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코퍼레이션(뉴스 코프. News Corp.)의 CEO는 40년 가깝게 자신의 생각을 기사에 반영하고 자극적인 오락 거리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이 거물은 폭군이 아니다. 그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힘이 있지 않으며, 두려워할 만한 악귀가 아니다.

“루퍼트 머독은 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언론 거물이다”

그리 된 지 별로 오래되지 않았다. 자신이 반체제 반군으로 보이기를 좋아하는 뉴스 코퍼레이션의 회장 겸 CEO는 오늘날 궁극적인 인사이더다. 어떤 언론 경영인도 세계 여러 지도자에게 강력한 개인적 영향력을 갖지 못하며, 그 까닭은 아무도 자신과 가까운 거물을 친구에 대한 보상과 적군에 대한 처벌로 기꺼이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머독은 영국 총리 둘, 뉴욕 시장 여럿, 몇몇 미국 대통령의 당선 또는 낙선에 도움을 주었다. 그는 또한 철두철미한 세계 자본주의자이며, 호주인에서 미국인이 되었고, 진짜 집은 바로 제트기다. 미국, 아시아, 유럽의 4000만 가입자에게 위성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폭스 무비와 텔레비전, 케이블 네트워크, 홍콩에서 뉴욕에 걸친 신문사들, 여러 출판사와 이제 막 출범한 인터넷 사업까지, 어떤 언론 기업도 뉴스 코프보다 더 큰 세계적 세력권을 주장하기 어렵다. 뉴스 코프의 지난해 총수입 250억달러의 거의 반이 미국 바깥에서 벌어들인 것이다.

그렇다 해도 언론 제왕인 머독의 위상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보면, 20년에 걸쳐 싸우며 하나씩 모아들인 위성 텔레비전 시스템은 곧 해체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머독은 케이블 억만장자 존 말론(John Malone)이 가진 뉴스 코프 주식 19%(머독의 뉴스 코프 지분 30%를 불안하게 만드는)를 되사기 위해 곧 자산을 상호 교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 대가는 디렉TV(DirecTV)에 대한 뉴스 코프의 지배적 지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거래로 머독은 그 어느 곳보다 중요한 미국 시장에서 디지털 공급 기반을 잃어버릴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월 스트리트 분석가들이 머독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대중의 시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 주식 시세에서 그들은 뉴스 코프의 시가 총액을 680억달러 정도로 추산한다. 디즈니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최대 라이벌 타임워너의 810억달러에는 아직 못 미친다(폭로: 타임워너는 오랫동안 나를 고용했고 아직도 내 집값 상환에 도움을 주고 있다). 더욱 중요한 건 현재 1500억달러가 넘는다고 평가되는 8살짜리 언론 벼락부자 구글이 차지한 위치는 전통적인 언론 공룡으로서는 아무도 차지할 수 없다는 점이다. 40여 년 간 뛰어난 능력으로 투쟁하고 재투자한 결과, 머독은 곧 흘러간 언론 제왕이 될 것이다.

“머독에게는 이데올로기보다 돈이 먼저다”

꼭 그렇지는 않다.

확실히 머독은 늘 성공적인 사업을 제일 앞에 둔다. 때때로 당적에 관계없이 현실적으로 승리를 거두는 정치가를 지원한다는 뜻이다(지난 몇 십 년간 마가렛 대처, 로널드 레이건, 조지 W. 부시 같은 보수파를 지원하면서도 호주의 폴 키팅, 영국의 토니 블레어 같은 좌파 성향 지도자들도 후원했다). 오락 사업의 경우 시장 점유율이 이데올로기 성향보다 중시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폭스의 최고 인기 만화 <패밀리 가이(Family Guy)>를 보면, 주요 종교를 조롱하거나 마티니를 들이켜는 말하는 개를 등장시키는 한편, 살인자 O. J. 심슨의 억지 고백에서 이득을 보려는 저속하고 불행한 시도를 한다. 이런 프로그램은 많은 폭스 뉴스(Fox News) 전통 시청자나 레드 스테이트(red-state; 공화당 강세 지역) 시청자들이 옹호하는 ‘가족의 가치’와는 정반대일 수 있다. 그런데 뭐가 어때서?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은 옛날부터 무수히 많은 일이고, 머독이 그 점에서 유일한 위선자는 아닐 것이다-그거야말로 명백한 오해다.

