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년 역사의 미국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가 올해 1분기 기업공개(IPO)를 하고 뉴욕 증시 재상장을 추진한다. 현재 리바이스 청바지는 세계 110여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166년 역사의 미국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가 올해 1분기 기업공개(IPO)를 하고 뉴욕 증시 재상장을 추진한다. 현재 리바이스 청바지는 세계 110여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청바지 전설의 귀환.’ 패션 업계 관계자들이 리바이스의 미국 증시 복귀를 두고 한 말이다. 전통만 고집하다 패션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났던 미국 대표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가 지난 10여 년간 넘지 못했던 50억달러(약 5조6300억원) 매출의 벽을 넘더니 올해 1월에는 주식시장에 복귀하겠다고 나섰다.

파이낸셜타임스(FT), CNBC 등에 따르면 리바이스를 운영하는 리바이스트라우스앤드컴퍼니(이하 리바이스)가 올해 1분기 뉴욕 증시 상장을 통해 6억~8억달러(약 6800억~9000억원)를 조달할 계획이다. 기업 가치 목표는 50억달러 이상이다. 리바이스가 예정대로 올해 상장하면 35년 만에 증시에 복귀하는 셈이다.

리바이스의 재상장이 주목받는 이유는 리바이스가 이번 상장으로 과거 명성을 되찾을지 귀추가 주목되기 때문이다. 166년 역사의 청바지 브랜드인 리바이스는 독일 출신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1853년 텐트나 천막에 사용하는 천으로 광부들이 원하는 바지를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 탄생했다. ‘튼튼한 바지’로 유명해지면서 청바지 시장 점유율 1위로 승승장구하던 리바이스는 1996년 연매출 71억달러로 최고점을 찍은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아마존 등 전자상거래 업체, 저가 전략을 펼치는 브랜드와 경쟁에서 밀려 매출이 50억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이후 10여 년간 매출 50억달러의 벽을 깨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리바이스의 몰락을 ‘성공 기업의 딜레마’로 정의한다. 시장에서 오랫동안 공고한 지위를 구축해온 초우량 기업들은 과거 비즈니스 모델에 의구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자신들의 브랜드 파워를 맹신한 나머지 지금까지 이어온 성장이 계속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리바이스는 캘빈클라인, 갭, 게스 등 경쟁 업체의 공세에도 상당한 수익을 올렸기 때문에 서서히 다가오는 위기를 인식할 수 없었다. 리바이스의 고속 성장이 시장이 보내오는 위기 신호를 가린 것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 외부 환경이나 경영진의 태도를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봐도 기업에 위기가 발생했다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며 “핵심 고객들의 제품·서비스에 대한 저항감이 늘어나거나 시장 점유율을 신규 경쟁자에게 조금씩 내주는 상황, 급부상한 신규 기업의 경쟁력을 무시해버리는 경영자의 태도 등이 그 예”라고 설명했다.

리바이스가 매출 하락으로 고전하던 1999년, 고든 생크 리바이스트라우스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기업이 잘 돌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는 신호를 읽지 못했거나 무시한 것”이라고 잘못을 인정했다.


칩 버그 리바이스트라우스 CEO. 사진 블룸버그
칩 버그 리바이스트라우스 CEO. 사진 블룸버그

1│구원 투수로 등판한 칩 버그 CEO

리바이스가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11년 9월, 리바이스가 P&G(프록터앤드갬블)에서 28년간 일하며 질레트 등 여러 브랜드를 성공시킨 브랜드 마케팅 전문가 칩 버그(Chip Bergh)를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하면서부터다.

별다른 마케팅 전략 없이 경영을 이어오던 리바이스는 2000년대 들어 캘빈클라인, 게스 등 프리미엄 청바지를 생산하는 경쟁 업체들의 공격적인 마케팅에 선두를 빼앗겼고 사람들은 리바이스의 종말을 점쳤다. 이런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이 버그 CEO다. 그는 취임 후 예상보다 형편없는 리바이스의 실적에 깜짝 놀랐다. 리바이스가 청바지 시장 경쟁이 치열해진 2000년 이후부터 그가 취임한 2011년까지 단 한 번도 연매출 45억달러를 넘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버그 CEO는 리바이스를 완전히 뒤집기로 했다. 그는 먼저 회사 최고위 임원 60명을 만나 각각 1시간씩 면담했다. 그 결과 임원들이 각자 맡은 업무와 그 일이 리바이스의 발전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충격받은 버그 CEO는 리바이스를 완전히 탈바꿈시키기 위해 경영진 대부분을 교체했다. 부임 이후 그에게 직접 보고하던 임원 11명 중 9명이 18개월 만에 나갔고, 현재 1명만이 그와 함께 리바이스를 이끌고 있다.

