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로켓 엔진 RD-180이 장착된 미국의 위성 발사체 ‘아틀라스 V’. <사진 : 위키피디아>
러시아의 로켓 엔진 RD-180이 장착된 미국의 위성 발사체 ‘아틀라스 V’. <사진 : 위키피디아>

지난 2003년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20년까지 인간을 다시 달에 보내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1972년 아폴로 17호 이후 중단된 유인 달 탐사가 재개됐다.

뒤이어 집권한 오바마 대통령도 기조를 이어갔지만 2007년 벌어진 초유의 금융위기 사태로 말미암아 목표 연한을 2030년대 중반으로 변경했다.

이처럼 계획이 바뀌면서 애초에 발사체로 예정됐던 아레스 로켓 대신에 보다 저렴하게 획득할 수 있는 SLS(Space Launch System·우주 발사 시스템)의 개발이 시작됐다. SLS에 요구된 조건이 아폴로 우주선을 달로 보낸 새턴 V 로켓보다 강력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개발 과정이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은 어떤 엔진을 쓰는가였다. 다양한 연구 끝에 1단 로켓의 엔진으로 과거 우주왕복선의 심장으로 사용됐던 RS-25를 개량해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문제는 RS-25와 같은 액체수소 엔진은 효율이 좋지만 연료 탱크가 커지는 단점이 있다. 우주왕복선이 발사될 때 외부에 거대한 연료 탱크를 부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케로신(항공유) 엔진은 같은 공간에 보다 많은 연료를 탑재할 수 있어 로켓의 크기를 줄일 수 있지만 효율이 뒤지는 단점이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1단 로켓 옆에 붙이는 추력 보조용 부스터에 케로신 엔진을 장착하는 방법을 하나의 대안으로 고려했다. 그런데 정작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공사 중단 후 공론화 과정을 통해 건설이 재개된 울산 신고리 5, 6호 원전. <사진 : 조선일보 DB>
공사 중단 후 공론화 과정을 통해 건설이 재개된 울산 신고리 5, 6호 원전. <사진 : 조선일보 DB>

미국, 고성능 케로신 엔진 제작 능력 사라져

미국 내에 케로신 엔진이 없다는 점이었다. 엄밀히 말해 SLS에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케로신 엔진을 미국 내에서 만들기 어렵다는 의미다. 미국은 반세기 전인 1967년에 새턴 V를 개발했다. 새턴 V의 1단에는 단일 연소실 엔진으로 현재까지도 가장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F-1이 5개 달려있다. 그런데 아폴로 프로젝트가 끝난 후 후속기술 개발을 중단하면서 미국은 F-1보다 강력한 것은 고사하고 이와 맞먹는 케로신 엔진도 개발하지 못했다.

현재 미국의 위성 중 상당수는 냉전 시기라면 상상도 못할 러시아제 케로신 엔진을 장착한 발사체에 의해 우주로 날아간다. 아틀라스는 1960년대에 소련의 중심부를 노린 미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체로도 사용된 로켓이다. 그 최신형인 아틀라스 V는 현재 첩보 위성 발사처럼 군사용으로도 사용되는데 여기에 장착된 엔진이 러시아의 RD-180이다.

고도의 전략 물자인 로켓 엔진은 단지 돈을 준다고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 미국이 같은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기에 러시아가 판매를 하는 것이고 미국은 국내 생산보다 저렴한 가격이어서 사서 쓰는 것뿐이다. 하지만 냉전 종식 후 이런 거래가 고착화되다 보니 모르는 사이에 미국의 고성능 케로신 엔진 제작 능력이 사장돼 버렸다.

지난 2015년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강제 병합했을 당시에 미국은 다양한 방법으로 압박을 가했다. 그러자 이에 반발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RD-180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해 미국을 긴장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에 따라 SLS 때문이 아니더라도 강력한 케로신 엔진을 미국에서 자체 생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비용과 시간 절감을 위해 F-1의 재생산이 대안으로 떠올랐는데 기술진 대부분이 사망하고 설계도도 사라진 상태였다. 결국 역설계를 염두에 두고 2013년 NASA에 전시된 F-1으로 연소 실험까지 했다. 이처럼 한 번 사장된 기술을 복원하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스리마일 사고 이후 원전 기술도 모두 상실

미국의 원전 산업도 비슷한 사례다. 1979년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로 신규 원전 건설을 전면 중단하면서 시간이 흘러 엔지니어들이 모두 은퇴하자 미국은 관련 기술을 완전히 상실했다. 이때 대부분의 기술을 흡수한 곳이 원전의 국산화를 위해 애쓰던 한국이다. 덕분에 한국은 현재 세계 최고의 원전 제작 기술력을 보유한 나라가 됐다.

원전은 체르노빌, 후쿠시마의 비극적 사례에서 보듯이 사고가 발생하면 그 여파가 너무 큰 시설이다. 설령 사고가 아니더라도 원전을 가동하면서 발생하는 각종 폐기물의 처리도 고민스러운 부분이다. 그러나 공론화를 통해 신고리 5, 6호 건설을 계속하기로 한 것처럼 우리나라는 당장 원전을 폐쇄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도 많다.

만일 전기를 소비자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적정한 가격에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대안이 있다면 당연히 탈원전으로 가는 것은 옳다. 하지만 탈원전을 하더라도 산업적 측면과 나중에 다시 사용할 수도 있을 가능성을 대비해 계속 기술력을 확보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한 번 사라진 기술은 생각보다 복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 남도현
럭키금성상사 근무, 현 DHT에이전스 대표, 군사칼럼니스트, ‘무기의 탄생’ ‘발칙한 세계사’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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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체 로켓과 액체 로켓 로켓용 연료에는 액체연료와 고체연료가 있으며 사용하는 연료에 따라 액체로켓과 고체로켓으로 분류된다. 두 로켓은 각각 나름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액체로켓의 최대 장점은 필요할 때마다 엔진을 켜거나 끄는 것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이런 장점 때문에 현대의 거의 모든 상업용 로켓은 액체연료를 사용한다. 우리나라의 나로호는 물론 지금 개발 중인 한국형 발사체도 액체로켓이다. 고체 추진체를 사용하는 고체로켓은 추진력을 쉽게 낼 수 있고, 개발도 비교적 간단하다. 주로 관측로켓, 미사일 등에 사용된다. 과염소산 암모늄과 같은 산화제와 탄화수소계 고분자를 연료로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