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티파니 미국 U.C.버클리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지난 4월 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이뤄진 인터뷰(본지 5월호)에서 “미국 경기는 아직 바닥을 치지 않았다”며 “한국의 기업들은 미국 경기 침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었다. 그 후 8개월이 지났다. 당시 7500선을 맴돌았던 다우존스는 1만 300대로 올랐고, 국내의 코스피 지수는 1400대에서 1600대로, 환율은 같은 기간 1300원대에서 1100원대로 내려앉았다. 경기 침체가 길어질 것이라던 티파니 교수의 예견이 틀린 것일까. 한국을 찾은 그를 2009년 11월17일, 서울 밀레니엄힐튼호텔에서 만났다.

“글로벌 경기는 적색으로  변해가는 노란색 깃발”

“최근 주식시장 회복 고무되지 말고 또 다른 위기 상황 대응책 준비해야”

티파니 교수는 “미국의 경기는 현재와 같은 장기 침체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며 “한국의 CEO들이 주식시장의 회복에 고무되지 말고 또 다른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책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번 인터뷰에서 미국 경기가 더욱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다우존스 등이 상승하면서 경기 회복이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많은데요.

“경기가 어느 정도 회복단계에 접어든 것은 사실이나,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경기 하락의 속도는 앞서 말했듯이 1930년대 대공황 때보다 빨랐죠.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경기 회복의 조짐이 증권가(Equity Market)에서만 생기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우존스 등 증시가 반년 전보다 올랐지만, 그만큼 실업률도 함께 상승했습니다. 증시와 실업률이 동반 상승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두고 미국 경기가 회복기에 접어들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최근 투자은행인 글루스킨 셰프의 수석전략가인 데이비드 로젠버그는 미국의 2009년 10월 실업률이 10%를 돌파하며 26년 만에 최고를 기록한 가운데 실업률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전했다. 로젠버그는 “2009년 초만 해도 실업률이 10%까지 갈 것으로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며 “일자리 없는 경제 회복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증시는 왜 오른 겁니까.

“2008년 3월부터 경기 침체에 따른 ‘공포로 무작정 주식을 팔던’(Panic Selling) 사람들이 주식 매도를 멈췄기 때문입니다. AIG, 씨티그룹, GM 등이 부도나거나 경영난을 겪었을 때, 주식 매도세가 극에 달했죠. 하지만 우선 미국 정부가 경기 부양책으로 7900억달러를 쏟아 부은 것이 어느 정도 효과적이어서 이런 주식 매도 추세를 막을 수 있었다고 봅니다. 일부에서는 시장에서의 과잉 자금 유통으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을까, 또 달러가 약세로 돌아서지 않을까를 우려했지만 큰 수준은 아니었죠. 결국 투자자들의 주식 매도 중단으로 인해 금융시장이 회복됐지만, 진정한 의미의 회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국가들의 주식 시장도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정부의 정책으로 인한 안정이라고 봅니다. 중국이 이번 사태로 5000억달러를 경기 부양을 위해 내놨고, 영국, 독일 등 유럽도 그랬습니다. ‘정부가 그냥 앉아서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공감대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일단 급한 불은 끈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실업률이 떨어지고, 소비자들이 실질소비를 통해 경기 활성화를 유도하지 않는 요즘의 실정에서 실질적 경기 회복이 이뤄졌다고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의 CEO들 중 상당수가 ‘더블딥’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더블딥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현재 글로벌 경기가 ‘V’자 중에 바닥을 치고 ‘V’의 중간까지 올라온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완전히 ‘V’자가 그려지기 이전에 회복세가 멈춘 상태에서 경기가 지속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완전하지 않은 ‘V’자가 계속 평평한, 일직선(Flat)을 그리는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 봅니다. 적색, 청색 신호로 표현하자면, 당분간 노란색의 경고등이 이어지는 상황이죠. 하지만 큰 악재가 나오면 언제든 적색으로 돌아설 수 있는 경기가 이어지리라고 봅니다.”

그의 정확한 영어 표현을 옮기면 ‘적색으로 옮겨가고 있는 노란 깃발’(Now Yellow Flag, but getting red) 이다. 그가 미국의 경기 침체를 바라보는 것이 지나치게 보수적인 것은 아닌지 싶어, 정확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도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이유가 뭡니까.

