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창립자 스티브 잡스는 동업자 스티브 워즈니악과 자신의 집 차고(사진)에서 컴퓨터를 만들었다. 차고는 스타트업의 상징으로 통하기도 하지만, 전문가들은 모든 기업들이 차고 정신을 본받을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애플의 창립자 스티브 잡스는 동업자 스티브 워즈니악과 자신의 집 차고(사진)에서 컴퓨터를 만들었다. 차고는 스타트업의 상징으로 통하기도 하지만, 전문가들은 모든 기업들이 차고 정신을 본받을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애플, 구글, 아마존. 모두 시가총액 1000조원을 바라보는 기업들이다. 인터넷 서비스를 넘어 자율주행, 인공지능(AI) 등 전방위적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거대 글로벌 기업들이다. 공통점은 모두 ‘차고(garage·개라지)’에서 시작했다는 것이다. 창업자들이 허름한 차고에서 시작해 세계적 기업을 일군 성공 신화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혁신의 출발점을 미미한 시작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실제로 많은 기업이 앞다퉈 ‘개라지’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혁신 센터를 만든다. 국내에서는 SK하이닉스가 올 초 사내벤처 프로그램 ‘하이개라지’를 출범했다. 창업 아이디어를 낸 직원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글로벌 IT 기업들의 창업 순간에서 착안한 아이디어다.

그런데 ‘차고 신화’가 모든 기업들에 적용될 수 있을까. 기업 CEO들이 정말 스타트업 정신과 문화를 채택해야만 할까. 이미 성숙한 기업들이 혁신을 하기 위해 차고로 돌아갈 필요가 있을까.

노스웨스턴대 켈로그 경영대학원의 ‘켈로그 인사이트’는 기업들이 스타트업의 ‘개라지 정신’보다는 오히려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 캐피털(VC) 정신’으로 혁신에 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타트업에 투자금을 지원하는 투자자의 마음 가짐으로 상황을 판단하면 좀 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케팅 컨설팅 회사 바이오닉 솔루션의 창업자 데이비드 키더도 “혁신 성공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것은 창업가적인 특성과 투자자적인 특성 모두”라며 “투자자처럼 포트폴리오를 관리하고 새로운 투자 결정을 내리는 것도 무척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VC 정신 혁신법 세 가지를 소개한다.


포인트 1│여러 작은 아이디어에 투자하는 포트폴리오 전략

세계 최대 유통 거인 아마존 조직에는 ‘알렉사 펀드’라는 투자 조직이 있다. 아마존의 음성 인식 기술인 ‘알렉사’를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스타트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한다. 펀드 규모는 2억달러(약 2200억원)에 달한다. 2015년 출범 이후 지금까지 58개 기술 스타트업에 투자를 진행했다. 가장 최근에는 인간의 뇌 신경망을 연구하는 뉴욕 기반 스타트업 CTRL-랩 투자에 참여했다.

아마존이 취하는 전략이 전형적인 ‘포트폴리오 전략’이다. 전문가들은 이 전략이 혁신의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서양 속담과 비슷한 맥락이다.

션 존슨 켈로그 경영대학원 부교수는 “위험하지만 흥미로운 아이디어 여러 개에 투자하는 방식”이라며 “그중 하나가 크게 성공해 거대한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직에서 판단한 통찰력을 기반으로 투자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점진적인 성장 이상의 거대한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전략이 조직 내부에서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도 있다. 여러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존슨 부교수는 이럴 때 이사회를 설득하는 방법은 “정확한 숫자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10개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하는 것보다 ‘혁신 그룹을 만들어 각각의 프로젝트에 일정 규모의 자금을 투입하겠다’고 보고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그는 또 “프로젝트 각각의 투자 성공 여부를 일일이 따지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포인트 2│모든 관계자와의 충분한 소통

그렇다면 혁신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시작은 기회 요인과 취약한 부분에 대한 정확하고 철저한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제품·서비스와 관련해 모든 관계자들과 가능한 한 충분한 수준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병원이 혁신 포트폴리오를 설계하기 위한 첫 단추는 의사, 간호사, 행정 담당자, 환자, 물리치료사, 연구소장 등 조직과 관련된 모든 인물과의 인터뷰다. 조 드와이어 켈로그 경영대학원 부교수는 “건물 밖으로 나와 가능한 한 최대한의 통찰력을 얻는 동시에, 모든 단계를 파악해 각각의 단계 안에서 점진적·파괴적으로 혁신을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가능한 모든 것을 계량화해 ‘북극성 지표(NSM·North Star Metric)’를 잡는 것이다. 나침반 없이 캄캄한 숲속에서 방향을 잡기 위해 밤하늘의 북극성을 찾듯, 핵심 지표를 선정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공유 숙박 업체인 에어비앤비의 NSM은 ‘숙박 일수’, 페이스북의 NSM은 ‘일 활성 사용자 수(DAU)’다.

드와이어 부교수는 “이런 식의 ‘공식적인’ ‘계량화된’ 접근법은 모든 결정 과정에 객관성을 부여할 수 있으며 조직 내에서 흔히 발생하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문제들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위험을 적절하게 분산하는 것도 중요하다. 위험에 대한 판단은 정확한 숫자에 기반해야 한다. 드와이어 부교수는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은 변화하는 산업 환경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얻는 데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안전이 최선의 전략이 아닐 수 있다”면서 “다만 위험을 선택할 때에는 조직의 강점, 우선 순위 등을 철저하게 따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인트 3│ ‘성장 위원회’를 구성하라

바이오닉 솔루션은 기업들이 반드시 도입해야 하는 혁신 조직으로 ‘성장 위원회(Growth Board)’를 꼽았다. 조직 내 임원급 경영진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제품·서비스를 검토·토론해 투자를 결정하는 자리다. 조직 내부에서 VC 같은 역할을 한다. 성장 위원회 운영법 네 가지는 이렇다.


① 정기적으로 회의를 소집하라

분기별 또는 수개월마다 정기적으로 모여 대화를 나눠야 한다. 새로운 사고 방식은 같이 발전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고위급 임원 6~8명은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② 제대로 된 질문을 하라

현재 조직이 어떤 제품·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는지, 이에 대한 내외부적 반응은 어떤지, 그리고 개발 중인 제품·서비스가 조직에 어느 정도 가치를 가져다 줄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③ 팀에 투자하라

보통은 아이디어·아이템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오산이다. VC들은 먼저 해결이 필요한 문제를 찾고, 이를 풀 수 있는 팀과 팀원에게 집중한다.


④ 빠르게 다음 단계로

혁신에서 속도는 생명이다. 빠르게 문제를 학습한 후 이를 끌고갈지, 혹은 포기해야 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단, 성숙한 기업들이 스타트업보다 혁신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는 분야가 있다. 인공지능(AI)이 대표적이다. 기반 데이터가 풍부해야 예측 정확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 기술로 활용할 수 있다.

드와이어 부교수는 “대규모 자본이 풍부한 기업들이 혁신에 있어 강점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