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폐용기의 국내 대표 브랜드 하나코비 락앤락은 후발 브랜드의 시장진입 전략 사례의 모범 답안이다. 안방까지 글로벌 브랜드에 내주고 있던 상황에서 기술력으로 틈새시장을 개척하고, 해외시장에서 소비자에게 호평을 받기까지 그들이 펼친 전략은 중소기업의 그것이라고 보이지 않을 정도다. 어떻게 락앤락이 밀폐용기 시장을 석권하게 됐는지 취재했다.

 다섯가지 성공 키워드

 첫째, 보편성 지닌 아이템에 집중

 둘째, 차별성, 독자성, 가치 지닌 아이템

 셋째, 제품 특성에 맞는 유통망

 넷째, 적기 판단 들면 과감한 광고 투자

 다섯째, 도전정신, 성공에 대한 동기



 밀폐용기 ‘락앤락(LOCK&LOCK)’을 ‘월드베스트’라고 하기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비록 글로벌 브랜드와 경쟁해 국내시장에서는 점유율 60%란 압도적인 수치를 보여주고 있지만 해외에선 1등이 아니다. 플라스틱 용기 부분에서 4~5% 내외의 점유율을 보일 뿐이다. 2004년 매출액 1300억원 중 내수가 945억원이고 수출이 355억원이란 데서 이러한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락앤락 제품은 58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이중 영국·일본·독일 등 40여개국에서는 시장 점유율 3위권에 올라 있다.



  “600개 품목 생산하다 1개만 잘하자”



 그래도 락앤락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가파른 성장세다. 김용준 성균관대 경영학 교수는 “매출 50억원의 회사가 6년 만에 26배에 이르는 성장을 보였다”며 “플라스틱 용기 부문에서 세계 1위 기업의 매출이 1조원 규모인 점과 락앤락의 매출 추이를 감안하면 갈 길이 멀다 해도 까마득한 수준은 아니다. 오히려 그 격차가 빠른 수준으로 좁혀지고 있다”고 말했다. 락앤락 자체적으로는 세계시장 1위 원년을 2010년으로 잡고 있다.

 차태훈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영학 교수는 성장세 외에 “짧은 시간 안에 세계시장에서 자기 브랜드 파워를 갖게 됐다는 사실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차 교수의 멘트에는 전세계 58개국의 주부들에게 락앤락이 인식되고 있다는 1차 결실뿐 아니라 그런 결과를 낳을 수 있었던 경영진의 경영 능력에 대한 ‘호평’이 담겨있다.  



 
다품종 소량생산이 오히려 발목 잡아

 락앤락은 밀폐용기 브랜드이고 제조사 이름은 하나코비(주)다. 하나코비가 설립된 것은 1985년으로 당시엔 국진화공이란 사명을 사용하며 찬합, 접시, 숟가락, 젓가락, 욕실용품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생산 판매했다. ‘잘 팔리는 물건은 더 많이 판매하고, 덜 팔리는 물건은 판매하지 않는다’는 소비자 니즈 우선의 경영전략을 택해 다른 회사 제품보다 가격이 비쌌지만 판매량은 월등했다.

 창업주 김준일 회장이 회사 이름을 바꾼 것은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해외전시회에 참가하기 시작한 1993년이다. 회사 이름이 외국 바이어들에게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1등이 되자는 뜻의 ‘하나’에 ‘협력’을 뜻하는 ‘코-비즈니스’ (Co-business)의 머리글자를 붙였다”며 “‘하나코비’ 라는 이름은 한글받침이 없고 단모음으로 구성돼 발음이 쉽고 영문표기(Hanacobi)도 간단했다”고 자평한다.

 내수 외에 수출로 매출을 높이던 하나코비는,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문제점에 봉착했다. 주방용기란,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문제점들이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시장 트렌드를 쫓아야 했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을 짧게 만들었다. 파스텔 톤이 유행이라고 해서 파스텔 톤 제품을 만들면, 그 다음해에는 잘 안 팔렸다. 차 교수는 이에 대해 “유행제품은 1~2년만 지나면 안 팔리게 돼 재고로 남게 된다. 당장은 매출이 느는 것처럼 보여도 장기적으로 보면 수익이 기대 이하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분석했다.

