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에 담아 제품을 정기 배송하는 서브스크립션 서비스의 시초로 알려진 버치박스의 뉴욕 매장. <사진 : 블룸버그>
박스에 담아 제품을 정기 배송하는 서브스크립션 서비스의 시초로 알려진 버치박스의 뉴욕 매장. <사진 : 블룸버그>

서브스크립션(구독형·subscription) 서비스는 새롭지 않다. 월정액 요금을 내는 정기 구독자에게 다양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서브스크립션은 오래 전부터 마케팅의 한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미국의 버치박스(Birchbox)가 견본 크기의 뷰티 제품을 담은 상자를 구독자에게 배송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8년이 지났다. 한순간의 유행이라면 봄날의 벚꽃처럼 진작 사라졌어야 한다.

그런데 서브스크립션의 인기는 사그라들기는커녕 더 활활 타오르고 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따르면 미국에서 서브스크립션을 이용하는 소비자는 지난해 1100만명에 달했다. 2011년 이후 관련 시장 규모는 매년 200%씩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미국의 경제 전문 매체인 ‘포브스’는 2017년 4월 한 달간 서브스크립션 온라인 사이트에 접속한 누적 방문자 수가 3700만명이라고 전했다. 2014년보다 8배나 늘어난 것이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에 따르면 미국 전자상거래 이용자의 15%가 서브스크립션 서비스를 이용한다. 많은 사람이 뻔하다고 생각했던 서브스크립션 커머스는 전혀 뻔하지 않은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스티치픽스는 AI와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맞춤형 옷 배달 서비스를 선보였다. <사진 : 스티치픽스>
스티치픽스는 AI와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맞춤형 옷 배달 서비스를 선보였다. <사진 : 스티치픽스>

구독자 맞춤 서비스가 성장 주도

서브스크립션 커머스가 빠르게 성장한 건 첨단 정보기술(IT) 덕분이다. 서브스크립션은 크게 세 가지 종류로 나뉜다. 면도기나 기저귀 같은 생필품을 정해진 날짜에 배달해주는 ‘보급형(replenishment)’이 제일 널리 알려진 서브스크립션 모델이다. 아마존의 서브스크립션 서비스인 ‘서브스크라이브&세이브’나 ‘달러셰이브클럽’이 대표적이다. ‘접근형(access)’은 보급형과 비슷하지만 회원 전용 혜택을 내세우는 게 차이점이다. 유기농 식품 정기배송 서비스인 ‘스라이브 마켓(Thrive Market)’이나 패션 정기배송 서비스인 ‘저스트팹(Justfab)’ 등이 대표적인 접근형 서비스다.

최근에는 의류나 화장품·음식 등 다양한 제품을 구독자의 개인적인 성향을 고려해 제공하는 ‘큐레이션형(curation)’이 뜨고 있다. 큐레이션형은 단순히 돈이나 시간을 아끼는 차원이 아니라 구독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둔다. 식재료 배송 서비스인 ‘블루에이프런(Blue Apron)’이나 의류 배송 서비스인 ‘스티치픽스(Stitch Fix)’가 큐레이션형을 대표하는 서비스다.

바로 이 큐레이션형이 서브스크립션 커머스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맥킨지가 지난해 말 미국의 전자상거래 이용자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서브스크립션 이용자의 55%가 큐레이션형을 이용하고 있었다. 보급형은 32%, 접근형은 13%에 그쳤다.

큐레이션형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높은 수수료다. 서브스크립션 커머스는 수수료가 주된 수익원인데, 큐레이션형이 보급형이나 접근형보다 수수료가 높다. 큐레이션형은 구독자에게 일괄적으로 같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높은 수수료를 부과할 수 있는 것이다. 맥킨지는 “보급형이나 접근형 서브스크립션 서비스는 아무리 인기가 많더라도 월 수수료가 10달러를 넘지 못한다”며 “반면 스티치픽스나 블루에이프런 같은 큐레이션형은 더 높은 수수료를 매길 수 있기 때문에 적은 고객을 가지고도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했다.

큐레이션형은 구독자 개개인의 취향을 얼마나 잘 맞추는지가 서비스의 성패를 좌우한다. 큐레이션형 서비스 이용자의 28%가 ‘개인화된 경험’ 때문에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답했다. ‘돈(17%)’이나 ‘편의성(15%)’보다 개인화된 경험이 서브스크립션 서비스를 이용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같은 첨단 IT 기술이 등장한다. AI와 빅데이터 분석 기술이 발달하면서 구독자 한 명 한 명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해졌고, 덕분에 큐레이션형을 이용하는 사람도 증가한 것이다.

