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플러스>는 한국산업인력공단과 공동으로 해외 취업 특집을 진행한다.
외국어와 전문 지식으로 무장하고 세계를 안방처럼 넘나들겠다는 디지털 노마드 마인드로 무장한 이들의 도전 현장을 따라가 본다.

 금 시각 밤 10시30분. 회사를 출발한 지 1시간20분 만에 나의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집까지는 자전거로 20분, 버스로 30분, 고속전철로 30분이 걸린다. 이 시간이 통상 나의 출퇴근 시간이다. 아침 7시쯤 집에서 나가므로, 주말을 제외한 평일의 집은 오로지 잠자는 곳에 불과하다. 그러나 집에 돌아올 때 나는 가장 행복하다. 작지만 나의 보금자리가 있다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더구나 집값 비싸기로 소문난 일본이 아닌가.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나고야(名古屋)다. 나의 집은 그 중에서도 나카가와구(中川區) 나가라초(長良町)라는 곳이다. 올 1월 일본에 와서 가장 기뻤던 순간이 바로 이 집을 얻었을 때였다. 거실과 주방을 겸한 공간 하나, 방 한 칸, 욕실과 화장실, 그리고 세탁실이 별도로 딸린 이런 집을 얻기란 일본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집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행복하기만 하다.



 군 제대하던 날 취업 연수 참가

 정확하게 1년 전, 나는 군대에서 막 전역을 한 상태였다. 전역식에서 선물로 받은 칼 두 자루를 가방에 넣은 채(나는 강원도 삼척 해안에서 GOP 소대장으로 근무했다) 서울의 구로동에 있다는 한 사무실을 찾아가고 있었다. 제대를 일주일 앞두고 그 사무실과 통화를 했고, 담당자가 ‘당신을 취직시켜 주겠다’고 약속을 한 터였다. 제대하던 날 허겁지겁 달려간 까닭은 마침 그날부터 취업을 위한 사전 교육이 시작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민간 사회의 자유도 미처 맛보지 못한 채 ‘자동차 설계 엔지니어 연수’ 과정에 참여한 것이다. 2004년 6월30일,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60일 전이었다.

 대학에서 자동차공학을 전공한 나는 학교 졸업 후 ROTC 장교로 임관, 군에 갔다. 전공은 아니었지만 자동차 설계에 흥미가 있던 나는 인접 학교의 자동차 설계 프로그램 교육 과정을 특강 형식으로 이수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좀 더 공부하길 원했고, 막연했지만 대학원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군 생활 기간 동안 생각이 바뀌었다. 전방 근무라 휴가나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다. 복무 기간 동안 휴가라곤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2박3일 나왔던 게 전부였다. 전방 근무라는 게 생각보다 시간이 많았고, 좀 더 생산적인 무엇을 찾던 끝에 대학 시절 흥미를 느꼈던 자동차 설계 프로그램 ‘카티아’를 갖춰 놓기에 이르렀다. 비전문가가 보기에 카티아 프로그램은 화면에 그림을 띄워 놓고 여러 각도로 볼 수도 있고, 모양을 바꿀 수도 있어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또 일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그런 애매한 녀석이었다. 난 심심풀이도 할 겸, 흥미를 느꼈던 설계 프로그램 공부도 할 겸 군 생활 내내 카티아를 끼고 살았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나를 이렇게 일본에 있게 했다.

 전역을 얼마 남겨 두지 않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으로 일자리와 학업을 동시에 해결하려 했던 내 눈에 ‘일본 자동차 설계 엔지니어 연수생 모집’ 공고가 들어왔다. 카티아 프로그램이라면 자신이 있던 나는 ‘혹시나’ 하는 기대로 전화를 걸었고, 결론은 뜻밖이었다. 연수를 담당한 업체는 ‘충분히 자격이 될 것 같다’며 응모를 권했다. 취업을 하겠다는 생각이 별로 없던 나를 솔깃하게 했던 말은 “일본으로 취업이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창피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그때까지 나는 비행기라곤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었다. 대학생 시절 수학여행도 경비 절감을 위해 배로 다녔다.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레는데, 잘하면 취직까지 할 수 있다는 말은 솔깃함을 넘어 흥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정부에서 교육 보조금을 지원한다지만 개인적으로 200만원을 별도로 내야 한다는 조건도 별스럽게 들리지 않았다. 장교 생활을 하며 모은 돈과 퇴직금도 있었기 때문이다(많은 응모자들이 자비 부담이란 조건에 적잖이 포기를 한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일찍이 흥미를 가지고 공부하던 프로그램이라 교육 과정은 무척 유익했다. 6개월이란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그러나 취업이 금세 이뤄질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우리보다 앞서 교육을 받았던 선배들이 교육 이수 후 한참이 지나서야 일본으로 가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참여했던 연수 과정 수료생들은 연수가 끝남과 동시에 일본 취업 제안이 들어왔다. 준비하고 기다릴 새도 없이 취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지난 1월3일, 나는 일본의 나고야에 도착해 있었다.



