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의 성공보다는 그 과정을 즐겨라.” 기업인들을 상대로 한 특강에서 자주 거론되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 이 말처럼 실패와 난관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경영자는 그리 많지 않다. 시련이 닥쳐오면 정면 돌파로 승부하고 역경을 즐기며 실패를 뛰어넘은 한 기업가가 있다. 필립 안슈츠(Philip Anschutz·66) 안슈츠그룹(Anschutz Corporation)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대로 밀고 갑시다. 결과는 내가 책임지겠소.”지난 2004년초 안슈츠 엔터테인먼트그룹 회의장에서 안슈츠 회장은 소울가수 레이 찰스 주니어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드는 계획에 반대하는 중역들에게 이렇게 잘라 말했다. 중역들이 내세운 반대 이유는 다양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레이 찰스가 누군지도 모른다.” “백인이 아닌 흑인 명사의 일대기(一代記)는 잘 안 팔린다.” 그 중에는 “차라리 TV 미니시리즈로 만드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제안도 있었다.

 지만 안슈츠 회장의 신념은 확고했다. 그는 “할리우드 영화에 난무하는 폭력과 마약, 섹스 속에서 아이들을 지켜내야 한다. 비록 흥행에 실패하더라도 난 그런 좋은 영화 하나를 남기고 싶다”며 밀어붙였다. 안슈츠 회장은 또 “이제 관객들이 부수고 때리고 피 흘리는 영화에 식상할 때도 됐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제시했다. 결국 안슈츠 회장의 의지대로 영화는 개봉됐고, 그 믿음은 보상을 받았다. 3700만달러의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 ‘레이(Ray)’는 흑인 배우 제이미 폭스가 올 초 골든 글로브상과 아카데미상에서 각각 주연남우상을 받는 등 호평을 받은 것은 물론 흥행에도 성공, 1억2500만달러의 수익을 올린 것이다.

 '레이’의 제작 과정에서도 나타나지만 안슈츠 회장은 사람들이 예상치 못하는 곳에서 가능성을 찾아내는 데 능하다. 그래서 미국 재계에서 “역발상(逆發想) 기업가”란 별명도 듣고 있다. 자신의 표현대로 ‘남들보다 한 발 앞서 기회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 안슈츠 회장은 창업한 지 40여년만에 첨단 통신업체로부터 프로 농구팀, 영화 제작사 등을 보유한 재계의 거물이 됐다. 지난해 말 <포브스>지는 그의 재산을 58억달러(환율 1200원 기준 약 6조9000억원)로 추산하며 미국내 33위의 부자로 기록했다.



 석유 시추업자 장남으로 태어나

 안슈츠 회장은 1939년 미국 캔자스주 러셀(Russell)에서 3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석유 시추업자였다. 소규모로 여기저기 캔자스주를 옮겨 다니며 땅을 팠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군소 시추업자들이 많았다. 마치 한국의 지하수 개발업자처럼 이들은 시추공 수백개 중 1개에서 ‘대박’이 터지길 기다리는 끈기를 강요당하며 시추 작업에 매달려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이 시절 부친으로부터 “실패에서 교훈을 찾고 위험을 감수하는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비록 큰 성과는 없었지만 꾸준히 한 가지 일에 매달리는 아버지를 옆에서 보며 자랐던 것이다. 여기에다 모친도 큰 역할을 했다. 그의 어머니는 안슈츠 회장이 아주 어릴 때부터 ‘정직·신의·성실’ 등의 중요성을 거론하면서 “언제나 옳은 일을 할 것”을 강조했다. 유년 시절에 아버지로부터는 불굴의 의지와 끈기를, 어머니로부터는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물려받았으니 그의 성공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안슈츠 회장은 14살이 됐을 때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의 어머니가 스스로 돈을 벌어 보는 게 중요하다며 등을 떠민 것이다. 그래서 그는 10대 청소년 시절을 들판에서 옥수수 떨거지를 줍고 잡화점에서 물건을 나르거나 은행 창구에서 환전해 주는 일 등을 하며 지냈다.

