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기 침체와 내수 부진 장기화로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 사이에 ‘네트워크 론’(Network Loan)이란 새로운 대출 시스템이 화제가 되고 있다. 네트워크 론이란 은행이 여러 중소기업과 거래하는 우량 구매 기업(모기업)과 협약을 체결하고, 중소기업이 은행에 구매 기업의 발주서를 제시하면 납품에 필요한 생산 및 구매 자금을 즉시 대출해 주는 새로운 기업 대출 상품이다. 발주 시점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중소기업은 생산 및 구매 자금 조달 부담은 물론 납품대금 회수 장기화에 따른 자금난도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2004년 8월 기업은행이 국내 은행으로서는 처음으로 네트워크 론을 출시, 이미 700여개가 넘는 중소기업들이 단기 유동성 확보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러나 구매 기업의 인식 부족과 정책적 지원 부족으로 아직까지 수십만 개에 달하는 중소기업이 네트워크 론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안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기업은행이 2004년 첫 선 보여

 네트워크 론은 중소기업들이 구매 기업으로부터 납품 주문을 받더라도 운전 자금을 제때에 마련하지 못해 상품 생산에 차질을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고안된 상품이다.

 기존에도 중소기업은 중기 자금 대출이나 할인어음,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 구매 카드제도와 같은 금융 지원 시스템을 통해 자금을 융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충분한 자금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상품 납품 이후에만 자금 지원이 이루어져 정작 생산 단계에서 운전 자금을 필요로 하는 중소기업들은 자금 부족을 해소하기 어려웠다. 이처럼 현실과 다소 어긋난 금융 지원 시스템으로 인해 자금난에 시달리던 일부 기업들은 제때에 상품을 납품하지 못하거나 양질의 상품 생산에 차질을 빚어 구매 기업과의 협력 관계가 깨지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기업은행 기업고객부 고영수 팀장은 “과거 영업 실적에 의존하는 일반 여신(중기 자금 대출)이나 물품 납품 이후에만 이루어지는 결제성 여신(할인어음·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 등으로는 중소기업들의 구조적인 자금난을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과거 실적에 의한 금융 지원 체계를 보완하고 현재 또는 예측 가능한 미래의 영업 흐름을 반영해 생산 단계에서 운전 자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 네트워크 론”이라고 설명했다. 즉, 기술력과 성장력을 보유했지만 담보 부족이나 매출 실적 부진으로 자칫 운전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는 중소기업들에는 네트워크 론이 ‘돈맥경화’를 치료하는 치료제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은행이 2004년 네트워크 론을 처음 출시한 이후 단 3개월 만에 775개 중소기업에 1059억원의 대출이 집행되는 등 큰 호응을 얻은 것도 자금 조달의 적시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저렴한 비용, 편리한 대출 장점

 네트워크 론은 일반 여신이나 결제성 여신에 비해 이자가 1.5~2% 저렴하고 담보 없이 신용 보증서만으로도 기존 기업 여신보다 많은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또 전자 결제 시스템을 이용하기 때문에 계좌 이체나 지점 방문 없이 대출 실행 및 상환 등이 용이하다는 편리성도 가지고 있다.

 중소기업이 네트워크 론을 받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상품을 발주하는 구매 기업이 은행과 전자결제제도 협약을 맺고 해당 기업을 추천해야만 한다. 추천을 받은 중소기업은 신용보증기금의 신용 보증과 함께 구매 기업의 발주서(또는 계약서)만으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융자 대상 증빙 서류인 발주서나 계약서가 일종의 담보 역할을 하는 것이다. 대출 약정 한도는 전년 매출 실적의 50%까지이며 대출 상환은 모기업이 전자 결제 방식으로 납품 대금을 지급할 때 자동으로 상환 처리된다. 네트워크 론이 일반 기업 여신(25~35%)보다 대출 약정 한도가 큰 것은 은행과 신용보증기금 간 협약으로 신용 보증 한도가 2배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론의 지원 방식은 크게 발주서 방식과 실적 방식 두 가지로 나뉜다. 가장 기본적인 방식인 발주서 방식은 납품 실적 등을 기준으로 대출 한도를 약정하고 발주서를 융자 대상 증빙으로 해 약정 한도 내에서 건별로 대출을 실행하는 방식이다.

 실적 방식은 반도체 가격 등 사업 기밀성이 필요한 구매 기업을 위해 마련된 지원 시스템이다. 이 방식은 삼성전자 등 일부 우량 구매 기업에 납품하는 협력 기업에 제한적으로 적용되며 납품 실적에 따라 대출 한도가 약정되면 발주서 없이도 수시로 대출이 가능한 방식이다.



 대기업-중기-은행 ‘윈윈’

 네트워크 론은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이를 이용하는 구매 기업과 여신을 담당하는 은행 모두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상생 시스템으로도 불린다.