비록 그의 지방 방송국 대부분이 보수적인 의제를 널리 공개적으로 다루긴 하지만 머독 자신은 독특한 보수주의자라 할 수 있다. 1984년 그가 내게 한 말처럼, 내가 <포춘>에 처음 그에 대해 썼던 표현은, 그는 항상 ‘소규모 사업에 맞는 소인’이었다. 이 머독주의에 중독된 소인은 실용주의자이지 도덕주의자나 지적 보수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전형적인 반 노동조합, 친 시장주의이며, 강력한 방어력과 강력한 지도자를 좋아하고, 변명을 일삼는 고위 권력자를 쳐다보길 좋아한다. 그는 워싱턴이든 브뤼셀이든 베이징이든 무식한 관료의 권력을 믿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폭스의 유명한 만화에 나오는 아버지 호머 심슨이 만일 존재한다면 그는 런던의 <선>과 <뉴욕 포스트>를 읽으며 가장 좋아하는 3면에서 6면까지 나오는 여자 가슴에 윙크하고 오른쪽에 있는 편집자란의 큰소리에 ‘Duff beer(썩은 맥주)’를 확 뿌려 버릴 것이다. 간단히 말해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은 없다. 머독 언론 제국에 걸친 대부분의 혈기왕성하고 선정적인 감각은 그의 인기 영합적인 보수주의와 일치하며 그가 지지하는 정치가를 깎아먹기는커녕 더욱 힘을 보태 준다.

“머독의 웹 전략은 시기적절했다.”

그런 것 같다. 1990년대에는 피해 다니더니 머독은 결국 그 분야에 늦었음을 시인했다. 늘 하던 대로 그는 빠르게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했다. 2005년 폭스 인터랙티브 미디어(Fox Interactive Media)를 설립하자마자 13억달러를 투자해 스포츠 포털과 비디오 게임 사이트, 급성장한 사회 네트워크 마이스페이스(MySpace)를 낚아챘다. 마이스페이스는 젊은 네티즌들이 모여 잡담을 나누고 음악과 동영상을 교환하는 곳이다. 그 거래는 정말 이익이었다. 인수 이후 마이스페이스 사용자들은 무려 2500만에서 1억3000만 명으로 급증했고, 구글은 마이스페이스 및 다른 뉴스 코프 웹사이트에 향후 3년 반 동안 9억달러의 광고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작년 11월에 머독은 일본의 인터넷 챔피언인 손정의(마사요시 손)와 일본에 연합 벤처를 세운다고 발표해 마이스페이스를 세계적으로 키울 생각이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런 질풍 같은 사업 전개는 머독이 아직도 경쟁자들의 엉덩이를 걷어찰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렇긴 하지만 머독이 만약 새로운 디지털 전망에 큰 욕심을 부린다면 신나게 나아가다가 무릎까지 오는 진창에 빠질 수도 있다. 그의 신문 웹사이트는 쏟아지는 뉴스를 보여 주는 데 특별한 무엇이 없으며, 아프리카와 남극 대륙을 뺀 모든 대륙에 걸친 세계적 뉴스 배급망인 그의 위성 방송은 광대역 케이블이나 심지어 전화선에 대항하기에는 기술적으로 단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더욱 괴로운 건 인터넷 거인들이 가질 수 있는 재정적 실탄을 머독은 갖지 못했다는 점이다. 마이스페이스로는 재미를 봤지만 인터넷 기반 신흥 통신사인 Skype(스카이페; eBay가 40억달러에 붙잡았다)나 온라인 동영상 포털인 YouTube(유튜브; 구글이 16억5000만달러에 샀다) 붙들기 전쟁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 지난겨울 머독은 인터넷 사업 수익을 5년 안에 3억달러에서 10억달러로 올리겠다고 목표를 수정했다. 9월에는 또 마이스페이스가 몇 달 안에 동영상 시장에서 유튜브보다 앞설 것이라고 큰소리치기도 했다. 글쎄… 유튜브는 이제 구글 손에 있는데, 어떨지? 첫 번째는 적당했는데, 두 번째는 벌써 실패했다.

