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한 가지만 잘하면 갑부가 될 수도 있다”고 누군가 말했을 때 “그래, 그럴 수 있어”라며 고개를 끄덕일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 ‘한 가지’가 서커스단이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의견에 공감할까? 일장춘몽(一場春夢) 같은 얘기를 실현한 사람이 여기 있다. 20대 초반에 서커스단을 창단, 어릴 적 꿈을 이룬 것은 물론 40대 중반에 1조원대의 부를 일군 기 랄리베르(Guy Laliberte, 45)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 대표가 그 주인공.

서커스만으로 1조원대 재산을 쌓은 사나이



캐나다 유수 기업 부사장 아들, 그러나 어린 시절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끼’와 ‘꿈’을 찾아 거리로 나섰다



 캐나다 퀘벡 주의 작은 마을 베이생폴(Baie-Saint-Paul)에서 1984년 태동한 ‘태양의 서커스’는 성년이 된 올해 기업 가치 12억달러(1조4000억원)짜리 공연단으로 탈바꿈했다. 지난 2003년에만 전 세계 700만 명 관객 앞에서 공연을 펼쳐 6억5000만달러를 벌어들이는 대성공을 거뒀지만 창업주 랄리베르 대표는 “나는 여전히 배고프다”며 그의 꿈을 벼리고 있다. 그는 최근 <PBS>가 방영한 다큐멘터리에서 “아직도 세계 곳곳에 원석이 널려 있다”(原石: 다이아몬드의 재료처럼 ‘잠재 관객이 많다’는 의미)며 의욕을 과시했다.

 현재 ‘태양의 서커스’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와 올랜드 디즈니랜드 등지에서 5개의 상설 공연을 진행 중이며, 유럽·오스트레일리아·일본 등 5개국에서 ‘창립 20주년 기념 해외 투어’도 시작했다. 창단 후 지금까지 전 세계 120여 개 도시에서 4300여만 명의 관객이 공연을 관람한 것으로 집계됐다. 창단 당시 종업원 73명에 불과하던 ‘태양의 서커스’는 20년이 지난 지금 600명의 연기자와 2700명의 지원 조직 등 33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다. 돈만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예술성도 인정받았다. ‘태양의 서커스’는 현저한 성과를 올린 북미의 주요 배우 및 공연 단체에 수여하는 에미(Emmy)상도 지난해 수상했다.



400달러짜리 유럽 여행에서

‘서커스 공장’ 힌트 얻어


 40대 중반에 부와 명성을 거머쥔 랄리베르 대표의 인생은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의 삶 그 자체다. 스무 살도 채 되기 전 무작정 유럽으로 가서 현장을 두루 섭렵한 것은 물론 브라질 여성과 결혼한 뒤 그의 표현대로 ‘ 아내로부터 예술적 영감을 얻고’ 있다. 그는 조그마한 가능성이라도 보이면 그것에 희망을 걸고 현실의 어려움을 격파하는 ‘도전과 응전’으로 점철된 한 편의 드라마를 보여주고 있다.  미국 <포브스>지가 추산한 그의 현재 재산은 11억달러(약 1조2000억원). 이해찬 총리가 교육부 장관 시절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에 갈 수 있다’고 밝힌 일이 있지만 랄리베르 대표는 ‘한 가지만 잘해 억만장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랄리베르 대표는 기회 있을 때마다 “나는 사람들의 꿈을 찾아주기를 원한다. 어린 시절의 꿈과 환상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그 꿈을 현실화시켜 주는 것이 ‘태양의 서커스’의 역할이다”라고 말한다. 캐나다 유수 기업 부사장의 아들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어릴 때부터 ‘끼’와 ‘꿈’을 펼치기를 원했다. 14살 때 아코디언을 메고 거리에 나가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기 시작한 그는 18세가 되던 해 유럽으로 향하면서 그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를 만든다. 단돈 400달러를 들고 떠난 이 배낭여행에서 유럽을 샅샅이 훑으며 ‘길거리 예술’의 진면목을 만나게 된다. 거리의 악사들, 저글러(juggler; 공이나 봉 여러 개를 던져서 하는 곡예사), 어릿광대 등의 연기를 통해 관객들이 진정 원하는 공연이 어떤 것인지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구경만 하고 다니진 않았다. 그도 거리에서 공연하며 하루하루를 때웠고, 이런 경험이 3년 후 ‘태양의 서커스’의 전신인 ‘하이힐클럽’(Club des Talons Hauts)을 결성하게 된 바탕이 됐다. 그에게는 대학에 가는 것보다도 꿈을 이루는 일이 더 중요했다.

