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기계’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돈을 열심히 잘 벌거나 아니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번다는 원망을 듣거나, 둘 중 하나다. 후자의 경우라면 ‘얄밉다’거나 ‘얌체 같다’는 비난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오늘은 이 두 가지 측면 모두에서 ‘돈 버는 기계’라는 평을 듣고 있는 억만장자를 만나 보자.

 덜란드 에인트호벤에서 뛰고 있는 박지성 선수가 ‘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Manchester United)로 이적하고 싶다’는 의사를 마침내 밝혔다. 영국 축구계에서 ‘맨유(Man-U, 팬들이 줄여서 부르는 애칭)’라고 하면 역사나 전통, 경영적 측면 등에서 최고의 팀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쓰인다. 지구촌 유명인사 중 대표선수급인 레알 마드리드의 데이빗 베컴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출신이다. 그런데 팀의 문양(紋樣)이 재밌게도 ‘붉은 악마’인 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구단주가 영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말콤 글레이저(Malcolm Glazer?7) 퍼스트 앨라이드 코포레이션(First Allied Corporation갌AC)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글레이저 회장은 <포브스> 추산에 따르면 11억달러(약 1조2000억원)의 재산을 보유, 미국 내 부자 순위 278위로 기록돼 있다. 그는 지난 5월 주요 주주들인 존 마그니에와 제이 맥마너스로부터 7억9000만파운드(약 15조원)에 주식을 사들여 자신의 기존 지분과 합쳐 명실공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의 주인(지분율 75%)이 되었다. 이미 미국 프로축구팀 플로리다 탐파베이 뷰캐니어즈(Tampa Bay Buccaneers)를 갖고 있는 글레이저 회장은 이로써 미국과 영국의 축구팀을 동시에 소유한 최초의 인물이 됐다.



 리투아니아계 이민자의 아들

 현재 FAC 외에도 자파타 그룹 명예회장, 탐파베이 뷰캐니어즈 구단주 등의 직함을 갖고 있는 글레이저 회장은 리투아니아계 이민자의 아들이다. 그의 선친은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직전 러시아 붉은 군대를 탈영, 리투아니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왔다. 세계 대공황의 조짐이 역력하던 1928년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7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글레이저 회장은 여덟 살 때부터 아버지의 시계 공장에 나가서 일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15살 때 아버지가 단돈 300달러만 남기고 갑자기 사망하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시계를 팔러 거리로 나섰다.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글레이저 회장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도 47살(선친이 사망한 나이)이 되면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비극이었지만 나를 ‘남자’로 만들어 준 계기가 되었다”고 회상했다.

 남들은 향학열에 불타 대학 전공을 고민할 나이에 글레이저 회장은 ‘돈 버는 기계’의 길을 걷게 된다. 물론 주위로부터 비난과 원망을 듣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의 누나들조차 “말콤은 돈 버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스포츠나 취미생활도 멀리 했지요”라고 비아냥거릴 정도였다. 물론 누나들이 글레이저 회장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 것은 1990년대 재산분할 문제로 서로간에 감정이 상한 탓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인 셈이다. 실제로 그는 골프도 치지 않는다.

 공부를 완전히 포기하고 조금씩 돈을 모으던 그에게 어느 날 기회가 찾아왔다. 1940년대 말 로체스터 근교의 잡초투성이 땅이 눈에 띈 것이다. 당시 도시가 팽창하면서 서민들의 주거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에 주목했던  말콤은 이 땅을 트레일러파크(이동식 주택 계류장)로 개발한다. 사실 개발이랄 것도 없이 그저 땅을 구획해서 전기와 수도 시설만 끌어오면 됐다. 그러면 이동주택 트레일러를 보유한 사람들이 월세를 내고 지내는 것이다. 한국으로 치면 지난 개발연대 때 구로공단 근처에 ‘벌집’을 임대해 주던 것과 유사한 사업을 시작한 셈이다.

 이후 그는 15군데의 트레일러파크를 운영했으며 여기서 모은 돈을 양로원 운영, 상업용지 개발 등에 투자해 차곡차곡 돈을 모았다.