 ‘와루바시’, ‘다꾸앙’만 가지고 도일(渡日)

 연수과정에 참여하기 전까지 내가 일본에 대해 아는 거라곤 ‘와루바시’, ‘다꾸앙’이 전부였다. 연수과정에서 부랴부랴 일본어를 배웠다. 초급 수준은 겨우 벗어났지만 중급엔 못 미쳤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대강 알아듣겠는데, 내가 원하는 말을 제대로 못하는 수준’인 채로 일본에 오게 되었다.

 나와 동료들을 고용한 회사는 ‘트랜스 코스모스’라는 곳이다. 일본 유수의 자동차 회사로 1년, 2년씩 파견 근무를 내보내는 전문 인력 관리회사다. 연예인들이 소속사가 별도로 있고,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해 돈을 버는 것과 유사한 시스템이다. 소속된 직원만 5000~6000명이나 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이 회사에는 나와 같은 한국인 엔지니어도 100여 명이 소속돼 있다. 일은 자동차 생산 회사에서 한다. 일본의 자동차 회사들은 핵심 기술 부분의 인력만 자체적으로 운용하고, 나머지 대부분 분야는 인력 회사를 통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내가 하는 일은 자동차 설계다. 새로운 모델 개발 프로젝트가 주어지면 3만여 개의 부품들에 대한 디자인이 전체적으로 나뉜다. 예를 들어 내게 자동차 문의 손잡이 설계가 주어졌다고 하자. 새로운 모양에 따라 문의 크기가 변하면, 무게도 변하게 된다. 이러한 변수를 모두 감안해 손잡이 부분을 앞에서 말한 ‘카티아’ 프로그램을 이용해 만드는 것이다.

 하는 일은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주어진 설계를 하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하루 종일 마우스만 만지면서 꼼지락거리는 걸로 보일 것이다. 남들이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나에겐 무척 흥미롭다. 첫 직장인 만큼 배우는 것도 많고, 아직 배워야 할 것도 많다.

 정규 일과는 오전 8시15분부터 오후 5시15분까지다. 정규 근무가 끝난 뒤 통상 잔업을 3~4시간 정도 한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도 근무시간은 비슷하다고 들었다. 평균 퇴근 시각은 밤 9시 이후나 돼야 한다.

 지금은 많이 적응이 되었지만 처음엔 일본어를 이용한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았다. 외국인이라는 점을 십분 이해해 주는 사람이라면 다행이지만, 내가 겪은 어떤 사람은 일본어를 못하면 무척 매몰차게 대하기도 했다. 작업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야 할 때에는 스트레스가 더 컸다. 그래서 지금도 틈틈이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다.

 각종 경비를 제외하고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180만원에서 200만원 정도다. 집값의 95%를 회사에서 지원해 주고, 교통비 일체도 회사에서 지급해 준다. 손에 쥔 돈에서 100만원은 한국의 어머니께 송금을 하고 나머지 중 30만~40만원은 비상금으로, 나머지는 용돈으로 쓴다.

 주 5일 근무이기 때문에 토요일과 일요일은 회사에 가지 않는다. 일본에 온 지 6개월이 되다 보니 이곳에서 사귄 친구들이 제법 된다. 인터넷이 바꿔 놓은 새로운 문화 중 하나가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사이버 한국인 커뮤니티가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나고야에도 한국인 커뮤니티가 있어 일본 생활에 관해 많은 도움을 얻고 있다. 주말엔 그 친구들과 만나 콘서트에 가거나 영화를 보기도 한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한류 열풍 덕도 톡톡히 보고 있다. 일본 젊은이들 중에 한국을 공부하는 모임이 생겨나 한국인 커뮤니티와 함께 만나기도 한다. 그런 자리가 나에겐 일본어를 공부하기에 더 없이 좋은 기회다.



 일본식 문화, 음식 잘 맞아 만족

 일본인과 교류하면서 일본 사람들과 한국 사람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많이 다르다는 점을 새삼 느꼈다. 나에게 가장 생소했던 건 어디를 가든 항상 각자 부담하는 ‘더치페이’ 문화였다. 설령 누구네 집들이를 가더라도 그 집에서 시켜 먹은 요리 값을 각각 계산할 땐 ‘좀 심하다’ 싶을 정도였다. 같은 맥락에서 요구하지 않은 선물을 주는 것도 싫어한다. 누군가 자신의 밥값을 대신 내겠다고 해도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도 배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에게 뭔가 다른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거야’ 하고 생각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놀랐다. 그런데 이런 일본인의 문화나 가치관이 나와는 비교적 잘 맞는 것 같다. 어찌 보면 쪼잔하고 소심한 것으로 보이지만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쿨한 태도이기때문이다. 난 일본 체질인지 음식도 너무 맛있다.

