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은 R&D를 통해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2018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분석에 따르면 세계 2500개 기업의 R&D 투입 규모는 약 1000조원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8.3% 증가한 수준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R&D를 통해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2018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분석에 따르면 세계 2500개 기업의 R&D 투입 규모는 약 1000조원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8.3% 증가한 수준이다.

삼성전자가 2017년 세계에서 연구‧개발(R&D) 투자를 가장 많이 한 기업 1위에 올랐다. 2018년 12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2500개 기업 분석을 토대로 발표한 ‘2018 산업 연구‧개발 투자 스코어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17년 134억4000만유로(약 17조1700억원)를 투자해 1위를 기록했다. 반도체 경기 호황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크게 증가하면서 R&D 투자를 전년보다 11.5% 늘린 것이 요인이 됐다. 직전 순위(4위)보다 세 계단 상승해 처음으로 세계에서 R&D 투자를 가장 많이 한 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비슷한 시기 글로벌 컨설팅 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발표한 ‘2018 글로벌 혁신 1000’ 보고서에서 삼성전자는 한 해 동안 153억1000만달러를 R&D에 투자한 것으로 나타나 세계 4위를 기록했다. EU 집행위원회 보고서는 2017년을 기준으로, PwC 보고서는 2017년 7월~2018년 6월을 기준으로 조사한 것이다.

두 보고서 모두에서 삼성전자는 상위 10위권 안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아시아 기업이었다. 삼성전자는 영국 케임브리지를 비롯해 캐나다 토론토, 러시아 모스크바 등 세계에 35개의 R&D 센터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투자에 적극적이다. 전체 임직원 약 32만명 중 20%에 달하는 6만5000명이 연구 개발자다. 덕분에 삼성전자는 미국에서 2006년부터 12년 연속으로 특허 취득 건수 2위를 유지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R&D를 통해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EU 집행위원회의 분석에 따르면 세계 2500개 기업의 R&D 투자 총액은 7364억유로(약 1000조원)를 기록했다. 지난해보다 8.3% 증가했다.

삼성전자에 이어 R&D에 두번째로 많이 투자한 글로벌 기업은 미국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으로 134억유로를 기록했다. 그 뒤로 독일의 폴크스바겐(132억유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123억유로), 중국 화웨이(114억유로)가 순위를 이어갔다. 미국 인텔과 애플이 각각 6, 7위, 스위스 로슈, 미국 존슨앤드존슨, 독일 다임러도 10위 안에 포함됐다. 상위 100개 기업 중 삼성전자를 제외한 한국 기업은 LG전자(53위), SK하이닉스(67위), 현대차(73위) 등 3개사였다.

전체 2500개 기업 중에서 국가별 비중은 미국이 778개 기업으로 1위를 기록했다. 그 뒤를 유럽연합(577개), 중국(438개), 일본(339개), 대만(99개), 한국(70개)이 이었다. R&D 투자 금액 비중도 미국이 37%로 가장 높았고 유럽(27%), 일본(14%), 중국(10%)순으로 이어졌다. 한국의 R&D 투자 금액 비중은 스위스와 함께 4%를 기록했다.

한국 기업들의 ‘연구‧개발 집중도’는 동종업계 경쟁사들보다 좋지 않았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율은 삼성전자가 7.2%로 세계 2위 반도체 기업인 인텔(20.9%)이나 화웨이(14.7%)보다 낮았다. 특히 현대차의 연구‧개발 집중도는 2.4%를 기록, 도요타(6.5%), 포드(5.1%), BMW(6.2%), 혼다(4.8%) 등 경쟁사보다 현저히 떨어졌다.

R&D 투자에 가장 적극적인 산업 분야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였다. 산업별로 ICT가 차지하는 비중이 37.8%로 가장 높았다. 헬스 산업이 21.0%, 자동차 산업이 17.6%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산업별 집중도는 지역별로 편 가르기 하듯 두 갈래로 뚜렷하게 나뉘었다. 유럽 대륙과 일본은 ICT와 헬스케어, 자동차 투자 비중이 비교적 고르게 나타났는데, 그중에서도 자동차 투자 비중이 다른 지역과 비교해 높았다. 전체 R&D 투자 금액 중 자동차 산업에 들어간 비용의 비중은 유럽이 30.5%, 일본이 30.8%를 기록했다. 그중에서도 다임러(15%), BMW(18%), 푸조(24%) 등 독일과 프랑스 자동차 기업들의 R&D 투자 증가율이 높았다.