 제대로 된 학교 교육조차 받지 못했지만 글레이저 회장은 1980년대 미국 금융시장에서 정크본드(신용도가 아주 낮은 채권)가 등장하자 관심을 갖게 돼 주식시장에까지 진출한다. 이때 다소 위험한 투자방식을 동원, ‘기업사냥꾼’이란 악명을 듣게 된다. 그는 시장에서 주식을 사들여 일정 지분을 모은 뒤 인수설을 흘려 해당기업의 주가가 오르면 되파는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것이다. 1988년 한국에도 잘 알려진 가구전문회사 호마이카의 지분을 10%까지 확보한 뒤 되파는 데 성공한 글레이저 회장은 이후 오토바이로 유명한 할리데이비슨의 주식도 6.9% 매입해 수익을 올렸다.

 물론 글레이저 회장측은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 강력히 부인한다. ‘당시 인수설을 흘린 적도 없으며 위법사례가 있었다면 증권관리위원회에서 가만히 있었겠느냐’고 항변했다. 모든 것이 경쟁자들이 악의적으로 퍼뜨린 소문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어찌 됐건 이런 과정을 통해 글레이저 회장은 다시 한 번 ‘돈 버는 기계’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글레이저 회장이 부동산 투자를 위한 지주회사로 설립한 FAC는 미국 21개 주에 30여 개의 쇼핑몰을 포함, 50여 채의 상가건물을 소유하고 있는데 평균 1500만~2500만달러(160억~260억원 정도)의 가치를 지닌 부동산으로 구성돼 있다. 이 회사는 2000년대 들어 매년 평균 3억달러 상당의 상업용 부동산을 매매하고 있으며 글레이저 회장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현금 공급원 역할을 하고 있다. 뷰캐니어즈 팀은 물론 맨체스터 축구팀을 매입할 때 들어간 비용도 주로 이 회사에서 염출됐다.



 부시 대통령 부친 소유의 자파타 기업 인수

 글레이저 회장은 트레일러파크와 양로원 사업 등으로 모은 자금으로 1992년 자파타 코포레이션(Zapata Corporation)을 인수, 제조업과 서비스업에도 진출했다.

 자파타는 1950년대에 조지 H.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을 위해 설립한 기업이다. 부시 일가는 자파타를 10여 년 뒤 시장에 매각했는데 한 사람을 거쳐 글레이저 회장이 매수했다. 이후 자파타는 어업에 참여하면서 오메가 프로틴(Omega Protein)이란 회사를 인수했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가장 큰 고급 어유(魚油) 생산 회사였다. 이 회사가 생산하는 ‘오메가-3 지방산’은 미국 건강식품 시장에서 지명도가 높다. 동물 사료용 어묵도 생산하는 오메가 프로틴의 지난 2004년 실적을 보면 1억2000만달러 매출에 320만달러의 이익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뉴욕증시 상장업체인 이 회사는 32척의 선단을 보유하고 있으며 소시지용 외피 공급업체인 비스카스의 지분 40%도 보유하고 있다.