 자신이 저글링, 불 뿜기 마술 등을 보여주는 연기자였던 랄리베르는 개별적인 곡예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형식으로는 길게 갈 수 없다고 판단, 창단 초기부터 철저하게 각본을 준비한 다음 공연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제작하듯 작가가 스토리라인을 잡은 것은 물론 배역을 먼저 정한 뒤 그에 걸맞은 연기자를 선발했다. 예전에는 한 특기를 갖춘 연기자에게 의존해야 했지만 이렇게 바꾸니 연기자를 미리 양성만 할 수 있다면 공연은 계속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말하자면 개인 역량 중심의 소규모 곡예단에서 ‘서커스 공장’으로 시스템을 바꿨다는 얘기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태양의 서커스’가 태동하던 1984년 캐나다 퀘벡으로 돌아가 보자. 퀘벡주정부는 당시 ‘퀘벡 발견 450주년 기념 축제’를 주최하면서 다양한 공연단을 공모했다. 거리의 악사들, 저글러 등을 모아 베이생폴에서 ‘하이힐클럽’을 운영하고 있던 25세 청년 랄리베르는 공모 공고를 본 순간 이 기념 행사를 본격적인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뛰어들 발판으로 삼기로 했다. 이름도 ‘태양의 서커스’로 바꾸고 단원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돈이었다. 식구도 늘리고 공연 준비를 위한 장비도 구입하려면 자금이 필요한데 그가 만난 50여 명의 금융 관계자들은 ‘껄껄’ 웃기만 했고 랄리베르와 서커스단 간부들은 대출 얘기도 꺼내 보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우리가 광대 복장을 하고 간 것도 아닌데 지점장들은 그저 웃기만 했다”고 최근 <PBS>와의 대담에서 랄리베르 대표는 당시를 회상했다.

 결국 그와 서커스단을 구원해 준 건 퀘벡주정부였다. 단원들의 공연을 미리 한 번 본 주정부가 가능성을 믿고 투자자가 돼 주었다. 주정부로부터 150만달러를 투자 받은 랄리베르와 단원들은 열심히 공연 준비를 해 ‘퀘벡 발견 450주년 기념 축제’에서 가장 주목 받는 공연단으로 부상한다. 비록 공연 첫날 텐트가 무너지는 돌발 사고를 만나기도 하지만 ‘태양의 서커스’는 데뷔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기대치도 않았던 4만달러의 수익금까지 올릴 수 있었다.

 이 기념 공연에서 관객들의 호평을 확인한 랄리베르 대표는 엔터테인먼트의 거대 시장, 미국으로 눈을 돌렸다. 1987년 캘리포니아에서 열리는 로스앤젤레스 아트 페스티벌이 다음 타깃이었다. 단원들과 장비를 실은 차량이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하고 짐정리가 끝난 뒤 공연을 앞둔 아침 그는 단원들 앞에서 “난 오늘 밤 공연에 다 걸었다. 실패하면 돌아갈 차비도 없다”고 선언했다. 과장된 얘기가 아니라 당시 상황은 그만큼 절박했다. 퀘벡 주의 한 귀퉁이에서 호평을 받긴 했지만 미국이라는 ‘큰 물’에서 과연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기발한 창의성 큰 몫