“뉴스 코프는 족벌 체제다”

지금은 그렇다. 아직 정력적인 75살의 머독은 성공적인 전립선암 투병과 젊은 부인 덕에 회춘하고 있다. 머독은 37살의 웬디에 대해 아무 거리낌이 없다. 그는 자신의 가장 성공적인 전략에 대해 강력한 불사의 의지를 내비친다. ‘영원히’는 그가 최근 얼마나 CEO 업무를 계속하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의 대답이다. 어떤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지 않았다면 거기에는 늘 자식들이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머독은 자식 넷 가운데 셋을 20대의 나이에 경영진에 투입했다. 엘리자베스는 런던 브리티시 스카이 브로드캐스팅(British Sky Broadcasting: BskyB)의 지배인으로 있다. 제임스는 홍콩 스타TV를 인계받았고, 래클런은 시드니의 몇몇 신문 경영부터 시작해 뉴욕에 기반을 두고 뉴스 코프의 모든 것을 총괄 관리했다.

하지만 설립자에서 자손으로 넘겨질지는 확실하지 않다. 머독은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 가문의 언론 제국을 거의 쓸어가 버릴 뻔했던 호주의 부동산 세금을 피하기 위해 몇 십년 전부터 신탁을 만들고 그 신탁을 통해 뉴스 코프를 지배하고 있다. 머독이 그 신탁을 지배하고는 있지만 1999년 비교적 무난하게 이혼하는 대가로 머독은 자식들에게 권력의 일부를 넘기기로 합의했다. 그는 네 명의 수탁자를 지정할 권리를 가지며 성장한 네 명의 자식들은 지금 각자 한 표씩 권리를 가진다. 머독이 죽으면 그의 투표권 또한 사라진다. 그의 자식들은 자신들 가운데 누가 왕관을 넘겨받을 건지, 아니면 누가 차지할 건지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 그들이 계속 잘 해나갈 것인지는 아무 보장이 없다.

머독은 어느 자식이 물려받을 것인지 공공연히 떠들면서 신문 가십난을 계속 장식할 것이다. 가장 최근의 것은 지난 가을, 2005년 뉴스 코프를 떠나 호주로 돌아간 35살의 장남 래클런이 곧 ‘복귀’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이다(래클런의 부인은 즉시 모든 것이 음모라면서 부정했다). 현재 34살인 제임스만은 영국 BSkyB 경영 능력으로 아버지와 분석가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얻었고 좋은 일거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소문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잊고 있는 건 뉴스 코프가 ‘공공’ 기업이라는 것, 엔론 이후 시대에는 이사진들이 기업을 좌지우지하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2004년 이후 뉴스 코프는 사외 이사들이 이사회의 다수를 장악했다. 현재 이사회는 머독의 오랜 2인자인 피터 셔닌(Peter Chernin)을 밀어 주기로 한 듯 보인다.

“머독은 중국을 포기했다”

