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미국 캘리포니아 ‘길 잃은 천사들의 도시’ 로스앤젤레스다.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는 도도 모바일(DoDo Mobile)이라는 회사로 TGS Wireless Group에 속해 있다. 나는 한국의 모바일콘텐츠(게임 등)를 수입해 미국 시장에 맞게 변환시켜 되파는 일을 하고 있다. 2004년 10월 말 미국 땅을 밟았으니 어느새 만 1년이 지나갔다.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어색하지 않지만, 당시 미국에 왔을 때만 해도 인생이 이렇게 전개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4년 전 대학(연세대 인문학부)을 졸업한 나는 졸업 후 IT 및 모바일 업체에서 3년 동안 일을 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IT 강국인 데다가, IT 분야는 한국을 이끌어 가는 산업으로 이 분야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게 그다지 나쁘진 않았다. 그러나 직장생활 3년이 지나자 해외 경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회사에 해외연수 프로그램이 있어 응모를 했지만 번번이 미끄러지곤 했다.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는 해외 경험이 있는 ‘유학파’에게만 연수 기회를 우선적으로 부여하고 있어 내 차례가 오려면 까마득했다. 결국 나는 ‘회사에서 보내주지 않는다면 내 스스로 길을 찾아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직장생활을 계속하면서 또 다른 무언가를 준비한다고 생각하자, 생활에 활력소가 되었다.



 해외연수 경험 한 번 없이 해외취업 도전

 기회가 찾아온 건 2003년 겨울이었다. 직장동료가 우연히 건넨 신문을 읽다가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가할 지원자를 뽑는다는 기사를 봤다. 곧바로 광고를 낸 산업인력공단 홈페이지에 이력서를 올렸다. 당시 심정으로는 ‘어디 한번 도전이나 해 보자’는 심정이었다. 서류를 접수하고도 한참이 지났지만 소식이 없었다.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을 즈음인 2004년 봄, 1차 합격통지가 나왔다. 합격통지와 함께 곧바로 영어면접이 치러졌는데, 역시나 합격을 했다.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경험 삼아 넣어 보자는 심정이었는데, 두 단계 관문을 통과하자 ‘잘하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첩첩산중, 미국 현지에서 온 현지인과 전화인터뷰를 4~5회 치러야 했다. 전화인터뷰는 한 달 간격으로 기다렸다가 치러야 했다. 유학은커녕 어학연수도 받아본 적 없던 나는 전화로 영어를 배우는 과정을 통해 시험을 준비했다. 수차례의 인터뷰가 끝난 뒤 CDSNET라는 미국 IT회사의 마케팅부서 인턴으로 최종 합격통보를 받았다. 1년간 머물 숙소와 체류 경비 전액을 제공받는 조건이었다. 첫 도전에서 뜻밖의 성과를 거두다니, 나 스스로도 잘 믿기지 않았다. 설레는 가슴을 안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년 전, 휴가를 이용해 미국 여행길에 오른 적이 있는데, 이번이 두 번째 미국행이었다. 단순한 여행의 설렘과는 다른, 도전과 흥분, 불안이 뒤섞인 미국행이었다.

 막연한 불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은 현지 업체에서 인턴으로 출근한 지 채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1년간 인턴십으로 일하는 것으로 되어 있던 애초의 약속과는 달리, 인턴기간은 3개월에 불과했다. 3개월 뒤엔 자칫하면 소득 없이 귀국해야 할 상황이었다. 황당하기도 하고 화도 났지만, 현실은 냉정하지 않은가. 회사 측은 인턴기간이 끝나면 고용에 대해서는 부담이 전혀 없는 상황이다 보니, 결국 나는 내 힘으로 취업 준비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기왕 이렇게 된 것,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기로 했다.

 3개월의 인턴기간이 끝나고 매일 아침 도서관으로 출근(?)을 했다. 도서관 컴퓨터를 이용해 하루 종일 취업 대상 회사를 찾아보고, 이메일로 이력서를 보내기 시작했다. 얼마나 연락이 올까 걱정했는데, 뜻밖에도 곧바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에서 모바일 업체 기획자로 3년간 근무했던 경험을 눈여겨봐 준 덕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일했던 분야가 IT 및 모바일 분야였던 만큼 그 계통의 회사에 모두 이력서를 넣는 ‘선택과 집중’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몇 번의 면접을 거친 끝에 나는 지금의 회사에 인턴이 아닌 정식 직원으로 취업할 수 있었다. 1년에서 3개월로 짧아진 인턴기간이 결과적으로는 몸에 좋은 쓴 약이 된 셈이다.



 3년간의 근무 경력이 취업에 큰 도움

 내가 입사한 TGS Wireless Group은 5개의 독립회사로 구성돼 있다. 그 중 내가 근무하고 있는 도도 모바일은 모바일컨텐츠(휴대전화에 공급되는 게임을 연상하면 된다)를 미국 주요 통신사에 공급한다. 미국 현지에서 발행하는 한 무선통신 관련 잡지는 서울을 ‘무선통신의 세계 수도’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미국에서 요즘 한창 EVDO라는 게 유행하는데, 한국에서는 이미 2년 전에 유행이 지나간 것이다. 2년 전 내가 한국에서 MSN 모바일 기획자로 일하고 있을 때, 미국 현지에서 나왔던 담당자가 EVDO 동영상서비스를 하고 있는 한국 무선인터넷 콘텐츠를 보고 놀라기도 했다. 그때도 ‘모바일콘텐츠는 한국이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막상 미국에서 일해 보니 한국이 모바일콘텐츠에서 핸드폰에 이르기까지 무선강국이라는 걸 다시 실감하게 된다.

