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ASEAN(동남아국가연합)의 FTA(자유무엽협정) 기본협정이 지난해 말 서명됐다. 한국과 아세안은 각각 IT, 전자, 자동차 부문과 천연자원과 농산물에 비교우위가 있다. 따라서 관세장벽 철폐로 양측은 필요한 부문에 대해서 더 수월하게 보완재를 얻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에서 만나본 현지 기업인들은 대부분 느긋한 동남아 사람들의 성향과 국가 시스템을 파악하고, 이에 대비하지 않으면 이들 국가와의 교역에서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말한다.
 [ 11월27일 ] 자카르타도 주상복합아파트 열풍

 최근 들어 잇따른 폭탄테러로 인도네시아 사정이 별로 좋지 않다는 소식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 미국은 최근까지도 자국민에 대한 인도네시아에 대한 여행에 대해 자제를 당부하고 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영공에 다가갈수록 하늘에서는 커다란 섬광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였지만, 바로 전 주부터 본격적인 우기가 시작됐다고 한다. 공항에 도착해서 빠져나오는 데만 무려 1시간30분이 걸렸다. 인도네시아에 입국하려면 임시입국비자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갑자기 많은 사람이 몰렸는데도 업무를 보는 공항직원들은 전혀 급한 기색이 없이 느긋하기만 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자 2인 1조였던 비자발급 담당직원들 중 1명이 시간이  됐는지 퇴근을 해버려 공항을 빠져나오는 데 상당한 시간을 허비해야만 했다. 인도네시아의 첫 느낌은 어둡다는 것이다. 최근 돌아본 말레이시아에 비해 가로등의 수나 밝기가 지나치게 어두웠다.

 인도네시아에는 세 가지 택시가 있다. 우리로 치면 모범택시라 할 수 있는 실버버드, 중형인 블루버드, 그리고 일반 택시이다. 최근 국내 모 기업 관계자가 택시를 탔다 납치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별다른 문제없이 자카르타에 진입할 수 있었다. 자카르타 국제공항에서 자카르타 시내까지는 약 4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다.

 시내로 들어가는 동안 눈을 끌었던 것은 바로 주상복합아파트였다. 길가 양쪽에 우리나라 타워팰리스나 아이파크 같은 주상복합아파트들이 상당히 많이 지어져 있어 놀랬다. 전반적으로 거리는 어두웠지만, 상당히 잘 지어진 주상복합아파트들의 조명 또한 웬만한 호텔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11월28일 ] 경쟁자는 중국과 일본

 둘째 날, 코트라 민경선 관장을 만났다. 민 관장은 인사를 나눈 뒤, 기자에게 인도네시아에 대한 첫인상에 대해 물어봤다. 야경이 다소 어두워 보인다고 하자, 민 관장은 “인도네시아의 전력 수급률은 60%를 채 넘지 않는다”라며, “네온사인도 많지 않고 유흥업소도 적어 밤에는 더 어두워 보인다”라고 말했다. 어제 보았던 주상복합건물에 대해 물었다. 민경선 관장은 “최근 들어 아파트가 많이 생기고 있다”라며, “이는 생활의 편리보다는 보안 때문”이라고 말했다. 1998년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났던 폭동으로 인도네시아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화교들이 피해를 입자, 보안이 용이한 아파트로 입주하는 외국인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는 법으로 똑같은 모습의 건물을 연달아 짓지 못하게 정해 놓아 외관이 수려한 건물이 많은 편이라고 민 관장은 덧붙였다.