 자파타는 에어백용 특수섬유 생산업체인 SCI(Safety Components International)도 소유하고 있으며 현재 장외시장(OTCCB)에서 거래되고 있다. SCI는 에어백용 섬유 외에도 군용 천막과 방염 특수섬유도 제작겿퓔탭求?회사로 지난해 이익은 1004만달러, 매출액은 2억5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자파타는 이와 함께 미국 동부에 80여개의 레스토랑을 소유한 훌리한(Houllihan) 체인도 자회사로 두고 있다. 글레이저 회장은 지난 2002년 자파타의 대표이사 사장 자리를 장남 아브람에게 물려주고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물론 그의 투자가 항상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자파타는 지난 1990년대 말 IT 바람이 불 때 닷컴업체인 잽닷컴(Zap.com)을 설립했지만 기업확장에 실패하고 IT 거품이 꺼지면서 지금은 자파타 코포레이션의 홈페이지 운영만 할 뿐 거의 활동을 하지 않는 상태다. 당시 글레이저 회장은 ‘세계 최대의 인터넷 비즈니스를 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잽닷컴을 설립했고 이어 포털사이트인 엑사이트닷컴(Excite.com) 인수를 공개 선언했다. 또 <월스트리트 저널>과 <뉴욕타임스>에 ‘당신의 웹사이트를 무조건 사겠습니다’라는 광고를 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 광고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어서 1000건 이상의 지원서가 접수됐다. 응모한 웹사이트 중 31개를 잽닷컴의 주식과 등가교환방식(Swap)으로 인수했으나 그게 끝이었다. 엑사이트닷컴 인수도 무산됐다. 원래는 인터넷 출판, 검색엔진, 전자상거래 사이트 등 다양한 인터넷 사업을 계획하는 등 꿈은 컸으나 현실이 따라 주지 않은 것이다. 나름대로 인터넷 시장의 가능성은 발견했지만 글레이저 회장의 나이가 인터넷의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글레이저 회장이 왜 ‘돈 버는 기계’로 불리게 됐는지는 스포츠팀 매입과 운영 과정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제조업과 부동산에서 모은 자금으로 글레이저 회장은 1995년 플로리다주 탐파베이의 미식축구팀 뷰캐니어즈(Buccaneers) 인수전에 뛰어든다. 글레이저 회장이 인수전에 뛰어들기 전만 해도 뷰캐니어즈는 만년 꼴찌 팀이어서 비용이 적게 들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착수한 것이다. 하지만 인수전 막판에 경쟁자가 갑자기 등장하는 바람에 2억달러 가까운 자금이 들어갔다. 10여 년 전 당시만 해도 이 거래는 풋볼팀 인수 사상 최고 금액이었다. 요즘도 가끔 글레이저 회장은 “그 녀석 때문에 5000만달러가 더 들어갔어”라고 투덜대고 있지만 어쨌든 글레이저 회장은 인수 후 꾸준히 좋은 선수와 코치를 영입해 팀의 성적을 호전시켰다.  마침내 2003년 시즌 슈퍼볼(미식축구 결승전)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고 이후 뷰캐니어즈의 가치는 8억달러로 치솟았다. 1억9200만달러에 인수한 팀이 10년도 되기 전에 7배 가까이 몸값이 뛴 것이다.



 전용기 구입 전까지 이코노미석만 이용

 글레이저 회장은 ‘돈 버는 기계’말고도 ‘지독한 구두쇠’라는 별명을 갖고 있지만 돈을 쓸 때는 화끈하게 쓰는 사람이다. 전용기를 구입하기 전까지는 언제나 출장은 이코노미석을 이용했고 대부분 저가항공사만 찾았다. 나중에 취소되기는 했지만 4년 전 자서전 준비를 위해 전기작가 앨런 세인존을 만난 자리에서 그는 아들 브라이언을 가리키며 “저 아이가 입고 있는 바지가 보이죠? 저게 200달러(20만원)짜리 휴고 보스 바지야. 난 겨우 20달러(2만원)짜리 바지를 입는데 말이야”라고 투덜거린 일화도 전해진다. 하지만 뷰캐니어즈 우승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조나단 그루든(당시 오레곤팀 코치) 감독을 영입하기 위해 2002년 1750만달러를 쾌척했다. 그루든은 글레이저 회장의 기대에 부응, 2003년 시즌 우승을 이끌었고 그 자신은 최연소 슈퍼볼 우승감독이란 영예를 안았다.

