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문으로 CEO직에서 물러난 스티브 윈 윈 리조트 그룹 전 회장. <사진 : 블룸버그>
성추문으로 CEO직에서 물러난 스티브 윈 윈 리조트 그룹 전 회장. <사진 : 블룸버그>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의 황제’ 스티브 윈(Steve Wynn·76) 윈 리조트 그룹 회장이 2월 6일(현지시각) 그룹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윈 회장은 “최근 나에 대한 부정적인 주장이 홍수처럼 제기되고,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성급한 판단이 내려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경영자 역할을 계속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후임 CEO에는 맷 매덕스 윈 리조트 그룹 사장이 임명됐다.

윈 회장의 퇴진은 올해 들어 봇물처럼 터진 성적 비행(sexual misconduct)과 성차별 의혹 때문이다.

월스트리트 탐사보도팀은 1월 16일 윈 회장의 전 부인과 호텔 여직원들의 소송 자료 등을 인용, “윈 회장이 수십 년간 여직원들에게 성행위, 유사 성행위를 강요하고 여직원 10여 명에게 부당한 체중 감량을 강요한 의혹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손톱관리사, 마사지사, 심지어 노인과 강제로 성행위를 했다는 폭로에 미국 전체가 아연실색했다.

윈 회장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부인했으나 보도 직후 주가가 19% 추락하는 등 그룹 시가 총액이 30억달러(약 3조3000억원)나 증발했다. 윈 회장은 1월 28일 공화당 전당대회(RNC) 재무위원장에서 물러났고 모교인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받은 명예박사 학위도 박탈당했다. 미국 언론들은 윈 회장이 최근 미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미투(#Metoo) 운동’으로 추락한, 가장 거물급 경영인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윈 회장은 ‘사막의 유흥 도시’에 불과했던 라스베이거스를 세계 최고의 종합 엔터테인먼트 중심지로 변모시킨 ‘카지노와 호텔 사업의 혁신가’로 통한다.

미라지 호텔(1989년), 트레저 아일랜드 호텔(1993년), 벨라지오 호텔(1998년), 윈 라스베이거스 호텔(2005년) 등 그가 지은 카지노 호텔들은 매번 동시대 세계 최대·최고란 타이틀을 거머쥐면서 카지노와 호텔 산업의 새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았다.


빙고장 주인 아들에서 ‘카지노 황제’로

“나는 태어난 이후로 식사 한 끼, 수업료 한 푼, 옷 한 벌도 도박을 통하지 않은 것이 없는 아이였다.”

1942년 미국 코네티컷주 뉴헤이븐 태생인 윈 회장은 빙고장을 운영하던 아버지 마이클 와인버그(1946년 유대인 차별을 피하려고 윈으로 성을 바꿈)를 따라 어릴 때부터 라스베이거스 카지노를 출입했다.

펜실베이니아대를 졸업(영문과)하고 예일대 로스쿨에 다니던 1963년, 부친이 35만달러의 빚을 남기고 심장병으로 급사하자 학업을 접고 빙고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가 스물한 살 때였다.

1967년 라스베이거스로 이주해 주류 유통 사업을 시작했고 라스베이거스 구시가지의 랜드마크 카지노인 골든 너깃 카지노 호텔 리모델링을 계기로 서른한 살 되던 1973년 골든 너깃의 경영자가 됐다. 5만달러 이상 베팅을하는 ‘하이 롤러(고액 도박꾼) 전용 룸’을 만들고 당대 최고 인기가수인 프랭크 시나트라 공연을 유치, 관광객을 끌어모았다.

1980년대 골든 너깃 아틀란타 호텔, 골든 너깃 라플린 호텔 등으로 사업을 확장한 뒤 1989년 당시 천문학적 액수인 6억3000만달러(약 7000억원)를 들여 미라지(Mirage) 호텔을 개장, ‘초대박’을 터뜨렸다. ‘정크 본드의 제왕’ 마이클 밀켄이 자금을 댔다.

신기루와 열대 숲을 테마로 한 30층짜리 호텔 1층의 초대형 아쿠아리움에는 1400만달러를 주고 산 돌고래와 열대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3049개 객실과 카지노 전체를 금과 청동으로 뒤덮었다.

