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출판계가 요즘 들떠 있다. 세계 출판계가 한국에 ‘주빈국 러브콜’을 잇따라 날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끝난 프랑크푸르트 도서박람회가 기폭제가 됐다. 이미 2007년 3월 프랑스 파리 국제도서전과 2009년 이탈리아 볼로냐 아동도서전 조직위원회가 한국을 주빈국으로 모시겠다는 요청이 들어온 상태다. 2005년은 국제 출판계 ‘변방’에서 ‘주연’으로 도약하는 해가 된 셈이다. 물량 기준 세계 7대 출판대국이라는 한국이 이젠 ‘질’(質)에서도 출판 선진국으로 변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출범 만 2년이 된 한국 출판 1번지 파주 출판도시를 찾아갔다.

 산신도시에서 자유로를 타고 북쪽으로 15분 남짓 차를 몰면 파주출판단지IC가 나온다. 행정구역상 지명은 경기도 파주시 교하면 문발리.

 이곳이 한국 출판가의 새로운 메카로 떠오른 파주출판문화정보국가산업단지다. 출판계 입지로는 글(文)이 일어난다(發)는 지명에 딱 맞는 궁합인 셈이다. 이기웅(65) 파주출판단지협동조합 이사장(열화당 대표)은 “입주하고 보니 지역명과 딱 맞아 인연치곤 신기하다”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7년 전 첫 삽을 뜬 후 2002년 7월 파주출판도시 내 공장 가동업체 1호인 보진재를 비롯, 국내 굵직굵직한 출판인쇄사들이 대이주를 시작했다. 한길사, 창비, 민음사, 열화당, 효형출판, 문학동네, 보림, 동녘, 돌베개 등 현재 이곳에 입주를 확정지은 업체만 210개사. 현재 105개 업체가 공장을 돌리고 있다. 각개격파식으로 움직이던 출판업계가 한데 뭉치고 있는 셈이다.



 46만평 105개사 가동 중

 파주출판도시는 2003년 말부터 본격 입주를 시작했지만, ‘서울발 파주행’ 출판사 행렬을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현재 76개사가 건물 건축 중이고, 미착공 29개사도 곧 파주본사 시대를 연다. 건물마다 오가는 트럭의 굉음과 공사장 망칫소리만 들어도 출판도시는 여전히 ‘진행형’임을 알 수 있다. 한철희 돌베개 대표는 “국내 2만여 출판사 중 연간 10여종 이상 책을 내는 출판사는 1500여개로 추산된다”며, “주요 출판사 중 50~60%는 파주로 왔다”고 말한다.

 특징은 출판사만의 도시가 아니라 인쇄, 서적유통, 지류업체 등 출판문화의 종합 컴플렉스라는 점이다. 인쇄업체로는 보진재, 삼덕산업, 신일문화사 등이 있고, 물류업체로는 북센, 지류업체론 청구페이퍼 등이 대표적이다. 송영만(52) 효형출판 대표는 “이곳은 책의 기획, 생산, 유통에 이르는 하나의 출판 테마도시”라고 말한다.

 이곳 사람들은 파주출판도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최초의 시도이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 외곽의 헌책방 마을인 ‘헤이온와이’나 벨기에 ‘레디’ 등은 규모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한 출판사 사장은 “그곳이 ‘북 빌리지’(책마을)라면, 파주는 ‘북시티’(책도시)”라고 설명한다. 지난해 국제출판인협회(IPA=International Publishers Association) 안나마리아 까바네아스 회장이 방문했을 때도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는 후문이다.

 출판단지 관리업체인 한국산업단지공단 김용주 파주지부장은 “출판사에서 책을 기획, 편집, 디자인을 통해 생산하면 바로 옆 인쇄사를 통해 인쇄와 제본, 제책을 한 후 출판물종합유통센터를 통해 전국 독자들에게 공급하는 원스톱체제”라며, “비용절감과 함께 한국 출판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산파역을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세계 첫 북시티… 외관은 건축 전시장

 북시티의 첫 느낌은 이곳이 출판단지인지, 예술단지인지 분간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단지 내 건물 전체가 하나의 건축 전시장에 온 느낌을 준다.  실제 국내·외 저명한 건축가 50여명이 책의 개념을 살려 건물마다 개성을 입혀 건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판단지IC를 빠져나오면 첫눈에 띄는 게 안중근 의사의 동상이다. 출판단지 상징인물로 안 의사를 택한 게 궁금했다. 답변은 그럴싸했다.

