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내놓은 개편안이 수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은 8월 28일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 모습이다. 사진 연합
국민연금이 내놓은 개편안이 수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은 8월 28일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 모습이다. 사진 연합

국민연금은 정말 국민의 노후 삶을 보장해주는 제도일까. ‘내는 것보다 더 많이’ 돌려받을 수 있다던데, 그게 정말 사실일까.

8월 17일 국민연금제도발전·재정추계·기금운용발전위원회가 연금 고갈에 대비해 공개한 국민연금 개편안에는 △현재 9%인 보험료율을 11%로 인상하거나(개선안 ‘가’) △보험료율을 13.5%로 인상하고 수급 개시 연령을 67세로 미루는 안(개선안 ‘나’) 두 가지가 포함됐다. 보험료를 더 내고, 연금 받는 시기는 더 늦춰야 한다는 개선안에 국민의 반발이 거세다.

소득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입할 의무가 있는 국민연금. 여러 계층의 사례를 통해 국민연금의 기능과 특징을 분석했다.


사례 1 |
억대 연봉자와 월급쟁이 보험료 차이 ‘0원’

대기업 과장 김철수(36)씨는 한 달 월급으로 468만원을 받는다. 매달 납입하는 보험료는 42만1200원(보험료율 9% 적용·절반은 회사 부담). 그가 연금 수급 자격을 얻을 수 있는 최소 연한인 10년 납부 요건을 채우면 65세부터 한 달에 37만원, 20년을 채우면 한 달에 72만원을 받게 된다.

김 과장의 직장 후배 최연수 대리는 투잡족(族)이다. 연봉 4500만원을 받고 있지만 ‘진짜 직업’은 따로 있다. 강남구에 있는 본인과 여동생 명의의 건물에서 월 2500만원에 달하는 임대료가 들어오는 ‘갓물주(조물주 위에 있는 건물주라는 의미)’다. 그가 내는 국민연금은 얼마일까. 김 과장보다 많이 낼까. 정답은 42만1200원. 김 과장과 최 대리는 소득 차이가 크지만 매달 납입하는 보험료는 같다. 만약 이번 개편안이 현실화돼도 김 과장과 최 대리의 보험료는 적게는 51만4800원, 많게는 63만1800원으로 비슷하게 내게 된다.

국민연금 보험료 납입 기준에는 상한액이 정해져 있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낼 수 있는 보험료는 한계가 있다. 국민연금이 제공하는 ‘노령연금 예상연금 월액표’에 따르면 월 소득 평균액 상한선은 468만원 소득에 상관없이 한 달에 낼 수 있는 보험료는 9%인 42만1200원이 최대라는 뜻이다.

이런 이유로 김 과장으로선 “부자들이 훨씬 돈을 많이 버는데 보험료는 왜 나랑 똑같이 내느냐”는 불평을 한다. 하지만 국민연금에 숨은 ‘소득 재분배’ 기능을 고려하면 계산법을 이해할 수 있다. 고소득층이 저소득층을, 미래 세대가 과거 세대를 돕는 구조다. 낸 만큼 일정한 비율로 돌려받는 사적 연금과 다른 점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만약 상한선 없이 많이 낼수록 많이 돌려받게 될 경우 ‘연금의 부익부 빈익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데다, 고소득자에게 연금을 많이 돌려주는 만큼 기금 고갈 속도가 빨라진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전라북도 전주로 본사를 이전하면서 기금운용본부 인력이 대거 퇴사했다. 사진 조선일보 DB
국민연금은 지난해 전라북도 전주로 본사를 이전하면서 기금운용본부 인력이 대거 퇴사했다. 사진 조선일보 DB

사례 2 |
고액 연봉자 “저소득자보다 많이 못 받아”

그런데 최 대리도 불만은 있다. 저소득층보다 보험료를 더 많이 내는데도 돌려받는 돈이 얼마 안 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설계대로라면 저소득층은 낸 보험료보다 ‘훨씬 많이’ 연금으로 돌려받게 되고, 고소득층은 ‘조금 많이’ 돌려받게 돼 있다.

이를 가장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지표는 ‘수익비’다. 수익비는 20년간 수령하는 연금 총액을 보험료 총액으로 나눈 값으로, 보험료 대비 연금액 비율을 말한다. 이 값이 1이 되면 낸 돈과 받을 돈이 같아지는 일종의 ‘연금 손익분기점’이 된다.