비틀즈 노래 배경음악으로

 랄리베르 대표가 배수진을 친 덕분이었을까, 이날 공연은 대히트였다. 대형 제작자인 컬럼비아영화사가 공연이 끝난 뒤 ‘태양의 서커스’를 중심으로 하는 영화를 찍겠다는 제의까지 해 올 정도였다. 하지만 랄리베르 대표는 이 제안을 거절한다. 당시 컬럼비아영화사의 대표였던 돈 스틸(Dawn Steal)이 주최한 파티에 초대 받았던 랄리베르는 더 큰 꿈을 향해 당시로서는 큰 사업 제휴 제안을 거절하고 파티장을 나선다. 랄리베르는 훗날 “컬럼비아는 단지 ‘태양의 서커스’라는 브랜드를 선점하기 위해 그런 제안을 한 것뿐이었다. 진정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 주고 즐거움을 선사하는 데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어쨌든 이 거절 이후 ‘태양의 서커스’는 독자적인 발전을 모색하게 되고 마침내 라스베이거스로 진출하기에 이른다.

 그가 ‘태양의 서커스’를 성공적인 엔터테인먼트 그룹으로 발전시키는 한편 그의 ‘화수분’으로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랄리베르 자신의 창의성이 큰 몫을 했다. 랄리베르 대표는 공연단 안팎에서 “기발한 창의성을 가지고도 외설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절묘한 균형 감각이 있다”고 평가받는다. 랄리베르 대표는 “나는 서커스를 재탄생시켰다기보다는 포장을 잘 해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라며 겸손해 했다. 실제로 평론가들은 ‘태양의 서커스’가 쉽게 버려졌을 단순한 재료들을 한데 모아 기발한 ‘볼거리’로 전환하는 능력을 가진 공연단이라는 설명을 하고 있다.

 여기에다 항상 몇 단계 앞을 내다보는 전략적 사고도 구사한다. 랄리베르 대표는 12월부터 라스베이거스 미라지호텔에서 시작되는 공연에 비틀즈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내보낼 수 있는 허가를 비틀즈 측으로부터 얻어냈다. 지금까지 비틀즈 음악은 어떤 형태로든 서커스단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일이 없었다. 그래서 지난 10월 공식 발표가 났을 때 영국과 북미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랄리베르 대표는 이미 4년 전에 이 구상을 처음 한 뒤 계속 비틀즈 관계자들과 접촉해 성사시킨 것이다.

두 번째 요인으로는 학계에서 ‘집합적 창의성 확립’이라고 명명한 협동 작업 시스템을 들 수 있다. 연기자 개개인의 역량을 중심으로 개별 요소를 통합해 하나의 작품으로 표현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반짝했다 사라지는 그런 서커스단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공연을 시작하면 출연진은 계속 교체할 수 있다. 연기자들의 피로를 줄여 주려는 노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공연의 영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마치 연극이나 오페라처럼 하나의 배역에 여러 연기자들을 배치하는 것이다.



올림픽 선수 출신 스카우트

뮤지컬 분위기 위해 안무 공들여

 세 번째로는 당연한 얘기이겠지만 연기자 개인의 역량을 철저하게 강조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집합적 창의성’을 보여주고 싶어도 실력 없는 연기자로는 이런 공연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식으로 랄리베르 대표도 실력 있는 사람들이라면 어디라도 찾아가 모셔 온다. 이 때문에 ‘태양의 서커스’ 단원들의 국적은 불가리아에서부터 중국까지 40여 개국에 걸쳐 있다. 말 그대로 ‘다국적군’인 셈이다.