 글레이저 회장이 뷰캐니어즈 전용구장을 거의 공짜로 얻어낸 일화도 유명하다. 그가 뷰캐니어즈를 인수한 뒤 전용구장을 재건축하는 과정에서 구단의 돈이나 개인자금을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시 예산에 다 떠넘긴 사건은 지금도 탐파베이 주민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당시 글레이저 회장은 ‘벼랑 끝 전술’이라고 한 신문이 지적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 아니면 도’ 식으로 나왔다. 글레이저 회장이 인수와 동시에 새 구장이 필요하다고 탐파베이시 측에 계속 요구했으나 예산 부족을 이유로 시정부는 결론을 미뤘다. 그러자 글레이저 회장은 뷰캐니어즈를 다른 도시로 옮겨 버리겠다고 탐파베이 시정부를 압박해 들어갔다. 시장의 코앞에서 다른 도시가 제출한 ‘축구팀 유치 요청서’를 흔들면서 전용구장 확보를 강요하자 결국 시정부는 손을 들고 말았다. 1996년 주민투표를 통해 소비세를 0.5% 인상하는 조례안을 통과시켜 이후 1억6000만달러를 조달한 것이다.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이때 유치요청서를 낸 도시는 여럿 있었으나 진지하게 논의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어쨌든 그 결과, 탐파 스포츠 관리공사(TSA)가 기존의 탐파 구장 재건설 비용을 부담키로 해 뷰캐니어즈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전용구장을 가지게 됐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글레이저 회장은 구장과 관련된 이벤트나 매점에서 발생하는 수입까지 모두 뷰캐니어즈에 귀속되도록 만들었다. 이에 따라 이 구장에서 벌어지는 행사 중 미식축구와 관계없는 각종 이벤트, 콘서트 수익금 중 무조건 200만달러는 항상 뷰캐니어즈 재정으로 들어오고 있으며 수익금이 200만달러를 초과할 경우 그 절반이 구단 수입으로 잡히게 된다.

 다만 구장 이름에 ‘글레이저’나 ‘뷰캐니어즈’를 넣는 데는 실패했다. 건설비로 4000만달러를 헌납한 레이몬드 제임스 금융회사가 자사의 이름을 스타디움에 달아 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뷰캐니어즈는 실속을 챙기고 구장 이름은 최대 후원자가 원하는 대로 결정되었다. 글레이저 회장은 ‘공짜로 구장을 나꿔채 갔다’는 비난을 피하려 그랬는지 연간 구장 사용료로 3000만달러를 내는 데는 동의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30년 계약을 맺어 팀의 부담을 최소화시켜 놓는 수완을 발휘했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각종 수입을 감안하면 팀 부담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포츠는 좋아하지 않아도 팀경영은 최고

 옛 탐파베이 구장을 재건축한 전용구장이 건립된 다음 글레이저 회장은 관중석을 개조, 수입을 올리고 구장 분위기도 변화시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올린다. 먼저 뷰캐니어즈가 해적 이름이라는 점에 착안, 구장 한편에 해적선을 전시했다. 이 해적선은 구장의 명물로 자리잡아 구장을 찾는 팬들이 기념사진을 즐겨 찍는 곳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또 전체 관중석 수를 옛 구장에 비해 8000석 가량 줄이는 대신 로열석을 105개로 늘렸다. 로열석은 경기장 가운데 높은 자리에 위치해 경기장면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데다 전용 바 등을 설치, 기업가들이 정·관계 인사 등 VIP를 접대하기 위해 주로 이용한다. 이렇게 리모델링을 하면서 글레이저 회장은 로열석 연회비를 5만5000달러에서 15만달러로 세 배 인상했다. 또 ‘클럽용 좌석’이란 이름으로 2등석 1만2000석을 별도로 건설, 회원제로 운영하면서 경기당 500달러 가까운 요금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일반석은 6만석에서 5만2000석으로 줄었지만 뷰캐니어즈의 수입은 늘어나게 됐다. 역시 ‘돈 버는 기계’란 명성에 걸맞은 일화다.

 글레이저 회장이 이런 식으로 뷰캐니어즈의 재무상태를 개선하고 팀을 우승으로 이끈 노력과 열성은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조차도 고개를 숙이게 한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최근 글레이저 회장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 인수를 부정적으로 다룬 기사에서 “그가 비록 스포츠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스포츠팀의 경영을 호전시킨 예는 탐파베이의 뷰캐니어즈 사례에서 잘 드러난다”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접근하는 이유가 돈 때문이라고 해도 그의 성공은 결코 폄훼될 수 없다”고 썼다.