 한편 ASEAN과 한국 간 FTA 협상과 관련해 민 관장은 “2006년 12월 구체적인 협상안이 그려질 것이고, 2007년과 2009년에 단계적으로 관세인하정책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현재 상황으로 봤을 때 FTA는 대세”라며, “FTA의 특성상 상호간의 특혜라기보다는 보다 자유로운 무역거래를 위해 관세정책에서 무역이 분리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특히 동남아시아 지역은 화교들의 상권이 크게 발달되어 있어 경제적으로는 중화권의 세력이 강하다. 또 오래전부터 이곳에 투자를 실시해 온 일본도 무시하지 못할 상황이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중국과 2010년부터 적용되는 관세면제조약을 체결했다고, 민 관장은 말했다. “FTA가 타결된다고 하더라도 처음에는 ASEAN과 한국 간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2007년, 2009년 점차 관세가 인하될 예정이기 때문에 이번 타결을 계기로 보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 관장은 “ASEAN은 일본과 중국의 세력다툼의 장인 것이 현실”이라며, “일본의 경우 2차대전이 끝난 후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지역에 대한 투자를 늘려 왔으며, 최근 중국은 화교들의 자본력을 앞세워 기반이 튼튼하다”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도, 수하르토 대통령이 물러난 후에 정치는 인도네시아 사람이, 경제는 중국 화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최근 들어서는 일본의 입김보다는 화교의 세력이 강한 중국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민경선 관장은 “인도네시아 내에서 화교들은 군이나 정치 등 주요 요직에서 배제되어 왔다. 그러나 경제문제가 부각되고 있는 요즘에는 일부 화교들에게 정치 참여를 허용하고 있으며, 화교들이 정당을 만들어 선거에 나서기도 한다”라고 말해 이 지역에서 중국의 입김이 더욱 거세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한편 한국, 중국, 일본 외에 미국, 호주, 유럽도 ASEAN과의 FTA 체결을 검토하고 있는 중이다. 세계가 점차 FTA를 통해 관세의 장벽이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오후가 되자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지난밤 비행기에서 봤던 섬광은 우기에 자주 나타나는 폭풍우라고 민 관장이 설명했다. 지구를 휩쓸고 있는 기상이변은 동남아 지역에서도 징조를 보이고 있다. 민경선 관장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에서는 우기가 되면 2시를 전후로 약 2시간 정도 강한 스콜이 내렸다. 그러나 최근에는 비가 오지 않거나 오더라도 하루 종일 오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도 최근 들어서는 비가 하루 종일 오는 때가 많은데, 이 경우 대부분 시가지가 홍수로 물이 넘친다고 한다. 이유는 인도네시아의 배수시설이 2시간 정도 내리는 스콜에 맞춰 설치되었기 때문이란다. 이날도 비는 오후 내내 내렸다. 1시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오후 6시가 다 되어서야 그치기 시작했다.

 오후에는 수출보험공사의 전창욱 소장을 만났다. 전 소장은 혼자 인도네시아에 파견을 나와 있으며, 현지 수출업체를 지원하고 있다. 전 소장 역시 FTA가 곧 타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출장을 계획했지만, ASEAN +3 회담 때문에 연기했다고 말했다. 민 관장과 전 소장 모두 FTA가 타결되더라도 이 지역과의 교류나 투자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전 소장은 “동남아시아의 경우 국민성이 느긋하기 때문에 빨리 일이 진행되는 경우가 드물다”라며, “특히 인도네시아의 경우 민·관이 상당히 부패해 있어 서류를 발급받으려고 해도 뇌물이 필요하고, 설사 뇌물을 주고 발급을 받는다고 해도 그 다음 단계에서 또 막혀 다시 대가를 치러 줘야 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특히 최근 동남아의 부는 한류열풍을 따라 일확천금을 노리고 동남아시아로 들어오는 한국 사람들이 많은데, 대부분 1년 동안 뇌물만 주다가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라고 전했다.

 한편 이 자리에서 최근 문제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치안문제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다. 최근 발생한 발리폭탄테러를 비롯해 1년에 한두 번씩 발생하는 테러 때문에 온 나라가 검문의 천국이란다.