 지난 8월30일 폐막된 제29회 아테네 하계올림픽 체조경기를 현장에서 열심히 지켜본 사람들 가운데에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날아간 ‘태양의 서커스’ 일행도 끼어 있었다. 이들이 현장을 찾았던 이유는 단 한 가지, 새로운 단원을 모집하기 위해서였다. 스카우터들이 주로 관심을 갖고 지켜본 분야는 체조, 트렘플린, 다이빙,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마루운동 등이다. ‘곡예’를 기본적으로 소화해 낼 수 있는 사람들을 선발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올림픽 선수 출신 스카우트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시작된 일이다. 지금 현재 ‘태양의 서커스’가 보유하고 있는 600여 명의 공연단에는 17명의 전직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활약하고 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싱크로나이즈팀으로 출전해 금메달을 딴 미국의 수잔나 비안코(Suzannah Bianco)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이전까지 등수를 다투기 위해 수영을 하던 그는 이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장기 공연 중인 ‘O’(영어의 알파벳 O)에서 관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태양의 서커스’ 스카우터 패브리스 베커는 “올림픽 선수 출신을 뽑는 이유는 그들이 특별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라며 “공연의 특징만 가르치면 즉시 공연에 투입할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라스베이거스에 상주하면서 ‘O’에 출연 중인 헝가리 국가대표 체조선수 출신인 졸탄 수폴라(Zoltan Supola, 36)도 스카우터의 눈에 띄어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 끝난 뒤 ‘태양의 서커스’에 입단했다. 수폴라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다 해도 그 다음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며 “태양의 서커스에서 계속 내 재능을 살릴 수 있어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프로들이 활동하는 덕분에 ‘태양의 서커스’ 연기자들이 펼치는 연기는 기술력에서 큰 차이가 나는 것이다. 말하자면 같은 줄타기를 해도 관객들이 예상치 못하는 방식으로 한다. 아무 보조 장치 없이 허공에서 늘어뜨려진 광목천 같은 한 줄에 의지하고 이를 몸에 감았다 풀었다 하는 방식으로 서서히 내려오다 다시 올라가는 묘기를 보노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내용으로 보면 특수 효과를 잘 배합한 판타지 영화를 보는 것 같지만 컴퓨터 그래픽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 눈앞에서 공연을 펼치니 광고를 하지 않아도 입소문만으로 객석이 늘 미어터지는 것이다. 랄리베르 대표는 미국 진출 초기에 이 입소문을 내기 위해 데이빗 보우이, 마돈나, 바브라 스타라이젠드 등 스타들을 초대하기도 했다.

 랄리베르 대표는 스토리라인뿐 아니라 안무에도 공을 많이 들인다. 서커스라기보다는 한 편의 발레나 뮤지컬을 보는 기분을 관객에게 줘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이는 창단 후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전통, 즉 코끼리나 호랑이쇼 같은 동물 서커스 없이 오로지 검증된 실력의 소유자들만으로 서커스를 보여주는 ‘휴먼 서커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연기자보다 안무가가 더 유명해지는 경우도 있다. 1994년에 초연된 ‘알레그리아’를 담당한 데브라 브라운(48)은 10대 때는 체조선수였으며 성인이 되어서는 안무가로 변신했으며 에미상을 2002년 수상한 데 이어 최근 개봉된 영화 ‘반 헬싱’과 ‘캣우먼’에서도 연기 지도를 한 스타 안무가다.



공연단 보다 지원부서 확대

“로마 병사는 병참으로 싸운다”

 랄리베르 대표의 창의성은 공연의 작명을 할 때도 잘 드러난다. 공연별로 타이틀을 따로 달아 줌으로써 연기자와 관객들은 각 공연의 특수성과 정체성을 느낄 수 있고 연기자들은 감정의 선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지금 현재 아프리카를 제외한 5개 대륙에서 펼쳐지고 있는 9종류의 공연은 모두 제목이 따로 붙어 있고 작가와 제작진이 독립돼 있다. 이런 식으로 탄생한 연작 시리즈들은 줄잡아 11편, 이 중에는 지난 1993년 이후 소규모 수정만 거친 채 지금까지 공연되는 ‘비밀(Mystere)’ 같은 장기 히트작도 포함돼 있다.