 글레이저 회장은 뷰캐니어즈를 인수한 뒤 탐파베이시의 팬들을 위한 행사를 많이 열었다. 팀의 선수들이나 코치가 지역사회 이벤트에 나타난 횟수의 연간 합계가 700회를 넘을 정도이니 글레이저 회장이 얼마나 밀어붙였는지 짐작이 간다. 거의 하루에 두 건씩 누군가는 행사장에 나선 것이다. 글레이저 회장은 이와 관련, 2003년 슈퍼볼 우승 뒤 인터뷰에서 “우리가 경기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며 “아이들은 물론 성인들도 우리를 역할모델로 여기고 있는 만큼 건전한 팀과 바람직한 모습의 선수들을 자주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맨유 인수하자 영국 축구팬들 극렬 반대

 이런 식으로 팀 선수들과 지역 팬들이 혼연일체가 되면서 슈퍼볼 우승의 터를 닦았다는 게 팀 안팎의 평가다. 글레이저 회장은 지난해에는 뷰캐니어즈의 홈인 탐파베이시의 탐파베이 센터를 리모델링해 개장했다. 이 쇼핑몰은 뷰캐니어즈 선수들의 연습장과 쇼핑센터로 쓰기 위해 지난 2003년 구입한 것이다. 이곳에서 쇼핑객들은 뷰캐니어즈 선수들이 훈련받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으며 가끔 사인을 받는 행운도 만날 수 있다. 이 역시 뷰캐니어즈팀과 지역사회가 친숙해 질 수 있는 도구로 쓰이는 사례다.

 그래서 뷰캐니어즈의 팬들은 글레이저 회장을 ‘요마(妖魔.Leprechaun)’라는 별칭으로 부른다. 하는 짓은 얄밉지만 딱히 꼬집어 비난할 수는 없고, 그냥 봐 주자니 그럴 수도 없어서 붙인 별명이다.

 이런 글레이저 회장이 영국 축구의 자존심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인수했으니 축구팬들이 그냥 조용히 넘어갈 리 없다. 협상 최종단계에 들어갔던 지난 5월17일 과격한 영국 축구팬들은 그의 꼭두각시를 만들어 구단 사무실이 있는 거리에서 화형식까지 벌였다. 심지어 <BBC>조차도 “축구경기 한 번 제대로 관람하지 않은 글레이저 회장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인수한 것은 오로지 돈 때문”이라는 보도를 했으니 일반인들의 불편한 심정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이 정도 반대에 물러설 글레이저 회장이 아니다. 지난 50여 년간 숱한 비난과 공격에도 개의치 않고 난관을 뚫고 나와 한번 목표를 삼으면 결코 그냥 물러서지 않는 스타일의 그가 여론이 악화됐다고 포기할 리가 없었다. 물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매입이 현실적인 이익을 가져다 준다는 확신도 있었다. 7억9000만파운드라는 매입가격이 결코 적은 수준은 아니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팀인 데다 입장권은 항상 매진이었고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브랜드 가치를 지닌 구단이었다. 2000년대 초 LA다저스 등 풋볼이 아닌 다른 프로 스포츠팀을 사들이려다 실패한 뒤 글레이저 회장은 영국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눈을 돌린 것이다. 그래서 2003년부터 조금씩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식을 사 들이기 시작해 28.1%의 지분을 확보한 뒤 이사회를 장악한 올해 초 2, 3대 주주에게 공식적으로 매수를 신청, 이를 성사시켰다.

 글레이저 회장은 영국인들과 축구팬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발전계획’을 세운 상태다. 아직 완전히 확정되지는 않아 공식발표는 없었지만 영국의 <더 타임스>는 최근 이 내부문건을 입수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구단의 매출액을 향후 5년 동안 50% 이상 늘린다는 목표 아래 다양한 대책을 마련 중이다. 현재 1억6000만파운드 수준인 매출액을 2010년까지 2억4500만파운드로 늘리겠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조만간 입장료 가격을 올리는 한편 광고비, 구단 관련 프랜차이즈 비용 등도 인상할 계획이다.