스티치픽스를 예로 들어보자. 2011년 설립된 의류 배송 스타트업인 스티치픽스는 지난해 11월 기업공개(IPO)를 했다. 설립 6년 만에 매출액은 10억달러에 육박하고, 기업가치는 4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스티치픽스의 성장을 이끈 비결이 바로 IT 기술이였다. 스티치픽스는 구독자의 취향을 분석해 어울리는 옷을 보내주는 서비스다. 당연히 구독자의 취향을 얼마나 정확하게 분석하는지가 중요한데, 이를 위해 스티치픽스는 넷플릭스의 영상 추천 알고리즘을 만든 에릭 콜슨을 최고알고리즘책임자로 영입했다. 에릭 콜슨이 만든 스티치픽스의 옷 추천 알고리즘은 구독자의 소셜미디어(SNS) 활동 기록과 사전에 입력한 개인 취향, 체형, 라이프스타일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다섯 벌의 옷을 고른다. 스티치픽스 구독자의 80%가 처음 배달된 다섯 벌의 옷 가운데 최소 한 벌은 구매할 정도로 알고리즘의 정확도가 높다. 새로운 경험과 맞춤형 제품을 원하는 고객의 마음을 기술로 사로잡은 것이다.


식재료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블루에이프런은 지난해 6월 주식시장에 상장했지만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식재료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블루에이프런은 지난해 6월 주식시장에 상장했지만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구독자 중심으로 생각해야 생존

서브스크립션 서비스는 단기간에 구독자를 끌어모으며 빠르게 성장할 수 있지만, 동시에 그만큼 빠른 속도로 구독자를 잃을 수도 있다. 서브스크립션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젊고 고소득자가 많다. 자신이 제공받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에 민감하고, 다른 제품이나 서비스로 전환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다.

맥킨지에 따르면 서브스크립션 서비스에 가입하는 이용자의 3분의 1이 3개월 안에 구독을 취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6개월로 기간을 넓히면 구독을 취소하는 경우는 이용자의 절반으로 늘어난다. 맥킨지는 “전반적으로 서브스크립션 서비스 이용자의 40% 정도가 구독을 취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기존 이용자가 구독을 취소할 때마다 업체 입장에서는 새로운 구독자를 찾는 데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서브스크립션 서비스의 추락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블루에이프런이다. 블루에이프런은 한 끼 식사 분량의 식재료를 조리법과 함께 배달해주는 밀키트(Meal Kit)를 2012년 선보였다. 밀키트는 단숨에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블루에이프런은 2016년 7억954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빠른 시간에 급성장한 블루에이프런은 지난해 6월 IPO에 나섰다. 하지만 IPO를 며칠 앞두고 아마존이 오프라인 유통업체인 홀푸드를 인수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홀푸드 인수로 미국 전역에 유통망을 확보한 아마존의 식재료 배달 사업이 블루에이프런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기 때문이다.

블루에이프런은 공모가를 15~17달러 수준으로 원했지만 아마존의 홀푸드 인수 때문에 10달러로 낮출 수밖에 없었다. 단 며칠 만에 기업가치가 32억달러에서 20억8000만달러로 낮아진 것이다. IPO 이후에도 악재는 계속됐다. IPO 이후 발표된 블루에이프런의 지난해 3분기 주당 당기순손실은 0.47달러로 1년 전보다 두배 이상 증가했다. 서브스크립션 서비스의 핵심인 고객 수도 1년 전보다 6% 줄었고, 시장점유율도 57%에서 42%로 떨어졌다. 주가는 하락을 거듭해 2달러 선으로 내려앉았다. 결국 지난해 12월 매트 샐즈버그(Matt Salzberg) 블루에이프런 최고경영자(CEO)는 실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상장 반년 만의 일이었다.

다니엘 맥카시(Daniel McCarthy) 에머이대 경영전문대학원(MBA) 교수는 블루에이프런의 추락이 예견된 일이었다고 본다. 그는 블루에이프런이 IPO 전에 제시한 장밋빛 전망이 하향식(top-down) 분석에 기초한 것에 주목했다. 블루에이프런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식료품 시장 규모는 8000억달러 정도였는데, 이 중 오직 1.2%만이 온라인을 통해 거래되고 있었다. 매년 온라인 식료품 시장 규모가 8.5%씩 성장한다면, 블루에이프런의 수익도 매년 100% 이상 증가할 수 있다는 내용의 전망이었다.

