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째 골드만삭스를 이끌고 있는 블랭크페인 회장. <사진 : 블룸버그>
11년째 골드만삭스를 이끌고 있는 블랭크페인 회장. <사진 : 블룸버그>

“난 비트코인이 마음에 안 든다. 버블일지 모르겠다.”

로이드 블랭크페인(Lloyd Blankfein·63) 골드만삭스 회장이 불붙고 있는 ‘가상화폐 버블 논쟁’에 가세했다.

블랭크페인 회장은 11월 9일(현지시각) 가상화폐 거품론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으로 “비트코인은 확실히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섰다”는 제임스 고먼 모건스탠리 회장의 낙관론에 견제구를 던졌다.

블랭크페인 회장은 그러나 “오늘날 아주 흔하게 사용되는 것 중에는 절대 성공하지 못할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 아주 많다”며 “만약 비트코인이 성공한다면 화폐의 형태가 자연스럽게 진화한 것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단서를 달았다.


“美 재무부는 골드만삭스 이중대”

블랭크페인 회장의 발언에 앞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체이스 회장은 “가상화폐 광풍은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과 다를 바 없는 사기”라고 공격했고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은 “비트코인은 불법 자금 세탁의 온상”이라고 주장했다.

‘월스트리트의 거인들’이 가상화폐 버블 논쟁에 속속 가세하자 ‘가상화폐 투자 유도를 위한 애드벌룬 띄우기’라는 분석이 고개를 들고 있다.

‘돈 냄새’를 맡으면 독재 국가든 적성 국가든 악성 채권이든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한몫 챙기기에 혈안인 ‘탐욕의 화신들’이 투자자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가상화폐 거품 논쟁을 벌이고 있다는 시각이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가 올해 안으로 비트코인 선물 상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도 가상화폐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개인들이 시카고상품거래소를 통해 비트코인 선물 거래를 할 수 있게 되면 신규 투자자가 대거 유입되고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 등 간접 상품도 출시될 전망이다. 주요 외신들은 시카고상품거래소의 선물 상품 도입으로 가상화폐가 앞으로 금이나 원유 같은 주요 자산 파생 상품의 반열에 오를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시카고상품거래소의 결정은 비트코인이 제도권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보도했다.

미국의 주요 은행들은 이제까지 비트코인이 돈세탁과 불법 거래에 이용되고 있는 점을 들어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가상화폐를 ‘합법 자산’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1882년 행상 출신인 독일계 유대인 마르쿠스 골드만과 사위 샘 삭스가 창립한 골드만삭스는 ‘거버먼트 삭스(Government Sachs)’란 별명이 붙어 있다. ‘수퍼 파워’ 미국의 경제 정책을 결정하는 미국 재무부도 실상은 ‘거버먼트 삭스’의 ‘워싱턴 지부’ 또는 ‘이중대’에 불과하다는 조롱 섞인 표현이다.

미 행정부의 요직에 진출한 골드만삭스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과장도 아니다. 클린턴 행정부 재무장관을 지낸 로버트 루빈, 조지 W. 부시 행정부 재무장관을 지낸 헨리 폴슨에 이어 공화당 소속인 트럼프 행정부의 초대 재무장관에 오른 스티브 므누신이 모두 골드만삭스 출신이다. 대통령과 집권당은 바뀌어도 재무장관은 골드만삭스 출신들이 돌아가며 맡는 모양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게리 콘 백악관 경제보좌관도 블랭크페인 회장 아래에서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일한 ‘골드만삭스의 2인자’였다.


다이먼 JP모건 회장과 숙명의 라이벌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마크 카니 영란은행(BOE) 총재, 마리오 몬티 전 이탈리아 총리, 로버트 졸릭 전 세계은행 총재 등 국제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포스트에도 골드만삭스 출신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그래서인지 월스트리트의 금융제국 골드만삭스(Goldman Sachs)를 11년째 이끌고 있는 ‘거버먼트 삭스의 대통령’ 블랭크페인 회장의 일거수일투족은 언제나 화제다.

