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바 그룹이 운용하는 머니마켓펀드(MMF)인 위어바오는 운용자산이 169조원으로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체이스를 제치고 세계 최대 규모의 MMF로 올라섰다. 사진은 마윈 알리바바 그룹 회장. <사진 : 블룸버그>
알리바바 그룹이 운용하는 머니마켓펀드(MMF)인 위어바오는 운용자산이 169조원으로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체이스를 제치고 세계 최대 규모의 MMF로 올라섰다. 사진은 마윈 알리바바 그룹 회장. <사진 : 블룸버그>

중국은 전통적으로 명절 혹은 결혼식 등 특별한 날 빨간 봉투에 돈을 넣은 ‘홍바오(紅包·붉은 주머니)’를 건넨다. 제프리 가렛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 학장은 최근 상하이에서 열린 한 생일 모임에서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연회장 테이블에는 실물 홍바오 대신 여러 대의 스마트폰이 놓여 있었다”며 “모두 위챗(텐센트의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의 홍바오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축의금을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가렛 학장에 따르면 지난 중국 춘제(春節·음력 1월 1일)에 총 140억개의 디지털 홍바오가 위챗을 통해 거래됐다. 14억명 중국인 모두 평균 10개씩 디지털 홍바오를 이용한 것이다. 그는 “미국의 기술 혁신이 눈부시지만, 중국은 핀테크 분야에서 미국을 월등히 앞서고 있다”고 말했다.


텐센트 창업자 마화텅 회장. <사진 : 블룸버그>
텐센트 창업자 마화텅 회장. <사진 : 블룸버그>

중국 핀테크 도입률 69%로 세계 1위

중국의 모바일 결제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글로벌 회계 법인 언스트앤드영(EY)이 발표한 ‘2017 핀테크 도입지수’에 따르면, 중국의 핀테크 도입률은 69%로 조사대상 20개 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모바일 결제 시장 규모는 58조8000억위안(약 9980조원)에 달했다. 시장 규모가 2015년 대비 약 6배 커질 정도로 급성장했다. 인터넷 쇼핑, 계좌이체, 공과금 납부, 통신요금 납부 등 중국에서는 일상의 모든 곳에서 모바일 결제가 이뤄지고 있다.

모바일 결제 시장 규모가 커지는 이유는 편리성과 온·오프라인 연계(O2O) 서비스의 성장 덕분이다. 2012년 차량공유서비스업체인 디디추싱과 우버가 중국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모바일 결제가 활성화되는 계기를 제공했다. 2015년부터는 음식배달서비스인 어러머, 자전거공유서비스인 모바이크와 오포가 활성화되는 등 계속 생겨나는 새로운 O2O 서비스가 모바일 결제 빈도를 높이는 역할을 했다.

또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와 중국 최대 인터넷업체인 텐센트가 중국 O2O 시장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O2O 기업을 앞다퉈 인수하고 막대한 보조금을 뿌린 것도 시장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 중국 모바일 결제 시장에서 알리바바의 알리페이가 약 73%의 시장 점유율을, 텐센트의 위챗페이가 17%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원래 알리페이의 점유율이 압도적이었는데,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 위챗을 이용한 위챗페이가 최근 빠르게 성장 중이다.

가렛 학장은 “과거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 중국의 IT 대기업의 성공을 혁신으로 보지 않는 이들이 많았다”며 “미국의 혁신기업인 아마존과 페이스북, 링크드인의 사례를 베낀 것에 불과하며, 중국 정부의 폐쇄적인 정책과 거대한 내수 시장 덕분에 성장한 것뿐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 기업의 모바일 결제 금액은 약 60조위안으로 미국의 50배에 달할 정도로 혁신적이다”라고 말했다.

중국의 모바일 결제 시장 성장의 가장 큰 이유로는 낮은 신용카드 보급률이 꼽힌다. 중국에서 신용카드를 발급받으려면 신용조회 회사가 개인의 신용정보에 기반해 작성한 신용평점과 신용등급이 있어야 한다. 중국인 중에 도시지역의 화이트 칼라 외에 농촌주민이나 서비스업종 종사자는 신용등급이 아예 없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중국의 신용카드 보급률은 저조하다. 2016년 기준 중국의 신용카드 보급률은 20%에 불과하다.

인터넷 시대의 개막과 중국 사회 중산층의 등장이 시기적으로 겹친 것도 크게 도움이 됐다. 다른 선진국들이 현금에서 카드로, 다시 온라인 결제로 발전한 반면, 중국은 카드 단계를 건너뛴 것이다. 중국은 인터넷 보급률이 70%에 미치지 못하는 가운데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처음 접하는 이들이 많다. 따라서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듯이, 수시로 스마트폰으로 결제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던 것이다. 중국의 인터넷 사용 인구 95%는 모바일로 접속하고 있다.