 “안 의사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가시가 돋친다(一日不讀書 口中生荊)며 독서 중요성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단지 입구에서 1㎞쯤 오면 전통 한옥 가옥이 한 채 눈에 띈다. 지난 2000년 전북 정읍에서 고스란히 옮겨다놓은 ‘김동수 한옥’이다. 이기웅 이사장은   “서구식 건물과는 정반대 개념으로 이곳을 찾는 외국인들이 꼭 들러보는 파주 북시티의 포인트”라고 말한다.

 김동수 한옥을 따라 들어서면 빨간색 철골로 만든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가 눈에 들어온다. 협동조합과 산단공 파주지부가 들어선 파주출판단지의 헤드 쿼터인 셈이다. 건물 실내를 마룻바닥처럼 깔아놓은 이곳의 외관은 포스코가 ‘100년이 지나도 쓸 수 있는 특수 철골’로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단지 전체가 건축도시라 TV CF와 가수들 뮤직비디오 촬영장으로도 인기가 높다. 최흥용 파주탄현단지 경영자협의회 간사는 “박주영의 싸이언광고, 서태지와 채연의 뮤직비디오에 이어 최근엔 그룹 지오디 7집 타이틀곡인 ‘투러브’ 앨범도 이곳을 무대로 찍었다”고 들려준다. 김근상 출판조합 부장은 “주말엔 건축가와 건축과 학생 등 200~300명이 방문을 해 일요일에도 순번을 정해 당직을 선다”고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건물들 공통점은 하나같이 4층 이하로 키가 작다는 점. 인근 군부대 때문에 15미터 고도제한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높이가 채 200m가 안 돼 보이는 심학산에서 내려다보면 전부 눈 아래 풍경들이다.



 과거 폐하천 늪지가 출판 메카로

 공사장 뚝딱거리는 망치소리와 늦가을 정취로 단지는 을씨년스러워보였지만,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출판경기가 바닥이라 불황을 탓할 것이란 예측이 엇나간 셈이다. 넥타이 차림이 거의 없다는 점도 특징이다. 스스로 근처 예술인마을인 헤이리와 ‘사촌관계’라는 이곳 사람들 말처럼 비즈니스맨보다는 예술가 기질이 강했다.

 권종택(60) 보림출판 대표는 “말하자면 출판은 1년 365일 불황인 업종”이라며, “경기 좋다고 안 팔릴 책이 더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웃어넘긴다. 이건복 동녘 대표도 “많이들 어렵다고 하는데, 특별히 좋진 않은 건 아닌 것 같다”고 무덤덤한 반응이다.

 그보단 최근 세계에서 몸값이 높아진 한국 출판의 위상에 대한 자긍심이 엿보인다. 2007년 프랑스 파리 국제도서전과 2009년 이탈리아 볼로냐 아동도서전 조직위원회가 한국에 주빈국 요청을 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차기 IPA총회(2008년)가 한국에서 개최된다는 점이 파주 사람들의 흥을 돋우고 있다.

 사내로 좁혀 본다면 ‘월세살이’에서 ‘자가 사옥’으로 신분이 바뀐 점도 좋아했다. 과거 서교동과 마포 일대에 50평 남짓하던 공간에서 현재는 대부분 최소 200평 이상 사무환경이 개선된 점에 모두들 만족해한다. 한철희(48) 돌베개 대표는 “4층을 개조해 가정집을 꾸며 아예 집도 이사해 왔다”며, “1층은 북카페로 개조할 생각인데, 과거 같으면 상상도 못 할 혜택”이라고 밝혔다.

 파주 북시티는 현재 출판과 건축이라는 테마에다 생태환경도시라는 테마가 얹혀진 도시다. 출판단지를 가로지르는 ‘갈대 샛강’만 봐도 그렇다. 가로수로는 단지 내 유일한 산자락인 심학산 자생수종인 떡갈나무와 소나무, 자작나무로 깔아놓았다. 일반 신도시에서 보이는 콘크리트 고수부지가 아닌 갈대와 억새가 자연 그대로 보존된 샛강이 다른 점이다.