 이런 식으로 스스로 학비를 벌며 캔자스주립대에서 재정학을 전공한 그는 1961년 졸업 후 법학을 공부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운명은 그를 변호사가 아니라 투자가, 창업가로 돌려놓았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던 해 아버지 사업이 파산 신청 직전까지 치달으면서 구조 요청이 들어온 것이다.

변호사 길을 포기하고 부친의 요청에 따라 아버지 회사 경영에 참여한 안슈츠 회장은 석유를 찾아낸 게 아니라 부채를 청산하고 자금을 융통하는 재무관리자 역할을 성실히 수행, 그럭저럭 파산을 면하는 상태로 유지시켰다.

 이렇게 4년이 흐른 뒤 급한 불은 껐다고 판단한 안슈츠 회장은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1965년 미국 중부 콜로라도주 덴버시로 옮겨가 안슈츠주식회사(Anschutz Company)를 설립했다. 그리고 전국을 돌며 유전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다녔다.

 아버지와 달리 안슈츠 회장은 텍사스, 콜로라도, 와이오밍 등 로키산맥 주변의 광대한 지역에서 시추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석유 발견은 쉽지 않았고, 석유 사업은 여전히 인내를 요구했다. 그런데 이렇게 2년여를 아무 성과 없이 땅만 파고 다니던 안슈츠 회장에게 낭보가 날아왔다. 1967년 와이오밍주의 시추공에서 대규모 유정(油井)이 발견된 것. 안슈츠 회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신속하게 주변 토지를 모두 매입, 대대적으로 시추를 하려고 급전까지 끌어왔다. 호사다마(好事多魔)일까. 그의 발목을 잡는 사건이 발생한다. 급전을 동원해 토지를 사들인 다음날 유정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갑자기 불이 났다는 소식이 퍼지자 채권자들이 쏜살같이 달려와 자금을 회수하겠다고 안슈츠 회장을 조여 대기 시작했다. 석유 사업을 시작한 지 2년만에 ‘성공이냐 몰락이냐’의 갈림길에 선 것이다.

 안슈츠 회장은 채권자들의 닦달을 뒤로 한 채 일단 불부터 꺼야겠다고 판단, 지금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전 전문 소방수 폴 레드 아데르(Paul‘Red’Adair)를 호출했다. 일반 소방 기술로는 유전의 화재를 잡을 길이 없어 전문가를 불렀는데, 뜻밖에도 아데르는 현장을 한 번 보더니 “선불금을 지급치 않으면 작업에 들어갈 수 없다”며 돈부터 요구했다. 유전을 확보하느라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댔는데, ‘돈을 안주면 불을 못끄겠다’고 하니 안슈츠 회장은 진퇴양난에 빠져 버렸다.

 그러나 ‘재앙은 위장된 축복’이란 말처럼 안슈츠 회장은 이 위기를 기회로 바꾼다. 안슈츠 회장은 당시 유니버설 스튜디오사가 아데르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고, “아데르가 진짜 유전 화재를 진화하는 장면을 찍게 해줄 테니 10만달러를 내라”고 유니버설측에 연락한 것이다. 마침 존 웨인 주연으로 ‘헬 파이터(Hell Fighter)’란 영화를 제작하고 있던 유니버설은 흔쾌히 응했고, 돈을 받은 아데르는 진화 작업에 착수했다. 이처럼 드라마틱하게 진화 작업을 마치고 위기를 극복한 안슈츠 회장에게 생각지도 않은 행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난관에도 굴복치 않고 위기를 기회로 바꾼 안슈츠 회장에게 하늘도 감동해 선물을 주고 싶었을까. 와이오밍의 유정 사건 이후 석유 사업을 차근차근 키워 나가던 안슈츠 회장에게 생각지도 않던 ‘대박’이 터진다. 유타주에 확보해 둔 개발지에서 천연가스가 발견된 것이다. 시험 시추 결과 약 5억t의 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미국 본토의 50대 천연가스전 가운데 수위를 다투는 수준이었다. 석유에만 매달리던 그에게는 로또에 당첨된 것이나 다름없는 행운이었다. 1980년대 초반 안슈츠 회장은 이 가스전을 포함, 석유 및 천연가스 사업과 관련된 지분 중 포레스트 오일 지분 일부만 남긴 채 대부분을 모빌사에 매각하고 에너지 사업에선 손을 털고 나온다.