월 소득이 보험 소득 하한선인 29만원을 받는 저소득층 A씨를 가정해보자. A씨는 매월 2만6100원(9%)을 10년간 불입했다. 그가 연금 수급 연령에 도달한 후 다달이 받게 될 돈은 13만7330원. 2년이 채 되지 않아 10년 치 보험료(313만2000원) 원금을 뽑을 수 있다. 그가 만약 가입 기간 10년 이후 20년 동안 연금을 수령하게 되면 낸 돈의 약 10배 넘게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수익비가 10.5배가 되는 것이다.

반면 최 대리의 수익비는 높지 않다. 최 대리가 10년간 낸 원금(약 5054만원)을 뽑으려면 11년 넘게 연금을 받아야 한다. 수익비가 1.7배에 불과하다. 낸 돈 이상으로 연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지만 A씨의 수익비와 비교해서는 현저히 낮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국민연금의 평균 수익비는 1.6(최고 보험료 납부자)~2.9배(최저 보험료 납부자)를 기록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통 1을 내고 2를 가져가는 정도가 최적의 수익비로 꼽히지만 국민연금에 소득 재분배 기능을 담았기 때문에 계층별 차이가 생기는 것”이라면서 “국민연금이 공적연금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고소득층이 저소득층을, 미래 세대가 과거 세대를 돕는 구조다.
국민연금은 고소득층이 저소득층을, 미래 세대가 과거 세대를 돕는 구조다.

사례 3 |
임의가입자 5년 만에 2배 증가

주부 박소영(62)씨는 60세가 되던 2016년부터 매달 노령연금을 약 80만원씩 수령하고 있다. 은행에서 근무하던 그는 국민연금이 도입된 1988년 초창기부터 불입을 시작, 약 19년 6개월간 연금을 납부했다.

박씨는 중간에 수년간 은행을 그만두고 주부로 지내기도 했지만 국민연금을 장기적으로 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판단, 2007년부터 남편의 사업체에 직원으로 등록해 다시 꾸준히 연금을 내왔다. 그가 지금까지 보험료로 불입한 돈은 3310만원(퇴직금 전환금 제외). 3년 반만 연금을 받아도 그 이후부터는 ‘남는 장사’다. 그는 “그 어떤 예·적금 상품보다 수익률이 높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런 장점을 일찌감치 파악했다. 결혼과 출산으로 주부 생활을 하고 있는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 외동딸에게도 가입을 적극 권유했다. 박씨의 딸 정승현(34)씨는 직장 생활 5년 만에 일을 그만두는 바람에 연금 최소 수령 요건인 10년 가입 기간을 채우지 못했다. 이대로 불입을 포기하게 되면 정씨는 65세 이후 그동안의 원금에 약간의 이자만을 더해 일시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정씨는 어머니의 권유로 임의가입을 선택했다. 정씨가 부족한 5년어치의 보험료를 추가 납부하면 연금 수령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정씨처럼 국민연금에 가입할 필요가 없는데도 연금에 가입하는 임의가입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전업주부를 비롯해 27세 미만 학생 등 국민연금 의무 가입 대상(16~59세 소득 있는 국민)이 아닌 사람들의 가입이 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임의가입자 수는 34만3422명을 기록했다. 5년 전(17만7569명)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40·50대 여성이 전체의 74%를 차지했다. 지역별로 따지면 인구 대비 임의가입자 비율은 대표적 부촌(富村)인 서울 강남구(1.15%)와 서초구(1.04%)가 가장 높았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고갈 논란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임의가입자 수가 증가하는 현상이 바로 국민연금의 장점을 설명하는 증거라고 말한다. 국민연금은 매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는 데다, 민간 보험·연금 상품과 달리 수급 기간 제한이 없어 ‘사망할 때까지’ 받을 수 있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지난해 물가상승률 1.9%를 반영해 올해 4월 연금액을 월 평균 7000원씩 인상했다.


사례 4 |
해외 이민 떠나면 일시불로 받기 어려워

전라도 광주에서 개인 병원장으로 은퇴한 박모(70)씨는 최근 미국으로의 투자 이민을 고려하고 있다. 병원 경영과 부동산 투자 등으로 노후를 완벽히 대비해 놓은 ‘성공한’ 은퇴자로 주변의 부러움을 사지만 직장에 다니는 외동아들이 상속할 때 내야 할 막대한 상속세를 생각하면 이민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아들 내외와 함께 이민을 떠날 생각으로 전문 변호사와 상담하고 있다.

