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캐너, 광학 문자 인식기(OCR), 시각장애인을 위해 책을 읽어주는 기계, 컴퓨터로 음악을 연주하는 신시사이저….

이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답은 ‘에디슨 이후 최고의 발명가’로 손꼽히는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이 발명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30년간 미래 예측에서 80%가 넘는 적중률을 보인 미래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2012년 12월 구글에 임원으로 입사해 화제가 됐다. 당시 65세였던 그는 특허 39개를 기반으로 일곱 번이나 창업하고 재산도 모을 만큼 모았다. 한 번도 남의 밑에서 일해 본 적 없는 그가 왜 뒤늦게 구글의 새파란 창업자들 밑에서 ‘종속의 길’을 택했을까. 그는 방한 기간 중 Weekly BIZ와 인터뷰하며 “평생의 연구 과제인 ‘사람 수준 인공지능’을 개발하기 위해서였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1차 목표는 ‘사람 말을 100% 이해하는 컴퓨터’를 개발하는 것이다.

“기계의 한계와 언어의 모호성을 초월해 어의(語義)를 완전히 이해하고 전달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싶다. 애플의 시리(Siri)나 구글 나우(Now)는 아주 기초적인 단계다. 평이한 질문은 이해하지만, 아직 ‘부정형’이나 ‘맥락’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찰나에 100억 쪽이나 되는 텍스트를 이해하는 ‘구글 스케일’이 있다면 가능하다. 예컨대 구글 스케일은 지금까지 인간이 피자를 주문 배달시킬 때 사용한 모든 표현 패턴을 다 검색해 그 나름의 패턴을 산출한다. 피자를 주문할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대략 수천 개 범위의 모든 표현을 눈 깜짝할 새 검토해 피자 주문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커즈와일에 따르면 현재 컴퓨터는 계산 속도만 빠를 뿐 쥐의 뇌보다 못한 수준이다. 그러나 2029년 컴퓨터의 능력은 개별 인간을 뛰어넘고, 2045년엔 전 인류 지능의 총합마저 크게 앞질러버릴 것이라고 그는 예측했다. 이 시점을 그는 ‘특이점(singularity)’이라고 부른다. 그는 이 시기가 되면 인간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고 예측해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IQ 165의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 박사의 미래 예측은 도발적이다. 그러나 지금까진 정확한 편이었다. 2010년에 그는 자신이 1980년대 초부터 저술한 여러 저작에서 예측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분석했는데, 147개 예측 중 126개가 실현된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10년간 가장 급격히 발전할 기술은 무엇일까.
향후 10년간 가장 급격히 발전할 기술은 무엇일까.

“가상현실과 홀로그램 기술이 진짜 현실과 비슷해질 것이다. 구글 글라스는 첫 단추에 불과하다. 앞으로는 내가 한국에 오지 않아도 조선일보에서 현실과 똑같은, 가상의 나를 인터뷰할 수 있게 된다. 숨 쉬는 것이나 체온까지 똑같이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는 홀로그램이 나올 것이다. 통신과 여행, 출장 등 ‘공간’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변하게 된다. 3D 프린터는 10년 안에 완전히 상용화될 것이고, 20년 안에는 음식과 옷도 프린트해서 살 수 있게 된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훨씬 뛰어나게 된다면 위험하지 않을까.
“인간은 기술 발전을 두려워한다기보다 ‘모르는 것(unknown)’에 대해 원초적 두려움을 갖고 있다. 기계는 차갑고, 영원히 인간적 감정을 공유하지 못할 것이라는 굳건한 편견이 자리하고 있다. 인간이 만든 기계란 곧 인간의 확장판 개체로, 우리의 감정과 가치를 공유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화성에서 뚝 떨어진, 우리와 전혀 다른 외계 생명체가 아니다. 또 특이점 이후 인간은 기계와 항상 연결돼 있어 기계가 곧 인간이고 인간이 기계인 시대가 펼쳐질 것이다. 당신이 24시간 곁에서 떼 놓지 않는 스마트폰도 몸에 이식되지 않았을 뿐이지 깊이 의존한다는 측면에서 사실상 이미 뇌의 연장(brain extender)이다.”

기술의 발전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인가.
“그렇다. 인류가 처음 불을 발견했을 때 위험하고 무섭다고 멀리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문제는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인류는 기술과 함께 보완책도 항상 같이 발전시켜 왔다.”

사람과 똑같은 지능을 가진 컴퓨터를 향해 내가 거대한 망치를 들고 다가가면 그것은 공포를 느낄까.
“아마 중추 신경과 핵심 프로세서 등은 거의 클라우드에 저장될 것이기 때문에 하드웨어를 박살낸다는 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또 무궁무진한 저장 공간 덕분에 백업도 완벽히 돼 있고 복제본도 수만, 수억 개가 있을 것이다. 생물학적 사고 체계의 한계에 갇힌 현재 우리로선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우린 ‘하나의 정신, 하나의 몸통’에 익숙하지만 더는 그런 게 아닌 시대가 온다. ‘완전한 파괴나 죽음’이 아주 어려워지는 것이다. 또 언젠가 우리 몸을 서버에 연결해 뇌의 기억을 분산 저장하거나 다른 사람 뇌와 연결해 기억을 공유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마치 USB를 사용하듯 뇌를 컴퓨터와 연결해 업로드하고, 우리는 생물학적 사고관의 한계를 넘어 점점 기계적 사고관의 영향을 받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가 기계가 되는 것은 아니고 생물과 기계의 장점을 결합한 ‘하이브리드’가 되는 셈이다.”

구글 나우에 “양키스가 이겼나?”라고 물어보니 전날 양키스 경기 결과를 정확히 보여줬지만, “그럼 레드삭스는?”이라고 물었더니 질문을 이해 못 했다. 이런 한계를 어떻게 뛰어넘나.
“아직 한계가 있다. 바로 전 질문과 이어지는 ‘맥락’을 기계가 이해 못한 것이다. 대화가 가능해지려면 기계는 조금 전 오간 말을 기억해야 한다. 부정형 문맥 또한 잘 이해 못한다. ‘저녁을 먹고 싶은데 이탈리안은 싫다’고 말했더니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목록만 쭉 뽑아줬다. 현재 기술의 수준이다. 인간의 언어를 완벽히 이해하는 인공지능까지는 먼 길이지만, 단계별 목표를 세워서 발전해나가야 한다.”

직장 동료에게 “2045년엔 인류가 불멸에 도달한다”고 말했더니 그는 ‘그럼 우린 무엇 때문에 지금 고생하느냐’고 되물었다.
“인간이 불멸이 되면 열심히 살지 않고 윤리가 사라질 거라는 우려의 말을 나도 자주 듣는다. 2045년 특이점은 현 상태의 발전 속도를 전제로 한다. 지금 페이스대로 모두가 열심히 노력해야 기술이 발전하고 2045년쯤 영원히 살 수 있는 시점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나는 인간이 태생적으로 진보와 발전을 추구하는 생물이라고 믿는다. 영원히 살게 되면 몇몇은 게으르게 살기를 선택하겠지만, 대다수 인간은 여전히 진보와 발전을 향해 갈 것이다.”


▒ 레이 커즈와일 Ray Kurzweil
구글 엔지니어링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