반면 미국과 중국은 ICT 분야의 R&D 투자 집중도가 월등히 높았다. 전체 R&D 투자 중 ICT 분야에 투입된 자금 비중은 미국이 51.4%, 중국은 44.7%에 달했다. 기업별로는 알파벳과 페이스북의 R&D 투자 증가율이 각각 18%, 31%를 기록했다. 중국의 화웨이도 지난해보다 R&D 투자가 17% 증가했다. 반면 자동차 분야 투자 비중은 각각 7.8%, 11.4%에 불과했다.

한편 이번 EU 집행위원회의 보고서에서 아마존이 빠진 것은 연간 재무 보고서에서 R&D 투자와 콘텐츠 투자를 구분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집행위원회는 보고서에서 “만약 이 항목을 구분했다면 아마 아마존은 3위 혹은 4위 정도에 이름을 올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中 기업, 정부 지원 업고 R&D 증가율 최고

중국의 화웨이가 통신 장비와 스마트폰 부문에서 세계 1, 2위에 단숨에 올라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매년 전체 매출의 15% 이상을 R&D에 투자, 기술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보고서에 따르면 화웨이가 지난해 R&D에 투자한 돈은 15조원에 달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화웨이 전체 임직원 중 45%에 달하는 8만명이 미래 먹거리를 개발하는 R&D 분야에서 일하며 반도체 칩과 스마트폰, 5세대(5G) 이동통신 장비 등을 개발 중이다.

이 밖에도 중국 최대 IT 회사인 알리바바 그룹도 같은 기간 R&D에 40억달러(약 4조원)를 투자했다. 전년보다 약 25%(10억달러) 증가한 수준이다. 또 텐센트 홀딩스, ZTE, 바이두 같은 중국 글로벌 기업들도 각각 19억~26억달러 정도를 R&D에 썼다.

특히 유심히 봐야 할 점은 중국 기업들의 R&D 투자에 가속이 붙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PwC의 조사에서 중국 기업들의 R&D 투자 규모는 전년보다 34%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전체 투자 규모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북미 기업들의 투자 증가율이 8%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몹시 빠르다. 5년 평균으로 계산하면 이런 흐름이 더욱 뚜렷하다. 사모펀드 조사기관 프레퀸에 따르면 2011~2016년 기준 미국 기업들의 R&D 투자 증가율이 2.01%였던 데 반해 중국 기업들의 투자 증가율은 9.88%에 달했다.

PwC는 보고서에서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던 2005년만 하더라도 일정 규모 이상의 R&D 투자를 진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던 중국 기업은 8개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세계 상위 1000개 기업 중 중국 기업이 145개에 달한다”고 전했다. 미국 과학위원회(NSB)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그동안 미국이 우위를 점해왔던 R&D 투자 금액이 2019년을 기점으로 중국에 역전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고도의 경제 성장세와 이에 따른 산업 구조 변화가 기업들의 R&D 투자를 촉진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한다. 연간 경제성장률이 7%에 달할 정도로 높은 상황에서 과거 제조업 중심의 경제 구조가 IT 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움직임엔 중국 정부가 앞장서고 있다. 중국 정부는 ‘중국 제조 2025’ 정책을 통해 세계 최대 수준의 R&D 투자를 한다는 계획이다. 투자 등 각종 혜택을 받게 될 주요 산업 분야도 첨단 로봇, 차세대 정보기술, 신생 에너지 자동차, 첨단 의료장비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중국 정부도 막대한 규모의 자금을 인공지능(AI), 퀀텀 컴퓨팅 등에 투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R&D 투자 분야에서 중국이 빠르게 부상하고 있는 사이 전통의 강자 일본은 다소 뒤처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기업은 2007년 세계 R&D 상위 100위에 24개 기업이 이름을 올렸던 반면, 2017년에는 17개사로 감소했다. EU 집행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자료에서는 13개로 더 줄었다. 일본 최고 기업 도요타도 2007년도 3위에서 2017년 10위로 내려갔다. EU 집행위원회 보고서에서는 12위까지 떨어졌다.