박씨와 그의 아들은 그동안 냈던 국민연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박씨가 이민을 떠나게 되더라도 냈던 연금을 일시금으로 돌려받기는 어렵다. 일단 연금 수급이 시작되면 한 번에 반환받기 어렵다는 것이 국민연금 측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박씨는 미국 현지에서 해외 송금 형식으로 연금을 이어 받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다만 아들의 경우는 다르다. 박씨의 아들은 연금 수령 연령에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교부에서 해외 이주 확인서를 받아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제출하면 일시금 청구로 그동안 냈던 연금을 반환받을 수 있다. 박씨는 “해외 송금 수수료 등 각종 비용을 내가 부담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면서 “냈던 만큼만 되돌려받아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불합리한 점으로 거론되는 또 다른 사례는 맞벌이 부부 중 한 명이 사망할 때 발생한다. 부부가 함께 국민연금을 받고 있다가 남편이 먼저 사망한 경우를 가정해보자. 이때 남편이 받던 연금을 부인이 100% 이어 받지 못하게 된다. 부부 중 한 명의 사망으로 유족연금이 나오는데, 남은 배우자가 노령연금 수급자라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배우자가 평생 냈던 보험료와 자신이 냈던 보험료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억울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2017년 기준 노령연금 지급액 평균은 39만8907원(10~19년 가입 기준)으로 1인가구 최저생계비(중위소득의 60%로 100만3263원)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한 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연금이 최저 생활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될 때까지는 받을 수 있는 급여 범위를 확대하는 등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Plus Point

국민연금 고갈된다는데… 국가가 지급 보장?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국가의 (국민연금) 지급 보장을 분명히 해 국민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달라”고 주문했다. 최근 공개된 국민연금 개편안에 포함된 ‘2057년 기금 고갈론’으로 여론이 들끓자 황급히 진화에 나선 것이다. 638조원(6월 기준)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이 바닥날 수 있다는 소식에 “여태껏 강제로 납부한 돈을 한푼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국민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기금 고갈은 국민연금만이 당면한 문제가 아니다. 독일은 지금으로부터 약 130년 전 세계 사회보장제도의 모델이 된 공적연금제도를 고안해냈다. 이런 독일이 처음 도입한 방식은 지금의 국민연금과 같은 ‘적립 방식’의 연금이었다. 하지만 제1·2차세계대전을 거친 상황에서 극심한 인플레이션까지 겪으며 적립금이 고갈, 자연스레 부과식 연금제도로 변경(1957년)돼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실제로 독일을 비롯해 영국, 핀란드 등 서유럽의 ‘연금 선진국’들은 기금을 수백조원씩 쌓아두는 적립식 대신, 매해 필요한 만큼의 보험료를 걷어 재원으로 쓰는 ‘부과식’을 채택하고 있다. 연금 역사가 긴 만큼 적립금을 다 소진했기 때문이다.

현재 독일은 연금 지출액의 24.2% 정도를 세수로, 나머지는 젊은층으로부터 걷은 보험료로 메우고 있다. 이 경우 보험료율 인상은 불가피하다. 독일의 보험료율은 2016년 기준 18.7%로 한국(9%)의 두 배가 넘는다.

연금 전문가들은 국민연금도 장기적으로는 적립식에서 부과식으로 전환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인구 구조상 갈수록 가입자 수는 줄고 연금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늘어나 적립금을 쌓아놓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8월 27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이 14%를 넘어서면서 ‘고령 사회’로 진입했다.

Plus Point

상반기 수익률 ‘지지부진’ 운용본부 정비 시급

국민연금의 문제점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금융 투자 수익률 부진이다. 실제로 8월 28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국내외 주식·채권·대체투자 등을 포함한 공단의 기금 운용 수익률은 1.47%(연율 기준)를 기록했다. 지난해(7.26%)보다 나빠진 것은 물론 3년 평균 수익률 5.61%와 비교해서도 매우 낮다.

올 들어 수익률이 눈에 띄게 나빠진 데는 작년만 못한 시장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이 기간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수익률이 -5.32%로 시장 평균 수익률(-4.23%)보다 1.09%포인트 떨어졌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수익률을 끌어올리려면 위아래 할 것 없이 인력난을 겪고 있는 기금운용본부를 서둘러 정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 자리가 1년 넘게 비어 있는 데다, 실장급 핵심 보직 일부도 수개월째 공석이다. 특히 국민연금 본사가 전북 전주로 이전하면서 퇴사자도 늘었다. 지난해 일반 운용직 퇴사자 수(27명)가 처음으로 입사자 수(26명)를 앞질렀다.

국민연금 안팎에서는 수익률 관리와 함께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울 만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금운용본부 출신 관계자는 “공단과 각 부처 간 이해관계에 가로막혀 성과만큼 보상받지 못하는 등의 문제점이 해마다 불거진다”며 “이런 것들이 운용역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