 사업 시작 2년만에 위기에 몰리기도

 에너지 사업에서 벌어들인 자금 5억달러를 바탕으로 안슈츠 회장은 철도와 물류 사업에 눈을 돌리게 된다. 1982년 그는 ‘덴버 & 리오그란데 서부 철도’란 소규모 철도회사를 사들였다. 이어 6년 뒤 덩치가 10배는 더 큰 ‘남부태평양철도’를 사들이게 된다. 그 결과 미국 남서부의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물류망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합병 후 이 철도회사는 로스앤젤레스와 롱비치항을 드나드는 화물의 75%를 수송하는 등 미국 중서부 화물 운송의 지배적 회사로 성장한다. 그런데 남부태평양철도 인수 후 화물 운송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또 한 차례 안슈츠 회장은 큰 기회를 맞게 된다.

 1990년대 들어 미국에 정보기술(IT) 혁명이 일어나면서 광통신망이 중요한 기반 시설로 부각되는데, 이때 전국의 철도망을 따라 광통신망이 깔리게 된 것이다. 전국 구석구석을 연결해야 하는 광통신망 특성상 철도를 따라 큰 줄기가 뻗어 나가는 게 가장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안슈츠 회장은 물류망으로만 작용할 줄 알았던 철도회사가 의외의 수익을 안겨주자,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아예 뉴미디어 사업에 뛰어들기로 마음먹는다.

 안슈츠 회장은 1996년 남부태평양철도를 유니온퍼시픽철도에 54억달러를 받고 팔았다. 그런데 지분을 완전히 정리한 게 아니라 합병회사 지분을 5.4% 소유하는 조건을 달았다. 그리고 통신업체를 설립한 뒤 이 철도회사의 지분을 활용, 광통신망을 까는 사업을 시작했다. 안슈츠 회장은 ‘인터넷이 향후 산업의 향방을 좌우할 것이며, 이를 위한 기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해 이 분야에 일찍 뛰어든 것이다. 이 통신회사는 1997년 퀘스트(Qwest)란 이름으로 뉴욕증시에 상장됐다. 상장 당시 지분율은 85%로 5500만달러를 투자한 안슈츠 회장의 주식 가치는 IT붐이 거세게 일어난 덕분에 49억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로 인해 안슈츠 회장은 <포브스>가 추산한 1998년 부자 목록에서 미국의 7위 부자로 기록되기도 했다.

