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사진 블룸버그
왼쪽부터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사진 블룸버그

지금 세계는 ‘스트롱 맨’의 시대다.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를 필두로 세계 주요국의 지도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시황제로 불리는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차르로 불리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나폴레옹에 비유되고 있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까지. 

여기에 이탈리아·헝가리·폴란드·오스트리아 등 유럽 여러 나라에 우파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 정권이 들어섰고, 남미와 동남아시아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는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2016년 포퓰리즘 지수가 1930년대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경고했다. 

도대체 이런 스트롱 맨들은 어디에 있다가 일제히 고개를 치켜든 걸까. 전문가들은 경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루이지 귀소 이탈리아 에이나우디 경제금융연구소 교수와 엘리오스 에레라 영국 워릭대 교수 등은 유럽경제정책연구센터(CEPR)에 올린 논문에서 “경제적 불안이 포퓰리즘 정당의 집권 가능성을 높인다”고 분석했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경제적으로 불안하지 않은 상태에 있던 유권자가 경제적으로 불안한 상태로 변할 경우, 포퓰리즘 정당에 투표할 확률은 14.5% 정도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포퓰리즘을 내세운 지도자가 정권을 잡은 국가들을 보면 실제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이 정권을 잡은 이탈리아의 경우 실업률이 10%를 웃돌고 있고, 빈곤 인구는 2016년 기준으로 1800만 명에 달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1500만 명)보다 오히려 300만 명이 늘어난 것이다. 

미국은 금융위기 이후 실시한 양적완화 덕분에 주식시장이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등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지만, 역시나 소득 불평등 문제는 심각하다. 통계분석 업체인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금융위기 전인 2007년 미국의 지니계수는 0.46 수준이었는데 2016년에는 0.48로 올랐다. 지니계수는 소득 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로 수치가 높을수록 불평등이 심하다는 의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미국의 소득 상위 10%와 하위 10%의 소득 차이가 2010년 5.03배에서 2060년에는 6.74배까지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경제 성장의 과실을 나눠 가지지 못한 미국 중산층의 불만이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약한 경제’가 ‘강한 지도자’를 부르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트럼프와 시진핑, 푸틴 이전에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가 있었다.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정권을 잡기 전인 1970년대 두 나라 경제는 파탄지경이었다. 

오일쇼크의 여파로 1970년대 미국 물가 상승률은 매년 10%를 웃돌았다. 1977년부터 1981년까지 미국을 이끌었던 카터 정권(민주당) 시절 미국의 평균 물가 상승률은 10.8%였다. 물가가 천정부지로 오르는데도 경제는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물가가 오르면 임금이 오르고 소비도 증가하면서 경제 전반이 활력을 되찾아야 하는데, 이 시절 미국의 평균 경제 성장률은 2.8%에 그쳤다. 미국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의 등장에 카터 정권은 속수무책이었다.

영국의 상황도 비슷했다. 영국은 1970년대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심각한 노사 갈등으로 사회가 혼란에 빠져 있었다. 물가 상승률은 20%를 넘어섰고, 방만한 복지 정책 때문에 국가 재정은 뿌리가 뽑힐 지경이었다. 1979년에는 영국 국가 재정에서 복지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50%에 육박했다.

이런 와중에 1978년 겨울, 영국의 운수·병원·청소·자동차노조가 연대파업에 나서면서 이른바 ‘불만의 겨울’이 찾아왔다. 4개월간에 걸친 연대파업 기간에 교통망이 마비되고 거리마다 쓰레기가 썩은 내를 내며 쌓여 갔다. 급기야는 입원을 거부당한 환자가 죽는 일까지 벌어지면서 노조와 노동당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결국 1979년 3월 노동당 정부에 대한 불신임안이 의회를 통과했고, 그해 5월 치러진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했다. 보수당 당수였던 대처는 다우닝가 10번지에 입성했다. 레이건은 그보다 1년 반 늦은 1981년 1월 백악관 입성에 성공했다. 정치적 동반자로 평가받는 레이건과 대처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정부가 작아질수록 경제는 커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말을 여러 차례에 걸쳐 인용할 정도로 레이거노믹스(레이건 전 대통령의 경제 정책)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정책은 크게 ‘보호무역’ ‘감세’ ‘규제 완화’ ‘금리 인상’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 중에서 보호무역을 제외하면 레이거노믹스와 여러 가지로 닮았다. 30여 년 전 레이거노믹스가 걸어간 길을 되짚어 보면 트럼프 시대 미국과 세계 경제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다는 의미다.