무슨 말씀. 하지만 그는 자신이 ‘담벼락’이라 묘사한 중국 관리들의 텔레비전 시청자 보호 관습을 깨부수려 했다가 타격을 받은 것은 확실하다. 1993년 머독은 5억달러를 들여 홍콩 상속 재벌인 리처드 리(Richard Li)로부터 아시아 위성 네트워크인 스타TV를 인수했다. 초기 손실이 엄청났음에도 그 거래는 아주 좋은 결과를 가져 왔다. 스타TV는 1억 명의 아시아 시청자를-그 대부분은 인도인이다- 끌어 모아 두 자리 수 매출 및 이익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 스타TV는 별 빛을 발하지 못한다. 처음부터 베이징은 위성 텔레비전이 ‘모든 전체주의 정권에 대한 명백한 위협’이라며 백안시했고, 머독은 BBC 뉴스를 중국 뉴스 네트워크로 방송하고 전 홍콩 총독 크리스 패튼의 비판적인 책의 출판을 거절하는 등 당국의 인식을 바꾸려 노력했다. 더욱이 본토에 케이블 콘텐츠를 배급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홍콩 회사 피닉스의 40%에 가까운 지분을 사들였음에도 다른 모든 외국 기업처럼 뉴스 코프는 호텔과 광동 지방 주민들에 한해서만 콘텐츠 송출을 할 수 있도록 제한받았다. 2005년 중국 정부는 오락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기로 한 머독과 중국 중앙 텔레비전의 거래를 취소시켰다. 지난해 6월 머독은 피닉스 지분의 절반 이상을 중국 무선 통신의 선두 기업인 China Mobile에 팔아 넘겼다.

하지만 머독은 물러서지 않고 중국의 담벼락 근처에서 자신의 힘을 뻗칠 수 있는 새로운 디지털 루트를 찾고 있다. 지난해 9월에 그는 자신의 가장 뛰어난 인적 자원-중국 표준말을 쓸 수 있는, 중국 태생 부인-을 베이징으로 보내, 가능한 조인트 벤처 파트너들과 대화 창구를 열었다. 만약 사회 네트워크와 동영상 공유가 가능해진다면 중국은 정말 엄청난 사업 목표가 될 것이다. 지난해 10월에 머독이 차이나 모바일(China Mobile)의 휴대전화에 오락 거리를 제공하기로 한 거래를 성사시키는 동안 경쟁사인 비아콤(Viacom)의 MTV 네트워크는 구글에 대항하는 중국의 Baidu(바이두)에 콘텐츠를 공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머독에게는 그것이 계속 망치를 휘두르며 헤쳐 나가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머독은 유럽을 싫어한다”

반은 맞다. 지난해 11월에 호주에서 행한 연설에서 머독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재임 중 유럽을 횡행하는, 빠르고 시대에 역행하며 생각 없는 반 미국주의’에 대해 경고했다. 하지만 진짜로 머독의 정책을 뒤흔드는 건 유럽이 아니고 유럽‘연합’이다. 2004년 Milken Institute 회의에서 특유의 긴 연설을 통해 그는 EU를 ‘유럽에 대한 투자를 방해하는, 브뤼셀에 달라붙어있는 끔찍한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의 관료주의’라고 결론지었다. 지난 10년 동안 그는 끈질기게 유로화를 공격했고 영국의 유럽 화폐제도 가입을 반대했다.

그는 자신이 소유한 언론을 통해 총력을 기울여 자신의 이런 강경한 입장을 대변했다. 1990년대 중반 머독의 런던 타블로이드지 <선>과 는 마가렛 대처의 계승자인 존 메이저가 EU와 좀더 완전한 결합 정책을 펴는 데 반발했다. 머독의 거센 반대는 토니 블레어가 유럽 통합에 느슨한 행보를 보이는 데 뚜렷한 영향을 끼쳤다. 2004년 봄, 영국 의원들이 새로운 EU 헌법을 승인하는 국민투표를 보류할 것인지 논의할 때 는 그런 선거에 반대하는 블레어의 오랜 입장을 ‘항복’이라고 비난하며 ‘반역자 토니’라고 몰아세우는 일련의 기사를 실었다. 이유야 어쨌든 블레어는 곧 자신의 입장을 번복했다.

그 모든 것에도 유럽은 뉴스 코프에게 2006년 회계 이익이 76억달러로, 미국 다음으로 큰 시장이다. 비록 영국이 큰 몫을 차지하긴 하지만 머독은 대륙을 쪼개려는 시도를 계속할 것이다. 독일 및 프랑스와 거래하려는 시도가 계속 퇴짜를 맞으면서 그는 최근 빠르게 성장하는 주변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 2년간 그는 폴란드와 터키의 텔레비전 방송국 주식을 취득했다. 그의 가장 큰 도박은 10억달러를 들여 이탈리아 정부 소유의 텔레콤 이탈리아(Telecom Italia)로부터 이탈리아 위성 텔레비전 네트워크를 사들인 것이다. 지난해 스카이 이탈리아(Sky Italia)는 40만이 넘는 새 시청자를 끌어 들였고 6100만달러에 달하던 적자를 1300만달러로 줄였다. 머독이 브뤼셀을 얼마나 싫어하든 간에 이 사나이가 세계에서 가장 크고 돈 많은 시장의 소비자들에게서 유로를 벌어들이기를 포기한다는 건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머독은 폭군이다”