 퀘스트는 지난 3월말 현재 76만7000명의 이동통신 고객과 100만명의 인터넷 가입자, 460만명의 장거리전화 고객 등을 보유하는 한편 15만5000루트마일(실제 거리가 아니라 작동 가능한 광통신의 총 길이)의 용량을 자랑하는 종합 커뮤니케이션회사다. 현재 미국 남서부 14개 주에서 통신업계의 대명사로 자리잡고 있으며, 안슈츠 회장은 현재 1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안슈츠 회장은 철도회사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부동산 개발 사업에도 눈을 뜨게 된다. 철도회사를 인수하고 보니 예상치 않았던 미국 남서부 곳곳의 땅이 함께 굴러들어 온 것이다. 그는 1990년대 중반 이런 식으로 확보한 부동산을 개발, 토이즈아러스(Toys‘R’Us) 체인에 40여개의 점포를 분양한다. 특히 본사가 있는 덴버시에서 대규모 개발 사업을 추진, 덴버시의 풍경을 바꿔놓았다는 평가도 듣게 된다. 안슈츠 회장은 덴버시를 가로지르는 사우스 플라테강 주변을 공연 및 프로경기장 등으로 개발, 이전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던 이 지역을 스포츠팀들의 홈경기장으로 변신시켰다. 미식축구(덴버 브롱코스), 프로야구팀(덴버 너겟츠), 프로농구팀(콜로라도 로키츠), 프로아이스하키팀(콜로라도 애벌랜치) 등이 속속 자리잡으면서 덴버시의 문화·연예 중심지로 부상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또 한 차례 부를 축적한 그는 눈을 돌려 서부의 중심지 로스앤젤레스로 1997년에 진출한다. 이미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안슈츠 회장은 대환영을 받으며 로스앤젤레스에 입성, 또다른 전용 경기장 건설에 착수했다. 안슈츠 회장이 3억달러를 내고 시가 7천만달러를 출자하는 형식으로 현재 LA레이커스, LA킹즈 등의 홈경기장으로 사용되는 스테이플스 센터(Staples Center)를 건립한 것이다. 안슈츠 회장은 이때 기존의 낡은 콜로세움경기장을 인수한 뒤 재개발에 들어가 쇼핑몰과 경기장을 결합시킨 일종의 스포츠 테마파크로 탈바꿈시켰다.

 이때 안슈츠 회장이 경기장 건설의 첫 삽도 뜨기 전에 지분과 사업권 등을 팔아 개발비를 일거에 회수하는 기록을 세운 얘기는 유명하다. 먼저 프로야구팀 LA다저스를 소유하고 있던 뉴스콥 대표 루퍼트 머독 회장에게 경기장 지분 40%를 넘기는 계약을 맺고 1억2200만달러를 투자받았다. 사무용품 전문할인점인 스테이플스(Staples)로부터는 경기장 이름에 ‘스테이플스’를 20년간 쓰게 해주는 조건으로 1억달러를 유치했다. 또다른 1억달러는 아이스하키와 야구팀에 장기 임대해 주는 계약을 하고 출자받았다. 유나이티드항공과 팩 벨은 자신들의 기업명을 스테이플스센터 곳곳에 노출시키는 조건으로 6000만달러를 내놓았다. 또 경기장의 로열박스를 기업들에 팔아 4000만달러를 확보했다. 건물도 완공되기 전에 본전을 다 뽑고도 오히려 이익이 1억달러나 남았던 셈이다.