 각 공연의 제목 작명도 철저하게 마케팅을 염두에 두고 이뤄졌다. 제목은 공연 내용을 한 단어로 압축하면서도 이국적인 기분을 줄 수 있도록 스페인어나 라틴어에서 명사를 따오는 경우가 많다. 지난 1994년부터 2001년까지 공연된 알레그리아(Alegria)는 스페인어로 ‘기쁨’이라는 뜻이다. 그냥 ‘Joy’라고 하는 것보다는 뭔가 마술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이 든다. 이 덕분에 알레그리아는 미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무대에 올랐고 DVD로도 출시됐다.

 1998년부터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호텔에서 연속 공연 중인 ‘O’는 영어의 감탄사 및 프랑스어의 물(eau)이란 단어와 동음이의어로 공연이 주로 물속에서 펼쳐지면서 내용이 성인 대상임을 암시하기도 한다. 또한 미라지호텔에서 펼쳐지고 있는 ‘주메너티’(Zumanity)는 ‘zoo’와 ‘humanity’를 합성해 사전에 없는 단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 두 공연은 11개 작품 가운데서 가장 ‘진보적인’ 수준이어서 라스베이거스임에도 불구하고 당국으로부터 ‘R’(제한 상영) 등급을 받았다. 이 밖에도 Dralion(Dragon과 Lion의 합성어), 퀴담(Quidam), 살팀방코(Saltimbanco) 등 신조어들 역시 모두 뭔가 신비로운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창안됐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오늘날 ‘태양의 서커스’는 라스베이거스 관광객의 5%, 9000여 명을 매일 무대에 끌어들이고 있다. 라스베이거스라는 ‘냉정한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10년 이상 장기 공연을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랄리베르 대표의 사업 감각과 예술성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랄리베르 대표가 또 하나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공연단보다 지원 부서를 더 대규모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로마 병사는 병참(兵站)으로 싸운다”는 말이 있듯이 ‘태양의 서커스’는 출연진을 지원하는 부서 인원이 공연단보다 더 많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중심부에 있는 총 면적 4200평방미터의 국제본부 건물에는 2000여 명이 넘는 인원이 의상 디자인 및 제작, 특수 조명 개발 및 제작, 훈련 조교 등으로 일하고 있다. 의상 제작소에는 300명 이상의 정식 직원들이 배치돼 각각 특기별로 섬유 디자인, 그네타기용 줄 제작 및 가발 개발 등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화려한 궁중의상을 포함한 총 2만 점이 넘는 무대의상과 4000켤레의 신발 등을 보유했다는 점에 비춰볼 때 ‘태양의 서커스’의 의상 제작소는 웬만한 방송사 수준을 능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비즈니스 스쿨 연구 대상 돼

유람선 공연 예정

 공연기구 제작실에서는 연일 새로운 공연 보조기구가 제작된다. 일단 한 번 무대에 올려지면 스토리라인에 큰 변화는 없지만 세부적인 조정은 있기 때문에 신발이나 공연복 등은 그때그때 공연에 맞춰 새로 만들어진다. 현재 유럽 공연 중인 살팀방고(Saltimbango)에는 모두 110종류의 의상이 선보인다. 50여 명 남짓한 출연진 숫자에 비춰보면 얼마나 많은 의상이 동원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국제본부에는 훈련용 스튜디오도 있는데 여기에서는 다음 공연을 대비한 고강도 훈련이 하루 10시간 이상 진행되고 있다. 연기자 600명이 절반씩 현역과 예비역으로 나누어져 있고 예비역들은 공연이 없으면 주로 훈련에 땀을 흘린다. 전직 체조선수 출신이 많다지만 “연습 없이 완벽한 공연을 해낼 수 없다”는 점을 랄리베르 대표가 강조하기 때문이다. ‘태양의 서커스’의 훈련은 어렵기로 유명해 훈련장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공연장 주위처럼 의료진이 항상 대기하고 있다. 랄리베르 대표는 최근 중국에서 침술 전문 한의사까지 영입, 출연진이 최대한 공연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와 함께 랄리베르 대표는 연계 마케팅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태양의 서커스’라는 이름을 각인시키고 공연을 관람한 팬들에게 손에 잡히는 기억을 제공하기 위해 모자, 티셔츠 등 의류는 물론 공연 실황 DVD 판매, 관련 도서 출판 등이 치밀한 전략 아래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에는 창립 20주년 기념으로 ‘태양 아래서 20년’이라는 책을 출간하는 한편 같은 이름의 공연도 개시했다.