 토요일엔 일본 사회 조기 정착을 지원하는 일본어 학습 자원봉사 프로그램에 가서 일본어를 배운다. 일본의 학원비는 무척 비싸다. 1시간 강의에 우리 돈으로 2만원 정도를 줘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지역 커뮤니티에서 자원봉사 형태로 운영되는 일본어 강의는 10분의 1 수준으로 싸다. 일본어 강의 수강 후에는 나고야 대학 도서관으로 가서 공부를 한다. 피곤하면 엎어져 자기도 하고, 깨어나면 책을 들여다보는 식이다.

 일본의 대학은 오후 5시면 정확하게 문을 닫는다. 그러면 근처에 사는 한국인 친구들을 만나거나 일본인 친구들과 만나 저녁도 함께 먹고, 술도 한 잔씩 한다. 일요일도 대부분 토요일처럼 지낸다.

 처음 일본에 건너올 때 계획은 몇 년 일하면서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계속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작업 환경도 좋고, 업무도 만족스럽다. 그렇지만 보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는 욕심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느낀다. 지금 목표로 하는 곳은 미국이나 유럽이다. 솔직히 한국의 자동차 설계 수준이나 일본의 수준 차이는 크지 않다.  작업장에서의 일본 사람들도 한국인의 부지런함과 성실한 태도를 인정해 주는 분위기다. 생뚱맞지만 한국 남자들이 군대 갔다 와서 총을 쏠 줄 알고, 또 모두 태권도를 할 줄 안다는 점도 꽤 높이 쳐 준다. 일본 사람들은 ‘한국인들은 설령 자신이 잘 모르더라도 일단 덤비고 보는 용기가 있다’고 말한다. 한국에 있을 땐 잘 몰랐는데 일본에 나와 보니 시야가 많이 넓어져 간다는 걸 느낀다.



 3년 안에 미주·유럽 진출 꿈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는 내가 가장 어리다. 한국에 있었다고 해도 내 또래보다 1년 정도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꼴이다. 일본으로 올 때는 큰 모험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일본에 와 보니 이곳에서 경력을 착실히 쌓고, 열심히 공부 하면 미국이나 유럽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엔 많이 두려웠는데 이젠 일본 생활에 충분히 적응된 내 모습을 보면서, 영어 공부에 대한 자신감이 한층 차 오르는 걸 느낀다.

 돌이켜 보면, 이 모든 일이 1년 만에 일어났다. 군대에서 전역한 날부터 정확하게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일본 나고야에서 자동차 설계 엔지니어로 일하며 미국·유럽쪽으로의 진출을 꿈꾸고 있다. 내 나이 스물일곱, 앞으로 3년이란 황금 같은 기간이 나에게 주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철저히 준비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유럽으로 갈 계획이다. 2004년에 시작한 나의 노마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박종진씨처럼 자동차 설계 엔지니어로 해외 취업하려면?

 연간 1~2회 일본 취업 연수생 모집 공고를 챙겨둘 것

 연간 1~2회에 걸쳐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해 취업 연수생을 모집한다.  통상 연수기간은 8개월로 1일 8시간, 주 5일 동안 전문 연수기관을 통해 교육을 받는다. 연수 내용은 직무(자동차 기초설계이론, CATIA 활용 3차원설계 및 도면작성 등)와 일본어 교육이 주를 이룬다.

 연수비용은 총 600만원으로 공단을 통한 국가 보조지원금 400만원, 연수생 개인부담금 200만원이다.

 지원자격은 1976년 1월1일 이후 출생한 자로 남자는 병역을 마쳐야 한다.  4년제 대학 기계계열학과 졸업자를 대상으로 한다. 기계계열학과에는 기계공학, 기계설계, 자동차공학, 항공우주공학, 금형설계, 정밀기계 등이 포함된다. 부전공자 지원이 불가하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연수 도중 출석률 미달 등으로 중도 탈락하거나, 일본 취업이 결정된 뒤 취업을 포기하는 경우는 공단지원 연수비를 반환해야 한다.

 연수를 마친 후에는 일본의 고용업체에서 면접을 통해 고용할 인력을 선발한다. 면접은 모두 일본어로 진행된다. 채용이 결정되면 연수 수료 후 6개월 내에 출국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 당국의 취업비자 발급이 지연되면 출국이 지연되기도 한다. 자세한 사항은 해외취업 전문 사이트 (www.worldjob.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오성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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