 안슈츠 회장은 성공보다는 실패를 더 많이 강조하는 억만장자다. 그는 지난 2001년 호레이쇼 알게상 시상식에서 “사업에서의 실패 역시 게임의 한 부분”이라며 “언제나 위험을 감당해야 더 큰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창업가란 남들보다 앞서 기회를 찾아낸 사람”이라며 “기회가 오면 그것을 어떻게 이용할지 평소에 단련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에너지와 물류로 바닥을 다진 안슈츠 회장의 차세대 사업은 뉴미디어를 중심으로 영상, 공연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퀘스트사를 통해 통신 사업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영화 제작 사업에도 본격 진출했다. 그는 영화 제작 그 자체보다는 연관 산업이 점점 커지는 데 주목했다. ‘반지의 제왕’ 같은 영화 1편이 DVD 판매는 물론 장난감, 컴퓨터 게임 등에까지 확장될 수 있으니 영상과 공연 분야는 투자할 만한 사업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안슈츠 회장의 제2기 사업을 펼쳐 나가는 발전소로 안슈츠 엔터테인먼트그룹(AEG)이 있다. 이 계열사는 스포츠, 영화, 엔터테인먼트 관련 자회사를 두고 이를 운영하는 ‘안슈츠 회장 신사업’의 본부이자 엔진이다. AEG의 자회사 가운데 굵직한 것들만 살펴보면 먼저 스테이플스센터와 코닥극장이 있다. 스테이플스는 지배주주로 직접 소유해 운영하고, 코닥극장은 운영권만 갖고 있는데 이 극장은 매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안슈츠 회장은 스테이플스센터 착공에 앞서 로스앤젤레스의 부동산 개발업자인 에드 로스키와 공동으로 파산 상태에 있던 아이스하키팀 LA킹즈를 1억1400만달러에 사들이는 한편, 2년 뒤에는 역시 로스앤젤레스에 기반을 둔 농구팀 레이커스 지분 25%를 인수했다. 이 둘을 포함, 여러 스포츠팀을 AEG 산하에 두고 스포츠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스포츠팀과 경기가 벌어지는 스타디움을 동시에 소유한 그는 시너지효과를 이용, 팬들의 관심을 유발시켜 개관하기 18개월 전에 개막전 경기 입장권 절반이 팔리는 경이로운 기록도 세우게 된다. 스테이플스센터는 현재 운동 경기뿐 아니라 U2 등 예술 공연까지 유치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경기장’으로 자리잡았다.

 특급 가수 셀린 디옹의 미주 지역 공연권도 AEG가 소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라스베이거스 시저스호텔에서 장기 공연중인 셀린 디옹의 ‘새로운 날(A New Day)’ 역시 AEG가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과 스케줄 관리 등을 담당한다. AEG는 이들 프로팀 이외에도 미국과 유럽의 프로 축구팀 8개, 아이스하키팀 5개를 운용하고 있다. AEG는 최근에는 부도로 시장에 매물로 나왔던 영국 런던의 밀레니엄 돔도 인수, 최첨단 공연장으로 탈바꿈하는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다.



 위기 극복 후 곳곳에서 ‘대박’터져

 안슈츠 회장이 영화나 공연 쪽에 참여하게 된 것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이유만은 아니었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현재 할리우드가 쏟아내고 있는 각종 영화와 대중 공연 등이 자라나는 세대에게 폭력과 가족 해체를 가르치는 위험한 매체로 바뀌고 있다”고 개탄한 인물이다. 그래서 ‘할리우드의 분위기를 바꿔 놓고 싶다’는 그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그가 직접 제작하는 영화는 가족 중심의 얘기가 많고 선한 결말로 끝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레이’의 메가폰을 잡은 테일러 헥포드 감독에게 그는 세세한 간섭은 하지 않았지만 딱 한 가지는 강조했다.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영화 등급을 받도록 만들어 달라”는 주문만 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레이’의 당초 시나리오에 있었던 마약 관련 장면이나 쓸데없는 노출 장면들은 사라졌다. 말하자면 안슈츠 회장은 ‘돈도 되면서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은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예술성과 흥행성을 겸비한’ 영화를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 성룡 주연의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내놓았고, ‘레이’의 성공 이후 올해에는 ‘사하라(매튜 매커내히, 페넬로페 크루즈 등 주연)’를 선보였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은 편이다. 하지만 안슈츠 회장은 당장 흥행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폭력과 노출, 선혈이 낭자한 최근의 할리우드 추세에 싫증을 낸 관객들이 돌아올 것으로 믿으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다.

 안슈츠 회장이 느긋하게 영화 제작에 임할 수 있는 또다른 이유는 그가 현재 6000여개의 스크린을 보유한 미국 최대의 극장 체인 리갈시네마(Regal Cinema)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개봉관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그는 원하는 소재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본 여건을 확보한 셈이다.