실리콘밸리 벤처 1세대인 휴렛팩커드(HP)의 공동 창업자 데이비드 팩커드는 1980년 컴퓨터 사업 진출을 선언하면서 “우리가 세계 제일의 컴퓨터 공급 업체가 되기까지 25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오디오 발진기, 무전기 등을 취급하던 HP는 그로부터 정확히 22년 후 세계적인 컴퓨터 제조업체가 됐다.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판 결과였다.

반대로 기업 활동에 ‘민첩성’이 부각될 때도 있다. 새로운 기회를 재빨리 잡아 시장을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튜브는 창업 초기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를 제공했다가 지금의 동영상 제작 서비스로 전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스타그램도 서비스 초기엔 게임, 체크인 등 여러 기능을 가진 다목적 소셜네트워킹앱이었지만, 단순 사진 올리기 기능만 남기면서 더 많은 이용자들의 지지를 얻었다.


‘유연한’ 투자보다 ‘꾸준한’ 투자를

4차 산업혁명이 가져다 줄 새로운 기회를 선점하려는 기업들에 가장 ‘스마트’한 R&D 투자 방식은 무엇일까.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전략적 R&D 관리’ 프로그램의 유르겐 밈 교수는 “상황에 따라 강도를 조절하는 ‘유연한’ 투자보다 ‘꾸준한’ 투자가 훨씬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밈 교수를 포함한 인시아드 경영대 연구진은 ‘R&D 지출: 동적으로 해야 할까, 꾸준히 해야 할까(R&D Spending: Dynamic or Persistent?)’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1982~2003년 특허 28만34건을 낸 3711개 미국 상장 기업의 R&D 투자 활동을 분석했다. 연구진은 R&D 투자의 결과를 알아보기 위해 조사 대상 기업 각각이 이 기간에 낸 특허의 양(量)과 질(質)을 조사했다. 특허의 질은 인용 건수로 가늠했다.

그 결과 R&D 투자 규모와 방식 등을 다양하게 조절한 경우 기업의 혁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허 개수와 특허 인용 건수 모두 감소한 것이다. 연구진의 계산에 따르면 ‘꾸준한’ 방식의 R&D 투자에 따른 성과를 ‘유연한’ 방식에 따른 성과와 비교했을 때, 특허 개수는 5~10% 정도, 특허의 인용 건수는 30% 정도 더 좋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후속 연구도 진행했다. 여러 방식으로 R&D 투자 방법을 조절하는 동일한 상황에서도 이를 ‘예측할 수 있는 경우’와 ‘예측할 수 없는 경우’로 나누어 조사한 것이다. 그 결과 투자 방법을 ‘예측할 수 없는 경우’가 성과에 가장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의 경우는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장기적으로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밈 교수는 “기업이 R&D 성과를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면 자금 조달 규모와 속도를 되도록 완만하게 예측 가능한 수준으로 조절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중앙집중식 R&D 투자, 장기 계획하에 진행되는 인센티브 제도, 심지어 연구개발진의 해외 콘퍼런스 참가 등도 높은 R&D 생산성을 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반대로 밈 교수는 최악의 R&D 투자 활동의 예로 회사 상황에 따라 투자를 확대하기도 하고 축소하기도 하는 이른바 ‘시소(seesaw)식 지출’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R&D의 빈번한 시작과 중단은 비효율적”이라며 “‘상향식’ 지출과 ‘하향식’ 지출을 번갈아가며 하는 기업은 비생산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R&D 지출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인력 투자를 예로 들었다. 새로 채용된 직원이 조직 내에서 ‘완벽하게’ 생산성을 내기 위해서는 먼저 일하는 요령을 배워야 한다. 장비를 새로 들인다고 해도 당장은 생산성이 다소 떨어지게 된다. 최적의 상태가 되기까지 일종의 ‘지연’이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R&D 지출을 갑자기 중단하게 되면 바로 새로운 지식 흐름이 끊기게 된다. 밈 교수는 “다음 분기에 R&D 투자 규모를 확대하거나 원래대로 되돌려놓는다고 해서 과거에 이미 투자를 줄였던 데 따른 부정적인 효과를 상쇄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