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이 R&D 단지로 변신하고 있다. 2005년 9월 말 완공된 디지털연구소는 삼성의 ‘R&D 시대’를 알리는 상징으로 떠올랐다. 삼성전자가 10년 후 먹고 살 ‘쌀’을 만들고 있는 디지털연구소를 찾았다.
 행길이라도 수원에서 삼성전자 찾기는 식은 죽 먹기다. 경부고속도로 수원IC를 빠져나와 톨게이트를 통과하면 큼지막한 삼성디지털단지 표지판이 보인다. 5분 정도 이정표를 따라가다 보면 ‘삼성로’라는 도로명이 선명하다. 수원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위상을 엿볼 수 있다.

 삼성로를 따라 삼성 수원단지에 들어섰다. 정문 맞은편의 거대한 주차장이 눈에 띈다. 동시에 3500대 이상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다. 오전 9시가 되지 않았지만, 주차장에는 차들이 벌써 꽉 들어차 있다.

 정문에 들어서자 보안요원이 차를 세웠다. 미리 예약하지 않고 승인이 떨어지지 않은 차량은 절대 통과할 수 없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간단한 보안점검이 이어졌다. 일반인들의 카메라나 디지털카메라, 카메라폰 등은 봉인된다. 직원이나 연구원들의 노트북은 상시 반출 승인을 받아야 통과가 가능하다.

 나갈 때도 마찬가지로 누구든지 보안검색을 받아야 한다. 가지고 들어갔던 봉인된 디지털기기도 점검받는다. 모든 차량은 뒤 트렁크를 열어 검색을 받아야 한다. 만약 연구원이나 직원이 승인받지 않은 물품을 가지고 나가다간 소명할 기회조차 없이 바로 해고된다고 한다. “여기가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수원사업장은 삼성 R&D 단지로 변신 중

 삼성 수원 디지털단지에는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코닝 등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제조공장은 TV와 캠코더 등을 위한 제조공장 2개동 외에는 예전의 백색가전공장은 전부 광주로 옮긴 상태다. 수원 사업장은 공장을 밀어낸 후 연구소 집적단지로 변신하는 중이다. 이러한 변신은 정보통신연구소를 완공한 지난 2001년부터 시작됐다.

 수원 사업장 안에 들어서면 회색 단층건물 사이에 중앙의 시커먼 건물이 눈에 띈다. 삼성의 약진을 뒷받침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핵심 R&D센터인 디지털연구소다. 디지털연구소는 세계 디지털TV산업의 ‘R&D허브’이자 ‘디지털발전소’로 일컬어지고 있다. 2005년 9월 말, 삼성은 경기도 수원에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총괄의 디지털미디어연구소를 완공했다. 단일 연구소로는 동양 최대 규모인 이 디지털 연구소는 지상 36층, 지하 5층 규모로 착공한 지 2년 만에 완공된 것이다.

 이 연구소의 연면적은 6만5000평으로 축구경기장의 30배이고, 여의도공원 면적과 비슷하다. 연면적으로 따지면 여의도 63빌딩보다 넓다. 수용인원은 9000명인데, 2005년 12월까지 6000여명이 입주해 있다. 아직 정보통신 분야가 자리잡을 4개 층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이 건물을 중심으로 삼성전자의 각종 연구소가 몰려 있다. 바로 옆에는 삼성전자 정보통신연구소가 있다. 삼성종합기술원과 반도체연구소도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삼성전자가 디지털연구소를 세운 이유는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R&D 인력을 한곳에 모아 시너지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다. 석·박사 학위 소지자 1500여명을 비롯해 이 건물에 근무하는 디지털미디어총괄 소속 R&D 인력만 모두 4100여명에 이른다. 이 중 미국, 영국, 일본, 러시아 등지에서 온 외국인도 150여명에 달한다. 건물 안에는 식당, 헬스클럽, 은행, 카페테리아 등 갖가지 편의시설까지 갖춰 놓았다.

