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개방으로 국내 농산물과 수입농산물 간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한국농업이 위기에 직면했다. 이제 농민의 희망은 해외시장이다. 좁아터진 국내시장 대신, 세계시장을 겨냥한 것이 성공 키워드가 됐다.
 산물시장 개방은 한국농업에 위협이 되고 있지만,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시장 개방으로 한국시장이 열림과 동시에 수출장벽 역시 낮아지므로, 경쟁력을 키운다면 해외에서 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적 흐름으로 자리잡은 웰빙열풍을 보듯이, 해외에서도 가격이 비싸더라도 품질 좋은 농산물을 선호하는 건 마찬가지 추세다. 따라서 고품질 농산물을 수출 상품화 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저가격 농산물시장을 수입농산물에게 자리를 내준다고 하더라도, 고품질·고가격 농산물시장을 확보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낸다면 우리 농업에도 분명 희망은 있는 것이다. 이런 희망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모험심과 도전정신, 열정을 가지고 새로운 시장을 찾고 있는 농업인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현재 국내산 파프리카는 일본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으며, 안성배는 미국·대만 등에 1000톤 가까이 수출된다. 호접난을 생산하는 농소화훼단지의 김수선씨는 미국에 농장을 설립하고 시장을 개척했다. 로즈피아는 국산품종의 장미로 지난해 450만달러를 벌었다.



 파프리카



 자연농법으로 일본시장 장악



 파프리카는 빨강·주황·노랑의 예쁜 색깔 덕에 ‘채소류의 보석’이라 불리는 피망과 비슷한 채소다. 국내에선 아직 낯설지만, 일본에서는 한국산 파프리카 점유율이 70%에 다다를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파프리카의 2004년 수출액은 1만7000톤, 금액으로 4900만달러에 이른다. 지난해 수출액은 5000만달러에 이르는 수출효자 작물이다. 채소류 전체 수출액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1999년 설립된 농산무역은 파프리카 수출의 벤치마킹 사례로 꼽힌다. 농산무역은 참샘영농조합 등 전국의 13개 파프리카 생산 영농조합들이 주축이 돼 설립된 파프리카 전문 수출업체다. 농가들이 생산도 하고, 자신들이 세운 무역업체를 통해 수출도 하는 것.

 파프리카 생산농가들이 서로 연합해 생산, 재배기술 공유, 선별, 포장, 홍보, 마케팅에 이어 수출까지 원스톱으로 실시하고 있다. 특히 농가들은 농가별 ID등록제와 생산지 정보시스템을 구축, 정식에서부터 관리, 병충해 정보, 농약살포 정보, 수확 정보, 생산량 대비 수출량 등을 자체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와 같이 철저하게 관리하면서 만약 잔류농약 검출, 생산량 대비 수출 저하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위반농가에 대해서는 수출중단 등 강력한 ‘페널티’를 적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잔류농약이나 품질저하 등 수입국 바이어들이 제기하는 클레임 등이 거의 없다.

 이와 함께 모든 회원농가에 대해 매출액의 1%를 자조금으로 적립, 월 1회 네덜란드 재배전문가 초청 현장컨설팅, 직접 생산한 농가의 제품 현지 유통견학, 해외 판촉·홍보행사, 시장조사, 신시장 개척 등에 활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농산무역에 참여하고 있는 농가들은 수출에만 전념함으로써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전국에 걸쳐 현재 16개 영농조합이 참여하고 있는 농산무역은 재배시기를 조절해, 연중 안정적인 생산과 수출로 바이어들로부터 높은 신뢰와 함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농산무역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전북 김제 참샘영농조합의 조인기씨(45)는 파프리카 수출 분야의 신지식인으로 통한다. 2만평 땅에 수박농사를 짓던 조씨는 정부 권장에 따라 1994년 유리온실을 지어 시설재배로 전환하려 했으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시설재배 작물인 오이와 토마토가 이미 과잉공급 상태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시장이 필요했다.

