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봄날의 오후. 졸음도 쫓고 기분전환도 할 겸 잠시 티타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커피, 홍차 같은 외국차가 아닌 석정차, 댓잎차, 고구마차 같은 우리의 전통차를 말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웰빙’이란 말은 수없이 들을 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조상들은 ‘웰빙’이란 국적불명의 말을 쓰지 않고도 제대로 ‘웰빙’하게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차(茶)다. 그들은 차를 마셔가며 심심의 건강증진을 도모했고, 여유 있는 마음을 가졌으며, 다도로 예절과 질서를 배워왔다. ‘웰빙’한다며 큰 돈 들이지 말고 조상들이 즐겨마시던 차를 음미해보는 것은 어떨까. 지리산서 스님들이 마시던 석정차를, 담양 대나무밭에서 올라온 대잎차를, 고향의 맛을 느끼는 호박죽차와 고구마차를 말이다. ‘지리산 장죽전 제다’, ‘대나무 건강나라’, ‘제이앤푸드’를 찾아봤다.

| 지리산 장죽전 제다 |  스님들이 즐겨마시던 석정차를 아시나요

3월말~4월초 전남 구례 화엄사 인근은 산수유와 매화로 장관을 이룬다. 그 다음엔 녹차가 차지한다. 지리산의 녹차는 전남 보성의 잘 정리된 차밭과 달리 거의 야생으로 여기저기서 자라난다. 보통은 4월10일경이면 찻잎을 따지만 올해는 윤달이 끼어서 10일정도 늦어졌다.

지리산 주변일대는 연평균 기온이 섭씨 13.8도, 연평균 강우량 1538㎜로 온화한 기후인데다, 지리산과 섬진강이 연결돼 늘 안개가 자욱하다. 뿐만 아니라 자갈이 많고 토심이 깊은 토질이라 차나무가 자라기에 적합한 지역으로 꼽힌다.

1998년 서울서 인테리어업을 하다가 귀농한 박일권(50) 지리산 장죽전 제다 대표. 그는 장죽전 제다법으로 지리산 녹차를 석정차로 둔갑시킨다.

“1년에 한 번 봄 잎으로만 차를 만들기 때문에 농약을 치지 않습니다. 차나무의 뿌리가 깊어 영양분을 많이 흡수하고 병도 잘 걸리지 않아 화학비료나 농약을 치지 않아도 됩니다.”

석정차는 박 대표가 특허실용실안을 낸 석정제다기에서만 비로소 만들어진다. 석정제다기는 각섬석을 깎아 돌솥과 건조대를 성형하고 솥 내부에 줄무늬 홈을 만들어 차를 덖는데 편리하도록 했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솥과 건조대 밑에는 전기히터와 센서를 부착해 차를 제다할 때 솥을 일정시간 적정 온도로 유지시켜 준다. 제다 시 방출되는 원적외선의 가열 건조효과로 차 잎을 빠른 시간 내에 균일하게 건조할 수 있어 공정이 대폭 단축된다. 이는 원적외선이 차 잎의 표면만이 아니라 속까지 동시에 온도을 높이는 원리에서 응용된 것이라고 한다.

보통은 2~3,5킬로그램 차 잎을 가마솥에 덖는데 박 대표는 500그램의 차 잎만을 석정제다기에서 덖는다.

“석정차는 첫날에 따는 차 잎으로 제다기에 양을 적게 넣고 섭씨 300도의 고온에서 재빨리 그것도 손으로 직접 솎아내야 만들어집니다.”

박 대표가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 데는 스님들의 전통차를 제대로 구현해보기 위해서다. 그는 소년시절 부친이 화엄사로 출가해 용암사 스님으로 있을 때 부친이 직접 만들어주는 차맛에 반했다고 한다.

석정차는 다른 차들에 비해 빛깔과 맛, 향이 깊다고 한다. 아울러 원적외선의 영향으로 차의 영양 및 기능성들이 최대한 유지된다는 것.

박 대표는 “석정차를 마시면 체내의 노폐물 배출과 세포의 활성화가 촉진돼 인체의 활력을 증진시킨다”고 자신한다. 그는 장죽전 제다법으로 만들어진 녹차를 알리기 위해 장죽전 차 문화원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 대나무건강나라 |  다섯 번을 우려내도 변하지 않는 맛, 댓잎차

담양군은 전국 죽림 면적의 14%를 차지하고 있는 대나무의 주산지다. 주민들에게 대나무 밭은 생금(生金) 밭으로 불릴 만큼 담양 주민들의 든든한 소득원이자 삶의 터전이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값싼 플라스틱 제품과 수입 죽제품의 범람으로 대나무 산업은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에 담양군은 대나무에 대한 다수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댓잎식품 업체를 공개모집했고, 경쟁자 5명 중 유영군(57) 대표가 선정됐다. 유 대표는 담양군에서 23여억원을 지원받아 댓잎차와 댓잎분말을 생산하는 대나무건강나라를 설립했다.

유 대표는 원래 담양지역에서 20여 년간 한과 사업을 해왔다. 평소 한과의 맛과 차의 맛이 잘 어울려 차에 관심을 많이 가졌었는데, 마침 담양군에서 대나무사업을 벌인다는 소식에 귀가 번쩍 띄었단다.

댓잎차를 만드는 과정은 녹차와 비슷하다. 하지만 댓잎차의 제조공정은 녹차의 그것과는 달리 덖음과 증제(찜)과정을 모두 거친다. 또 까다로운 가향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풋내가 나지 않고 떫은맛이 없다. 빛깔은 황금색을 띄며 마실 때엔 은은하게 대나무 향이 퍼진다.

