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훈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연구위원
남시훈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연구위원

7월 1일 일본이 한국에 대해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에 필수적인 핵심 소재 3종의 수출을 어렵게 하는 조치를 취한다고 발표했다. 한국의 주력 산업을 표적으로 한 조치이며, 사린 가스로의 전용 가능성이 언급되는 등 강한 위협 발언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복합적인 통상 마찰의 성격을 갖는다. 한국에서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불합리하고 상식에 반하는 보복 조치”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았다”라고 발언하면서 강 대 강 대치가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서로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는 분쟁의 경우, 게임이론에서는 확약(commitment)이라는 요소를 통해서 양자의 선택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 확약은 게임이론에서 본 게임을 하기 전에 내가 어떻게 행동할 것임을 상대방에게 확실하게 보여준다는 의미다. 언뜻 보기에는 게임에서 상대방의 전략을 알면 내가 유리해지고 상대방이 불리해지므로, 이러한 전술은 일반적인 접근과 반대 방향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확약이 게임에서 이길 가능성을 높이기도 한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유명한 예시는 치킨게임(겁쟁이 게임)이다. 이 게임에서는 게임에 참여하는 두 사람이 양쪽에서 차를 몰고 서로 돌진하며, 먼저 핸들을 꺾어서 피하는 쪽이 겁쟁이가 되어 게임에서 지게 된다. 한쪽이 회피하고 한쪽이 돌진하면 돌진한 쪽이 이긴다. 둘 다 회피하면 둘 다 머쓱해지면서 무승부가 된다. 둘 다 돌진하면 서로 차량이 충돌해 둘 다 엄청난 손해를 본다.

일차적으로 이 게임을 보면 쉽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상대방이 돌진하면 나는 회피해 충돌을 피하는 것이 더 좋다. 상대방이 회피한다면 나는 그대로 돌진해 게임에서 승리하는 것이 좋다. 나에게 좋은 전략은 상대방의 결정에 따라 달라지므로, 상대방의 결정을 모르는 상태에서 나에게는 회피하는 방법과 돌진하는 방법 중 확실하게 더 나은 전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게임에서 균형 상태는 둘 중 한 사람이 회피를 선택하고 둘 중 한 사람이 돌진을 선택하는 상태다. 그러나 나와 상대방 모두 가능하면 내가 이기고 싶어 하므로, 실제로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는 예측할 수 없다.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한 보다 확실한 전술은 나의 선택을 상대방에게 미리 보여주는 것이다. 게임을 하기 전에 차 브레이크를 부러뜨리거나 핸들을 뽑아버리거나 하면, 이제 나는 게임에서 회피를 선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무조건 돌진하게 된다. 내가 무조건 돌진하게 된다는 것을 상대방이 받아들이면 상대방은 그 상황에서 제일 나은 선택을 하게 되고, 회피를 선택한다. 그래서 나는 돌진, 상대방은 회피를 선택해 내가 게임에서 이기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러진 브레이크나 뽑힌 핸들을 상대방이 볼 수 있게 던지는 것이다. 내가 무조건 돌진한다는 그 자체보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가 무조건 돌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믿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상대방의 믿음이 바뀌어야 상대방의 행동이 달라져서 회피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파손된 브레이크는 가짜이고 실제로 차는 멀쩡한 상태여도 된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점이다.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 모듈. 사진 블룸버그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 모듈. 사진 블룸버그

한·일 무역분쟁의 상황도 이 같은 치킨게임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는 한국도 피해를 보지만, 일본도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까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가 더 커질 것이다. 만약 한국과 일본 중 한쪽이 더 이상 경제적 피해를 감당할 수 없어 자세를 낮춘다면, 분쟁은 해결되고 경제적 피해도 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먼저 자세를 낮춘 쪽은 국민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정권 지지율이 낮아지기 때문에 상당한 손해를 보게 되며, 반대로 이긴 쪽은 상당한 이득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승리에 가까워지는 방법은 확약이다. 우리 쪽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만천하에 공표해, 당분간 포기 선언이 나오기 힘들게 스스로의 손발을 묶는 것이다.

국가 입장에서 하루아침에 말을 바꾸는 것은 국가적인 신뢰성 하락을 동반하므로 강한 말을 할수록 말을 뒤집기는 어려워진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일본의 대외적인 태도 역시 이런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확약 관점에서 보면 일본은 앞으로 더 강한 조치를 취하면서 스스로 포기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이 좋은 전술이다. 일본이 보복카드가 100개 있다고 이야기한 것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자신의 손발을 묶어 놓은 경우 일본이 먼저 포기하는 방식으로 분쟁이 해결되기는 어려워진다. 한국 측이 WTO(세계무역기구) 제소 외에 다른 형태의 보복 조치 없이 일본의 행동을 규탄하는 것은 일본의 조치에 대해 버틸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의 보복 조치는 일본이 한국에 취한 조치 그 이상의 효과가 있는 강한 확약이 아니라면 별 의미가 없다.

일단 필요한 것은 일본의 현재 전술이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말을 뒤집기 어려워진 만큼 일본이 쉽게 포기할 가능성은 적다.

WTO 제소와 같은 최소한의 조치는 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구체적인 대응 방안은 일단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라 검토하되 시간을 끌면서 주변 상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파악해야 한다. 상대방이 부러뜨린 브레이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정보전을 통해서 확인할 필요도 있다.

통상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매우 다양해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산업적 특성, 공학에 대한 이해, 국제법 및 WTO 규정, 외교·정치적 사전 지식, 경제학적 분석 모두 의미가 있다. 그중 게임이론은 두 경제주체가 서로 영향을 강하게 주고받는 경우 고려해야 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보여준다. 확약을 통한 분석은 이처럼 두 국가의 자존심 싸움이 걸린 문제에서 왜 타협이 어렵고 언성이 높아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단 실제 현실은 게임이론 모델보다 복잡하며 많은 경우의 수가 있다. 확약을 통한 분석도 여러 가지 측면 중 한 가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한계가 있으며, 결국 필승 전략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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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론(Game Theory) 게임이론은 경쟁 상대의 반응을 고려해 자신의 최적 행위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의사결정 행태를 연구하는 경제학 및 수학 이론이다. 폰 노이만과 모르겐슈테른이 1944년 공저한 ‘게임이론과 경제 행태’가 발간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이들은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을 연구했다. 게임 참가자가 서로 경쟁하고 그 결과 한 사람의 이득이 다른 사람의 손실로 귀착되는 현상이므로 적대적 게임이다. 포커 게임이나 야구 같은 스포츠뿐 아니라 국가 간 전쟁도 적대적 게임의 하나다. 제로섬 게임은 경제학과 군사학에 큰 영향을 줬다. 한국과 일본의 반도체 무역 분쟁도 제로섬 게임으로 볼 수 있다.

남시훈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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