“경기 상승을 유발할 수 있는 요인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첫째, 미국의 소비심리가 되살아나고 있지 않습니다. 한국을 비롯해 수많은 나라들이 북미 시장을 가장 큰 시장이라고 외치는 이유는 미국이 땅이 넓어서도, 인구가 많아서도 아닙니다. 미국인의 소비패턴 때문입니다. 1970년대 중반까지 개인소비가 미국 전체 GDP의 65%를 차지했는데, 이제 미국사람들은 저축을 합니다. 한국인들에게 저축이 일상적인 일일 수도 있겠지만, 미국인들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저축 습관이 생겼다는 것은 전 세계의 경기에 변화를 예고하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성향의 미국인들이 실직으로 인해 유동성 위기에 시달립니다. 그리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큰코를 다친 은행은 더 이상 국민들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죠. 정부에서 아무리 설득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미국의 대공황기에는 경제력을 기준으로 하층부의 사람들이 자금난에 허덕였지만, 이번에는 중산층이 돈이 없어 허덕이고 있습니다. 이번에 실직당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시니어매니저(부장, 임원급)들입니다. 이들을 재고용하기 위한 방안을 세워야하는데, 이 부분이 어려운 겁니다.”

경기 회복을 위해 선행되어야할 조건은 뭡니까.

“중국의 대응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에서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 어떤 얘기를 했느냐에 주목해야 합니다. 제 생각으로 오바마와 후진타오는 전 세계의 경기 부양책에 대한 논의를 했을 겁니다. 흔히 세계 경제를 이끄는 강대국으로 G7, G20 등을 말합니다. 하지만 좀 더 솔직하게 말해보죠. 세계를 움직이는 두 축은 G2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정책에 따라, G7도 G20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상관없이 금번 두 나라의 논의로 경기 회복의 속도가 결정될 겁니다. 중국이 어떤 반응을 보였느냐에 대해 아직 알려진 바는 없지만, 저는 다소 부정적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중국이 과연 앞으로 소비를 할 것인가에 대해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세계 경제를 두 나라를 중심으로 보자면, 중국이 물건을 수출하고, 미국이 사들이고, 다시 미국 달러가 중국으로 들어가고, 중국이 미국의 채권을 사는 식의 순환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사들이는 기능이 현격하게 떨어진 겁니다. 결국 중국 내수시장에서의 소비(Internal Consumption)가 이뤄져야합니다. 더 나아가서 외국 제품이 중국 시장에서 팔려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번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부양책(Stimulus Plan)입니다. 가령 미국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헬스케어 시장이 전반적으로 뒤쳐져 있는 만큼, 미국의 업체가 이 업종에 진출하고 싶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중국의 일부 영역이 낙후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외국 업체가 진출해 성공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더구나 미국, 유럽 등 서양 회사들은 정서가 완전히 다른 중국에 진출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중국의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게 크니까, 이제 무임승차(Free Rider)의 입장에서 벗어나 동등하게 경쟁하자고 주장해 봅시다. 과연 이런 것들이 가능할까요? 제가 평가하는 후진타오 정부는 상당히 보수적인 집단입니다. 드라마틱한 변화를 싫어하죠. 더구나 중국은 세계 경기 회복에 못지않게 해안 지역과 내륙 지방의 균형적인 발전이 중요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가 중국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경기 부양책의 큰 축이 사라질 수 있으니, 그만큼 경기 회복이 늦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는 미국의 내수 상황 역시 그다지 좋지는 않은 편이라고 했다. “최근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4만 명의 병력을 추가로 파병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 명의 군사를 보내는데 소요되는 비용은 평균 100만달러로 추산됩니다.

단순계산으로 400억~500억달러를 추가로 소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요즘 미국 내부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이 더 이상 부시가 아닌 ‘오바마의 전쟁’으로 변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파병이 이뤄질 경우, 이는 현실이 될 겁니다.”

그럼 추가 파병에 들어가는 돈은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해답은 뻔합니다. 만약 이 일이 실행된다면, 미국의 경기 회복 속도가 더뎌질 수밖에 없고, 전 세계의 경기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질 겁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을 제외한 대다수 나라 수장들의 리더십이 그다지 강해보이지 않습니다. 브라운 영국 총리나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메르켈 독일 총리,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 등이 강력한 리더십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세계 경기가 동반 상승해야 하는 상황에서 세계 수장들의 리더십이 약하다는 것은 큰 걸림돌이 될 겁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CEO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선 최근의 주식시장 회복을 지나치게 크게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경기가 회복된 것이 아닐까’하며 고무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앞서 말했듯 언제든 적색 경고등으로 바뀔 수 있는 노란색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위기는 특정 기업이, 특정한 국가가 잘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의 CEO들이 2010년 11월, 미국의 중간선거와 아프간 파병 문제, 유럽의 대응 등을 총체적으로 감안해 향후 계획을 세울 것을 조언하고 싶습니다.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실업률이 정체 또는 하락세로 바뀌어 내수 소비가 늘어나고, 미국에서 SOC 공사 발주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가 나오는 때, 또 중국에서 추가 부양 방안 등이 나오는 시점이 경기 회복의 순간일 겁니다. 또 북미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십시오. 미국의 다우존스 지수가 전고점 수준인 1만4000을 넘어서고, 미국인들이 언젠가 과거처럼 소비할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한국은 중국과 인접한 지역에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이런 이점을 최대한 살려 중국의 내수시장 뚫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향후 기업의 성쇠를 좌우하는 키가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