 이 중 매출액의 36%를 차지하는 입장료 인상은 상당히 민감한 문제로 글레이저 회장은 맨체스터 구단을 상장 폐지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이미 상장 폐지 요건인 ‘4분의 3 이상의 지분’을 확보한 만큼 주주총회도 열어야 하고 회계보고도 까다롭게 해야 하는 상장회사의 지위보다는 개인회사로 운영하는 것이 여러 가지 면에서 훨씬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조만간 소액주주들의 지분을 인수하는 공개매수를 거친 뒤 런던 증시에 상장돼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을 글레이저 회장의 개인기업으로 전환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사기업화의 정지작업을 위해 글레이저 회장은 그의 세 아들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의 이사로 등재시켰다. 지난 6월초 글레이저 회장은 이미 탐파베이 뷰캐니어즈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장남 아브람(44)과 부사장인 차남 브라이언(40), 3남 조엘(38) 등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사에 새로 포함시켰는데 이로써 구단 이사들의 절반을 글레이저 가족들이 장악하게 됐다.



 인생에서의 큰 적은 부정적인 생각

 만일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게 된다면 입단 기자회견이 글레이저 회장의 첫 공식행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을 인수한 후 축구팬들의 비난을 듣고 있는 터여서 ‘나도 이렇게 축구를 사랑한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압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 예상이 맞아떨어진다면 우리는 조만간 박지성 선수와 악수하는 글레이저 회장의 사진을 국내 미디어에서 만날 수 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비록 자녀들을 모두 계열사 임원으로 일하게 하고 있지만 글레이저 회장은 언제나 엄격한 아버지였다. 그는 6남매에게 늘 “오늘이 인생 마지막 날이라고 여기고 살아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 자신 너무도 어렵게 하루하루를 지낸 시절이 있었기에 언제나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인생을 대하라고 가르친 것이다. 또 긍정적인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항상 강조한다. 글레이저 회장은 최근 <BBC>와의 인터뷰에서 “인생에서 가장 큰 적은 각자의 마음 속에 부정적인 생각이 찾아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어릴 때부터 ‘무슨 일이든 안 된다고 미리 포기하지 말라’고 가르쳤다”고 말했다. 현재 그의 자녀 5남1녀는 자파타, 뷰캐니어즈 등 각 계열사 경영에 모두 참여하고 있다.

 글레이저 회장이 자라나는 세대를 위해 2001년 ‘글레이저 가족재단(Glazer Family Foundation)’을 출범시킨 것도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을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의 불우한 어린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이 재단의 주요 목표는 이들이 자라나는 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애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특히 시력이 나빠지면 공부하는 데 지장이 많은 만큼 근시예방과 시각장애아들을 위한 사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위해 재단은 플로리다주 시각장애 예방기구(Prevent Blindness Florida)와 손을 잡고 영세민 가정의 취학 전 아동들에게 시력검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등 시력보호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글레이저 회장의 3남이자 재단의 부대표인 조엘은 “아버지와 형들 모두가 일찍부터 안경을 꼈다”며 “가능하면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시력을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족재단의 공식행사는 매스컴에 잘 나타나지 않는 글레이저 회장이 드물게 참여하는 행사 중 하나다. 정기적으로 제임스 레이몬드 스타디엄에 아이들을 초대, 풋볼선수들과 기념사진을 찍게 하는 것은 물론 직접 학교를 찾아가는 일도 있다. 글레이저 회장은 가끔 영세민 자녀들에게 가방을 선물하는 ‘백팩 데이(책가방 나눠 주기)’ 행사에도 참여한다.

 <USA투데이>는 지난 2003년 글레이저 회장과 관련된 기사에서 ‘덥수룩한 붉은 구렛나루를 기른 글레이저 회장을 플로리다의 어느 거리에서 맞닥뜨리면 대학교수가 휴가 나온 것으로 착각할 것’이라고 쓴 일이 있다. 그만큼 푸근한 인상을 주는 인물이란 뜻이다. 하지만 비즈니스를 대하는 글레이저 회장은 냉혈한(冷血漢)과도 같다. 정치인도 아닌 기업가가 화형식을 당하는 장면이 어디 흔한 일인가. 팔순을 내다보는 데도 현업에서 뛰는 것은 물론 20조원에 가까운 인수작업을 능숙하게 처리한 그가 다음에는 어떤 일로 ‘돈 버는 기계’란 명성을 어어갈지 기대가 모아진다.

박형진 미주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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