반면 서브스크립션 서비스를 이용하는 구독자의 관점에서 상향식(bottom-up) 분석을 하면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다. 맥카시 교수는 “블루에이프런 가입자 중 70% 정도가 6개월이 지나기 전에 구독을 해지했고, 이에 따라 신규 고객 확보 비용은 급격하게 증가했다”며 “IPO를 앞두고 매출이 빠르게 늘었지만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마케팅 비용 지출이 증가한 것도 문제였다”고 말했다. 구독자의 입장이 아닌 기업 입장에서 시장을 바라보다 보니 전략을 잘 못 세울 수밖에 없었고, 블루에이프런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이용자가 언제든지 마음을 쉽게 바꿀 수 있는 서브스크립션 서비스의 특성을 감안하면 마케팅에 지나치게 많은 비용을 투자하는 건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그보다는 구독자 맞춤형 서비스를 위한 AI·빅데이터 같은 기술에 더 많은 투자를 할 필요가 있다. 맥킨지는 “서브스크립션 업체들이 고객 확보를 위해 무료 체험 기간을 제공하거나 대대적인 할인 이벤트를 벌이는 등 많은 돈을 마케팅에 투자하지만, 절반 이상의 이용자는 구독을 해지한다”며 “확실한 보상이 있지 않는 한 마케팅에 지나치게 많은 투자를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물론 기술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서브스크립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가들은 IT 기술을 활용하더라도 데이터에 매몰되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기술은 어디까지나 분석을 도와줄 뿐 중요한 건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주얼리 서브스크립션 서비스를 운영하는 ‘다이아&코’의 나디아 부자르와흐(Nadia Boujarwah) CEO는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서브스크립션 업체들이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와중에 정작 구독자가 사람이라는 걸 잊는 경우가 있다”며 “장기적으로 서비스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데이터도 중요하지만, 구독자가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결정을 언제든 내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통 공룡 참여로 판 커져

서브스크립션 커머스가 한때 유행이 아닌 온라인 쇼핑의 한 축으로 완전히 자리잡자 유통업계의 대기업들도 속속 사업을 시작하고 있다. 서브스크립션 커머스에서 성장한 스타트업이 기존 대기업을 위협할 정도로 크고 있기 때문이다.

12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질레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질레트는 오랫동안 면도기 시장의 절대강자 자리를 지켜왔다. 온라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2012년 달러셰이브클럽(Dollar Shave Club)이라는 스타트업이 나타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달러셰이브클럽은 구독자가 처음 1달러를 내면 면도기와 면도날을 배송해주고, 이후 면도날 종류에 따라 1달러, 6달러, 9달러를 선택해 지불하면 정기적으로 면도날을 보내주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CEO인 마이클 더빈은 “면도기에 진동기능을 담거나 10중 면도날처럼 쓸데없는 기능 때문에 면도날 가격이 비싸졌다”고 말했다. 시간과 돈을 절약하라는 달러셰이브클럽의 구호는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온라인 면도기 시장에서는 달러셰이브클럽이 질레트를 앞섰다.

처음에는 달러셰이브클럽을 무시하던 질레트도 2015년 서브스크립션 서비스인 ‘질레트셰이브클럽’을 내놓으며 반격에 나섰다. 다국적 소비재 기업인 유니레버가 2016년 달러셰이브클럽을 10억달러에 인수하면서 달러셰이브클럽과 질레트의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다른 유통 대기업들도 자신들만의 서브스크립션 서비스를 내놓으며 고객을 뺏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월마트는 생필품을 박스에 담아서 제공하는 ‘뷰티박스’를 운영하고 있고, 세계 최대 화장품 유통 업체인 세포라도 뷰티 제품을 박스에 담아 제공하는 ‘플레이!’를 운영하고 있다. 서브스크립션 커머스의 가능성을 보고 일찌감치 관련 서비스를 시작한 아마존은 이미 서브스크립션 시장의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Plus Point

한국에서도 서브스크립션 열풍

아모레퍼시픽의 사내벤처 ‘디스테디’는 마스크팩 정기 배송 서비스를 선보였다. <사진 : 아모레퍼시픽>
아모레퍼시픽의 사내벤처 ‘디스테디’는 마스크팩 정기 배송 서비스를 선보였다. <사진 : 아모레퍼시픽>

서브스크립션 서비스를 이용하는 한국 소비자가 늘면서 국내 기업들도 잇따라 서비스를 출시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대기업들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다. 아모레퍼시픽은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만든 ‘디스테디’로 마스크팩 정기 배송 서비스를 선보였다. 구독자의 피부 유형에 맞는 마스크팩을 추천해 배송해주는 서비스다. 지난해 11월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목표 대비 두 배 이상의 고객을 확보했고, 재구매율도 30%에 달하는 등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12월 뷰티제품 정기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톤28’에도 투자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LG생활건강은 남성용품 정기 배송 서비스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스트라입스’와 손을 잡고 ‘그루밍박스’라는 서브스크립션 서비스를 출시했다. 스트라입스가 보유한 고객 정보를 활용해 개인별 맞춤형 남성용품을 제공하는 게 특징이다.

스타트업들은 대기업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만한 틈새 시장을 노리고 있다. 벨루가브루어리는 전문가가 고른 수제맥주와 어울리는 안주를 한 달에 두 번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선보였고, 하비인더박스는 매달 새로운 취미를 선정해서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는 키트를 보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