 소비자 기호에 맞는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를 갖추다 보니 생산하는 제품이 600여종에 이르렀다. 재고관리가 힘든 지경이었다. 제품 생산에 이용하는 잉크종류가 1000여 가지가 넘었고, 제품 스티커는 1만4000여 가지에 달했다. 연간 매출이 100억에 이르렀지만 그 이상은 올라가지 않았다.

 해결책을 찾지 못해 고민하던 김 회장은 1996년 상하이를 방문, 하나코비에 대한 혁신을 결단한다.

 “충격이었습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가는데 그 사이에 플라스틱 제조업체만 5000개가 있는 겁니다. 중국에만 어림잡아 2만개, 그렇다면 세계적으로 추산하면 10만개란 소린데…. 그 사이에서 하나코비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일까 고민해보았습니다. 나름대로 사업에 대한 확신과 비전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냉혹한 현실 앞에서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더군요.”

 생존을 위한 비책을 찾아야 했다. 3일 동안 호텔방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상하이 와이탄의 장강 흙탕물만 바라보며 고민하던 김 회장은 결국 ‘한 가지 품목에 집중하자’는 결론을 내린다.



 신규 사업에 대한 임직원 저항 끝까지 설득

 어떤 품목에 집중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600여 품목을 차분히 분석했지만 승부수를 던질 만한 아이템이 없었다. 당시 김 회장이 마음속에 두고 있던 제1 조건은 ‘보편적인 물건’이었다. 경기를 타지 않고 계절에 민감하지 않아 연중 사용할 수 있으며 문화적 차이 없이 전세계 주부들이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어야 했다. 장고 끝에 김 회장이 낙점한 아이템은 ‘밀폐 용기’였다. 어느 가정이나 냉장고가 있고 그 안에 밀폐용기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김창호 하나코비 사장은 “임원진에게 왜 하나코비가 새로운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지를 설득하는 과정이 제일 힘들었다. ‘매출 100억이란 기존 파이가 있는데 굳이 모험을 할 필요가 있는가’란 경영진의 저항이 예상 외로 컸다”고 토로한다. 더구나 기존 밀폐용기 시장엔 글로벌 업체인 타파웨어(Tupperware)가 1000억대의 매출로 국내시장을 석권하고 있었다. 확실한 1위가 있는데 굳이 후발주자로 모험을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김 회장과 김 사장은 임직원에게 하나코비가 처한 냉혹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게 가장 효과적일 것이란 판단을 가지고, 상하이 방문 때 있었던 일을 말해주며 혁신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그리고 밀폐용기 분야에 있어서의 비전도 함께 제시했다.

 사업개편에 대한 내부적인 공감대를 형성한 후 ‘소비자들이 기존의 밀폐용기에서 불만으로 갖고 있는 사항과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은 무엇인지’에 대한 시장조사에 들어갔다. 소비자 불만은 ‘밀폐력이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열고 닫기가 힘들다. 안에 있는 내용물이 잘 보이지 않는다’의 세 가지가 가장 많았다. 이런 불만은 밀폐용기 시장이 형성된 지 50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가치혁신을 이루지 못하고 비결정적 요소에 대한 개선만 이루어왔다는 반증이다. 김 회장은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품이 당시 시장에는 없다는 사실에 희색을 지었다.

 하지만 핵심 기술력이 존재하지 않았던 하나코비의 작업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뚜껑을 물샐 틈 없이 본체와 결착시키려면 4개 잠금장치의 힌지(Hinge·경첩과 같이 꺾이는 부분)가 완벽해야 했지만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일일이 모든 경우를 테스트해야 했다. 완벽하게 결착시키기 위해 힌지 부분을 조금만 두껍게 해도 잠금장치가 꺾이지 않거나 부러졌고, 약간만 얇으면 찢어져버렸다. 이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데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김 사장은 “한국생활용품시험연구원에서 300만번 굽히고 펴는 실험을 실시해 공인을 받았다. 가정에서 30년을 써도 힌지 조작이 10만번이 안 되기 때문에 300만번이란 숫자는 완벽을 의미한다”며 하나코비가 이룬 기술력에 자신감을 드러낸다.