中 IT업체 온라인 전문은행 설립

초기에 지급결제를 중심으로 발전한 중국의 핀테크 산업은 최근 대출, 투자중개, 개인자산관리, 보험 등 전통적인 금융업의 고유영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원래 중국에서 은행은 대표적인 독점 산업이었다. 4대 국유은행의 시장 점유율이 60%가 넘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2014년 7월 비(非)금융사들에 무(無)점포 온라인 전문은행 설립을 시범적으로 허용하면서 핀테크 사업을 확대하도록 유도했다.

이에 따라 텐센트는 2014년 12월 중국 최초 온라인 은행 위뱅크(WeBank)를 설립하고, 2015년 5월부터 대출 서비스를 시작했다. 소액 대출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누적 대출 금액이 400억위안(약 7조원)을 기록했고, 3000만명에게 대출을 제공했다. 고객의 65%는 25세에서 35세 사이이고, 대출 과정에서 대출심사에 걸리는 시간은 평균 2.4초다. 대출 자금이 고객의 계좌로 이체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40초다.

알리바바는 2015년 6월 마이뱅크(MyBank)를 설립했다. 온라인 결제 시스템 알리페이와 연계된 소액대출 서비스는 1년 만에 누적 대출금액 492억위안(약 8조원)을 기록했다. 이는 마이뱅크의 모회사 알리바바가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시장 점유율 60%)인 점을 활용한 덕분이다. 인터넷 쇼핑몰을 하는 소규모 기업을 목표 고객으로 설정했으며 이미 350만 곳에 달하는 소기업과 소상공인을 고객으로 확보했다. 대표 상품 역시 자영업자 신용대출 상품이다. 이 상품의 신용대출 금리는 연 5~16%인데, 대부분의 고객들이 연 7~8% 금리로 대출상품을 이용하고 있다. 중국의 소상공인이 고리대금업자로부터 자금을 융통할 때 지급하는 금리(약 15%)의 절반에 불과하다.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마이뱅크의 자본금은 40억위안(약 6800억원)이다. 총자산과 대출잔액은 각각 615억위안(약 10조4000억원), 329억위안(약 5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 대출 규모가 4배 증가했다. 당기순이익은 영업 초기인 2015년 6874만위안(약 117억원) 적자를 냈지만, 2016년에는 3억1500만위안(약 535억원)으로 흑자 전환됐다.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 행장은 “위어바오와 같은 혁신적인 금융상품을 적극 지지하고, 절대로 폐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 블룸버그>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 행장은 “위어바오와 같은 혁신적인 금융상품을 적극 지지하고, 절대로 폐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 블룸버그>

기존 은행, 온라인 펀드 판매 비난

아울러 중국 정부는 비(非)금융회사의 펀드 운용도 허용했다. 2013년 6월 증권투자기금법을 수정해 증권사나 신탁회사가 아닌 자산운용사를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에 알리바바는 2013년 텐홍자산운용사의 지분 51%를 소유해 최대 주주가 됐고, 이를 바탕으로 온라인 펀드상품 위어바오를 중국 최초로 도입했다. 위어바오의 폭발적인 성장에 힘입어 텐홍자산운용사는 지방의 중소기업에서 불과 1년 만에 중국 전체 자산운용사 중 2위로 급부상했다.

위어바오는 알리바바의 지급결제시스템인 알리페이를 수익률 높은 예금처럼 활용할 수 있는 상품이다. 기존 알리페이의 제3자 지급결제 시스템은 에스크로(구매자와 판매자 간 신용관계가 불확실할 때 제3자의 상거래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중개하는 매매 보호 서비스) 방식으로 결제대금을 알리페이 계좌에 예치해야 하는데, 알리바바는 이 현금을 동일 온라인 플랫폼상에서 위어바오 계좌로 예치하기만 하면 6~7%대의 높은 투자 수익을 예금이자처럼 돌려준다.

위어바오는 자금의 90% 이상을 은행예금으로 운용해 투자손실 위험이 거의 없는 머니마켓펀드(MMF)이면서도 수익률은 일반 은행예금(1~3%대)에 비해 월등히 높기 때문에 6개월 만에 투자자가 1억5000명, 투자자금이 6000억위안(약 102조원) 수준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다.