 나의 주요 업무는 한국의 모바일게임을 미국 현지에 들여오는 일이다. 지금까지는 몇몇 우수한 모바일게임을 미국시장에 공급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미국 내 모바일콘텐츠시장은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다. 한국의 유명한 업체들도 내가 다니는 회사와 같은 미국 내 공급업자를 통해 미국에 소개된다. 하지만 어렵게 시장에 진출한 만큼 수익성은 한국시장에 비해 4배 이상 높다. 나는 비록 미국회사를 다니지만, 앞으로 더욱 많은 한국의 우수한 콘텐츠를 발굴하고, 그들의 미국시장 진출을 돕고 싶다.

 사람들은 내가 미국에 인턴으로 와서 취업했다고 하니까 내가 영어를 굉장히 잘하는 줄 안다. 그런데 나는 내 또래들이 많이 가는 해외 어학연수도 한 번 가 본 적이 없다. 한국에서 10여년간 배웠던 영어가 전부다. 그렇기 때문에 입사 1년이 지난 지금도 배운 영어를 실생활과 업무에 적응시키는 것이 여전히 부담스럽고, 가장 힘든 일이다. 한국 업체에서 가져온 모바일콘텐츠를 미국시장에 맞게 새롭게 단장하고, 미국시장에 맞는 인터넷전화서비스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게 주요 업무인 만큼, 모든 기획서를 영어로 만들고, 모든 대화도 영어로 이뤄진다. 지금도 일주일에 2회 저녁시간을 이용해 영어공부를 따로 하고 있다. 다른 사람보다 늦게 출발한 만큼 두 배로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미국에 오기 전까지, 내가 아는 미국은 시트콤이나 영화 속에서 본 것이 전부였다. 1년 동안 겪어 보니 미국인들은 무척 소박하고 합리적인 생활을 한다고 느껴진다. 높은 물가 속에 살아가기 위해 두 개의 직업을 갖고 있는 건 흔한 일이고, 모든 것은 가족 중심으로 돌아간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회사 생활에 충실하지만, 주말이면 가족 단위로 외출하는 것이 이들의 대표적인 라이프스타일이다. 여기 캘리포니아는 해변이 가까운데, 해변에 가 보면 대부분 가족 단위로 나들이를 나온다.

 나의 하루 일과는 오전 7시 30분에 시작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텔레비전 뉴스채널을 틀고 빵과 스프로 가볍게 아침식사를 한다. 아침식사를 준비하면서 점심도시락을 챙긴다. 대개 샌드위치나 소시지, 빵 등으로 간단히 점심식사를 하는 게 미국 사무실 풍경이다. 대부분의 회사가 회사 내에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을 별도로 갖추고 있다.



 걸음마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해야 정착 성공

 업무는 보통 저녁 6~7시쯤 끝난다. 하지만 내 업무 특성상 한국 회사들과 접촉할 일이 많기 때문에 저녁식사는 회사에서 하고, 한두 시간 정도 야근을 한다. 저녁 때 집에 돌아오면 보통 10시 정도 된다.

 주말엔 친구들과 해변에 가거나 영화를 보면서 지낸다. 캘리포니아는 겨울에도 별로 춥지 않아 1년 내내 따뜻하고 맑은 날씨다. 무엇보다 이곳엔 둘러볼 곳이 많아 처음 왔을 때는 주말마다 관광지를 찾아다녔다.

 돌이켜보면 엉겁결에 미국 취업이 결정되었고, 미국에 건너왔다. 막상 현지에 와서 계약기간 축소라는 어려움을 겪고 나니, 지난 1년의 미국 생활 동안 수년간 해야 할 경험을 한꺼번에 다한 느낌이다. 내가 겪은 경험에 비춰볼 때, 해외취업은 한국에서 어떤 준비를 했든지간에 모든 것을 미국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를 갖는 게 좋다고 본다. 언어에서부터 환경까지 모든 것이 새롭기 때문이다. 때때로 스스로 바보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때론 학생이 되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설 때 비로소 해외에서 직장생활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으로 취업하는 길은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미국에서 학교를 졸업하면 주어지는 OPT를 통해 1년간 취업허가서(Work Permit)를 받아 회사에서 인턴근무를 하고 같은 회사에 취업하는 방법이 있다. 그리고 내가 취업을 했던 것처럼, 인턴십 프로그램으로 취업허가서를 받아 인턴프로그램을 마친 뒤 취업을 하는 방법이 있다.

 일단 해외취업을 꿈꾼다면, 전문적인 분야에서 능력을 키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 준비된 자에게는 기회가 온다는 말이 있듯, 능력만 있으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또한 전문능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가고 싶은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일이라는 걸 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