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문재인 대통령은 4월 14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포스트 코로나(코로나 이후 시대)를 제일 먼저 준비하고 맞이하자”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꼽은 포스트 코로나 산업은 ‘비대면’ 산업. 비대면 산업의 대표 주자가 배달 유통이다. ‘이코노미조선’은 코로나19 이후 배달 유통업의 현주소를 두 기사에 걸쳐 체험기와 인터뷰로 담았다.
4월 10일 기자가 서울 논현동 일대에서 ‘부릉 프렌즈’ 배달원으로 일하고 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4월 10일 기자가 서울 논현동 일대에서 ‘부릉 프렌즈’ 배달원으로 일하고 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날이 따뜻해지는 봄에는 외식이 늘어 배달 물량이 통상 줄어드는데 올해는 성수기인 겨울과 다를 바가 없어요. 코로나19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습니다.”

4월 10일 서울 반포동 길거리에서 만난 배달원 박모(32)씨는 올해 배달업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확산하면서 배달 주문을 시키는 사람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12시부터 약 5시간 40분 동안 강남·서초구 일대에서 배달 체험을 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주말마다 1~2시간씩 짬짬이 배달 부업을 하다가 날이 추워지면서 2월부터 휴식 기간을 가지고 있었는데,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것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 다시 헬멧을 썼다.

사전에 제휴 지점 1위 배달 대행업체 부릉(VROONG)의 일반인 라이더 ‘부릉 프렌즈’에 온라인 지원했다. 부릉 프렌즈 근무자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로,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배달에 참여하고 수당을 받아 간다.

체험 당일 오토바이와 전기자전거가 모여 있는 부릉스테이션 강남논현지점으로 출근했다. 배정받은 전기자전거 잠금을 해제하고 직원 조끼를 착용한 뒤 배달원용 애플리케이션(앱)을 켰다. 5초에 한 번씩 휴대전화 진동이 울렸다. 배달 의뢰건(콜)이 앱에 추가되는 소리였다. 햄버거, 치킨, 커피 프랜차이즈까지 각종 음식점이 목록에 떴다. 3㎞ 반경 이내에 12건의 콜이 떠있었다. 2㎞ 반경으로 거리를 조정해도 6건에 달했다.

현장에 있던 부릉 관계자는 “코로나19 이전보다 콜 수가 늘어났다”라고 귀띔했다. 실제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올해 2월 부릉의 배달 건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85% 증가했다. 3월에도 179% 증가하면서 2배 가까운 성장세를 유지했다.

이날 기자는 총 6건(햄버거, 토스트, 커피, 쌀국수, 죽, 화장품)을 배달했다. 특히 오후 12시부터 3시까지 피크 시간대에 연달아 5건을 배달했다. 중간에 휴대전화 보조 배터리 구매 시간 30분을 제외하면, 30분에 한 번꼴로 1㎞ 이하 이동 거리의 배달을 완료했다. 이동 거리가 짧은 ‘꿀콜(쉬운 배달 건)’이 많은 덕분이었다. 오후 3시 이후부터는 콜 수가 줄었다. 5시 한 건 배달로 근무를 마쳤다.


배달원용 애플리케이션(앱)에 뜬 주문 목록.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배달원용 애플리케이션(앱)에 뜬 주문 목록.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배달 가방에 담은 아이스 캐러멜 마키아토 한 잔.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배달 가방에 담은 아이스 캐러멜 마키아토 한 잔.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점심시간 배달 물량 ‘풍년’…콜 경쟁 치열

