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더불어 인도는 미래 세계 경제를 주도할 핵심 국가로 주목받는 나라다. 특히 IT 부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지닌 만큼 성공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관심을 가져볼 만한 곳이다. 2004년 인도 현지업체에 취업, 커리어우먼의 야무진 꿈을 키우고 있는 박우미씨의 인도 취업 과정과 1년여 간의 생활 체험.
 도 제3의 도시로 꼽히는 뱅갈로르(Bangalore)는 인도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IT산업의 심장부다. 당연히 세계 유수의 IT기업이 진출해 있는 이 도시는 인도에서 ‘가장 인도답지 않은 도시’라 불릴 정도로 국제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1977년생으로 올해 스물아홉인 나는 지난 2004년 이곳에 왔다. 내가 일하고 있는 직장은 SISO(Samsung India Software Operation)라는 삼성전자의 인도현지법인이다. 내가 속한 부서는 무선사업부로, 주로 휴대전화의 자재를 개발한다. 주업무는 인도 현지인 엔지니어들의 업무를 지원하는 일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에서 온 문서의 영문 번역, 자재관리 등이다.

 인도에 취직했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인도에 취직할 생각을 했냐’고 묻곤 한다. 이미 한국에서 여행지로 친숙한 인도지만, 아직도 많은 한국 사람들은 인도를 직장을 얻고, 가서 살 곳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먼 인도 땅에서 직장을 얻게 된 계기는 5년 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5년 전 암울했던 캐나다행이 인생의 전기

 2000년 겨울, 4학년 2학기를 마친 나는 대학생으로는 마지막 방학을 맞고 있었다. 청주 서원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막상 취업 전선에 뛰어들고 보니 현실은 겨울 추위만큼이나 차가웠다. 사회의 높은 벽도 문제였지만, 나 역시 사회가 원할 만큼의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자책이 마음을 찔렀다.

 늦었지만 부족한 공부를 더해야겠다고 결심한 나는 만류하는 부모님을 설득해 캐나다로 어학연수 길에 올랐다. 졸업식은 하지 않았지만 4학년까지 마치고 외국으로 영어공부를 하러가겠다는 딸의 결심에 부모님은 불안해하셨지만, 여동생과 함께 가겠다고 하자 마지못해 응낙하셨다. 그때만 해도 6개월을 예정하고 떠난 길이라 부모님의 걱정도 크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다시 한국 땅을 밟은 것은 그로부터 3년이 지난 뒤였다.

 캐나다에서의 생활은 우울했던 졸업시즌을 싹 잊게 할 정도로 보람 있고 즐거웠다. 다인종 국가답게 세계 여러나라에서 온 친구들과의 교류는 나에게 새로운 사고와 시각을 제공해주었다. 캐나다에는 아시아, 특히 인도에서 온 이민자들이 많았다. 따라서 인도출신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릴 기회를 가졌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가운데서도 따뜻하고 정이 많은 인도인들의 기질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어학연수를 마친 뒤, 나는 캐나다에서 유치원 교사, 여행사 직원 등으로 직장생활 체험한 후 3년 만에 귀국했다. 캐나다에서 계속 일하고 싶었지만 정규 취업 비자를 얻는 일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귀국하는 발걸음이 무겁지는 않았다. 3년간 외국 땅에서 가족 친지와 떨어져 살며 내 안에는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귀국 후 컴퓨터 그래픽을 배운 나는 영어와 컴퓨터 그래픽 기능을 필요로 하는 회사에 취업했다. 그러나 컴퓨터 그래픽보다는 영어를 전문으로 하는 일을 하고자 했던 내 바람과는 달리, 회사에서는 영어로 업무할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캐나다에서 3년간 배운 영어 실력이 조금씩 퇴보한다는 걸 피부로 느끼면서 초조해하고 있던 나에게 ‘인턴십을 통한 해외취업’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나는 즉각 응모했다.

 서류 전형과 전화 인터뷰를 통과한 나는 응모 초기부터 SISO사를 원했고, 인턴요원으로 선발되었다. 응모한지 두 달만에 나는 인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무난한 해외적응력은 나의 경쟁력

 캐나다 생활에서도 느꼈지만 나의 현지 적응력은 무척 좋은 편이라, 뱅갈로르에서의 생활은 큰 어려움 없이 진행되었다. 직원 대부분이 인도 현지인인데, 무엇보다 캐나다에서 만난 인도 친구들보다 훨씬 다정하고 따뜻했다.

 물론 나고 자란 나라가 아닌 이상 어려움이 없을 순 없었다. 특히 공기와 물이 문제였다. 인도의 주요 도시 중에서는 가장 공기가 좋은 곳이라고는 하지만 공해 물질에 대한 단속이 아직 덜 한 까닭에 매연이 많았고, 성분이 다른 물 또한 인도가 처음인 나에겐 한동안 골칫거리였다. 그외에는 별다른 어려움없이 인턴과정을 밟았고, SISO사의 정식직원으로 발령 받은 나는 한층 더 열심히 일하고 배워, 당당한 커리어우먼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인도에서의 직장생활은 한국과 크게 다른 게 없지만, 근무 분위기가 좀 더 부드럽다. 긴장감 속에 업무 성과를 올리기 위해 열심인 한국이 조금 딱딱한 분위기라면 이곳은 사람들의 표정도 부드럽고, 업무를 진행하는 스타일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영어 사용에 익숙한 인도인들이기 때문에 업무 진행에는 어려움이 없다. 더구나 다정다감한 성격들이라 짧은 시간에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업무 이외의 시간엔 이들과 어울려 함께 저녁을 먹고, 주말에는 쇼핑이나 영화 관람 등을 함께했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인도음식이지만 입맛에 잘 맞아 나는 ‘난’, ‘달’, ‘쌈바’와 같은 인도 전통 음식도 맛볼 수 있었다. 특히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입맛이 까다로운데 인도 음식에는 채소류가 많다는 점도 인도 적응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은 큰 요소다.

