도 고화질 촬영을 할 수 있어 자율주행차량에 필수적 요소다. 독일의 자동차부품회사 보쉬는 지난해 소니와 자율주행 자동차용 카메라 공동 개발을 위한 제휴를 맺었다. 소니의 카메라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어두운 곳에서 갑자기 밝은 곳으로 움직이거나 반대로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가도 안정적으로 외부를 살필 수 있는 카메라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협력이다.

지난달 4일에는 소프트뱅크와 도요타자동차가 20억엔(약 197억4000만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양사는 올해 안에 공동출자회사를 설립해 자율주행차 개발에 협력하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도요타와의 합작은 제1탄이다. 제2탄, 제3탄의 넓고 깊은 제휴를 원한다”며 자율주행 분야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번 양사의 제휴는 도요타에서 더 적극적으로 소프트뱅크에 손을 내밀어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자동차 시장을 제패하고 있는 도요타조차 자율주행차 개발을 위해서라면 이종(異種)교배를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김현철 군산대 융합기술창업학과 교수는 “선진국 완성차업체들은 자율주행의 핵심기술을 보유한 IT기업들과 해당분야에 대해 집중적인 제휴와 협력을 해 시너지를 끌어올리고 있다”며 “자율주행을 위해 필요한 기술이 있는 기업이라면 어디라도 제휴하는 게 글로벌 기업들의 풍토”라고 했다.


Plus Point

협력 머뭇거리다 도태 위기 놓인 한국

지난해 국내 자동차회사들은 411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했다. 생산량 기준으로 세계 6위(한국자동차산업협회 기준)다. 하지만 일본 특허분석회사 페이턴트리절트(Patent Result)가 세계 자율주행차 관련 특허 경쟁력을 평가한 순위에서 국내 최대 자동차회사인 현대차는 35위에 머물렀다. 1위를 차지한 미국 구글 웨이모는 물론 일본 도요타(2위), 미국 GM(3위) 등 주요국 자동차 회사와는 비교조차 힘든 수준이다. 미국 IT기업인 IBM의 자율주행차 관련 특허경쟁력도 현대차보다 훨씬 높은 수준인 12위로 평가됐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람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정보 식별능력이 센서기술인데 센서를 해외에서 모두 사다 써야 자율주행차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센서 부문의 기술이 밑바닥인 게 국내 자동차회사”라고 했다.

미 벨로다인(Velodyne)이 차량 지붕에 장착해 쓸 수 있는 딱정벌레 모양의 둥근 라이더(LiDAR·레이저 레이더)를 개발한 게 2005년이었는데 13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핵심 센서 기술 하나 제대로 축적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기존 방식만 고수한 결과는 참담하게 돌아오고 있다. 국내 최대 완성차업체인 현대차의 영업이익(3분기 2889억원)은 20년 전인 1999년 수준까지 하락했다. 한국GM은 영업 손실로 군산공장을 폐쇄했고 한국에서 생산시설을 전면 철수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미국 공유차 업체 우버가 자율주행 택시를 시범운영하고 있고 GM 본사가 자율주행 벤처회사인 크루즈 오토메이션을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에 인수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은 이렇게 국내 기업들이 뒤처진 원인을 ‘협업’ 부재에서 찾았다. 도요타와 소프트뱅크처럼 자국 기업들끼리 협력과 공조를 하지 못하고 각자 연구·개발(R&D)을 하는 문화가 자율주행 후진국이 된 큰 원인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현대·기아차, LG전자, 네이버 등이 각자 자율주행의 특정분야를 개별적으로 연구하고 있지만 기업 간 협력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진흥원은 “글로벌 선도국가와 기업들은 소프트웨어와 플랫폼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IT기업들과 협업해 자율주행차 기술의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는데 국내 기업은 분야별로 ‘각개 전투’만 하고 있어 시너지 효과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김현철 군산대 융합기술창업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독자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며 성장해온 국내 완성차기업들이 자율주행 차량 분야에서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빨리 인정해야 한다”면서 “핵심기술을 보유한 IT기업들과의 협력을 하루도 늦춰서는 안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