배달하면서 만난 점주·직원들은 하나같이 “배달 고객 덕분에 코로나19에도 매출을 유지한다”고 입을 모았다. 빽다방 신논현점 직원 A씨는 “코로나19 이전보다 배달 주문이 확실히 많아져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했다. 16㎡(5평) 남짓한 매장에서 5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을 정도였다. 또 다른 매장 반포식스 반포본점의 이준범 점장은 “원래 하루 평균 배달 주문량이 40건이었는데, 코로나19 이후에는 60~70건에 달한다”면서 “평일 매출의 30%, 주말 매출의 60%가 배달로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달 주문이 폭주하는 만큼 배달원으로 붐비는 매장도 있었다. 두 번째 행선지였던 맘스터치 강남논현점에 기자가 도착했을 때 이미 배달원 2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같은 매장에서 콜이 한 번 더 떴다. 서로가 눈치싸움을 벌이는 사이 한 배달원이 휴대전화를 보여주면서 직원에게 질문했다. “이 건은 준비됐나요? 제가 같이 가져갈게요.” 한 번에 두 건의 콜을 묶음 배정받아 차례대로 배달할 경우 시간을 절약하면서 돈을 두 배로 벌 수 있다.


언택트 배달을 위해 현관 앞에 배달 음식을 놔둔 모습.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언택트 배달을 위해 현관 앞에 배달 음식을 놔둔 모습.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커피 한 잔도 배달…모든 주문은 “문 앞에 두고 가세요”

모든 주문은 ‘언택트(untact·비대면)’로 이뤄졌다. 대부분 콜의 고객 요청 사항은 “문 앞에 두고 초인종을 눌러주세요”였다. 코로나19 이전부터 배달업에 종사했던 기자가 변화를 가장 많이 체감한 부분이었다.

여러 장소를 방문하는 배달원이 코로나19 감염원일 수 있다는 두려움이 변화의 원인이다. 실제 배달 대행업체 바로고는 2월 26일 송파구 문정동에서 자사 배달원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전했다. 지난해부터 배달업을 시작한 배달원 최모(29)씨는 “대면 배달의 경우 비닐봉지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손잡이를 만지지 않는다”면서 “최대한 고객과 접촉을 피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언택트 사회의 여파로 특이한 배달 품목도 눈에 띄었다. 이날 콜 목록에는 커피, 화장품, 냉동육과 같은 다양한 품목이 올라왔다. 기자의 고객 중에는 아이스 캐러멜 마키아토 한 잔을 배달시킨 사람도 있었다. 해당 고객 역시 현관 앞에 커피를 두고 가길 사전에 주문했다.

배달 품목은 앞으로 더 다양해질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배달 유통을 시작하는 자영업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배달 서비스를 기획 중인 돼지고기 전문점 ‘흑돈가’ 관계자는 “내수 시장이 식당 방문보다 배달 유통 위주로 흘러가면서 배달 서비스에 대한 니즈가 커졌다”고 했다.


Plus Point

손에 쥔 일당 1만7503원… “잘 벌면 시간당 3만원”

배달업이 호황이어도 장시간 근무는 비효율적이었다. 오후 3시가 되니 전기자전거의 배터리가 5%밖에 남지 않아 소진될 기미를 보였다. 2㎞가량 떨어진 부릉스테이션에 전기자전거를 반납해야 해서 동선이 겹치는 콜을 기다렸다. 하지만 피크 시간대가 지나서 적합한 콜을 고르기 어려웠다.

콜이 없는 틈을 이용해 인근 음식점에서 식사를 해결하다가 오후 5시 인근 올리브영 매장에서 들어온 콜을 잡았다. 배달을 마치니 시계는 5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중간에 전기자전거 배터리가 소진돼서 다른 배달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벌이도 아쉬운 수준이다. 배달 단가는 건당 2500~4000원 정도. 이날 대기 시간을 포함해서 5시간 40분 동안 벌어들인 돈은 총 1만7503원이었다. 소득세 3.3%를 제외한 금액이다. 일의 효율이 낮았던 만큼 “일찍 퇴근할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집중적으로 일했던 2시간 30분(5건)만 계산하면, 수입은 1만4602원으로 시간당 5840원 수준이었다. 최저임금(8590원)에 못 미치는 금액이었지만, 숙련도나 운송 수단에 따라 시급은 증가할 여지가 있다고 한다. 부릉 관계자는 “오토바이를 이용해서 속도가 빠르고 묶음 배정을 잘 활용하는 노하우가 있는 사람의 경우 시간당 2만5000~3만원을 벌기도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