레이거노믹스의 핵심은 ‘작은 정부’다. ‘정부 예산이 줄어들면 경제 규모는 커진다’는 말이 레이건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말로 남았을 정도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캘리포니아 주지사 시절에도 “주정부 예산을 해마다 10%씩 줄이겠다”고 선언했었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정부 지출 삭감에 나섰다. 복지 정책을 대대적으로 폐지했고, 백악관 직속 규제폐지전담반을 만들어서 기업 활동에 대한 정부 규제를 제거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카터 정권 시절 미국 연방정부의 연간 지출 증가율은 4%에 달했지만 레이건 정권 시절에는 2.5%로 낮아졌다.

감세도 레이거노믹스를 대표하는 키워드다. 카터 정권 시절 미국의 최고소득세율은 70%에 달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국민들이 번 돈을 정부가 뺏는 건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면서 감세에 나섰고, 1986년에는 최고소득세율을 28%까지 낮췄다. 법인세율도 48%에서 34%로 낮추는 등 대대적인 감세 정책을 펼쳤다. 

2013년 4월, 대처 전 영국 총리의 타계 소식을 전하는 뉴스가 방송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2013년 4월, 대처 전 영국 총리의 타계 소식을 전하는 뉴스가 방송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대처 전 총리의 경제 정책도 레이거노믹스와 닮은 꼴이다. 당시 영국의 최고소득세율은 80%에 달했다. 투자소득세 등 다른 세목까지 합치면 최고소득세율이 95%에 달했다는 분석도 있다. 대처 전 총리는 높은 세율과 과도한 복지 혜택이 영국병(病)의 주범이라고 보고 개혁에 나섰다. 

최고소득세율을 40%로 낮추고, 정부 지출 축소를 최우선 정책으로 내세웠다. 고질적인 재정 적자 요인이던 공기업 민영화도 대처리즘(대처 전 총리의 정책)의 특징이었다. 대처 전 총리는 공영 임대주택을 매각하고, 영국통신과 영국석유 같은 굵직한 공기업을 민영화했다.

대대적인 개혁의 결과는 어땠을까. 레이거노믹스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잡는 데 큰 효과가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레이건 정권 시절 평균 물가 상승률은 3.8%로 카터 때의 3분의 1 수준으로 낮아졌고, 평균 경제 성장률은 3.5%로 높아졌다. 실업률은 1980년 7%에서 1988년 5.4%로 낮아졌고, 제조업 부문의 생산성은 연평균 3.8% 증가해 제2차세계대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처 전 총리도 영국 경제의 구조조정에 성공하고, 경제 성장률을 반등시킨 공로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을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작은 정부를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 레이건 정권 시절 미국 정부는 더 커졌다. 소련과 군비 경쟁을 벌이면서 국방비 지출이 크게 증가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 집권 초기에 미국의 국가 채무는 9090억달러였는데 임기를 마칠 때는 2조8679억달러로 늘었다. 민간 부문이 보유한 미국 연방정부 부채 규모도 1981년 국내총생산(GDP)의 22.3%에서 1989년에는 38.1%로 늘었다. 

마틴 펠프스 하버드대 교수는 “세금을 깎기만 한다고 생산성이 향상되는 건 아니다. (무턱대고 감세를 하면) 재정 적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대처리즘도 구조조정 과정에서 많은 수의 실업자를 양산했고, 빈부 격차가 커지는 등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았다.


포퓰리즘 국가 그리스·브라질의 실패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이 보여준 한계와 부작용은 트럼프 시대의 미국에서도 똑같이 나타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인하하고, 연방정부 규제를 1960년대 수준으로 낮추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동시에 10년간 1조5000억달러를 투입하는 대대적인 인프라 투자에 나서고 있다.

