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는 ‘태거’라는 직업이 있다. 넷플릭스에 있는 영상 콘텐츠를 보면서 태그(꼬리표)를 다는 일을 한다. 사진 블룸버그
넷플릭스에는 ‘태거’라는 직업이 있다. 넷플릭스에 있는 영상 콘텐츠를 보면서 태그(꼬리표)를 다는 일을 한다. 사진 블룸버그

회사에 출근해 글로벌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인 넷플릭스를 보는 것으로 돈을 버는 직업이 있다. 이 직업은 넷플릭스의 ‘태거(Tagger)’다. 콘텐츠를 면밀하게 보고 여기에 ‘태그(tag·꼬리표)’를 다는 사람(-er)이라는 의미에서 태거라고 불린다. 태그는 콘텐츠를 설명하는 짧은 문구를 의미한다. 태그의 종류가 워낙 다양해 넷플릭스에서도 태그의 개수를 따로 집계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넷플릭스 내부에서는 태그를 ‘사람 기반 데이터(people powered data)’라고 부른다. 태그를 추천 시스템 알고리즘을 구축하는 기반 데이터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이 알고리즘을 통해 콘텐츠를 5만 종으로 나눠 정리한다.

넷플릭스는 이렇게 5만 종으로 나눈 콘텐츠를 개별 이용자의 넷플릭스 이용 이력에 따라 맞춤형으로 추천한다. 콘텐츠 추천 시스템은 넷플릭스가 전 세계 1억4820만 명의 회원을 확보한 비결 중 하나라고 꼽힐 만큼 정교하다. 이용자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콕 집어내기 때문에, ‘내가 몰랐던 내 취향을 알려준다’고 이용자들이 평할 정도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추천 작품은 넷플릭스의 선물 같은 존재”라고 설명했다.

넷플릭스가 세계 시장에서 인기를 얻기 전, 영상 콘텐츠 분류는 대개 ‘호러’ ‘로맨틱 코미디’ ‘액션’ 등 몇 안 되는 장르를 기반으로 나뉘었다. 넷플릭스는 태거들의 태그에 따라 이 분류를 더 자세하게 만들었다. 가령 ‘주도적이고 강한 여성이 등장하는 TV 프로그램’ ‘실화 바탕 영화’ ‘베스트셀러 소설 기반’처럼, 기존의 콘텐츠 분류 방식보다 더 세밀하게 나눈 것이다. 태거에 대한 궁금증과 이에 대한 넷플릭스의 답변을 문답으로 정리했다.


태거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태거는 넷플릭스에 있어 도서관 사서 같은 존재다. 사서는 책을 보고 이 책을 어떤 분류에 넣어야 좋을지 판단하지 않나. 마찬가지로 태거는 넷플릭스 영상을 분류한다. 이를 위해 태거는 콘텐츠를 처음부터 끝까지 봐야 한다.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분석해야 한다. 줄거리, 분위기, 등장 인물의 특성 등을 꼼꼼하게 기록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콘텐츠를 볼 때마다 그 콘텐츠 러닝타임의 두 배 이상의 시간을 들여야 한다.”

어떤 사람들이 태거로 일하고 있나.
“비디오 대여점에서 일했던 사람부터 영화 마니아, 매일 TV만 보는 TV 중독자까지, 다양한 사람이 일하고 있다. 다양한 회원의 취향을 반영한 태그를 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중요한 공통점은 영화와 드라마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태거는 모두 몇 명인가. 그들의 국적은.
“넷플릭스에는 50명의 태거가 근무하고 있다. 태거의 국적을 따로 집계하지는 않는다.”

2017년 말 기준, 넷플릭스에 근무하는 태거는 30명이었다. 이 가운데 한국인이 3명이었다. 2019년 5월 현재 한국인 태거는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태거 수가 30명에서 50명으로 2년 사이 두 배 가까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넷플릭스는 2018년 한국 사무소를 내는 등 한국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한국어 콘텐츠도 2017년 당시보다 많이 늘었다.

한 작품을 한 명의 태거만 보나.
“꼭 그런 건 아니다. 가끔은 태거 두 명이 같은 콘텐츠를 감상하게 한다. 둘의 태그가 비슷하게 나오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편향된 의견을 최대한 덜어내고 객관적인 정보를 만들기 위한 작업이다.”

태거의 근무 형태는. 재택근무를 하나.
“넷플릭스의 다른 직원과 마찬가지로 태거도 회사로 출근한다. 현재 스페인어에 능통한 태거의 채용 절차를 밟고 있는데, 채용된 태거는 캘리포니아주 로스 가토스에 있는 넷플릭스 본사에서 근무하게 된다. 태거는 전부 정규직이다.”

태거의 연봉도 궁금한데.
“연봉은 공개할 수 없다.”


Plus Point

베일에 싸인 꿈의 직업 ‘태거’
태거에게 듣는 태거의 모든 것

넷플릭스는 태거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제공하지 않는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태거가 될 수 있는 조건을 ‘영상 콘텐츠를 사랑하는 사람’ 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 정도로만 설명할 뿐이다. 이는 넷플릭스가 태거의 존재를 다른 동영상 서비스 회사와 자사의 서비스를 차별화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태거로 일하고 있을까.

지난해 3월 미국의 경영 월간지 ‘패스트 컴퍼니’는 넷플릭스에서 태거로 일하고 있는 셰리 굴마하마드를 인터뷰했다. 그는 넷플릭스가 작은 DVD 대여 회사였을 때인 2006년부터 이 회사에서 일했다. 굴마하마드는 동영상 스트리밍이라는 개념이 확산되기 한참 전인 1990년대에는 비디오 가게에서 일했던 ‘영화광’이었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로욜라 메리마운트대에서 시나리오 작성을 전공하고, UCLA에서 영화 비평 석사를 마쳤다.

당시 콘텐츠 관련 일자리를 구하던 그에게 넷플릭스는 ‘신데렐라의 구두(Cinderella slipper)’ 같은 존재였다고 했다. 넷플릭스는 그가 가진 영화 관련 지식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안정적인 근무 환경을 제공해주겠다고 했다.

넷플릭스에서 10년 넘게 일한 굴마하마드는 이제 면접관이 됐다. 그는 자신이 넷플릭스에 입사했던 당시와 달리, 최근 태거의 채용 과정에는 시험이 도입됐다고 했다.

그는 “면접자들의 지식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글쓰기 시험이 있다”면서 “콘텐츠에 태그를 달고 콘텐츠를 ‘큐레이션(curation)’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지 파악하는 절차도 있다”고 설명했다. 큐레이션은 어떤 정보에서 불필요한 것을 빼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만 뽑아내 배치하는 기술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쓰는 개념인데, 최근에는 영상 콘텐츠와 음악·언론·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굴마하마드는 대학에서 영화나 기록, 도서관 관련 공부를 한 사람들이 태거에 뽑힐 확률이 높다고 했다. 그는 “책이 내용에 따라 제대로 분류됐는지 확인하는 도서관 사서에 가깝지만, 동시에 TV 쇼와 영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도 필요한 것이 태거”라면서 “넷플릭스는 여기에 더해 혁신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