 인도네시아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은 인도네시아의 독립과 외국세력의 배척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호주에 대한 반감이 심하다. 호주는 인도네시아와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점을 안고, 인도네시아 석유, 석탄, 철광석 등 자원의 상당 부분에 대한 개발권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 발생한 호주대사관 테러와 발리 폭발사건에서 호주 사람들의 피해가 컸던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동티모르에 대한 미국과 호주의 독립 지원을 계기로 인도네시아 회교주의자들은 두 나라에 대한 반감이 증폭되어 있는 상황이다. 오후 일정이 끝난 뒤 주위 사람들의 만류를 뒤로 하고 자카르타 시내를 돌아보겠다고 나섰으나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자카르타 시내에는 자동차도로가 상당히 발달되어 있지만, 인도는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은 그래서 옆 건물에 가는 데도 택시나 승용차를 이용한다고 한다. 특히 인상 깊은 건 시내 중심가인데도 주점이나 쇼핑센터 같은 상업지구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아시안게임을 개최했던 자카르타의 세나얀 국립경기장 근처까지 걸어가는 건 가능했지만 그 이상은 어려웠다.



 [ 11월29일 ] IT 제반 여건 취약 한국기업 진출 제약

 이날 오전에는 LG화재 인도네시아법인의 초청으로 사무실을 방문했다. 이곳 사무실도 들어갈 때는 차량 검색과 금속탐지기 검색대를 통과하고, 신분증을 맡겨야 들어갈 수 있다. 조성국 법인장은 한국출장 중이라 임채완 과장과 만났다. 임 과장과 함께 인도네시아 지도를 보면서 이야기하다가 인도네시아 국토의 크기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평소에 미처 인식하지 못한 사실에 놀란 것이다.

 보통 인도네시아 하면 자카르타 주변만 생각하게 되는데, 지도상으로 보니 위로는 태국, 아래로는 호주 가까이에 이르는 거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또 북쪽으로는 보르네오 섬의 상당 부분도 인도네시아 영토였다. 임 과장은 인도네시아에 대해 한마디로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나,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국가”라고 표현했다.

 LG화재는 인도네시아에 진출해 있는 국내 기업들의 보험을 인수하고, 현지 보험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FTA가 체결되면 교역량이 늘고, 국내기업들의 현지 진출 증가로 해외 보험시장의 확대도 기대해 볼 만한 상황이다. 임채완 과장은 “인도네시아에서 한국기업들에 대한 이미지는 상당히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특히 가전제품을 현지 생산하고 있는 LG전자와 휴대폰의 수요 증대로 삼성애니콜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고 한다. 임 과장은 “과거 이곳에는 주로 의류나 신발제조업 관련 한국기업들이 많이 진출했지만, 이제는 점차 전자, IT 등 첨단제품으로 영역이 이동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에서 첨단이라고 해도 아직 한국에 비길 바는 아니었다.  LG전자가 이곳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바로 비디오플레이어 때문이다. 현재 DVD의 대안으로 HD DVD나 블루레이어 등 차세대 광매체의 표준도입을 놓고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인데, 인도네시아는 아직까지 비디오플레이어가 주력상품이라고 하니, 다시 한 번 세계가 넓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임 과장은 “솔직히 LG전자도 지금 안정기를 지나고 있는 것이지, 최정점기에 다가가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백색가전, 모니터 생산이 늘고 있어, 인도네시아에서 차지하는 입지는 탄탄한 편이다.

 LG화재의 경우 인도네시아에서 내심 자동차보험 진출을 노려 왔다. 2억명의 인구와 자동차로 움직이는 ‘도어 투 도어’ 문화가 정착되어 있어, 자리가 잡히면 큰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지에 국내 자동차업체들이 진출해 있지 않고, 보상망 확충이 힘든 상황이라서 현실적으로는 쉽지만은 않다. 인도네시아에는 기아자동차가 진출해 있고, 현대자동차는 아직 진출해 있지 않다. 이에 대해 임 과장은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에서는 핸들 위치가 우리나라와는 반대라서 생산과 수출이 용이하지 않다”라며, “특히 이 지역 사람들은 일본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 대부분 혼다, 도요다, 닛산, 미스비시 제품을 선호한다. 그래서 국내 자동차업체가 쉽게 접근을 못하고 있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현대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과거 인도네시아 국민차였던 세피아를 만든 기아차에 대한 이미지는 여전히 좋은 편이라서 자동차산업의 진출도 낙관적이다. 특히 FTA가 타결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제조업체에 대해 비교우위를 갖게 됨에 따라 자동차 수출도 늘어날 전망이다.

