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운정신도시와 일산신도시에 아파a트들이 줄지어 서 있다. 사진 연합뉴스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운정신도시와 일산신도시에 아파a트들이 줄지어 서 있다. 사진 연합뉴스

경기도 파주 운정신도시는 실패한 수도권 2기 신도시로 평가받았다. 경의·중앙선을 제외하면 서울까지 연결되는 철도 인프라가 없는 데다 일자리를 만드는 대기업도 LG디스플레이 정도를 제외하면 전무하기 때문이었다. 판교나 동탄2신도시가 직주근접과 교통 인프라 확충으로 자족 기능을 갖출 동안 운정신도시는 ‘베드타운(bed town)’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광풍’이 불어닥친 건 11월 19일 이후부터다. 국토교통부가 경기 김포와 부산 해운대·수영·동래·남·연제구, 대구 수성구를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면서 비규제지역인 운정이 반사이익을 누렸다. 결국 국토부는 12월 17일 파주와 부산 9곳, 대구 7곳, 울산 2곳, 천안 2곳, 창원 성산구 등 36개 지역을 조정대상지역으로, 창원 의창구는 투기과열지역으로 지정했다.

이전에도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와 서울 삼성역, 운정신도시를 잇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 노선 착공과 운정3택지개발사업 재개 덕분에 간간이 수요자가 몰렸지만, 최근에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경기부동산포털에 따르면 12월 15일 기준으로 신고된 11월 파주 아파트 매매 건수만 1409건에 달했다. 관련 조사가 시작된 2006년부터 월 기준으론 역대 최대치다. 지난해 파주 전체 아파트 거래량이 3284건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11월에 얼마나 많은 매물이 거래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거래량만으로 이미 역대 최대 아파트 매매 건수를 넘어섰다.

12월 11일 운정신도시를 찾았다.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이었는데도 화사한 새 아파트와 널찍한 도로 덕분에 도시는 말끔한 기분이었다. 과거 운정신도시를 찾았을 때의 어수선한 느낌은 많이 사라졌다. 빈 땅마다 솟아 있던 타워크레인과 공사 현장의 소음이 사라진 대신 고층 아파트가 우뚝 섰다. 도시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느낌이었다.

파주에 사람이 몰리는 건 집을 사기 나쁘지 않은 조건을 갖춰서다. GTX A 노선이 개통되면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받았던 강남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좋아지는 데다 12월 18일 이전까지는 비규제지역이라 집값의 70%까지 대출 가능했다. 최근 들어 새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면서 거주 환경도 좋은 편이다.


12월 11일 찾은 경기도 파주 운정신도시. 11월 아파트 매매 거래량이 월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를 찍는 등 부동산 시장 열기가 뜨겁다. 사진 이진혁
12월 11일 찾은 경기도 파주 운정신도시. 11월 아파트 매매 거래량이 월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를 찍는 등 부동산 시장 열기가 뜨겁다. 사진 이진혁

GTX 예정지 인근 아파트 호가 9억원대

가장 떠들썩한 곳은 GTX 운정역(가칭) 예정지 인근 아파트다. 동패동 ‘운정신도시아이파크’는 전용면적(이하 전용) 85㎡가 11월 8억4500만원에 거래됐다. 목동동 ‘운정센트럴푸르지오’ 전용 85㎡는 같은 달 무려 9억1000만원에 실거래됐다. 10월만 해도 6억원대로도 살 수 있는 곳이었는데, 두 달 만에 3억원 올랐다. 목동동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두 아파트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선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면 보이는 전형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집주인들이 던지는 호가를 감당하겠다는 매수 대기자가 나타나면 집주인이 다시 매물을 거둬들이고 다시 더 높은 호가를 제시하는 식이다. 현재 운정센트럴푸르지오의 경우 실거주할 수 있는 전용 85㎡ 매물 최저가가 8억원대다. 수요자들이 선호하는 주택 유형과 층수·방향·옵션을 갖춘 매물은 9억원 중반까지 치솟았다.

목동동의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7억원대에 거래될 때만 해도 이제 고점을 찍은 게 아니냐는 생각을 했는데, 최근에는 집주인들이 9억원은 당연하다는 듯이 부르고 있다”며 “운정신도시에서 이런 부동산 열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지방이라고 다를 건 없다. 충남 천안 성성동 ‘천안푸르지오레이크사이드’ 분양권은 10월부터 12월 15일까지 100여 건이 거래됐다. 이 아파트는 총 1023가구로, 불과 두 달 사이에 전 가구의 10%에서 손바뀜이 일어났다. 전용 85㎡ 분양권이 12월 6억9635만원에 매매돼 신고가를 달성했다. 이 아파트 전용 85㎡ 분양가는 3억9000만~4억3100만원이었다. 울산 신정동 ‘문수로2차 아이파크 1단지’ 전용 85㎡는 10월 12억원에 거래되며 올해 초보다 두 배 가까이 올랐다.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11월 19일 추가 규제지역 지정 이후인 11월 23일부터 12월 7일까지 전국에서 아파트 매매가가 가장 많이 오른 지역은 경남 창원 성산구(2.71%)로 나타났다. 파주(2.57%), 울산 남구(2.52%), 경남 창원 의창구(2.01%), 부산 강서구(2.01%)가 그 뒤를 이었다. 한쪽을 누르며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르는 풍선효과가 나타난 지역을 뒤따라 규제하는 ‘두더지식 규제’의 한계가 노출된 것이다.


Plus Point

부동산 시장 ‘키’ 잡을 변창흠의 철학은

주택 시장 열기가 전국으로 번지는 상황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 장관의 뒤를 이어 국토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변창흠 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의 부동산 철학에 수요자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변 후보자는 도시·주택 분야에 공공이 개입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막대한 개발 이익을 사유화하지 않고 공공이 환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LH 사장 시절에도 LH가 공공 디벨로퍼(부동산 개발업자)가 돼 주도적으로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변 후보자의 주택 공급책은 역세권·국공유지 고밀도 개발이다. 용적률을 대폭 상향 조정해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는 방법이다. 다만 이는 국토부와 서울시가 기존에 제시했던 방안이라 얼마나 공급을 늘릴 수 있을지 미지수다.

업계 관계자들은 만약 변 후보자가 장관으로 취임해 부동산 정책을 발표한다면 김현미 장관의 기조를 이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같이 입지 좋은 곳에 대규모 주택 물량을 공급할 방법보다는 현 정부의 주거 정책을 따르는 방향에 무게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