알리페이 계좌에서 위어바오로의 계좌 이체는 오프라인 방문 등이 필요 없이 알리바바 모바일 플랫폼상에서 몇 개의 버튼 조작으로 간단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여유 자금을 위어바오 계좌로 이체했다. 전자상거래 결제는 당일 인출이 가능하고, 타은행으로 이체서비스는 하루 뒤 이뤄질 만큼 편리하기 때문에 사실상 은행예금과 큰 차이가 없고, 수익률이 높아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됐다.


온라인 펀드 ‘불완전 판매’논란도

다만 부작용도 발생했다. 알리바바의 위어바오가 급성장하면서 은행의 개인 요구불예금이 위어바오로 대체되자, 은행들은 위어바오가 펀드 판매 관련 법률을 위반했다고 금융당국에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은행들은 알리바바가 소비자들에게 펀드 구매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예금처럼 인식하게 한 것은 ‘불완전 판매’라고 비판했다. 중국 은행 관계자는 위어바오를 “은행에 기생하는 흡혈귀”라고 비난하며 위어바오가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을 높이고, 은행 시스템의 유동성을 악화시켜 중국 경제의 안정성을 해친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 금융당국은 알리바바의 손을 들어줬다. 2014년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CSRC)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위어바오가 금융시장의 확대, 이자율 시장화, 서민금융 실현 등 다양한 측면에서 중국 금융산업 발전에 기여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2014년 3월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행장 저우샤오촨은 위어바오와 같은 새로운 금융상품 혁신을 적극 지지하고, 절대로 폐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히면서 논란을 일단락 지었다.


Plus Point

정부 규제, 보안 구멍… 韓 인터넷은행 한계

은산분리 규제 완화가 사실상 어려워지면서, 케이뱅크는 자본 확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 : 케이뱅크>
은산분리 규제 완화가 사실상 어려워지면서, 케이뱅크는 자본 확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 : 케이뱅크>

국내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가 출범한 지 각각 6개월, 3개월이 지났지만 제1금융권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여전히 불안정한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인터넷은행이 은행권에 저금리 경쟁을 부추기는 등 긍정적인 메기 효과(막강한 경쟁자의 존재가 다른 경쟁자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가져왔지만 한편으로는 한계에 봉착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금융권에 따르면 인터넷전문은행의 시장 안착에 최대 선결조건인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한 은행법 개정안이 사실상 물 건너갔다. 앞서 산업자본이 보유 가능한 은행 지분을 의결권 주식 4%로 제한해 온 은산분리 규제에 대해 업계는 “인터넷전문은행 제한 완화가 필요하다” 는 입장을 수차례에 걸쳐 밝혀 왔다. 인터넷전문은행의 한 축을 산업자본인 IT기업이 맡고 있고, 이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자본 투자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케이뱅크 대주주인 우리은행이 대주주 인가 예비심사와 본심사 통과를 위해 BIS 비율(은행의 자기자본비율) 평가 기한을 자의적으로 조정했다는 의혹과 전 정부 시절 금융당국이 이를 묵인해주고 이후 은행법 시행령까지 개정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은산분리 규제 논의에 제동이 걸렸다. 특혜 의혹으로 얼룩진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 또 다른 특혜를 줄 수 없다는 여론이 팽배해진 것이다.

한국금융지주가 대주주를 맡고 있고 카카오가 IT서비스를 책임지고 있는 카카오뱅크의 경우 출범과 함께 인기몰이에 성공하면서 은산분리 규제 완화 없이도 자본 확충에 성공했지만 케이뱅크는 애를 먹고 있다. 케이뱅크는 지난 9월 1000억원의 유상증자를 의결했지만 일부 주주사가 증자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의사를 밝히면서 868억원만 간신히 모을 수 있었다. 나머지 132억원은 케이뱅크를 이끌어온 KT가 전환주로 채우면서 간신히 한고비를 넘겼다. 이에 업계에서는 현재 자본금 부족으로 유상증자가 절실한 케이뱅크가 올해 말 계획하고 있는 2차 유상증자에도 차질을 빚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카카오뱅크의 경우 출범 초기부터 전산장애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더니 최근에는 명의도용과 체크카드 결제 오류 등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심지어 해외 사이트에서 고객도 모르게 돈이 결제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사고 당시 ‘이상 거래 탐지 시스템(FDS)’은 정상 작동 중이었다”며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체크카드 대행사인 국민카드, 마스터카드와 협력해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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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산분리 은행법상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에 대해선 의결권 있는 은행 지분을 최대 4%까지만 보유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을 말한다. 실제 보유는 금융위원회 승인을 얻어 10%까지 가능하지만 4% 초과분은 의결권이 없다. 정부는 인터넷은행에 한해 이 규정을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