유 대표는 “댓잎차를 만드는 방식은 녹차와 비슷하나 과정 하나하나는 훨씬 까다롭다”고 한다. 댓잎이 찻잎보다 섬유질이 훨씬 많아 제대로 된 맛을 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댓잎차는 섭씨 90도의 물에서 적어도 1분정도는 우려내야 제대로 된 맛을 볼 수 있다. 이 역시 댓잎의 풍부한 섬유질 때문이다. 또 다섯 번 정도까지 우려내도 맛이 변하지 않는다. 유 대표는 “좋은 차의 기준은 여러 번 우려내도 변하지 않는 맛”이라고 덧붙였다.

“조상들은 밥과 떡 등 음식물을 댓잎으로 싸서 부패를 막았습니다. 동치미에 댓잎을 띄워 빠른 숙성을 억제하고, 댓잎을 달여 약용으로도 써왔습니다” 유 대표가 이야기하는 댓잎을 활용한 조상들의 지혜다.

과학적으로 대나무의 여러 효능은 밝혀진 바 오래다. 영양이 풍부하고 살모넬라균이나 O-157 등 식중독을 일으키는 균의 활성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대나무의 초록색을 이용한 무공해 천연색소로의 효용성도 가지고 있다.

댓잎차는 지역경제에도 한몫하고 있다. 댓잎차와 댓잎분말을 생산하는 데에는 연간 10여 톤의 생(生)댓잎이 필요한데 담양군민이 채취한 담양산 댓잎만을 수매하여 원료로 이용한다. 1kg당 1700~2200원에 전량 수매해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연 1억원에 이른다.

현재 대나무건강나라에서 생산하고 있는 것은 댓잎차, 댓잎차 티백, 댓잎분말 등이다. 유 대표는 “댓잎차는 4월부터 6월까지 나오는 어린잎으로 만들며 티백은 6월부터 10월까지 나오는 성숙한 잎으로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분말은 남양유업, CJ 등에 납품중이다.

유 대표는 “앞으로 보다 많은 댓잎상품을 개발하고 보다 많이 수출할 것”이라 포부를 밝혔다.

현재 스위스 등 유럽지역에 수출된 금액은 35만달러에 이르고 있다.

| 제이앤푸드 |  해외교민도 찾는 고구마차와 호박죽차

기도 포천에 있는 제이앤푸드의 고구마차와 호박죽차가 ‘고향의 맛’을 찾는 국내소비자와 해외교민들에게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제이앤푸드의 윤주노(36) 대표는 보해에서 6년간 일했던 샐러리맨 출신. “선배들이 그러더군요. 오랫동안 영업을 하면 뭔가 길이 보인다고” 그가 본 길은 원래부터 관심이 많던 전통차를 기존의 제품과 뭔가 다르게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그는 모든 제품을 ‘분말화’ 하기로 했다. 하나는 소비자가 언제 어디서나 쉽게 마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신제품 출시 주기를 빨리해 소비자의 선택 폭을 넓히기 위함이다. 또 분말화한 제품을 스틱 포장했다. 위생과 안전성을 위해서다.

그가 만들고 있는 전통차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현재 생산하고 있는 차 종류만 대략 10여 종에 이른다. 대보름부럼차, 전통미숫가루, 전통수정과, 녹차미숫가루, 고구마차, 웰빙호박죽차, 홍삼벌꿀차 등이다. 국내에서 가장 반응이 좋은 제품은 대보름부럼차, 전통 미숫가루, 전통수정과 등이고 녹차미숫가루, 고구마차, 호박죽차 등은 해외교민이 많이 찾는다.

고구마차는 고구마가 변비나 소화에 좋은 성분임을 착안해 만들었다. 특히 아침식사를 거르거나 출출할 때 간식으로 먹으면 좋다고 한다. 호박죽차는 집에서 어머니가 만들어 주는 맛을 내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간편함’과 동시에 ‘고향의 맛’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입맛을 맞추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윤 대표의 제이앤푸드는 전통차 제품의 성장에 힘입어 설립 4년 만에 한해 매출 60억원에 이르는 급성장을 해왔다. 대형할인점인 홈플러스, 하나로마트, 까르푸와 편의점인 훼미리마트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 및 중견 다류업체와 OEM 또는 위탁가공을 통해 납품과 수출도 한다.

하지만 윤 대표는 처음 대보름부럼차, 수정과, 미숫가루를 내놓고 힘든 시기를 맞았었다. 그는 “당시 이런 제품은 시중에 판매되고 있지 않았고, 집에서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재정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제품을 개발했다”고 설명한다.

그런 예상과는 달리 제품을 출시하고 2개월 동안은 유통망을 찾지 못해 거의 휴업상태였다고 한다. 이후 할인마트에 입점해 소비자가 제품을 알게 되면서 어느 정도 숨통이 틔었다. 윤 대표는 “그 정도만으론 아직 힘든 시기였지만 어렵게 개발한 제품에 대해 전화로 ‘맛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보람을 느꼈다”고 말한다.

윤 대표는 “솔직히 어떤 이는 ‘제품에 색깔이 없다’고 지적하기도 한다”며 “하지만 소비자가 위생적이고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분말차’에 대한 고집은 버리지 않을 것”이라 한다. 스스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의 말처럼 제품에 보다 확실한 자신만의 색깔은 넣는 것이다.

윤 대표를 비롯해 제이앤푸드의 직원 30여 명은 모두 이제 갓 서른을 넘긴 나이. 그는 “젊다는 게 경험이 없다는 점에서 단점이 될 수 도 있겠지만 의사결정은 어느 회사보다도 빠르다”고 말한다. 또 “직장을 내 것처럼 생각하는 사원들의 마음은 어느 직장의 직원에게도 지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마음에 꼭 보답하겠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이창희/이홍표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