 삼성전자는 미국 특허를 가장 많이 낸 기업 순위 5위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IBM, NEC, 캐논,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다음이다. 이는 매년 전체 매출의 7% 정도를 R&D 분야에 투자하기 때문이다. 2002년부터는 매출의 8%까지 투자 규모를 끌어올렸다. 2004년의 R&D 투자액은 43억달러를 넘어섰다.  2004~2005년 삼성전자 정보통신사업이 2차 도약기를 맞고 있는 것도 기술 개발과 이에 따른 특허가 기반이 됐다.

 1층 로비에서 다시 방문자 확인을 받았다.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는 협력업체 직원들도 하루 출입이 가능한 바이오태그를 받아야 한다. 자주 찾는 내방객이나 협력업체 직원들에게도 출입절차는 까다롭다. 공동연구 등을 위해 오랫동안 출입하는 협력업체 직원들의 불만이 높지만,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해 감수해야 하는 일이란다. 연구소의 안내는 박효상 경영지원실 마컴그룹 차장이 맡았다.



 기술 유출 방지 위해 보안 절차 엄격

 명함크기에 두께가 약 1cm 조금 못 미치는 바이오태그(Bio Tag)에는 위성추적장치(GPS)가 붙어 있다. 출입문에 접근하면 태그가 인식돼 출입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또 불 꺼진 빈 사무실에 들어가면 저절로 불이 들어오고, 공조와 냉·난방시스템도 자동으로 작동한다. 위급상황에서는 태그 뒷면의 조그만 단추를 누르면 바로 보안부서로 전달되고, GPS를 통해 위치가 파악된다.

 또 이 태그는 각 연구원이나 직원마다 업무별로 등급이 매겨져 있어 출입을 제한시키기도 한다. 박 차장이 시험 삼아 보여준다며 한 사무실에 다가섰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자신이 근무하는 기준층이 아니면 출입은 철저히 통제됐다.

 1층의 스피드게이트도 바이오태그를 지녀야 저절로 문이 열린다. 동행한 사진기자가 직원들의 스피드게이트 출입 장면을 촬영하자, 금방 2명의 보안직원이 달려왔다. 엄격히 제한된 사진촬영에 보안직원들이 민간하게 반응한 것이다. 안내를 맡던 박 차장이 사진촬영에 대해 승인을 받았다고 설명하고 나서야 물러섰다. 하지만 연구실은 물론이고, 연구소 내의 대부분의 장소는 사진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1층에는 디지털미디어 갤러리와 디지털홀, 방문객 전용 미팅룸 등이 있다. 170여평 규모의 ‘디지털미디어 갤러리’는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총괄에서 만드는 주요 제품을 전시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한 달 평균 5개 국내·외 기업이 방문한다고 한다. 최근에도 일본 소니의 고위 관계자 10여명이 방문해 벤치마킹을 할 정도이고, 국내·외 주요 거래선 및 협력업체가 방문하여 높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또 전동식 접이의자를 갖춘 550석 규모의 디지털홀은 3개 국어 동시통역이 가능하며, 각종 특수음향과 영상시스템을 갖춰 영화 상영은 물론, 각종 문화행사와 전시회가 가능하다. 공식행사가 없을 때는 월 1회 가량 영화 상영도 한다. 외국 연구원들이 많아 국가별 영화를 상영한다는 것이 안내한 박 차장의 설명이다.

 이 밖에 랜과 OA환경을 갖춘 프리미엄급 미팅룸 29실과 216석 규모의 오픈 미팅석 등으로 구성된 내방객 전용공간도 갖추고 있다. 일반 내방객이 연구실이나 사무실을 출입하는 걸 제한하기 위한 것이다. 이른 아침인데도 오픈 미팅석에는 삼성전자 직원과 내방객 간의 미팅이 이뤄지고 있다. 미팅 자리에는 외국인도 보였다.