 조씨는 일본을 자주 드나들며 의류업을 하던 누나 조기심씨를 통해 파프리카를 알게 됐다. 네덜란드산이 독점하고 있던 일본시장에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산으로 승부하면 신선도에서 이길 수 있다는 승산이 섰다.

 “1995년 당시에는 파프리카에 대한 인식조차 없던 시기였어요. 재배기술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여러 경로를 통해 유럽의 선진기술을 습득해야 했고, 수출판로도 직접 발로 뛰어야 했습니다.”

 이들 남매들이 파프리카 재배에 나서자, 주변의 농가들도 파프리카 재배에 나섰다. 1999년 말 조씨 남매와 70여 농가들은 공동출자를 통해 수출업체 ‘농산무역’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일본시장 개척에 나섰다.

 한국산 파프리카 역시 농민들이 힘을 합쳐 생산·포장·가격협상 등을 조율해 나가는 시스템을 갖추자, 일본시장 점유율이 급속도로 올라갔다.

 “처음엔 주로 이탈리아 식당 등을 대상으로 했지만, 이제 일반 가정을 공략하는 쪽으로 마케팅 포인트를 맞추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죠.” 일본 주부들에게서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자연농법 재배를 통한 고품질 때문이다.

 조씨의 파프리카 농장에서는 해충 방제를 위한 살충제를 살포하지 않는다. 잔류농약이 검출되면 수출길이 끊어지는 것도 이유지만, 소비자들에게 안전한 농산물을 공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비용이 많이 들지만, 농약 대신 천적을 이용한 자연농법을 활용하고 있다. 6600평의 파프리카농장에 천적 사용으로 지출하는 비용이 3500만원 정도이지만, 만약 일반 농약을 사용한다면 1000만원 정도면 가능하다고 한다.

 “지난 2년 동안 약 1000톤, 242만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렸습니다. 2006년에는 120만달러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파프리카 수출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맨 땅에서 키운 파프리카가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가 생산하는 파프리카는 품질이 떨어지지만, 워낙 저가라서 우리 농가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안성배



고품질 배생산 배타고 미국간다호접란



 배는 2005년 3500만달러어치가 수출됐다. 이 중 안성의 주요 특산물 중 하나인 안성배가 우리나라 배 수출의 50%를 차지한다. 안성맞춤 배는 당도가 높고 연하며, 수분이 많아 시원한 맛을 지니고 있는 특성과 품질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안성과수농협은 전형적인 수출농협으로서 배 한 품목만을 수출하고 있다. 안성배의 수출은 1988년부터 시작돼 올해로 18년간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안성과수농협은 1993년도에 현대식 선과장을 갖췄으며, 현재는 안성시에서 부지 1만1000평 규모로 건립 중인 유통센터는 올 3월이면 완공될 예정이다.  주요 수출국은 미국과 대만으로 각각 888톤, 103톤을 수출했다. 올해에는 동남아와 유럽시장까지 공략할 계획이다.

 정완수(69) 안성과수농협 조합장은 “고품질 배 생산을 통해 배 수출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수출량이 매년 증가하고 있어 앞으로도 전망이 가장 밝습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주요 수출국인 미국은 수출 전업농업으로 구성해 별도 관리하고 있다. 수출전업농이란 대미 수출기준을 갖춘 농가를 대상으로 기준을 통과한 과수를 생산함으로써 고품질 생산에 주력할 수 있도록 농가들을 유도하며, 교육을 통해 집중관리 육성하는 것을 말한다.

 “처음 수출할 때는 150~200여농가로 구성됐습니다. 하지만 전업농 구성 이후 현재는 100여 농가를 집중 육성해 관리하고 있습니다.”

 전업농으로 선정된 농가들은 매년 농가평가 후 인센티브나 페널티를 적용해 농가들의 사기진작과 수출전업농으로서의 자부심을 심어 주고 있다. 특히 페널티를 받은 농가는 향후 2년간 수출금지를 시킴으로써 철저한 상품관리 및 농가관리를 하고 있다.

