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우선적으로 전임 외교부 장관이 서명했던 위안부 합의문을 무효화하고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추진했다. 미국의 비핵화 협상에 비유해 보자. 강경파 볼턴의 역할을 담당하고 빠질 수 있는 여성가족부 장관이나 감사원 등이 합의문 파기 및 재단 해산을 추진하더라도, 온건파 폼페이오 장관 역할을 해야 할 강 장관은 양국 간 대화 채널로 남았어야 했다.

‘신일본제철(옛 일본제철)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 이후, 일본 정부는 한·일 청구권 협정을 근거로 일본 기업의 피해가 없도록 한국 정부가 알아서 처리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강 장관이 직접 삼권분립 원칙을 거론하며 대화 채널을 닫아버렸다. 일본이 이번 조치를 발표하기 전날까지도, 강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이 어떠한 보복 조치를 감행하면 더더욱 강경한 대응 조치를 실행하겠다며 전의를 불태웠다.

일본은 크고 작은 문제들에서 한국 정부와 마찰이 있을 때마다 꾹 참고 치밀한 ‘뒤끝’을 준비해 왔다. 찔린 우리조차 찔리고 나서야 급소였구나 할 정도의 숨은 급소를 찔렀다. 한국 정부가 7월 9일 WTO(세계무역기구) 상품무역이사회에 문제제기한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이 가능한 원재료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관리상 부적절한 사안이 발견됐다”고 했다. ‘아니면 말고’ 식의 의혹제기로 우리를 망신 주기로 일관한 것이다. 또 WTO 이사회 이후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도쿄의 관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 언론의 국회 자료 관련 과거 보도를 인용하면서 “한국이 핵무기에 사용되는 불화수소를 북한에 밀수출했을 수 있다”고 한국 내부 분열을 조장했다.

특히 모든 실무급 협의는 배제한 채, 준비된 제재 조치들을 한 번에 다 터뜨리지 않고 간보듯 단계별로 시행하겠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한국의 고위급(?)에게 강경 노선을 버리고 빨리 대화의 테이블로 나오라는 메시지다. 그동안 일본 정부가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왔는지 보여준다.

우리도 영원히 대일 강경 노선만을 추구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지리적으로, 경제적으로 너무 가깝고 무엇보다 현시점에서 우리가 가진 카드가 변변찮다. 이제는 출구전략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본과 관계 회복을 논의할 대화 채널조차 없다. 강경 대응만을 외쳐왔던 외교부 장관에게 갑자기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라고 내몰 수도 없고, 또 그보다 하위 직급인 주일대사나 통상교섭본부장 등을 화해나 관계회복을 위한 메신저로 활용할 수도 없다.

결국 우리 정부에 남은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 정도다. 대일 강경 노선을 고수하는 강 장관을 유임시키고자 한다면,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이 물밑 작업을 맡아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서 일괄타결 방식을 추진해야 한다. 혹은 강경화 장관에게 내년 총선 출마를 권유하고 새로운 외교부 장관을 임명해 대일 외교라인을 재정비한 후, 양국 외교부 장관 회담 혹은 그 이상의 고위급 회담을 통해 양국 관계 개선을 도모해야 한다.

문제는 출구전략으로 한·일 정상회담을 추진할 때, 일본이 들이밀 선결조건 리스트다. 당연히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 한국이 일방적으로 무효화한 위안부 합의문 처리 문제 그리고 화해·치유재단 처리 문제 등을 정상회담 전에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그나마 이 정도 현안은 어느 정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는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거해 한국 정부가 안고 가고, 위안부 합의문은 일본 정부가 좀 더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는 방향으로 재합의를 시도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양국 관계가 더 악화한다면 양국 정상이 만나기까지 더 많은 난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올 수도 있다.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을 가래로도 막을 수 없는 상황이 오기 전에 출구전략을 실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