다음으로 그는 고객의 집을 직접 방문해 고객의 라이프스타일과 관심사, 제품 사용 방식, 수요 등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고객과 소통 없는 브랜드’라는 오명을 씻고 고객이 원하는 제품과 브랜드 이미지를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다양한 고객을 만나 ‘리바이스를 고집하던 핵심 고객군이 리바이스를 떠난 이유가 무엇인지’ ‘요즘 소비자는 어떤 청바지를 원하는지’ ‘세분화된 고객층을 각각 어떤 제품군으로 공략해야 하는지’ 등을 연구했다.

버그 CEO는 인도 중산층 가정에서 만난 29세 여성과 대화에서 마케팅 포인트를 잡기도 했다. 리바이스의 핵심 고객이었던 그 여성은 “다른 청바지는 입는 거고, 리바이스 청바지는 그 안에 같이 사는 것”이라는 말을 버그 CEO에게 했고, 그는 이 말이 리바이스의 본질이라고 생각해 ‘리브 인 리바이스(Live in Levi’s)’라는 광고 메시지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고객과 소통을 통해 고객이 원하는 리바이스 이미지를 구현한 것이다.


2│연구센터 재투자해 제품 혁신

버그 CEO는 리바이스의 연구센터인 ‘유레카 혁신 랩’에 투자를 늘렸다. 터키 테키라드주 촐루에 있던 연구소를 본사가 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옮기고 고객층을 넓힐 제품 개발에 주력했다. 유레카 혁신 랩을 통해 신축성이 뛰어난 여성용 청바지를 가장 먼저 히트시켰고, 청바지 워싱(자연스러운 물빠짐 무늬를 넣는 것)을 90초 안에 입히는 레이저 기술도 개발했다.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첨단 의류도 선보였다. 리바이스는 2017년 9월 ‘트러커 재킷(트럭 운전사들이 즐겨 입는 데님 재킷)’ 출시 50주년을 맞아 구글 첨단기술 제품팀과 협력해 스마트 트러커 재킷을 출시했다. 데님 원단에 구리 소재의 전도성 물질을 넣어 소매 부분을 터치하는 것만으로 스마트폰을 제어할 수 있도록 만든 의류다. 소매 부분을 좌우로 쓸어 넘기거나 두드려 음악 변경, 전화 응대, 문자 확인 등을 할 수 있다.


3│밀레니얼 공략 위해 협업

리바이스는 ‘옛날 어른들이 입던 그냥 청바지’라는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벗고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나이키 등 젊은층에 어필할 수 있는 브랜드와 활발한 협업을 펼쳤다. 지난해 1월에는 나이키의 신발 브랜드 에어조던 4 모델에 리바이스의 상징인 ‘데님’을 입혀 한정 판매했다. 또 리바이스의 트러커 재킷에 에어조던 4 로고를 넣은 리버시블(양면으로 입을 수 있는) 의류를 출시해 나만의 특별한 패션을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2016년엔 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 크리스틴 스튜어트, 키이라 나이틀리, 엘렌 드 제네러스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즐겨 찾는 브랜드’라는 스타 마케팅을 펼쳤고, 베트멍, 오프화이트 등 명품 업체들과 협업을 통해 리바이스를 떠난 젊은 고객층을 다시 불러들였다.

최근 리바이스 내부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좋다. 버그 CEO가 리바이스를 맡은 후 5년 연속 매출과 순이익이 성장했고, 기업 가치는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약 10억달러에 달하는 부채를 갚아 재무 상태도 튼튼해졌다. 그는 “리바이스는 여전히 성장할 여지를 충분히 갖고 있다”며 “리바이스의 정점이던 연매출 70억달러를 넘어 100억달러 브랜드로 성장하리라 믿는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