 실제로 네트워크 론을 위해 은행과 전자결제제도 협약을 맺는 구매 기업은 조세제한특례법에 따라 법인세 감면 등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더욱이 구매 기업은 네트워크 론을 통해 별도의 자금 부담 없이 중소기업에 선급금을 간접적으로 지급하게 됨으로써 안정적인 물품 공급을 받을 수 있고 이에 따라 영업력 강화도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기업은행 고 팀장은 “네트워크 론을 진행할 때 구매 기업은 은행과의 협약 이외에 아무 비용 소모도 발생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구매 기업이 네트워크 론을 위한 전자결제제도 협약을 맺게 되면 세제 혜택은 물론 어음 발행 등 금융 비용 절감, 기업 이미지 제고, 협력 관계 증진 등의 부수 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구매 기업에도 네트워크 론을 통한 부수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되면서 이미 삼성, 한국전력, SK텔레콤 등 대기업과 중견 기업들이 잇달아 은행과 협약을 맺고 있다. 2004년 11월 말 현재 기업은행과 협약을 체결한 구매 기업은 총 299개 업체로, 이 중 대기업이 48개사이고 중견 기업은 251개사에 달한다.

 실질적인 여신을 담당하는 은행도 네트워크 론을 통해 얻는 효과가 만만치 않다. 가장 큰 효과는 새로운 대출 수요 창출과 기업 고객 유치. 즉 새로운 대출 시장을 만들어내 영업 실적을 올릴 수도 있고, 우량한 중소기업들을 고객으로 유치할 수도 있다. 또 어려운 경제 여건에서도 중기 지원에 앞장서면서 은행의 공익적 이미지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다는 부수적 효과도 얻을 수 있다.

 기업은행이 국내 은행 중에서는 가장 발 빠르게 네트워크 론을 내놓은 이유도 시장 선점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기업은행이 네트워크 론을 이용해 공격적으로 기업 금융 시장을 잠식해 나가자 신한은행도 2004년 12월부터 본격적인 서비스에 나섰으며, 우리·외환은행 등 여타 은행들도 전산 개발 및 업무 프로세스 구축 등 네트워크 론 준비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이들 은행은 2005년 1월을 기점으로 금리, 보안, 전산 편의 등에 역점을 둔 네트워크 론을 각각 선보일 예정이다.



 절름발이식 지원 지적도

 네트워크 론이 자금난에 빠진 중소기업들에 이상적인 시스템이기는 하지만 모든 중소기업이 혜택을 받기에는 자금이 부족하다는 한계도 지니고 있다.

 네트워크 론은 일반적인 기업 대출 방식에 구매 기업의 신용이 추가로 보강된 것이기 때문에 신용 등급이 낮은 영세 업체들에는 그림의 떡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또 구매 기업의 추천 없이는 네트워크 론을 받을 수 없다는 구조적인 문제점도 가지고 있다. 아직 많은 구매 기업들이 ‘귀찮다’거나 ‘기업 비밀 보안’ 등의 이유로 네트워크 론 협약을 기피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에 따라 상생 시스템인 네트워크 론이 풍족한 중소기업에만 혜택이 부여되고 실제 자금 지원이 절실한 업체에는 지원되지 못하는 ‘절름발이식 금융 지원 시스템’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2004년 11월 말까지 네트워크 론을 통해 대출을 받은 업체 중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이 들어간 업체는 12.3%, 담보 설정 업체는 7.7%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80% 업체는 신용 등급이 높은 우량 기업들이었다.

 기업은행 기업고객부 정관영 과장은 “많은 구매 기업을 찾아가 네트워크 론의 도입 취지와 개념을 설명하고는 있지만 아직 인식 부족으로 선뜻 나서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은행도 리스크를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초기 신용 등급이 낮은 업체들에 임의로 지원을 확대할 수는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네트워크 론의 금융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네트워크 론의 이자나 신용 보증료 등 금융 비용이 일반 기업 대출보다는 저렴하지만 외상매출채권담보 등 담보 대출에 비해서는 2~3% 높은 실정이다. 이에 따라 신용 등급이 우량하거나 자금이 풍족한 담보 대출 중소기업들은 네트워크 론이 꼭 필요한 금융 지원 시스템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네트워크 론을 이용하고 있는 H기업의 대표는 “네트워크 론은 편리성이나 자금 지원 적시성 측면에서 분명히 중소기업에 많은 도움이 되는 금융 지원 시스템이 확실하다”면서도 “하지만 여유 자금이 있는 중소기업들에는 금융 비용 측면에서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부 정책적 지원 절실