 북시티가 파주에 들어온 데는 아픈(?) 사연도 있다. 바로 돈 때문이다. 당초 결정한 일산 입지를 포기한 이유다. 94년 파주로 입지 변경 때 일산 조성원가는 평당 170만원대. 북시티 본격 입주가 시작된 2003년 파주 분양가 평당 74만6000원에 비해 2.3배 비쌌기 때문이다.

 현재 파주 출판도시는 10㎞ 떨어진 월롱면에 LG필립스LCD단지, 차로 10분 거리에 교하신도시와 함께 파주 3대 명물로 꼽힌다. 덕분에 부동산값도 들썩거린 지 오래다. 요즘 이곳 땅값만 평당 150만~220만원대를 호가한다. 2년 전 분양가보다 2~3배가량 뛴 셈이다. 2년 전에 비해 건축비도 평당 320만원대에서 요즘엔 500만원까지 치솟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대중교통, 병원 없어 불편

 불편한 점도 없지 않다. 일단 대중교통이 없다. 1900여명 입주사 직원들은 자가용이 없으면 애를 먹는다. 출·퇴근 때 협동조합이 자체 운영 중인 편도 1000원짜리 셔틀버스를 놓치면 낭패를 보기 일쑤다. 병원과 약국 등 편의시설도 없다. 호프집은 곧 들어올 계획이지만, 퇴근 후 한잔은 일산이나 파주 시내까지 나갈 때가 많다. 그나마 11월16일 기업은행 출장소가 문을 열어 공과금 내기는 쉬워졌다. 지난해 6월 단지 내 쇼핑센터인 ‘이채쇼핑몰’이 개업했지만, 아직 찾는 사람이 많진 않았다.

 오후 5시30분 파주 출판도시는 서서히 하루 일과를 접고 있다. 뻥 뚫린 공간이라 서울보다 2~3도는 낮게 느껴지는 이곳은 6시가 넘자 공장불이 하나둘씩 꺼졌다. 밤엔 재빨리 귀갓길을 서두르다 보니 인쇄공장 몇 곳을 빼면 ‘공동화 지대’처럼 어두워졌다.

 자유로를 탈까 했더니 서울 방면엔 편도 2차선이 꽉 막혀 있었다. 이 때문인지 자유로가 최근 왕복 8차선 도로로 확장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Interview 1  30년간 어린이 그림책 펴낸 권종택 보림 대표

 사내 인형극장부터 일러스트 전시장까지 둬

 린이 그림책 전문출판사인 보림 권종택(60) 대표는 외모가 영화감독 같다. 빨간색 캡모자에 청바지 차림이다. 머리는 갈색물을 들였고, 하얀 수염은 자연 그대로이다. 4층 집무실 탁자엔 솔잎도 깔아놓았다.

 1층에 인형극 전용극장과 자사 출판 책 전시장이 있고, 2층엔 일러스트 전시장인 ‘홍성찬 일러스트레이션 갤러리’까지 보였다.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편집실이 고작인 여느 출판사와 달리 편집기획실은 세미나실까지 갖춘 널찍한 공간이었다.

 2003년 서울 홍대 앞에서 본사를 파주로 옮긴 뒤 보림에 생긴 변화다. 권 대표는 “100평을 쓰다 주차장 포함 850평을 쓰니 근무환경이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말한다. 대신 “빚 없이 살다 요즘엔 이자 내며 산다”며, “며칠 전 경비를 뽑아 봤더니 유지비는 조금 더 들더라”면서 웃는다.

 1976년 회사 설립 후 30년 가까이 어린이 그림책을 펴 온 그답게 최근 동요CD 18장을 한꺼번에 내놓았다. 1999년부터 선보인 ‘보림어린이 음반’ 시리즈 일부다. 이번까지 합치면 이 음반 시리즈는 총 23장. 출판사에서 웬 음반이냐는 질문에 그는 “어린이도 음악을 가려듣는 청중”이라고 말한다. 전래 자장가를 묶은 ‘자미잠이’와 이문구 선생의 시에 백창우씨가 곡을 붙인 ‘개구쟁이 산복이’ 등이 실렸다.