 이날 오후에는 한국 인천정보산업진흥원 시장 개척단이 인도네시아 IT 업체와 업무제휴식을 갖고 수출 상담을 진행했다. 인천정보산업진흥원 전의진 원장을 비롯한 관계자들과 인베스트클럽, 남주테크 등 인천지역의 업체는 물론, 충북의 게임네오, 명정보기술, 대구의 씨앤소프트 등 14개 업체가 참여했다. 상담은 29~30일에 걸쳐 이틀 동안 진행됐으며, 개척단은 곧이어 필리핀 마닐라로 자리를 옮겨 이 지역 IT 업체와 상담을 가졌다. 인도네시아도 인터넷과 휴대폰 시장을 중심으로 IT 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휴대폰의 보급 대수가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국내 IT 업체가 인도네시아에 진출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무척 많다. 한국과 비교했을 때 크게 뒤떨어지는 IT 인프라 때문에 좋은 기술과 아이템이 있어도 인도네시아에 곧바로 적용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인천정보산업진흥원의 전승수 팀장은 “현지 상담을 진행하기 위해 요청해 놓은 인터넷이 자주 끊어져 원활한 업무 진행이 힘들 정도”라며,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중심지라는 이곳 사정이 이 정도라면 다른 곳은 어떨지 상상이 간다”라고 말했다. 전 팀장은 “이곳 현지 업체들도 한국의 IT 산업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아직까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라는 걸 알고 있어 가시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상담에서 인도네시아 업체들이 가장 관심을 보인 것은 모바일게임과 로봇이었다. 상담에 참가했던 인도네시아 관계자는 “로봇 장난감의 움직임이 사실적이라서 상당히 놀랐다”라며, “그 외 핸드폰을 이용한 게임의 경우 인도네시아에서도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상담 장소를 빠져나와 자카르타 현지 전자상가를 둘러봤다. 안내를 맡아 준 이웅표씨에게 자카르타에서 한국기업이 진출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을 물었더니, 한국으로 치면 용산전자상가 같은 이곳을 소개시켜 줬다.  전자상가는 두 곳이 있는데, 한 곳은 핸드폰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라투플라자이고, 다른 한 곳은 이곳 사람들이 일렉트로니카라고 부르는 가전종합상가이다. 전자상가라고 해도 우리나라 용산이나 테크노마트처럼 대단위 상가는 아니고, 큰 매장 정도 된다. 라투플라자는 까르푸건물 위층에 자리잡고 있으며, 평일인데도 상당히 많은 인파로 붐볐다. 입구에 복제 DVD와 음반들을 많이 팔고 있는데, 한국 영화와 음반들도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씨에게 인도네시아의 한류열풍이 어느 정도인지 물었다.

 그는 “베트남에서는 한국 영화나 드라마 음악이 상당히 인기가 있다고 하는데, 아직 인도네시아에서는 그 정도는 아니다”라며, “그러나 드라마를 중심으로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라투플라자 안에 있는 많은 상가에서 삼성전자의 로고와 휴대폰을 볼 수 있었다. 삼성의 제품이 많이 팔리느냐는 질문에 상가 주인은 “삼성제품은 이곳에서도 상당히 고급상품으로 인식되고, 비싸게 팔리고 있다”라며, “그러나 가격이 부담스러워서인지 저렴한 상품을 사는 사람이 더 많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상점 주인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하면서 “삼성전자의 인지도가 높고, 디자인이 좋기 때문에 인기는 높다”라고 말했다.