 인턴십을 통해 우리 회사에 다니고 있는 한국인 사원은 나를 포함해서 모두 4명이다. 뱅갈로르에 한국인은 200명 남짓 살고 있다. 한인회가 있지만 교회를 다니지도 않고 한인회에 가입하지 않은 나는 함께 취업하러 온 직원들과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외국 생활을 하고 있다.

 별 탈 없이 적응하고 있긴 하지만 엄연한 외국 생활인만큼 가족과 친구들이 보고 싶을 때가 가장 힘들다. 인터넷 메신저 등 실시간 접속이 가능한 첨단 통신시대라는 점이 큰 위안이 되긴 하지만 물리적인 거리를 생각하면 솔직히 외롭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친구들과 거리를 걸으며 먹던 김밥, 떡볶이 생각이 간절하다.



 외로움 때문에 포기(?) 결코 없다

 스물아홉이란 비교적 늦은 나이에 인도라는 나라에 취업해 혼자 생활하고 있는 나에 비해 한국의 친구들은 대부분 결혼을 해 아줌마가 돼 있다. 부모님이 “나이가 꽉 차 가는데 너는 언제 결혼할 거냐?” 고 한 걱정을 하실 때면 은근히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지금 나에게 훨씬 더 중요한 건 결혼이 아니라 일이다. 인도 생활이 좋은 점은 그런 일로 시달릴 연말연시나 설날을 무사히 넘어갈 수 있다는 점도 포함된다.

 인도생활 1년 만인 지난 11월,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5일 동안 귀국한 적이 있다. 공항에 마중 나온 부모님은 그렇지 않아도 마른 체형이던 내가 더 야윈 것 같다며 결혼식 날을 제외한 나머지 기간 동안 꼼짝도 못하게 하고는 온갖 음식을 해주셨다. 혼자 있을 땐 몰랐는데 막상 집에서 편하게 지내다 다시 출국하기 위해 공항에 나서자 눈물이 났다. 물론 금세 다 툴툴 털어버렸지만 말이다.

 한 달 전, 회사에서 걸어 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 오피스텔로 숙소를 옮겼다. 1년 정도 생활을 하고나니 이곳 생활에도 여유가 생겨 업무 외의 시간을 즐길 수도 있게 됐다. 이사를 하고나서 다시 영어 공부도 시작했다. 업무와 생활에는 지장 없지만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경지에 오르는 것이 내 목표이기 때문이다. 물론 외롭긴 하지만 이곳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충분한 경력과 실력을 쌓기에 인도는 결코 나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끔 혼자 상상을 한다. ‘내가 만약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가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대부분의 친구들처럼 고전은 했겠지만 직장을 잡았을 것이고, 큰 문제가 없었다면 역시 결혼을 했겠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해 나름대로 업무에 대한 자신감에 차 있는 커리어우먼이 돼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캐나다 행을 택했고, 지금은 인도에 와 있다. 이것은 누구의 강요도 아닌 내 스스로 한 판단이고 스스로 내린 결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후회는(?) 당연히 없다.



 plus interview



 한달 생활비 45만원이면 풍족하게 살아



 현지업체의 근무조건은?

 주5일제 근무다. 토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인도의 공휴일은 쉰다. 월 1회의 월차휴가가 있고, 그 외 다른 휴가는 없다.



 연봉은?

 정확한 금액은 밝힐 수 없지만 한국에서 파견 나온 삼성 본사 직원에 비해 SISO사에 채용된 나의 연봉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나 현지 물가를 감안할 때 낮은 수준의 연봉도 아니다. 뱅갈로르의 물가는 한국의 30%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혼자 얻어 생활하고 있는 오피스텔의 경우, 10개월 치 방세를 보증금으로 선납하고 매달 15만원의 방세를 낸다. 생활비의 대부분인 식비는 더 싸다. 좋은 레스토랑에서 외식도 자주하고 풍족하게 쓴다고 해도 30만 원 정도다. 아끼려고 들면 10만원이면 충분히 한 달을 살 수 있다.



 현지생활의 유의점이 있다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저녁에는 외국인 여자 혼자 돌아다니는 것이 위험하다. 그 점을 제외하곤 뱅갈로르의 생활은 크게 어려움 없다. 도로나 교통이 아직 좋지 않은 점이 단점일 수 있다. 그러나 기타 문화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제반 시설은 갖춰져 있다. 무엇보다 인도 음식은 다채롭고 맛있다.



 인도취업을 생각하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게 인도는 낙후된 나라이자 낯선 도시일 것이다. 그러나 인도인들과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배울 것이 많다. 영어를 잘 구사하는 만큼 생활 자체가 영어공부다. 인도의 높은 IT기술 수준과, 향후 중국과 함께 세계 시장을 선도할 나라라는 점에서 인도에서의 취업 경험은 훌륭한 경력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정리 = 오성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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