 그는 국내에선 창작그림책을 가장 많이 낸 출판인으로 꼽힌다. 돈이 되는 학습교재나 만화에 전혀 손대지 않은 것도 그만의 고집이다. 최고 히트작은 1996년부터 20여편을 출판한 솔고나라시리즈. 2003년부터 파주 사무실을 열었지만, 지난 9월23일 새 사옥 입주식을 연 권대표는 “어린이책은 베스트셀러보다는 스테디셀러가 경영 면에서 유리하다”면서 “1년에 약 3000권씩 팔리는 아이템이 최고”라고 말한다. 보림의 연간 매출액은 국내 영세한 출판업계에선 비교적 많은 약 60억~70억원 수준.



 Interview 2  80년대 대표적 사회과학 출판사 이건복 동녘 대표

 “386세대면 <철학에세이>, <아리랑> 다 봤을 걸요”



 90년대 업종(전공)을 바꿨지요. 요즘엔 여성학, 철학, 건축학 책을 많이 냅니다.”

 1980년대 사회과학 서적 전문출판으로 유명했던 동녘의 이건복(52) 대표. 그는 “90년대 중반부터 사회과학 출판사들이 종적을 감췄다”며, “출판업도 시대 흐름에 맞춰 변신해 온 분야”라고 말한다.

 386세대라면 대학 때 ‘필독서’로 통했던 <철학에세이>, <아리랑> 등이 동녘에서 나온 책들이다. 이 대표 자신은 <아리랑> 출간 때 도망을 다녔고, 1987년 독일 여성해방 운동가였던 <클라라 체트킨>을 냈을 땐 구속까지 겪어야 했다. 그는 “요즘엔 <철학에세이>보다 히트작을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꼽는다”고 말한다.

 요즘 나온 책들을 봐도 <지구과학이 암기과목이라고?>,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 <거꾸로 읽는 도시, 뒤집어보는 건축>, <새 여성학 강의> 등 ‘색깔’이 많이 달라진 걸 알 수 있다. 지난 8·15 광복절에 맞춰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삶을 조명한 <아리랑> 개정판을 내긴 했지만, 인문과학 쪽에 주력하고 있다.

 서울 불광동에서 파주로 본사를 옮긴 건 2003년 12월. 과거 60평대 사무공간은 건평 400평짜리 4층 건물로 바뀌었다.

 땅을 분양받아 일본 건축가에 건축 설계를 맡겼다는 동녘 사옥은 기둥과 보를 없애 실제보다 훨씬 넓어 보이는 게 특징. 건물 내에 정원도 꾸며 놓아 창의성이 생명인 출판사 환경으로는 제격이라는 게 이 대표 설명이다.

 이사 후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른다”고 말하는 이건복 대표는 “최근 파주가 많이 조명되면서 단지 내 유일한 야산인 심학산을 갖고 일부 기획부동산들이 장난치는 게 아쉽다”고 꼬집었다.

 현재 동녘은 자매 회사인 친구미디어도 함께 운영 중이다.



 Interview 3  2005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한국관 기획단장 지낸 송영만 효형출판 대표

 “경기 나빠도 출판 코리아 위상은 상한가”

 영만(52) 효형출판 대표는 보통 20~30년간 출판업에 몸담아 온 다른 출판인과 조금 다르다. 회사 설립도 1994년으로 역사가 짧은 편. 그는 <사상과 정책>, <정경문화> 등 사회과학 전문지 편집장을 거쳤고, <한국논단> 편집주간을 지낸 ‘글쟁이’다.

 회사 설립 후 자신 전공분야인 사회과학에 손을 댔다 4년간 헤맸다는 송 대표는 “IMF 직후 과거와 선을 끊겠다는 뜻에서 작두로 조각조각 창고에 쌓인 2만권을 잘라냈다”고 말한다. 이후 그가 집중해 온 쪽은 인문과학 분야다. 명함에 새겨진 ‘인문의 예술화, 예술의 교양화, 과학의 인문화’가 그가 내건 캐치프레이즈다.

 11년간 130여종 책을 펴낸 효형출판의 대표작은 <화첩기행>, <역사스페셜> 등이다. 최근엔 서울대 교수 3인이 ‘생명’을 화두로 펴낸 <나의 생명 이야기>가 히트작이다. 세계 최초로 복제배아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한 황우석 석좌교수, 사회적 사안에 대해 생물학적 해석을 시도한 최재천 생명과학부 교수, 10년 넘게 화폭에 생명을 담아 온 김병종 미대 교수 등 3인이 주인공.