 농협은 매년 2월 수출물량을 신청받고, 5월부터는 수출물량을 계약한다.  농가들과 수출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함으로써 수출사업의 활성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또 9월부터는 수출일지를 작성해 농가들의 평가자료로 사용하며, 수출 사업평가회는 12월 말에 가진다.

 농가관리는 연 6회 대미 수출농가에 한해 농산물검역소직원을 동행하고 과수원을 방문해 객관성을 갖춘 상태에서 농가들을 평가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요즘은 안성배 재배 농가들은 중국산 배가 걱정거리다. 값싼 중국산 배가 들어오면서 재배농가들의 타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 조합장도 “국내산 과일이 중국산에 비해 품질 면에서 앞서지만, 기후·토양 등이 우리와 비슷한 조건이라서 국내산을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걱정했다.



 호접란



 미국에 농장 지어 직접 시장 공략




 경남 울산의 농소난수출영농조합법인은 호접란을 전문적으로 재배하는 여섯 농가가 결성한 것이다. 이 조합법인은 7000여평에서 식물음악시스템 및 컴퓨터 환경복합 제어장치 등 최첨단 시설을 갖추고 호접란 등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이 법인은 2001년 미국 플로리다 주 아파카 시에 화훼수출전문단지를 조성해 연간 15만본을 수출하고 있다. 수요가 많아 공급이 모자랄 정도로 미국에서도 인기가 높다.

 농소난수출영농조합법인의 김수선씨는 “국내 호접란이 과잉생산되면서 가격은 불안정했어요. 농소난수출조합법인도 수출 말고는 길이 없었는데, 고민 끝에 미국을 겨냥했습니다”라고 그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다른 생산농가들은 가까운 중국과 일본을 대상으로 시장개척에 나섰지만, 김씨는 비행기로 10여시간을, 그리고 현지 농장까지 5일 이상을 가야 하는 미국에 농장을 세우기로 했다.

 “고민을 많이 했어요. 옆에서는 미친 짓이라고들 했어요. 하지만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뤄보겠다는 오기도 발동했지요.”

 김씨의 이런 오기는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미국의 호접란 시세를 조사한 결과, 도매가격이 1개당 8달러로 꾸준히 유지된다는 것을 알고 비용을 분석해 어느 정도 수익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미국 플로리다 아파카 시에 농장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데 15억원이 들어갔다. 농소농협과 울산시의 적극적인 지원과 여섯 농가의 힘으로 3개월 만에 농장을 완성했다. 아파카 시는 화훼가 주요 산업이며, 한국인 농가도 40여호에 달한다. 특히 미국농가들은 그들이 1년 할 일을 3개월 만에 끝마쳤다면서 “한국사람 과연 대단하다’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이 법인은 지난해 11만본, 1억2000만원어치의 호접난을 미국에 수출했다.

 미국 수출용 호접란은 10개월의 조직배양이 끝난 후 흙에 옮겨 심은 16개월짜리가 대상이다. 16개월이 지난 호접란의 뿌리에서 흙을 완전히 털어내고 신문지로 싸 박스에 포장해 수송한다. LA에 비행기로 도착해 플로리다까지 5일을 달려 아파카의 농장으로 옮겨진 후 저온처리를 거쳐 꽃대가 올라오면 상품으로 출하한다. 보통 호접란으로 성장하는 데 30개월이 걸린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운송되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자연농법 때문이다. 김씨는 절대 지하수를 사용하지 않는다. 오랜 농사경험을 통해 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는 물을 받아 햇빛을 보이게 하고, 인공순환을 시켜 산소의 함유율을 높이고, 토착미생물을 사용해 정화한 물을 활용한다. 또 미국으로 보내기 전 화학비료를 줄이는 대신 한방영양제 등을 공급한다.

 “미국에서 월등한 품질을 인정받고 있는 것은 기존의 재배방법에 자연농업을 적용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훼 작물은 애정을 갖지 않으면 망하는 농사입니다.”