 현지 안내인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의 휴대폰 시스템은 한국과는 매우 다르다고 했다. 인도네시아는 한국처럼 핸드폰을 등록하고 사용한 뒤 요금을 내는 것보다는 선불카드 형식의 카드를 구입하고 고유 번호를 핸드폰에 입력해 사용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이씨는 “인도네시아는 워낙 땅이 넓고, 인구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한국 같은 방식처럼 핸드폰을 등록하기가 어렵다”라며, “이 같은 현지 특성 때문에 번호만 부여받고 요금은 선불로 내는 방식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라투플라자를 나와 일렉트로니카로 자리를 옮겼다. 일렉트로니카는 음향, 영상, 가전 기기를 주로 판매하는 곳이다.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삼성과 LG 매장이 한가운데 가장 큰 평수로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 관계자들은 삼성과 LG제품이 상당히 훌륭한 제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휴대폰과 마찬가지로 아직은 활발한 판매가 이루어지는 건 아니었다. 그 이유에 대해 이씨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아직은 전자제품 등 첨단기기에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하다”라며, “이곳에 와서 제품 구경을 하고 구입은 중고로 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오후 일정이 끝나고 이씨와 몇몇 한국 교민들과 저녁을 같이 했다. 이 자리에서 교민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급한 성격이 느긋한 동남아 사람들과 잘 맞지 않아 현지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이씨는 “이곳 사람들은 가게도 최소한 3년 이상 이용한 곳이라야 자주 가는 편”이라며,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을 하면 1년 또는 단지 몇 개월 만에 일확천금을 벌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 중 최근 문제가 됐던 한국 사람들의 깔리만탄의 석탄채굴사업권 열풍에 관심이 갔다. 이 이야기는 다음날 삼탄 인도네시아 출장소장 장기남 상무로부터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11월30일] 점점 심해지는 ‘자원 쇄국정책’

 인도네시아 등 ASEAN과 한국이 FTA가 타결되면, 한국은 제조업 IT, 아세안은 농산물, 천연자원 등에 비교우위를 가지고 교역량이 늘어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최근 이들 나라들의 현황을 살펴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한국의 공산품이나 IT 산업이 인도네시아에 진출하려면 먼저 제반 여건이 조성되어야 하는데, 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또 인도네시아는 그동안 해외자본을 적극 유치해 자원을 개발하고 반출하는 정책에서 점차 이를 줄여나가는 정책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불었던 깔리만탄탄광 개발을 놓고 한국인들이 벌인 사업권 획득 사업 열풍은, FTA 체결 후 ASEAN과 교역에서 한국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많은 교훈을 던져준다. 깔리만탄은 보르네오 섬 근처 오지에 있는 탄광이다. 이곳은 노천탄광으로 굴을 많이 파지 않더라도 많은 석탄을 캘 수 있지만, 워낙 외진 곳에 있어 그동안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개발이 덜 된 상태로 알려졌다. 그런데 2004년부터 갑자기 이곳 오지인 깔리만탄에 한국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왜일까?

 이들은 깔리만탄에 석탄이 널려 있으며, 인도네시아정부에서도 외국인들의 투자를 유치한다는 말만 믿고 대박을 노리고 들어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돈만 날리고 사업을 접었다고 한다. 삼탄의 장기남 상무는 “석탄사업은 자원만 있다고 무조건 돈이 되는 사업이 아닌데, 이 점을 간과한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인도네시아 특유의 행정 처리과정에서의 뇌물 요구, 늦어지는 의사결정은 한국 투자자들을 지치게 만들었고, 게다가 사업권이 나중에 사기로 판명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의 자원 쇄국정책 강화로 자원개발에 투자를 하려면 보다 장기적인 프로젝트 설립이 필요한 상황이다.