 그는 “파주 북시티는 마치 제조업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처럼 (책의) 생산, 인쇄, 유통이 한 군데 몰려 있어 물류비가 상당히 감축됐다”고 효과를 말한다. 실제 2003년 말 효형출판이 파주 본사로 이전하자, 거래 인쇄소인 대신문화사와 유통사인 문화유통북스가 따라온 경험이 있다.

 지난 10월 끝난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한국관 기획단장을 맡은 송 대표는 “출판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계기였다”고 말한다. 출판도시문화재단 감사이기도 한 그는 “벌써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 볼로냐, 멕시코 과달라하라 도서전에서 한국 주빈국 요청이 물밀듯 들어오는 것만 봐도 그렇다”고 말한다. 특히 그는 “탈아입구(脫亞入歐)라는 말처럼, 한국 출판계가 아시아 무대에서 족하지 않고 서구 세계로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Interview 4  회사 4층에 살림집 차린 한철희 돌베개 대표

 “건물 짓는 데 거금 썼습니다”

 철희(48) 돌베개 대표는 “건평 320평 4층 건물을 짓는 데 총 16억원을 썼다”고 말한다. 출판사로선 ‘거금’을 쓴 셈이다.

 투자 결정 땐 엄청 망설였다는 그는 “입주 2년이 지나고 보니 잘한 선택”이라고 만족해 한다. 과거 서울 서교동 70평 사무실 때보다 (근무 여건이) 훨씬 나아졌기 때문이다. 최근엔 제2회 한국출판문화대상의 일반도서 부분에서 <조선왕실 기록문화의 꽃, 의궤>로 대상을 수상하는 기쁨도 누렸다. 1층엔 자사 책들로 북카페를 개설할 계획을 말할 땐, 얼굴에 엷은 미소가 담겼다.

 특히 그는 회사 4층을 살림집으로 꾸며 아예 가족이 이사해 온 경우. 단순히 일터뿐 아니라 삶터를 바꾼 셈이다. 한 대표는 “현재 파주 북시티에 국내 주요 출판사만 따지만 ‘절반의 전력’이 이동한 셈”이라며, “심학산과 샛강을 보며 사니 건강에도 좋다”고 파주 예찬론을 편다.

 돌베개는 파주 입주 후 식구를 두 배로 늘렸다. 서교동 근무 땐 사람이 필요해도 공간이 협소해 뽑지 못했던 인력을 10명가량 늘렸다. 경기가 좋냐고 묻자 그는 “출판경기가 좋을 리 있냐”면서도, “특별히 나쁠 건 없다”고 대답했다.

 사실 돌베개는 이해찬 국무총리가 설립한 출판사로 유명하다. 1979년 출범 당시부터 줄곧 동녘과 같이 사회과학 서적을 출간해 오다 한 대표가 바통을 이어받은 93년부터 인문과학 분야로 방향을 틀었다. <전태일평전>과 <백범일지>가 대표적인 히트작이다. 특히 신영복 선생의 책을 많이 펴낸 출판사로도 유명하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부터 <나무야, 나무야>, <강의>까지 도맡아 냈다. 특히 2004년 말 펴낸 <강의>는 올해 6월 말까지 인문 분야 1위를 차지한 베스트셀러다.

 돌베개는 창간 후 26년간 300여권밖에 내지 않았을 만큼 책을 대량 양산하는 출판사가 아니다. 단순히 ‘돈’을 좇는 출판사가 아닌 ‘교양’을 찾는 원칙 때문이라는 게 한 대표 경영 철학이다.



 Interview 5 이기웅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협동조합 이사장

 “파주출판도시 미니어처 세계 출판가 명물 됐지요”

 11월11일 오후 2시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지하1층 식당에서 만난 이기웅(65)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협동조합 이사장. 그는 출판도시 출범의 산파역이다. 1988년 북한산 산행 때 출판도시를 기획했던 주인공이고, 18년째 위원장, 이사장 감투로 일하고 있다.

 인터뷰 당시에도 출판단지 2단계 공사를 위해 건축심의 회의를 하고 있는 와중에 30분 짬을 내 그를 만났다. 사복 차림인 그는 “6개월 전 큰 수술을 해 몸이 좀 불편하다”고 했다. 지난 10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집행위원장을 지낸 그를 만나 국내 출판계 현안과 향후 파주출판도시 비전을 들어봤다.