 제품 출시를 앞두고 브랜드를 ‘락앤락’으로 지었다. 밀폐(Lock)란 제품 특성을 온전히 드러내고 ‘락’이 두 번 겹치는 어감도 좋아 사전조사에서 브랜드에 대한 호감도도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사장은 당시를 회고하며 “대박을 기대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1999년 시장에 출시했지만 타파웨어와 러버메이드가 차지하고 있는 진열대를 신생브랜드인 락앤락에 내주려는 업체가 없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해외의 유명 메이커가 선점하고 있고, 그렇다고 일반 시장에서 내다 팔았다간 저가 제품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고…. 진퇴양난이었죠. 월 매출목표를 3억원으로 잡았는데, 3000만원도 팔리지 않았습니다.”

 신규 브랜드에 대한 저항감은 소비자들에게도 있었다. 더구나 락앤락이 밀폐력을 높이기 위해 새롭게 개발한 사면결착 방식에 대해 소비자들이 낯설어했다.

 “락앤락이라는 회사를 몰라요”, “신개념이라는 4면 결착방식이 이해가 안 가요”, “사용해본 경험도 없어요”, “좋을 것 같은데 모르니깐, 모험 안 하고 기존 것을 쓰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요?” 김 사장이 매장에 직접 나가 소비자들로부터 얻은 멘트였다.

 2000년 4월, 김 회장과 김 사장은 “국내가 안 된다면, 해외로 나가자”고 결정한다. 신규브랜드에 대한 저항감이 국내보다 덜하다는 데 한 가닥 희망을 갖고 내린 결정이었다. 홍콩 주방용품 전시회에 부스를 연 락앤락은, 그러나 그곳에서마저 바이어들에게 외면을 당한다. 바이어들은 락앤락의 뛰어난 밀폐 기능을 선보일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당시 부스를 책임지고 있던 박진영 해외영업팀 차장은 모험을 하기로 결심했다. 오렌지주스를 넣은 락앤락을 들고 부스 앞을 지나가는 한 바이어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 위에서 거꾸로 뒤집어 흔들어댄 것. 경우에 따라서는 주먹다짐이 오갈 수도 있는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바이어들의 관심을 끌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바이어는 락앤락이 완벽한 밀폐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흥미를 보이며 제품 하나와 박 차장의 명함을 들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날 저녁 박 차장은 그 바이어로부터 판매 절차에 대한 문의를 받는다.



 락앤락의 운명 가른 미국 홈쇼핑 진출

 바이어의 이름은 캐나다 수입유통업체 사장인 가티엔(Gatien)이었다. 이후 가티엔과 이메일을 통해 사업방식에 대해 정보를 공유했는데, 이는 락앤락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다.

 ‘락앤락 제품은 잡지광고를 해도, 대중매체 광고를 해도 소비자들이 인식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단순 광고보다는 소비자들에게 제품사용을 보여줘야 하는 인포머셜(Informercial,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상업 광고) 방식의 광고가 어떻겠습니까? 전에 내게 보여준 것처럼 물을 넣어 흔들어도 보고, 연기도 넣은 후에 연기가 밖으로 안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면 소비자들도 락앤락의 우수성에 대해 알게 될 것입니다.’

 ‘인포머셜 광고를 하려고 해도 할 곳이 없다고요? 친구가 미국 QVC홈쇼핑에 있는데 그 친구를 통해서 홈쇼핑을 공략하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을 듯합니다.’

 QVC홈쇼핑 방영은 락앤락의 운명을 가른 전기였다. 방송 7분 만에 5000세트가 매진되는 대박이 터졌다. 그 동안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했던 ‘사용방법이 어려워 보인다’, ‘4면결착 방식이 낯설다’는 이유들이 쇼핑호스트가 제품과 사용법을 상세히 설명하고 뛰어난 밀폐 능력을 실연하자 자연스럽게 주문으로 이어진 것. 2002년 말에는 1시간 만에 6만 세트 매진이라는 기록까지 세웠다.

 홈쇼핑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락앤락은 본격적인 미국시장 개척에 들어가 2002년 7월에는 유통업체 해리티지와 연간 1500만달러의 독점 계약을 맺고 미국 전역 6000여개의 슈퍼마켓에 진출한다. 2003년에는 월마트, 타깃, 케이마트 등 미국의 3대 할인점에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룬다.

 미국에서의 성공은 유럽으로 이어져 영국에서는 최고의 제품들만 취급한다는 영국 왕실 지정 해롯백화점을 비롯해 5대 메이저 백화점에 입점하는 성과를 거뒀다.

