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서울 삼성동에서 열린 자동차전시회 ‘EV TREND KOREA’ 참가자가 행사장의 LG화학 로고 앞을 지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지난 4월 서울 삼성동에서 열린 자동차전시회 ‘EV TREND KOREA’ 참가자가 행사장의 LG화학 로고 앞을 지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전기차 시장이 커지면서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한·중·일 3국 기업들의 경쟁도 한층 뜨거워지고 있다. 현재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일본의 파나소닉과 중국의 CATL(Contemporary Amperex Technology Co. Limited)가 1,2위를 다투고 있다. 올해 5월까지 출하량에서 1위는 CATL이었지만 6월 들어 파나소닉이 다시 1위로 올라선 상태고 연말에는 어느 곳이 승자가 될지 알 수 없다. 반면 한국의 LG화학(9.2%), 삼성SDI(4.5%) 등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수십조원의 지원금을 자국 배터리 산업 지원을 위해 쏟아붓는 중국의 물량공세를 견디지 못한 데다 기술력에서 국내 기업들보다 앞선 일본과의 경쟁에서도 점점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 1.5기가와트시(GWh)에 불과했던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 규모는 2015년 15.7GWh로 10배 이상 성장했다. 2020년에는 140GWh가 될 전망이다. 중·일 전기차 배터리 업체의 거친 공세 속에 고군분투하고 있는 국내 배터리 회사들의 기술력의 한계와 문제점을 살펴봤다.


1│中의 물량공세에 출하량 순위 밀려

올해 파리 모터쇼에서 공개된 기아차 니로EV에 장착된 배터리는 LG화학의 64킬로와트시(KWh)급 리튬이온배터리다. 프레데릭 추카리(Frédéric Chouraqui) 기아차 유럽 전기차 담당임원은 프랑스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번 충전하면 최대 485㎞를 주행할 수 있다”고 했다. 충전 후 주행할 수 있는 거리를 보면 LG화학의 배터리 기술은 SK이노베이션, 삼성SDI와 비슷한 수준이다. 지난해 8월 SK이노베이션도 450㎞를 달릴 수 있는 배터리를 개발했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1회 충전으로 100㎞를 가는 배터리를 1세대, 300㎞는 2세대, 500㎞ 이상 주행이 가능한 배터리를 3세대로 분류하는데 현재는 한·중·일 3국 회사들이 2세대를 넘어 3세대를 개발하고 있는 상태다.

문제는 중국이 자국 배터리 회사에 천문학적 보조금을 투입해 출하량을 늘리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전기차 시장인 데다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과 제품을 보호·육성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BYD, CATL 등에서 생산된 배터리를 넣은 전기차에 4만5000~5만위안의 보조금(약 737만~819만원)을 지급했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지급된 보조금 규모는 1420억위안(약 23조8000억원)에 달한다. 이렇다 보니 배터리 출하량 기준으로 2015년 세계 1‧3위를 차지했던 LG화학과 삼성SDI는 올해 4위와 6위(상반기 출하량 기준)로 밀려났다. 반면 중국 기업인 CATL은 2위(출하량 5714메가와트시·㎿), BYD는 3위(출하량 3270.9㎿)를 차지했다. 중국 정부는 2020년에 보조금을 폐지할 계획이어서 한국 배터리업체들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올 수도 있지만 중국이 계획을 바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1시간 걸리는 韓 배터리 충전 기술

국내 기업들이 보조금 공세로 물량 면에서 중국에 밀리고 있다면 기술력에선 일본 기업들의 상대가 되지 못하고 있다.

국내 기업의 전기차 배터리는 80~90%의 충전에 걸리는 시간이 1시간에 가깝다. LG화학의 64KWh급 배터리는 20%가 남은 상태에서 80%까지 충전하는 데 40분가량이 필요하다. 삼성전자 종합기술원과 삼성SDI, 서울대가 공동으로 개발 중인 ‘그래핀 볼’ 기술을 활용해도 전기차용 배터리를 완전히 충전하는 데는 12분이 걸린다. 그래핀 볼 기술은 배터리의 음극과 양극을 탄소 원자막(그래핀 볼)으로 만들어서 사용하는 기술인데 실제 전기차에 사용하려면 앞으로도 5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국내 전기차 배터리 충전 방식과는 대조적으로 일본은 앞선 기술력으로 배터리 충전 방식을 선도하고 있다. 일본 도시바는 6분 만에 완전 충전이 가능한 전기차용 배터리를 개발(2017년 10월)했다. 주행거리는 320㎞로 비교적 짧지만 도시바는 이 배터리의 주행거리를 400㎞까지 늘여 내년부터는 상용화할 계획이다. 특히 도요타자동차는 아예 배터리 자체를 교환하는 방식의 새로운 전기차 충전 시스템 개발을 검토하고 있다. 차량과 일체형으로 탑재돼 전원 코드를 연결해 충전하는 방식이 아니라 2개의 배터리를 번갈아 가며 끼워 운행하는 분리형 배터리로 전기차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머지 한 개의 배터리를 충전소에 맡겨 놓고 다른 배터리를 이용해 주행하다 배터리를 소진하면 다른 배터리로 교체하면 된다. 배터리 교체는 몇 분이면 끝나 훨씬 효율적인 운행이 이뤄질 수 있다.


3│차세대 배터리 개발도 뒤처져

전기차에 쓰이는 리튬이온배터리는 액체 상태의 전해질을 사용하기 때문에 안전성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다. 발화성이 있는 전해질이 배터리 충전이나 외부충격으로 인해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외 기업들과 연구기관에서는 전해질을 고체로 사용하는 배터리인 전고체(All Solid State) 배터리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도요타도 2022년까지 전고체 배터리를 이용한 전기차를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차세대 전지로 꼽히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서도 국내 업체들은 외국에 한참 뒤져 있다. 시기적으로 보면 일본 학계는 2000년대 초반부터, 일본 기업들은 2000년대 중반부터 전고체 배터리를 연구해왔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전고체 연구를 한 지 5년이 채 안 됐다. 10년 이상 일본에 연구·개발이 늦은 셈이다.

전고체 전지 관련 특허 건수를 봐도 실력차는 확연히 드러난다. 2002년부터 2011년까지 초기 전고체 연구성과를 분석한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전고체 특허는 일본이 3309개를 보유하고 있어 전체의 60%를 갖고 있다. 같은 기간 국내 기업이나 연구기관에서 보유한 특허는 8% 수준에 머물렀다.

해외 기업들이 자국 내·외 기업이나 연구기관과 차세대 배터리 개발을 위한 협업을 하는 것도 국내 업체와는 다른 모습이다. 도요타는 지난해부터 파나소닉과 배터리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중국 CATL과 일본 혼다도 지난 5월 전기차 배터리 공동연구에 나섰다.

반면 국내 기업 간 협업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LG화학과 삼성SDI, SK이노베이션이 각각 개별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완성차 업체인 현대차그룹과도 협업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과학원과 연구하는 CATL, 동경공업대와 연구하는 도요타 등 국가연구기관이나 대학과 활발히 교류하는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대다수 한국 기업들은 이런 산학 연구도 거의 없다.

정윤석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연구인력 측면에서 일본이나 중국과 숫자 싸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고 현대차나 배터리 3사 등 대기업과 학계, 소재 기업 등이 협력해야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기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