 기업 대출 전문가들이나 중소기업들은 네트워크 론이 진정한 중소기업 금융 지원 시스템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이처럼 태생적인 한계점을 극복할 수 있는 세제 혜택 등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과 구매 기업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기업은행 정 과장은 “현금 결제가 부담스런 구매 기업들이 네트워크 론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보다 확대된 유인책이 필요하다”며 “정부에서도 세제 혜택 등을 확대하는 지원책을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만큼의 지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소기업들과의 협력 관계로 발전해 나가는 구매 기업들도 네트워크 론을 통해 어려움을 같이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분위기를 함께 조성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정부의 신용 보강을 통해 중소기업들이 부담하는 금융 비용을 축소하고 대출 규모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 K업체의 대표는 “업계에서는 경기 침체와 내수 부진으로 자금난에 빠진 중소기업들이 내년에는 줄도산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며 “네트워크 론이 중소기업 금융 지원을 위해 마련된 시스템인 만큼 정부에서도 지원의 폭을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는 네트워크 론을 통한 중소기업 지원 확대를 위해 전자결제제도 이용시 구매 기업의 세제 혜택을 확대하는 방안과 정부의 추가 신용 보증을 통해 자금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 등을 구상 중에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CASE STUDY
화창물산 박철현 사장

“네트워크 론은 중소기업 구세군”



 극심한 내수 침체로 대다수 중소기업들이 자금난을 겪고 있지만 순수 국산 인라인스케이트를 생산, 공급하는 화창물산 박철현 사장(55)은 최근 이 같은 고충을 한시름 덜었다. 중소기업 금융 지원을 위해 지난해 새롭게 출시된 네트워크 론을 이용하면서 생산 자금을 제때에 융통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박 사장은 “시장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경영을 하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상품 생산을 멈출 수 없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에 생산 자금을 적기에 융통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중소기업들의 숨통은 트일 수 있다”며 “이런 점에서 네트워크 론은 어려움에 빠진 중소기업에 구세군과 같은 지원 시스템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라고 네트워크 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화창물산이 네트워크 론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주요 구매 기업인 이마트가 기업은행과 전자결제제도 협약을 체결해 협력 업체에 대한 결제 방식을 바꾼 지난해 8월부터다. 그동안 이마트는 당월 상품 매출액을 정산, 익익월 15일 현금 결제하는 방식을 채택해 왔다. 따라서 이마트에 상품을 납품하는 협력 업체들은 납품 대금을 회수하는 데 최고 45~50일 정도 걸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중간에 외상매출채권을 담보로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당겨 쓸 수는 있었지만 이마저도 최소 20일 정도 시간이 걸렸고 실제 매출액 범위 내에서만 대출을 받을 수 있어 충분한 자금 융통이 어려웠다.

 그는 “중소기업의 자금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영세 업체의 경우 납품 대금을 회수하는 시간이 길수록 쉽게 자금난에 빠지는 등 경영 환경이 악화될 수 있다”며 “일부 업체는 납품 대금 회수 문제 등 자금 사정으로 인해 고리의 사채를 쓰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중소기업의 현실을 토로했다.

 화창물산은 이마트가 결제 방식을 바꾼 후 추천서를 받아 2004년 11월부터 8차례에 걸쳐 4억원 정도의 네트워크 론 서비스를 받았다. 상품 발주서만 있으면 네트워크 론을 통해 생산 자금에 필요한 대출을 받을 수 있어 자금 조달 걱정 없이 양질의 상품 생산에만 신경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일반 기업 대출이나 담보 대출과 다르게 네트워크 론은 발주 시점에서 자금 조달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업이 생산·공급·판매 등 경영에만 신경쓸 수 있다”며 “네트워크 론과 같은 금융 지원 시스템으로 기업이 본질인 경영에만 주력한다면 경기 침체도 쉽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사장은 특히 네트워크 론과 같은 금융 지원 시스템이 보편화돼 많은 중소기업들이 어음 결제 폐단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금 흐름의 투명성과 기업 공멸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어음 결제 방식은 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직도 많은 구매 기업들이 어음을 결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지만 과거 IMF 때 왜 그 많은 중소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졌는지를 생각하면 어음 결제 방식은 이제 그만 사라져야 한다. 네트워크 론처럼 보다 현실적이면서도 적시성이 있는 금융 지원 시스템을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 경기 전망에 대해 박 사장은 부정적이다. 가계 부실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어 내수 부진은 더욱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따라서 올 중소기업들의 경영 환경은 지금보다 더욱 나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전적으로 내수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여서 경기가 불투명한 올해에는 공격적인 경영보다는 대출 상환 등 방어적인 경영을 할 방침”이라며 “내수 부진이 장기화한다면 많은 중소기업이 또 다시 폐업 위기에 놓일 수밖에 없는 만큼 네트워크 론과 같은 중소기업 지원책들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임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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