 해외에서 인정을 받아 유명세를 타자 국내 진출도 한결 수월해졌다. 홈쇼핑의 경우 홈쇼핑사에서 먼저 연락이 올 정도였다. 해외에서 홈쇼핑이 락앤락에 적합한 유통망이란 사실을 확인한 락앤락으로선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홈쇼핑은 경쟁상대로 삼고 있는 타파웨어의 방문판매 방식과도 차별화된 유통 전략이었다.

 국내 홈쇼핑 판매도 해외에서와 마찬가지로 연일 매진이었다. 2001년부터 2004년 까지 4년 연속 GS홈쇼핑(당시 LG홈쇼핑)으로부터 ‘Best of the Best’로 선정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또 2004년, 2005년 연속으로 한국능률협회 밀폐용기 분야에서 ‘브랜드 파워 1위 제품’으로 선정되었고, 2004년 6월에는 산업자원부 선정 ‘차세대 세계 일류화 상품’으로 선정되기까지 한다.



 중국에서 제2의 창업, 세계 1위 브랜드 초석 다져

 홈쇼핑을 통해 인지도가 높아지자 하나코비는 할인마트로 눈을 돌렸다. 문제는 홈쇼핑에서처럼 시연을 해야 소비자에게 먹히는데 매장마다 시연자를 두면 막대한 인건비가 든다는 것. 국내영업팀과 방법을 찾던 김 사장은 매장에서 비디오로 인포머셜 방식의 락앤락 홍보물을 상영하기로 결정한다. 인건비도 들지 않고 공간도 적게 차지해 할인마트측에서도 좋아했다.

비디오 방영뿐 아니라 판매장 내에 밀폐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수조를 설치하고 시리얼을 담은 락앤락을 그 안에 넣는 시험을 반복적으로 보여줬다. 또한 힌지가 300만번까지 휘었다가 펴도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시키기 위해 특수기계를 제작해 테스트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직판 매장의 경우엔 냉장고를 두고 그 안을 락앤락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보여줘 소비자 친숙도를 높여갔다.

 이런 노력 끝에 국내 시장의 60%를 점유하게 된 락앤락은 다시 해외로 눈을 돌리며 수출액의 43%에 이르는 60억원을 해외광고에 투입한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 국내 시장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더불어 해외 유통망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매출액 1000억원대의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해외에서 직영망을 구축하기엔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에 따라 에이전시 위주의 판매망을 조성했다.

 물론 신규 시장 진출의 교두보는 홈쇼핑이었다. 홈쇼핑에서 락앤락 제품에 대한 기능과 활용 용도를 소비자에게 인식시켰고, 각 가정에서 락앤락의 필요성에 대해 부각시켰다. 특히 락앤락의 밀폐력에 초점을 맞춰 방송하는 홈쇼핑은 소비자에게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어느 정도 인지도가 상승하면, 유통망을 확고히 하기 위해 대륙별 에이전시와 국가별 딜러를 선발하였다. 지역 책임자도 엄격하게 선발했다. 김 사장의 이야기다.

 “현지인으로 25년 이상 주방제품 관련업체에서 일해 온 경력자를 중심으로 선발했습니다. 현지어를 가장 잘하는 것은 현지인이고, 현지인의 소비 심리를 가장 잘 아는 것도 현지인이기 때문이죠. 이들은 50억달러 규모의 밀폐용기 세계시장에서 ‘락앤락을 1위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하나코비의 목표를 현실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겁니다.”

 락앤락 제품의 우수성이 알려지고 유통망이 어느 정도 구축되면 다음 단계로 매스미디어 광고를 통해 브랜드 파워를 높여갔다.

 현재 하나코비 경영진이 주목하는 시장은 중국이다. 2002년 말 진출 초기에 이윤을 남기지 않고 할인가에 제품을 공급했던 것도 눈앞의 이익이 아닌 13억 중국시장의 미래를 내다본 결정이었다. 현재 하나코비는 중국에 상하이 지사와 현지 생산공장을 두고 중국 시장을 개척 중이다. 2008년까지 중국에서 국내 수준의 매출을 올리겠다는 것이 하나코비의 1차 목표이다.

최범수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