‘하루 100만달러 적자가 불 보듯 뻔하다’는 비아냥거림을 받은 카지노가 첫해 20억달러(약 2조2000억원)의 수익을 내자 초대형, 초호화판 카지노 건설 붐이 일어나면서 라스베이거스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탈바꿈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윈 회장은 2000년 미라지 호텔을 MGM 미라지 그룹에 66억달러(약 7조3000억원)를 받고 팔았다.

미라지 호텔의 화산쇼, 트레저 아일랜드 호텔(건축비 4억3000만달러)의 해적쇼와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 Show)’ 상설 공연을 통해 라스베이거스를 최고의 종합예술 무대로 변모시키는 한편 벨라지오 호텔(건축비 16억달러)에 르누아르와 피카소 그림을 전시, 카지노에 명품 이미지를 접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벨라지오 호텔은 이후 지어진 베네치안, 만달레이 베이, 파리 라스베이거스 등 ‘명품 카지노 호텔’의 원조가 됐다.

2005년 개장한 윈 라스베이거스 호텔(건축비 27억달러)은 당시까지 미국 역사상 개인 돈으로 지은 최대 건축물로 꼽혔다. 2008년 윈 라스베이거스 호텔 옆에 지은 앙코르 라스베이거스 호텔(건축비 23억달러)과 합치면 객실이 4750개, 종업원이 9000명이나 된다.

2006년 이후 규모에서 라스베이거스를 추월하기 시작한 아시아 시장에 주목해 윈 마카오 호텔(2006년)과 윈 팰리스 마카오 호텔(2016년·건축비 41억달러) 등 마카오에 초대형 카지노를 개장했고, 최근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 100억달러(약 11조원)짜리 복합 카지노 리조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두 번 이혼한 전처의 폭로가 결정타

윈 회장은 윈 리조트 그룹의 공동 창업자이자 부인인 일레인 패럴 파스칼(76)과 두 번 결혼하고(1963~86년, 1991~2010년) 두번 이혼했다.

윈 회장이 한때 3조원짜리 윈 라스베이거스 호텔 부지를 부인 일레인 파스칼의 생일선물로 샀다고 말할 정도로 사이가 좋은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일레인 파스칼이 윈 회장이 2005년 손톱손질사에게 성관계를 강요하고 합의금으로 720만달러를 줬다고 주장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됐다. 일레인 파스칼과 사이에 두 딸(케빈, 길리안)을 뒀는데 장녀인 케빈이 1993년 납치됐다가 145만달러를 주고 풀려나기도 했다.

2008년 대선 때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를 지원했으나 2012년 이후 공화당에 250만달러를 기부하고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의 지명으로 공화당 전당대회 재정위원장을 맡았다.

트럼프 대통령과 두 번 송사를 했지만 2011년 안드레아 다넨자 히솜과의 세 번째 결혼식에 트럼프 대통령이 하객으로 참석하는 등 친분이 두텁다.

1971년부터 퇴행성 눈병을 앓아 시력이 나쁘며 2010년 채식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개인 자산은 34억달러(‘포브스’ 2017년 미국 부자 순위 248위)로 알려져 있다.


Plus Point

피카소 등 예술품 수집광

스티브 윈 전 회장이 마카오에 세운 윈 팰리스 마카오 호텔. <사진 : 블룸버그>
스티브 윈 전 회장이 마카오에 세운 윈 팰리스 마카오 호텔. <사진 : 블룸버그>

윈 회장은 르누아르, 세잔, 고갱, 고흐, 마네, 마티스, 피카소, 앤디 워홀 등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을 자신의 호텔과 카지노에 전시하기로 유명하다. 1998년 벨라지오 호텔 개장 당시 3억달러(약 3300억원) 상당의 그림을 전시하고 예술작품 설명을 직접 녹음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소장품은 피카소가 사랑한 젊은 애인을 그린 걸작 ‘꿈(The dream·Le R ve)’이다. 윈 회장은 이 그림을 2006년 ‘헤지펀드 킹’ 스티브 코언에게 1억3900만달러에 팔기로 하고 바바라 월터스 등 유명 인사들 앞에서 공개 행사를 열었다가 팔꿈치로 그림에 15cm가량 구멍을 냈다. ‘5000만달러짜리 사고’라는 탄식이 나왔지만 9만달러를 들여 그림을 수리한 뒤 2013년 스티븐 코언에게 1억5500만달러를 받고 팔았다. 윈 회장은 이 그림을 1997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4800만달러에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