“영국, 브렉시트 투표 다시 해야 한다”(11월 16일), “현재 세계에는 두 개의 경제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중국 경제가 미국을 추월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11월 10일) 등 그의 말 한 마디에 국제 금융 시장이 촉각을 곤두세운다.

‘월스트리트의 태양왕(선데이타임스)’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거대한 흡혈 문어(롤링 스톤)’ ‘트레이딩의 황제’ 등 별명도 많고 구설에도 자주 오른다.

금융 위기가 시작된 2007년 연봉 6900만달러(약 766억원)를 받은 사실이 공개돼 비난을 받자 “나는 신의 일을 하고 있다”고 자화자찬, 비판의 표적이 됐다. “블루칼라 출신인 내가 CEO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준 골드만삭스는 너무나 완벽한 시스템”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골드만삭스와 자신의 일에 대해 오만에 가까운 자부심을 드러낸다는 비판도 많다. 지난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던 그는 올 8월 트럼프 대통령을 조롱하는 듯한 트위터 글을 잇따라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블랭크페인 회장은 여러 점에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과 비견된다. 각각 월스트리트 최대 금융 회사를 이끄는 ‘숙명의 라이벌’이자 하버드대 동문이기 때문이다.

부유한 집안 출신인 다이먼 회장이 ‘월스트리트의 전설’ 샌디 웨일 전 시티그룹 CEO의 후계자로 지목되며 일찍부터 승승장구한 반면 가난한 우체부의 아들로 태어난 블랭크페인 회장은 골드만삭스 입사 시험에 낙방한 뒤 다니던 회사가 골드만삭스에 합병되면서 골드만삭스 임원이 된 ‘서자 출신’이다.

골드만삭스 입성 이후 존 테인 전 메릴린치 회장, 존 손튼 중국 칭화대 교수에 밀려 당시 CEO였던 헨리 폴슨의 후계 대열에 들지 않았지만 테인이 뉴욕증권거래소 회장, 손튼이 칭화대 교수가 되고 2006년 폴슨이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재무장관이 되면서 골드만삭스의 대권을 물려받았다. 그를 후계자로 지명한 헨리 폴슨 전 CEO는 “냉정하게 사실을 직시할 줄 아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두 사람은 월스트리트 최고 연봉 자리를 놓고 자주 비교 대상이 된다. 블랭크페인 회장은 2006년 연봉 5400만달러(약 600억원)를 받아 월스트리트 최고 연봉자 자리에 올랐고 2010년에도 최고 연봉 타이틀을 차지했다. 2011년 다이먼 회장에게 밀렸다가 2012년 최고 연봉 자리를 되찾았다. 2016년 연봉은 2200만달러(약 244억원). 2016년 11월 트럼프 당선 직후 3개월 만에 골드만삭스 주가가 36% 상승, 1590만달러(약 176억원)를 벌어 같은 기간 1380만달러(약 153억원)를 번 다이먼 회장을 앞섰다.


Plus Point

가난한 유대인 우체부의 아들

블랭크페인(왼쪽) 회장과 게리 콘 백악관 경제보좌관. <사진 : 블룸버그>
블랭크페인(왼쪽) 회장과 게리 콘 백악관 경제보좌관. <사진 : 블룸버그>

블랭크페인 회장은 1954년 뉴욕 브롱스의 유대인 우체국 직원인 세이모어 블랭크페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접객원으로 일했다.

하버드대 사학과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뒤 하버드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하버드대 입학 동기이자 기숙사를 함께 쓴 친구다. 로스쿨 졸업 후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에 지원했으나 낙방하자 로펌 도노반 레저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젊은 시절 실의에 빠져 줄담배를 피우고 도박에도 손을 댔다고 회고하는 ‘대기만성형 CEO’다. 1982년 원자재 투자회사인 J.아론에 입사한 뒤 골드만삭스가 J.아론을 인수하면서 골드만삭스에 합류했다.

부인 로라 야콥스와 사이에 2남 1녀를 두고 있다. 2015년 림프종 투병 사실을 고백했고 2016년 10월 완치됐다고 밝혔다. 2009년 파이낸셜타임스 ‘올해의 인물’에 선정됐다. 개인 자산은 11억달러(약 1조2000억원)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