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에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한국은 ‘트럼프 리스크’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교수는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그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관세 인상 등 보호무역주의 장벽을 쌓더라도 기술과 품질로 이를 뚫을 수 있다”고도 했다. 트럼프 정부의 행보에 우려할 만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치게 과민 반응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장 교수는 경제 발전 전략을 연구하는 개발경제학 분야의 세계적인 학자다. 일찍부터 시장 개방과 자유무역 등 주류 경제학의 처방에 이의를 제기해 눈길을 끌었다. 경제 발전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강조하면서 시장 만능의 신자유주의에 대해 비판해 주목받았다. 트럼프 시대의 세계 경제 전망과 한국 경제의 과제 등을 놓고 장 교수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이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나.
“보호무역과 관련한 발언 강도가 매우 센 편이지만 이를 실제 실행할 수 있을지, 또 실행해도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미국도 여러 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는데 이를 뒤집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멕시코 등을 찍어서 그 나라에서 수입하는 상품에 관세를 올리겠다고 했지만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수입품에 20% 정도의 세금을 매기는 국경조정세를 놓고 미국 산업계가 완전히 둘로 갈려 있다.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국경조정세를 도입하더라도 미국 제조업이 다시 살아나는 효과는 없을 것이다. 세금 부담 때문에 중국에서 만들던 아이폰을 미국에서 만들 수는 없다. 좋다 나쁘다를 떠나 현재의 글로벌 생산 시스템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다.”

그렇다면 보호무역주의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될까.
“정책의 실효성이 없더라도 세계무역기구(WTO) 등에서 계속 분쟁을 제기하면 영향이 있을 것이다. 각국이 서로 무역 보복을 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큰 충격이 올 수밖에 없다. 다만 보호무역 정책으로 관세를 올리더라도 아주 높지만 않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 한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자동차 등 주요 제품은 결국 품질로 승부해야 한다. 나라마다 산업마다 다르겠지만 관세 인상의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다.”

미국이 세계화와 자유무역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주장이 온당한가.
“지난 30년간 세계화 과정에서 미국이 얼마나 이익을 봤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원론적으로 선진국은 자유무역을 하고, 후진국은 자국 산업 보호 등을 위해 보호무역을 해야 한다. 나라가 가난할수록 더 차등적인 보호무역을 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미국이 세계화의 피해자라며 보호무역을 하겠다는 것은 난센스다. 세계화의 낙오자 같은 문제를 국내 정책으로 풀어야 하는데 이를 국외로 전가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미국의 보호무역 공세에 한국이 단독으로 대응할 방법은 별로 없다. 한·미 FTA를 근거로 따질 수는 있겠지만 미국이 들은 척도 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나라들과 공조하면서 WTO에 제소하는 등의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결국은 물건을 잘 만들어 보호무역 장벽을 뚫고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과거 한국이 철강, 자동차 수출을 시작할 때도 미국·유럽이 관련 산업을 보호하고 있었지만 그 장벽을 뚫고 들어갔다. 전향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트럼프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기업들을 압박하는 방식이 효과가 있을까.
“미국 입장에서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기업 투자를 독려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그 방식이 너무 우격다짐이다. 지난 20~30년간 전 세계를 엮어서 하도급 구조 만들고 생산 시스템을 재편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대통령이 소리 지르고 인센티브 주는 것으로 이를 바꿀 수는 없다. 제대로 하려면 앞으로 10~20년 걸려서 새로운 산업 정책을 펴고 생산 시스템을 재건해야 한다. 트럼프 정부는 이런 비전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시끄럽기만 하고 결과물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한국 차기 정부의 가장 중요한 정책 과제는 뭔가.
“신산업으로 미래 먹거리를 만들고, 복지를 통해 삶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 우선 복지 문제부터 보면 한국은 자살률 세계 1위를 비롯해 창피한 세계 기록이 여럿 있다. 국민이 살기 힘들고 젊은이들은 ‘헬조선(지옥 같은 한국)’이라고까지 한다. 어느 정도 복지 제도를 확대하지 않고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국민이 다 같이 세금을 더 내고 사회보험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복지만으로는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없다. 결국은 제대로 된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고 소득이 늘어야 한다. 현재 한국의 주력 산업은 대부분 1980년대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중 자동차·반도체 정도 빼고는 중국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다. 새로운 먹거리 산업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복지를 확충해야 하지만 결국 속도가 문제다.
“유럽도 하루아침에 복지 제도를 갖춘 것은 아니다. 스웨덴의 경우에도 20세기 초까지는 아주 작은 정부였지만 1930년대부터 거의 30년에 걸쳐 복지 제도를 완성했다. 한국도 길게 보고 해야 한다. 다만 지금 워낙 어려운 사람이 많기 때문에 가속할 필요는 있다. 그러려면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국내총생산 대비 복지 지출 비율이 한국은 10% 안팎인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21~22% 정도다. 복지 수준이 낮다고 하는 미국도 19~20% 정도다. 유럽은 30%가 넘는 나라도 있다. 한국이 유럽 수준까지 올라가는 데 대해서는 논란이 있겠지만 미국 수준까지는 다 같이 조금 빨리 가자고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선 재벌 개혁이 핵심 이슈 중 하나인데.
“재벌 기업들은 이른바 오너 일가의 것도 아니고 주주들 것도 아니다. 과거 국가가 보조금 주고, 국민이 품질이 나쁜 물건 사주면서 키웠다는 점에서 국민 기업으로 봐야 한다. 그래서 이런 기업들이 국민경제에 더 많이 기여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정부는 소유권·의결권 같은 문제에 매달릴 게 아니라 대기업들이 신산업에 진출하고 투자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도와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서 노동자 처우와 비정규직 문제 등 대기업들이 잘못한 부분을 고치도록 해야 한다.”


▒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