 장미

 

 핑크레이디 로즈피아 모스크바서 웃는다



 우리나라 장미 수출실적은 매년 900만달러 수준. 지난해에도 950만달러어치를 팔았다. 이 가운데 40% 정도를 차지한 화훼수출 전문기업이 달성했다. 전북 임실군 오수면에 자리한 로즈피아가 주인공이다. 로즈피아는 2004년 610만달러를 수출했으며, 지난해에는 약간 줄어든 450만달러의 장미를 해외에 팔았다.

 2000년 1월 전남·북의 재배농가 15명이 발기해 같은 해 7월 발족한 로즈피아의 첫 수출 실적은 3만2000송이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2년 6월에는 1000만송이를 수출한 이후 급성장했다. 현재 로즈피아는 3만7000여평의 농장에서 장미를 공급받아 수출한다. 참여한 22호 농가의 연간소득은 8억원 가까이 늘어났다. 여기에다 연간 매출액 80억원 규모에 30명의 고용창출을 이뤄 낸 것은 척박한 농촌경제에서 ‘기적’ 같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로즈피아의 정화영(50) 대표는 “농민은 농사에 힘쓰느라 유통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농민 스스로 가공과 규격 공동선별, 공동출하, 수출, 내수판매 등을 모두 소화해 이만큼 성장했다는 데 긍지를 느낍니다”라고 말했다.

 로즈피아는 현재 장미 23개 품종을 재배, 하루 6만∼7만송이를 생산해 수출품은 일본으로, 내수판매는 서울과 광주로 각각 내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내수단가가 수출단가보다 높아 내수에 신경을 쓰고 있다. 정 대표는 “생산과 유통을 철저히 분리하고, 농약, 유류, 소모품은 공동구매해 생산비를 줄이며, 고품질과 대량생산을 위해 기술 지도를 강화한 게 성장비결”이라고 말했다.

 로즈피아가 수출하는 품종은 순수 국내기술로 육성한 스프레이 장미 ‘핑크레이디’다. 핑크레이디는 농촌진흥청 원예연구소에서 2002년 개발한 순수 국산품종으로, 로즈피아는 2003년부터 일본에 본당 60엔(한국의 2.5배)으로 팔았다. 핑크레이디는 일본시장에서 인기가 있는 스프레이형 품종으로서 화형과 화색이 우수하며, 소비자 기호도가 높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장미는 세계 3대 절화 중의 하나로서 국내·외적으로 중요한 품목이다. 우리나라에서 상업적으로 장미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이며, 1990년 이후로 장미 재배면적이 급속히 증가해 2001년부터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국내에서 재배하는 장미는 전량 외국 품종에 의존하고 있고, 거의 대부분의 종묘가 무단증식된 것이기 때문에 한때 국내 절화장미가 수출중단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일단 외국 육종회사와 로열티 협약을 체결하고 문제를 해결했지만, 일시적인 미봉책에 불과했다. 결국 국내 신품종의 육성과 보급이 시급했다.

 절화장미의 신품종 육성에는 8년이 소요됐다. 원예연구소에서는 ‘향기가 있고, 가시가 적으며, 강건하고, 다수성이고, 절화수명이 긴 국내 신품종 개발’을 목표로 1992년부터 절화장미 품종을 육성해, 우수한 9계통을 선발농가에 보급했다.

 이렇게 우리 장미를 개발·보급함으로써 국내시장에 유통되는 장미를 우리 장미 품종으로 대체시켜 장미 재배농가의 로열티 부담을 줄이고, 외화의 유출을 줄일 수 있었다.

 정 대표는 “로즈피아는 ‘협업적 농업경영과 화훼산업의 개혁’이 얼마나 잘 결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범 사례”라며, 검게 그을린 얼굴에 환한 웃음을 터뜨렸다.

 로즈피아의 주요 수출국은 2000년부터 공략하기 시작한 일본. 시장 다변화를 위해 지난해부터 러시아시장 공략에도 나서고 있다. 2005년에는 9회 수출에 그쳤지만, 올해에는 블라디보스토크와 모스크바에 합작지사를 설립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네덜란드, 영국과는 수출을 협의하는 중이다.

장시형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