 이 연구소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들이 모여 있다. 2005년 12월 현재 디지털미디어 소속 연구개발 인력 4100여명 중 1500명가량이 석·박사급이다.  삼성전자 정보통신연구소의 1만1200여명 되는 석·박사급까지 합치면 웬만한 종합대학보다 더 많은 석·박사가 삼성에서 일하고 있다.

 연구진은 다국적군이다. 미국, 중국, 일본, 영국, 인도, 러시아 등 22개국에서 온 외국인 연구원도 510명에 이른다. 러시아는 기초과학이 강하고, 인도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풍부하다는 점에서 각국 연구원들이 나름대로 장점을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2008년까지 마케팅리더십센터, 홍보관, 삼성전자 본관과 통신연구소 등이 새로 들어서게 되면, 연구 인력은 3만여명으로 불어나게 된다.

 디지털연구소는 사업장 내 분산돼 있는 연구 기능을 통합, 기술의 시너지를 향상시킴으로써 R&D 경쟁력을 확보하고, 미래지향적 연구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디지털미디어사업의 초일류화를 구현하는 데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최지성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총괄 사장은 “디지털연구소는 LCD, PDP TV 등 디지털TV 전 부문 1위 등극을 위한 핵심 전초기지”라며, “앞으로 이곳에서 디지털 르네상스의 선봉이 될 프린터, 캠코더, 모니터, 노트북 등 창조적 핵심 제품들이 연이어 쏟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원스톱 R&D 체계 갖춰

 디지털연구소는 사무와 연구, 각종 실험과 시험, 안전규격 시험까지 한 건물 안에서 모두 이뤄지는 원스톱 R&D 체계를 갖춘 것이 특징이다.

 특히 완전 무향실 및 반 무향실, 청취실, 방음실, 안전실, 실뢰성 실험실, 포장실험실, 화질 및 음질평가실, 환경실험실 등의 특수실험실은 규모(7000평)와 장비, 인력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조라인을 축소시킨 시작실이라는 실험실도 있다.

 특수실험실 가운데는 10여평을 갖추는 데 7억원 가량이 투입된 실험실도 있다고 한다. 직원들은 우스갯소리로 이 연구실을 ‘7억원짜리 방’으로 부르기도 한다. 5억원짜리 실험실도 여럿 있다고 하니, 연구소에 대한 투자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또 연구소 설계 단계에서부터 환경을 고려해 건축 및 운영에서 최소한의 자원 소비와 폐기물 감축을 비롯해 에너지와 수자원의 효율적 이용이 가능하도록 설계한 그린 오피스를 구현했다.

 디지털연구소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소라는 이름에 걸맞게 첨단기술이 집약된 지능형 건물로 지어졌다.

 일단 사무실에서 유선전화를 모두 없애고, 휴대전화를 구내전화처럼 사용할 수 있는 인포모바일 서비스를 도입해 와이어리스 오피스를 구현했다. 이 서비스는 휴대전화 한 대로 구내전화와 휴대전화를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유·무선 복합서비스로, 카메라폰 보안솔루션 소프트웨어가 탑재된 인포모바일 시스템 지역 내에서 자동으로 카메라 기능이 제한된다. 이 지역에서 벗어나면 카메라 기능이 자동으로 복원된다.

 디지털연구소는 150평 규모에 88석으로 구성된 글로벌 영상회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 시스템은 2개 국어를 동시에 통역할 수 있고, 디지털방식의 대형 DLP프로젝터를 갖추고 있어 해외 지사·법인 간 실시간 화상회의가 가능하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구내식당으로 직원들이 모여 든다. 전체 입주 직원들이 6000여명이 이른다고 하는데, 식당은 전혀 붐비는 걸 느끼지 못할 정도다. 일단 지하 1층과 6층에 대형식당 3곳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지만, 팀이나 부서별로 따로 식사시간을 정해 두고 있어 붐비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점심을 먹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면 식당별 혼잡도가 표시돼 식당을 골라 갈 수 있다. 이날은 안동찜닭과 청국장, 김치볶음밥, 비빔국수 등 3가지 식단이 제공됐다. 가격은 1000원이지만, 여느 식당보다 맛있다는 게 직원들의 말이다.