 장 상무는 “삼탄의 경우 82년부터 조사작업을 거쳐 본격적인 석탄개발에 나섰다”라며, “호주나 미국 자본들도 대부분 오랜 기간 준비과정을 거쳐 석유·석탄 사업 이권을 따냈다”라고 말했다. 삼탄은 인도네시아에 현지법인인 KIDECO를 설립했다. 자본금 2500만달러에 현지인 약 3500명(한국인 직원 30명)을 고용하고 있고, 연간 매출액이 3억5000만달러에 이른다. 82년에서 89년까지 정밀탐사 및 타당성 검토를 거쳐 93년부터 상업생산을 개시했으며, 연간 1400만톤의 유연탄을 생산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자원개발 사업권을 외국자본에 넘기면서 10년이 지나면 지분의 51%를 인도네시아에 다시 넘기도록 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이 같은 제반사항을 모르고 이권사업에 뛰어들었다가는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최근 몇몇 한국인들이 수출입은행을 통해 굴착기 등 채굴기기에 대한 리스비용을 빌리고 싶다는 요청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사업성을 분석해 보면 가능성이 낮아 대개는 대출을 해줄 수 없는 경우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ASEAN이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어 한국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자원 수입이나 개발투자도 많은 고민과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결론이다.

 오후에는 현지에 진출해 있는 LG전자 인도네시아공장을 방문하기로 했다. 자카르타에는 공장이 없고, 대부분의 공단이 외곽에 자리잡고 있다. 시간 관계상 가장 가까운 LG전자공장을 방문하기로 했다. LG전자 현지공장은 자카르타에서 약 1시간 거리인 시카랑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 김주형 LG전자 인도네시아 현지공장 생산본부장을 만났다. 김 본부장은 FTA 체결로 관세가 인하되면 한국이나 ASEAN 모두 장기적으로는 큰 이득을 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인도네시아 내에서 LG전자의 매출은 이제 자리를 잡은 상황이다. 김 본부장은 “2004년에 10억달러 규모의 생산을 기록했으며, 2005년에는 약 11억달러로 아직은 저성장수준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2006년부터는 그동안 주력이던 비디오플레이어 생산에서 벗어나 모니터, PDP, LCD TV 생산을 확대할 예정이며, 인도네시아 내수가 증가 기미를 보이고 있어 올해보다 더 큰 성장이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LG전자는 그동안 나눠져 있던 생산 부문과 판매 부분을 통합하는 작업을 추진하는 중이다.  김 본부장은 “품목이 다양해지면서 생산과 판매를 통합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해 이같이 결정했다”라며, “양 부문 통합으로 시너지효과가 발생하면 2010년에는 30억달러 이상의 생산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인도네시아에도 점차 IT 산업의 바람이 불고 있어 모니터 등 관련 제품의 특수도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성장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에서 외국인이 기업을 영위하는 데는 여전히 어려움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김주형 본부장은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외국인의 신변 안전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가끔 외국인을 린치하는 사건이 발생해 밤거리를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한다고 했다. 또 소득수준과 국민성 때문인지 새로운 제품에 대한 열망이 한국보다는 떨어지는 것도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분석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과 ASEAN은 FTA 기본협정에 서명했다. 한·아세안 FTA는 우리가 거대 경제권과 체결한 최초의 FTA이며, 체결에 따라 한국과 아세안 국가간의 교역 규모가 연간 160억달러가량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서비스 및 투자 부문 협정이 체결되면 금융·교육·의료 등 서비스 부문의 진출도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FTA란 비교우위에 따른 교역이 전면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현지에 진출해 있는 기업인들은 대체로 FTA 체결로 인한 환상은 버려야 한다고 충고한다. 비교우위에 있는 IT 산업은 ASEAN 국가에서 당장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며, 우리에게 필요한 농·수산물이나 천연자원에 대한 정책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는 너무도 다른 이들 국가의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가 원하는 시너지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보다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며, ASEAN과의 관계는 FTA를 넘어 환율 및 통화 부문 협력, 환경 및 에너지 부문 공동대응, 인적교류 확대 등을 거쳐 공동시장으로 나아가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자카르타 = 박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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