당장은 미국 경제가 성장 흐름을 이어 가고 있지만 막대한 재정 적자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덩달아 커진다. 레이거노믹스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정책도 재정 적자를 늘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지난 4월 2020년 미국 재정 적자가 1조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미국 재정 적자는 2015년 4380억달러 규모였는데, 불과 5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어나는 것이다. 재닛 옐런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한 칼럼에서 “감세 정책이 재정 악화의 주범”이라며 “지금 같은 경기 부흥기에는 재정 적자를 줄여 추후에 발생할 수 있는 침체기에 대비해야 하는데, 현 정부는 반대로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CBO는 미국의 경제 성장률이 올해 4분기 3.3%로 정점을 찍은 뒤 2019년 2.4%, 2020년 1.8%로 점차 둔화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포퓰리즘에 뿌리를 둔 경제 정책은 지속 가능성에 한계가 있다. 대표적인 포퓰리즘 국가인 그리스와 브라질이 이런 정책의 결과를 잘 보여준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포퓰리즘 정책이 집중적으로 도입된 시기를 전후해 그리스와 브라질의 경제 상황이 어떻게 변했는지 연구했다. 그리스는 1981~2004년에 포퓰리즘 정책이 대거 시행됐고, 브라질은 2003~2011년에 마찬가지 모습을 보였다.

분석 결과를 보면 그리스의 경우 포퓰리즘 시기에는 연평균 2.2%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한 반면 포퓰리즘 이후(2005~2015년)에는 -0.02%의 경제 성장률을 보였다. 브라질은 포퓰리즘 시기에 4.4%, 포퓰리즘 이후(2012~2015년)에는 -0.3%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특히나 포퓰리즘 시기를 거치면서 두 나라 모두 국가 재정에 구멍이 뚫렸다. 그리스는 포퓰리즘 이전인 1980년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이 22.5% 수준이었지만, 2015년에는 176.9%로 늘었다. 브라질은 정부 부채 비율은 큰 변화가 없었지만, GDP 대비 민간 부채 비율은 포퓰리즘 시기 이전 39.1%에서 75.6%로 급증했다. 박용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극단적인 포퓰리즘 정책은 국가 재정에 부담으로 작용해 나중에 감내하기 힘든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지속 가능성이 담보되지 않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기를 피하려면 정책을 도입할 때부터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Plus Point

레이건과 대처의 이론적 스승들

레이건, 대처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이론적 틀을 제공한 하이에크.
레이건, 대처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이론적 틀을 제공한 하이에크.

마거릿 대처가 보수당을 이끌던 1975년의 일이다. 경제 정책 방향을 놓고 보수당 내에서 격론이 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장경제라는 개념은 보수당 안에서도 조심스럽게 쓰는 말이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죽은 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영국은 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회의를 정리한 건 대처였다.

그녀는 서류가방에서 한 권의 책을 꺼내고는 테이블에 쾅쾅 소리가 나게 내려쳤다. 회의에 참석한 보수당 간부들이 모두 말을 멈추고 대처를 쳐다봤다. 대처는 사람들이 보기 쉽게 책을 펼쳐 들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This is what we believe).”

그녀가 손에 든 책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자유헌정론’이었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하이에크는 자유주의의 기틀을 세운 학자로 평가받는다. 1930년대 이후 정부 개입과 계획 경제를 내세운 케인스학파가 주류가 되면서 하이에크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1974년에 화폐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지만 여전히 주류 경제학계에서는 하이에크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하이에크를 끌어올린 건 대처와 레이건이었다. 작은 정부의 이론적 배경을 찾던 두 지도자는 정부 개입에 반대한 하이에크에게 주목했다. 대처는 대학 시절 하이에크의 저서인 ‘노예의 길’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 적이 있고, 레이건도 자신에게 철학적인 영감을 준 인물로 하이에크를 꼽은 적이 있다. 

감세 정책의 이론적 틀을 제공한 아서 래퍼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래퍼는 일정 세율을 넘어서면 오히려 세수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래퍼 곡선’을 제시해 유명해졌다. 래퍼 이전에는 세율이 높아지면 세수가 함께 증가한다는 조세 이론이 일반적이었다. 래퍼는 세율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근로의욕이 줄면서 세수 자체가 감소한다고 설명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감세 정책의 이론적 뒷받침을 위해 래퍼 곡선을 가져왔다.

여기에는 레이건 전 대통령의 개인적인 경험도 한몫했다. 레이건은 영화배우 시절 자신이 번 돈의 90%를 세금으로 낸 적이 있었다. 세율이 지나치게 높다 보니 배우들은 영화를 한두 편 찍고는 일을 그만두기 일쑤였다. 수입의 90%를 세금으로 내는 것보다 일을 안 하고 세금을 적게 내는 게 이득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이 밖에 정부 지출과 통화량을 억제해야 인플레이션을 퇴치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밀턴 프리드먼도 레이건과 대처에게 큰 영향을 준 경제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