전혀. 호머 심슨 이야기에서 호머는 슈퍼볼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 동료와 충돌한다. “나는 폭군 억만장자 루퍼트 머독이야!” 그는 스스로를 저평가 받는 유머와 자발적인 인내, 자신의 광대한 제국에 걸쳐 위험을 무릅쓰는 용기를 가진 사람으로 묘사하길 좋아한다. 이러한 초상은 일선에서 뛰는 논쟁주의자이자 열심히 일하며 결단력 있는 노련미를 갖춘 강심장을 가진 경영자 머독이라는 좀 더 전통적인 이미지와 병존한다.

그러나 때때로 해적 같은 수단이 괴롭게도 큰 그림을 덮어 버린다. 1955년 이래 머독은 호주 남부의 작고 거의 파산에 이른 신문을 세계 5대륙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정보를 주는 영향력 있는 거대 제국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그 과정에서 빠른 움직임뿐 아니라 깊은 회의론을 극복하는 엄청난 인내를 보여 주며(기꺼이 손실을 감수하는 것도 포함해서) 자신의 회사를 시장의 선두 주자로 바꾸어 놓았다. 교양을 마비시키는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수많은 세련되고 발랄한 결정적 성공을 이루는 가운데, 의심할 여지없이 사상 가장 오래 방영된 텔레비전 코미디인 <심슨 가족들>이 그 한 가운데 있다. 그가 죽은 뒤 그의 왕국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머독은 언론 발할라(Valhalla)에 찍힐 자신의 발자취 이상을 이루어 냈다.

릭 커클랜드(Rik Kirkland) : 릭 커클랜드는 <포춘> 편집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랜덤하우스에서 출간될 자본주의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 이 기사는 미국 워싱턴의 카네기국제평화재단(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이 격월로 발행하는 2007년 1·2월호에 게재된 것으로 한국어판을 발행하고 있는 네오넷코리아와 <이코노미플러스>의 기사 제휴에 의거, 게재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참고문헌들

루퍼트 머독이 언론 제국을 쌓아올리는 과정은 수많은 책으로 나와 있다. 영국 작가 윌리엄 쇼크로스(William Shawcross)의 <머독(Murdoch)>(New York: Simon & Schuster, 1993)은 이 거물에 대한 전기로는 가장 앞선 것이다. 호주 언론인 나일 체노웨츠(Neil Chenoweth)의 <루퍼트 머독, 세계 최고 언론 마술사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Rupert Murdoch: The Untold Story of the World’s Greatest Media Wizard)>(New York: Crown Business, 2001)을 읽으면 머독의 복잡하기 그지없는 재정 상황, 특히 1990년대 초 거의 파산까지 이르렀던 시기의 속사정을 소상히 볼 수 있다.

기업 사냥꾼으로서의 머독을 알고 싶으면 켄 올레타(Ken Auletta)의 1995년 11월13일자 인물평 ‘해적(The Pirate)’을 읽으라. 이 기사는 그의 책 <노상강도(The Highwaymen)>(New York: Random House, 1997)에 재수록되었다. 최근 기사로는 이 거물의 정책을 통찰력 있게 조사한, 2006년 10월16일자에 실린 존 캐시디(John Cassidy)의 ‘머독의 게임(Murdoch’s Game)’이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과 MySpace에서부터 영국 정치와 뉴스 코프의 경영권 승계까지 모든 것을 다룬 2006년 7월20일의 ‘The Charlie Rose Show’(New York: PBS, 2006) 인터뷰를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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