 안슈츠 회장은 최근 그의 역량을 ‘뛰어난 기독교 수필가’로 꼽히는 클라이브 에스 루이스의 연작동화집 <나르니아 연대기> 전7권을 모두 영화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올해 말 시리즈 중 첫번째인 <사자와 마녀와 옷장>을 내놓을 예정인데, 배급사로 월트디즈니사를 확보한 상태인 데다 미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동화여서 흥행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가 <나르니아> 시리즈 다음으로 준비하고 있는 <샬롯의 거미줄(Charlotte's Web)>역시 미국의 중년들에게 친숙한 동화를 영화화하는 것이다. 중년의 부모들이 어릴 적 감동을 되살리면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극장에 오게 만들겠다는 그의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앞서도 살펴봤듯이 안슈츠 회장은 차세대 사업으로 뉴미디어와 영화, 공연 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슈츠 회장은 프랑스의 유명한 자전거대회를 본따 ‘캘리포니아투어’란 이름의 세계적인 자전거경주대회를 내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열 준비를 하고 있다. 또 스테이플스센터 옆에 10억달러 규모로 공연 위락 시설을 건설한다는 계획도 세워둔 상태다. 여기에는 55층짜리 호텔, 시사회용 극장, 그래미상의 역사를 담은 음악 박물관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안슈츠 회장은 오래 전부터 남이 돌아보지 않는 분야에서 큰 부를 캐냈고, 이는 지금도 그의 사업 판단에 중요한 분야를 차지하고 있다. 목장 초지에 시추공을 뚫는다는 것은 1960년대 당시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며, 철도회사를 인수해 부동산 개발과 첨단 통신 사업에 진출하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지난해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SF Examiner)>지를 인수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종이신문이 사양 산업화하고 있는 것은 전세계적인 추세인 데도 그는 오히려 145년 역사 전통의 신문을 인수, 무가지로 만들어 새 시장 개척을 시도하고 있다. 올 초에는 수도 워싱턴에서도 무료 신문을 새로 창간했다. 안슈츠 회장은 신문산업을 전담하는 게열사 클레어리티 미디어그룹을 설립, 앞으로 60여개 도시에서 이같은 무료 신문을 발행할 계획이다.

 안슈츠 회장은 그의 부와 자산을 정치적 영향력 행사에 잘 활용하는 기업가로 유명하다. 열렬한 공화당 지지자인 그는 공화당의 공식 행사에 빠짐없이 정치 헌금을 내놓고 있다. 지난 1996년 절친한 고향친구 사이인 밥 돌 전 상원의원이 공화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나설 당시 공화당 전당대회에 공식적으로 40만달러에 가까운 거금을 내놓았다. 이와 함께 콜로라도주의 주요 도시에서 동성혼 금지 조례를 통과시킬 수 있도록 활동하는 사회단체를 막후에서 지원하기도 했다.

 ‘공격적으로, 그리고 열심히,’ 안슈츠 회장이 20대말 창업하면서 삼은 좌우명이다. 그는 언제나 “창업가가 되려면 열심히 일하는 사람(Hard Worker)이 돼야 한다. 빈둥거리는 사람(Hardly Worker)이 돼선 곤란하다”며 근면과 성실을 강조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1주일에 6일은 아침 여섯시부터 저녁 여섯시까지 일한다. 장로교신자인 안슈츠 회장은 일요일에는 모든 업무를 중단하고 가족과 함께 지내면서 교회에 나간다. 그는 16세 때 처음 만났던 낸시 안슈츠 여사와 지난 1966년에 결혼, 슬하에 3남매를 두고 40년 가까이 해로하고 있다.

 안슈츠 회장은 21세기 첨단 산업(광통신)을 19세기 네트워크(철도)를 이용, 광역화시킴으로써 부를 축적한 사람이다. 그가 우연히 그렇게 ‘첨단과 고전’을 연결시켰다기보다는 탁월한 사업 감각과 불굴의 의지가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올드 미디어인 신문과 뉴 미디어인 인터넷을 동시에 보유한 안슈츠 회장이 앞으로 이 재료를 어떻게 버무려 어떤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