 식당 한편에는 생일을 맞은 직원을 위한 생일파티가 준비되고 있다. 식당 출입구 벽면에는 이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모든 직원들의 사진이 붙어 있다. 거의 대부분의 직원들이 자기의 얼굴을 찾았지만, 아직 찾지 못한 직원도 있다고 한다. 식당이 있는 지하 1층에는 은행, 새마을금고, 이동통신대리점, 택배회사 등의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삼성전자는 세계 1위 상품을 6개 가지고 있다. D램, S램, CDMA휴대전화, TFT-LCD(박막트랜지스터액정표시장치), 모니터, 전자레인지 6개 상품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고 있는 업체가 삼성전자다. D램 분야의 경우, 현재 삼성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회사가 보이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최근 세계적인 반도체업체들이 낸드플래시 메모리시장 공략을 위해 ‘합종연횡’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반도체시장에서는 전운이 감돌고 있다. 낸드플래시의 최대 수요처인 미국 애플사가 삼성전자, 하이닉스반도체뿐 아니라 도시바, 마이크론 등과도 장기 공급 계약을 하면서 미국과 일본 업체의 추격이 시작됐다. 특히 세계 최대 반도체회사인 인텔과 마이크론이 손잡고 낸드플래시메모리 생산을 위한 합작사 설립에 나서는 등 삼성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여기에다 향후 새로운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보이는 비메모리 분야는 예측이 쉽지 않다. 비메모리 절대 강자인 인텔이 전략적 제휴를 통해 메모리 일종인 플래시메모리사업을 대폭 강화해 메모리 세계 1위 업체인 삼성전자를 노골적으로 견제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R&D에만 43만달러 쏟아 부어

 하지만 삼성은 아직 건재하다고 자신한다. 삼성전자의 메모리사업 부문은 2위 업체보다 최소한 6개월 정도 기술적으로 앞서 있다는 평가다. 다른 1위 품목도 삼성전자는 2위 업체와 차이를 조금씩 벌려 나가고 있다.

 이러한 삼성전자의 경쟁력은 R&D 투자 규모에서도 드러난다. 삼성전자의 연구개발(R&D) 투자 규모가 세계 1000개 주요 기업 중 17번째인 것으로 조사됐다. 컨설팅업체 부즈앨런 해밀턴이 2004년 세계 기업들의 R&D 투자액을 기준으로 작성해 2005년 12월 발표한 ‘글로벌 이노베이션 1000’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43억2000만달러로 17위에 올랐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77억7900만달러로 1위를 차지했고, 화이자(76억8400만달러), 포드(74억달러), 다임러크라이슬러(70억3200만달러), 도요타(70억2500만달러) 등이 뒤를 이었다.

 삼성전자의 주요 경쟁업체인 인텔(47억7800만달러)과 소니(46억7000만달러), 노키아(46억4000만달러) 등은 각각 12위, 14위, 15위를 기록했다. 이들 1,000개 기업의 지난해 전체 R&D 투자액은 3840억달러로, 1999년 이후 연간 6.5%씩 증가했다.

 삼성이 왜 강한가. 답은 간단했다. R&D에 대한 열정과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한 대규모 투자가 삼성전자를 글로벌기업으로 키웠다. 비록 기술개발과 이에 대한 유출을 막기 위한 이런저런 장치와 체계가 인간미 떨어지고 삭막했지만, 삼성디지털연구소가 삼성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만든다. 여기서 개발될 원천기술 하나가 삼성의 10년을 먹여 살릴 ‘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