 출판단지를 둘러보니 건물들을 ‘참 예쁘게 지었다’는 느낌이 든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 출판단지보다는 ‘출판도시’로 불러줄 수 없겠나. 단지 하면 너무 ‘드라이(Dry)’하지 않은가. 도시는 촉촉한 곳이다. 문화가 있고, 생활이 있고, 예술도 있다. 우리는 도시라고 부른다. 건물은 내용을 담는 ‘그릇’이다. 단순히 아름답다는 말보다는 그릇으로서 완성도가 높은 건물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다.

 혹시 벤치마킹한 세계적인 유명 출판도시가 있었나.

 = 세계엔 ‘출판도시’가 없다. 파주가 유일하다. 우리가 그걸 만들었다(이때 그의 표정에선 자부심이 묻어났다). 파주는 벌써 세계 출판가에서 명소로 꼽힌다. 프랑크푸르트 도서박람회 때도  (파주출판단지의) 300분의 1 크기 모형이 화두가 됐다. 출판인들뿐 아니라 건축가, 도시개발가 등의 발길이 이어졌다.

 현재 그 모형이 유럽을 돌며 전시중이라는데….

 =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현재는 베를린에 있다. 다음 주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간다. 그 다음엔 영국 런던으로 갈 것이고…. 그 밖에도 오스트리아 비엔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핀란드 헬싱키 등 8개 도시가 전시 신청을 했는데, 우리가 퇴짜를 놓았다. 아무래도 경비도 많이 들고 해서 그랬다. 집(파주)에 돌아오려면 내년 5~6월은 돼야 할 것 같다.

 외국에서 특별히 전시요청이 쇄도한 까닭은.

 = 아무래도 세계 초유의 출판도시에 대한 놀라움일 것이라고 본다. 출판이라는 하나의 테마를 갖춘 도시는 유례가 없기 때문이다. 출판인들뿐 아니라 건축가, 도시개발가 등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파주 출판도시가 국내 출판업계에 경제적으로도 도움을 줬다고 보나.

 = 물론이다. ‘돈’으로 따진다면 한국 출판에 대한 세계적 관심도가 높아졌다. 그 얘기는 곧 국내 출판물의 수출에 플러스가 됐다는 말이다. 쉬운 예로 파주 북시티 내 인쇄소다, 그러면 일단 점수를 따고 들어가는 식이다. 외국 출판인들의 한국 방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엔 안나마리아 카바네아스 국제출판인연합회장이 직접 파주를 방문하기도 했다.

 조합 결성이 벌써 20년이 다 되어 간다. 출판도시를 기획한 계기는 뭔가.

= 아마 1988년 서울올림픽 끝난 직후였던 것 같다. 몇몇 출판인들끼리 한번 뭉쳐 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책을 만들어 내는 환경이 너무 열악했기 때문이다. (책의) 생산, 편집, 기획, 유통, 보관이 전부 제각각 떨어져 있어 비용도 많이 들었다. 이를 한 군데 모으면 비용절감은 물론 시너지가 나지 않겠냐는 생각에서였다. 출판도 하나의 산업이지 않나. 한마디로 국내 출판업계의 공간적 재배치라고 할까. 이게 바로 ‘기업도시’ 아니겠는가.

 기자도 둘러보니 파주가 실제 출판 기업도시라는 데 동의한다.

 = 정부가 인정한 기업도시는 아니지만, 진정한 기업도시는 파주라고 본다.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 하나 유치했다고 기업도시 타이틀이 붙는 건 말이 안된다. 46만평 부지에 출판업종만 100여개사가 몰려 있는 파주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기업도시다. 현재 정부가 발표한 ‘기획도시’를 출판인들은 한 20년쯤 전부터 기획한 셈이다.

 내년부터는 파주 출판도시 2단계 공사가 들어갈 거라고 하던데….

 = 2006년부터 2단계 공사를 진행한다. 약 500~600개 회사의 추가 입주가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1000여개 출판, 인쇄, 지류, 유통업체가 다 모이게 되는 셈이다.(그는 완공 예정이 언제냐고 묻자 “그건 아무도 모른다”고만 답했다. 홍보책자엔 2008년이 완공 목표로 찍혀 있다.)

 인터뷰가 끝난 뒤 그는 “최근 출판가 불황엔 출판인들 스스로 자성해야 한다”며, “빈약한 기획엔 아무리 돈을 부어도 소비자(독자)가 외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