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회생의 천재’로 꼽히는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회장은 2000년 닛산자동차의 최고경영자(CEO)로 취임, 2조엔(약 20조원)에 이르는 부채와 6844억엔(약 6조8440억원)의 적자(1999년)로 파산 직전에 내몰렸던 기업을 불과 1년 만에 3311억엔(3조3110억원) 흑자(2000년)로 반전시켰다. 그가 성공한 가장 큰 비결은 자동차 부품의 구매 단가를 낮추는 강력한 원가절감이었다. 그는 협력업체들에 3년 내 부품 구매 단가를 20% 낮출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당시 닛산의 부품 협력업체들은 그를 ‘칼잡이’ ‘비용절감기(cost cutter)’라고 불렀다.

현대자동차가 세계 5위(2008년 기준, 기아차 포함) 자동차 회사로 도약하는 과정에도 원가절감은 큰 역할을 했다. 부품회사 대표들을 본사로 불러 5~10% 납품가 인하를 통보하는 것이 연례행사로 굳어졌다. 부품회사 입장에선 살점을 도려내는 고통이었지만 원가를 낮춘 현대차는 강력한 가격경쟁력을 확보, 세계 시장에서 단기간에 판매를 확대할 수 있었다.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글로벌 제조업체들에 원가절감은 필수다. 글로벌 시장에서 급성장한 기업들은 예외 없이 강력한 원가절감의 덕을 봤다.

전자·자동차 등 완성품 제조업체가 부품 단가를 낮추면 단기적으로는 부품업체의 매출을 감소시키지만, 완성품(자동차·전자 제품)의 가격경쟁력은 높아져 판매가 늘어난다. 이는 부품업체의 공급량 확대로 이어져 납품가 인하로 줄어든 수익을 보충해준다. 반대로 원가절감에 실패하면 제품이 가격경쟁력을 잃어 판매가 줄어든다. 이때 완성품 제조업체뿐만 아니라 수백, 수천의 부품 협력업체가 동시에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따라서 원가절감은 협력업체 입장에서도 불가피한 요소다.


지나친 원가절감은 품질악화 원인

그러나 지나친 원가절감은 품질 악화와 소비자 피해라는 부작용을 낳고, 때로는 대규모 리콜로 기업에 커다란 위기를 불러온다. 2010년 도요타의 대량 리콜사건이 대표적이다. 도요타는 불량 가속페달로 인해 캠리 등 8종의 모델에서 1000만대를 리콜하게 됐다. 자동차 전문 BMR컨설팅의 이성신 사장은 “도요타는 1990년대부터 세계 1위를 목표로 해외 생산을 확대하면서 ‘신도요타 시스템’을 도입했다”면서 “원가절감을 위해 부품 공급업체를 복수업체로 확대해 경쟁시키는 과정에서 품질 관리에 한계가 온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도요타는 최근 세계 경제 불황으로 자동차 수요가 줄어들고 엔화 강세로 막대한 환차손이 발생하는 바람에 수익 보전을 위해 원가절감에 더더욱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나친 원가절감으로 회사가 큰 손실을 입는 사태를 막으려면 원가절감 과정에서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우선 제조업체가 원료와 부품을 아웃소싱하는 단계부터 이를 생산해 소비자의 손에 전달하기까지 전체 서플라이 체인(공급망)을 염두에 두고, 각 부문에서 균형 있게 원가절감을 해야 한다. 김수욱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제조업체가 구매 단계의 원가절감에만 매달리면 협력업체는 줄어든 매출을 보충하기 위해 부품의 품질과 기술 개발에 투자할 비용을 낮추게 돼 최종 완성품의 품질이 떨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자동차 속도 조절장치나 전자제품의 배터리처럼 안전과 직결된 부품은 무리하게 원가절감을 했다가 소비자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경우 기업은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완성품 제조업체들이 협력업체들과 이익을 공유한다는 의식을 갖고 장기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 김 교수는 “대형 제조업체는 자동차의 엔진 같은 핵심 기술과 제품기획 조정기능만 남기고 나머지 서플라이 체인의 실질적인 관리 권한을 단기적으로 협력업체에 넘기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아자동차는 현재 경차 모닝을 외부업체인 동희오토에 의뢰해 생산성과 품질을 모두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아차 관계자는 “생산 차종이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동희오토가 기아차의 국내 공장보다 1.5배에서 2배 정도 생산성이 높고, 불량률은 크게 낮다”고 전했다.

한편 기업이 원가절감을 강화할 때에는 반드시 위기 관리 수준도 높여야 한다. 자동차 산업 전문가들은 “부품 구매 단가 인하나 대규모 인력구조조정, 임금 삭감, 공장 이전 등 원가절감을 위한 조치를 강화하면 회사 안팎의 긴장과 불만이 고조돼 회사에 피해를 주는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사전에 위기 관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문제가 발생하면 솔직하고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


제품혁신으로 원가절감 한계 극복해야

도요타의 경우 사전·사후 위기 관리에 모두 실패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도요타자동차의 브레이크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지난 2007년부터 미국 소비자들 사이에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러나 도요타는 이를 무시했다. 특히 2009년 8월 캘리포니아에서 가속페달 결함으로 일가족 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도요타는 가속페달 결함 가능성을 부인,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또 부품 결함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는 사실이 공개된 후에도 도요타는 가속페달을 공급한 미국 부품업체 CTS에 책임을 돌리는 등 책임지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면서 스스로 기업 이미지를 크게 손상시켰다.

원가절감은 제조업체의 가격경쟁력 확보와 수익성 향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원가절감에만 의존한 성장은 시간이 갈수록 한계를 드러낸다. 원가절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갈수록 줄어들고, 경쟁사도 곧바로 원가절감으로 대응하기 때문이다.

고급차의 대명사인 메르세데스 벤츠도 자동차 전문가들 사이에선 경쟁 차종인 BMW나 아우디에 비해 내장재의 재질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지만 이런 평가는 일반 소비자들의 구매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 브랜드 이미지가 워낙 높기 때문이다.

도요타의 사례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현대차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송상훈 교보증권 기업분석팀장은 “기업들은 원가절감에만 의존하는 전략을 고수할 경우 지속적인 수익성 향상에 한계가 올 수 있고, 지나칠 경우 자칫 한 방에 회사가 쓰러질 수 있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아이폰 같은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고, 벤츠처럼 브랜드 이미지를 고급화하는 데 무게중심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