여기에다 한 번 공연한 연작 시리즈를 가공, 대중매체에 소개함으로써 관객 몰이에 활용하고 있다. 최근 캐나다 국영 <CBC>와 미국 케이블 방송인 <브라보TV>에서 방영된 13부작 ‘솔스트롬’(Solstrom)은 지금까지 ‘태양의 서커스’가 선보인 11개 대공연의 주요 부분을 추출해 매회 50분짜리 에피소드로 재구성했다. 대중매체 광고를 피하는 대신 가끔 이렇게 맛보기 공연을 보여주는 전술을 구사하는 것이다.

 ‘태양의 서커스’는 이에 따라 비즈니스 스쿨에서도 주요 연구대상으로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창업 20년 만에 기업 가치를 10억달러 대로 키운 사례는 제조업에서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물며 공연을 주로 판매하는 서커스단이 이런 결과를 낳자 학계에서도 주목하는 것이다. 캐나다 맥길대학 경영전략과 로버트 데이빗 교수는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태양의 서커스만큼 상업성과 예술성이 적절하게 조화되면서도 단기간에 이 정도 규모로 성장한 공연단은 찾아보기 어렵다”며 “MBA 과정에 등록한 현직 경영자들에게 기업 경영 성공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랄리베르 대표는 ‘단순히 공연만 잘하는 서커스단’에서 멈추지 않고 그 공연을 영속시킬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해 ‘태양의 서커스’의 경영에 접목시켰다는 점에서 훌륭한 사업가로도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랄리베르 대표는 이제 무대를 지상에서 대서양을 오가는 유람선에까지 확대했다. 2004년 12월부터 카리브 해를 돌아 유럽을 왕복하는 ‘명사들의 유람선’(Celebrity Cruise)에서 정기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태양의 서커스’의 맨해튼 공연 책임자 다니엘 라마르는 “이제 육대주에 이어 오대양까지 정복할 계획”이라며 “유람선에서의 공연은 ‘태양의 서커스’의 성가를 더 높여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해 ‘명사들의 유람선’ 잭 윌리엄스(Jack Williams) 대표는 “초대형 유람선인 콘스텔레이션 호와 서밋 호에서 공연을 할 수 있도록 개조 중”이라며 “두 회사의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하지만 한국 관객들이 ‘태양의 서커스’의 공연을 보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이코노미플러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랄리베르 대표가 “한국 공연은 현재로서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한국 공연 현재 고려치 않아”

랄리베르 대표 이메일서 밝혀

 랄리베르 대표는 “유럽 여행 때 만났던 거리의 예술가들은 먹고 사는 문제에서 초연했지만 언제나 행복해 보였다”며 “나도 그 이후 오로지 관객 만족에만 초점을 맞추려 한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그는 명사들의 흔한 취미인 골프도 칠 줄 모른다. 그저 오늘도 ‘보다 나은 공연, 보다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랄리베르 대표는 인터뷰에서 “난 늘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매너리즘에 빠지는 순간 몰락이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캐나다 문화계로부터 혁신적이며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인정받아 지난해 ‘답습을 거부하는 사람들’(Never Follow Group)상을 수상한 엔터테인먼트의 대가(大家)다운 언명(言明)이다.

박형진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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