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의 경제가 회복되고 있지만, 정치적·지정학적 갈등 때문에 세계 경제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크다. <사진 : 블룸버그>
미국과 유럽의 경제가 회복되고 있지만, 정치적·지정학적 갈등 때문에 세계 경제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크다. <사진 : 블룸버그>

세계 경제는 최근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특히 경제의 방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영국의 브렉시트(EU 탈퇴) 등 정치적인 이슈에 큰 영향을 받는다. 칼린 잰스 유럽안정화기구(ESM) 사무총장은 “10년 전 대공황의 첫 신호가 울린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다”며 “북아메리카와 유럽이 성공적으로 경제 회복을 하고 있지만, 정치적·지정학적 갈등 때문에 세계 경제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크다”고 말했다.

잰스 사무총장은 최근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등 13개 국제기구에서 ‘세계 경제가 직면한 다섯 가지 도전과제’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 와튼스쿨이 공개한 연설 내용을 정리했다.


유럽의 난민 문제는 EU의 결속력을 흔들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유럽의 난민 문제는 EU의 결속력을 흔들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1 | 소득 불평등 증가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주변인과 자신의 부(富)를 비교하는 경향이 있다. 절대적 기준의 자산보다 주변 사람들과 비교해 내가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에 집착한다. 컨설팅 회사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개인 자산은 2016년 166조5000억달러(약 18조3000억원)를 기록해, 전년 대비 5.3% 증가했다. 2015년에는 4.4% 증가율을 기록했다. 세계 경제 성장의 가속화와 이에 따른 주식 가격 상승 때문이다.

특히 아시아 국가의 개인 자산 규모가 빠르게 증가했다. BCG의 분석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개인 자산 규모는 이르면 올해 말 서구 강국의 개인 자산 규모를 넘어설 전망이다. 서구권 국민에게 큰 충격이 될 것이다. 경제적 우열은 정치 권력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영국의 지리학자이자 정치가 해퍼드 매킨더는 “국가 간 불균등한 성장은 100년마다 패권주의적인 세계 전쟁을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절대적인 빈곤은 감소하고 있지만, 불평등 수준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 2015년 전 세계 상위 1% 부자들이 전 세계 부의 99%를 보유할 정도로 격차가 벌어졌다. 지난 2년간 부유층의 자산 증가율은 경제 회복 속도를 크게 웃돌았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의 지난 1월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8명의 사람이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넘는 36억명의 사람과 같은 규모의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

경제학자 리처드 리브스는 우리가 상위 1% 혹은 0.01%에 대해서만 걱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미국 등 많은 국가에서는 상위 중산층(소득 상위 20%)과 중하위 계층의 격차가 커지고 있고, 여기서 많은 사회적 갈등이 야기된다는 것이다.

리브스는 “중산층의 분열은 한 국가의 가족 구조, 이웃과의 관계, 공동체 형성, 삶의 태도 등 많은 부분에 영향을 준다”며 “상위 중산층은 최선을 다해 그들의 부와 지위를 자녀에게 물려주려 하기 때문에 소득 수준에 따른 사회 계층이 세습화되고, 사회 분화가 심화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1980년대 이후로 세계 빈곤이 완화되고, 국가 간 불평등도 감소했지만, 국가 내 사회 계층 간 불평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리브스에 따르면, 오늘날 세계적인 불평등의 30%는 국가 내 불평등에 기인한다.


2 | 기술 발전에 따른 일자리 감소

세계화와 기술의 진보가 노동 시장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는 최근 정·재계의 주요 화두다. 지난 30년간 미국·영국 등 선진국 경제의 노동 집약적인 일자리들이 신흥국으로 이전하면서, 선진국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됐고, 이는 정치권의 포퓰리즘(대중인기 영합주의)을 초래했다.

앞으로 일자리 감소는 선진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기술의 발달은 이미 많은 직업을 필요 없게 만들었고,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더 빨라질 것이다. 국제연합무역개발협의회(UNCTAD)는 로봇이 개발도상국 일자리 3분의 2를 없앨 수 있다고 발표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현재 5대 글로벌 기업(시가총액 기준)인 애플, 알파벳(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페이스북은 전 세계에서 72만명을 고용한다. 10년 전 5대 글로벌 기업인 페트로차이나, 엑손모바일, 제너럴일렉트릭, 중국은행, 차이나모바일은 130만명을 고용했다.

오늘날 5대 기업은 모두 기술 기업으로, 이들의 자본금 총액은 10년 전 5개 기업에 비해 30% 크다. 그들은 절반으로 줄어든 인력으로 더 많은 돈을 번 것이다. 앞으로 사업을 확장한다고 해도 추가 고용 규모는 크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직업의 선호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젊은 세대(10~30대)는 현재 일자리에 대해 모순된 정보를 받고 있기 때문에, 많은 혼란을 느끼고 있다. 한쪽에서는 로봇이 미래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일자리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기술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 젊은 세대는 은행·금융·회계 등 전통적으로 선호도가 높은 직종을 추구하지 않고, 새로운 종류의 일자리를 직접 만들려고 노력한다. 세계적인 호텔과 레스토랑을 방문하는 여행 블로거, 화장법 등 미용기술을 가르쳐주는 유튜브 방송인,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비디오게임 블로거 등이다.

그 결과, 엘리트 집단(고등 교육을 받은 노동자)이 외면해온 업종에 고급 인력이 공급되기 시작했다. 과거 상위 노동자들은 사무직종만을 고수했지만, 최근에는 유기농 제빵사, 지역 와인 제조업자, 정육점 직원 등 다양한 전통 상인의 일자리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다만 더 큰 문제는 중장년층과 저숙련 노동자다. 컨설팅 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전 세계 중장년 노동자의 45%가 능력에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거나 실업자이거나 불완전하게 고용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자를 재교육하지 않는 이상, 그들이 원하는 분야로 이직하기 힘들 것이고, 이로 인해 사회적 불행, 불안, 포퓰리즘이 심화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항상 ‘미국 우선주의’를 지향하겠다”고 강조했다. <사진 : 블룸버그>
트럼프 대통령은 “항상 ‘미국 우선주의’를 지향하겠다”고 강조했다. <사진 : 블룸버그>

3 | 보호무역 조치 증가

미국·EU·일본 등 선진국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보호무역주의를 주도하고 있다. 한동안 자유무역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들 국가가 실상은 보호무역의 선봉장으로 나서는 역설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국제 민간무역 연구기관 GTA에 따르면 세계 경제력 상위 60개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난 10년 동안 총 7000개에 달하는 보호무역 조치를 취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로 인해 발생한 관세 수입 등 보호무역 조치를 통해 발생한 금액은 총 4000억달러에 달한다. 아울러 보호무역 조치의 연도별 증가폭을 분석했을 때 2016년이 최근 10년간 최대 증가폭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이 노골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보호무역주의 때문이다. 가장 많은 보호무역 정책을 시행한 국가 혹은 지역 1위는 미국과 EU였다. 미국과 EU는 각각 1000여 개에 달하는 보호무역 조치를 취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7000개 보호무역 조치 중 30%가량을 이 두 나라가 취한 셈이다.

미국은 보호무역 조치로 자국이 피해를 덜 본 반면 다른 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컸던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은 무역에 대한 의존도가 국내총생산(GDP)의 28%에 불과한 반면 다른 나라들은 미국 수출에 의존하는 정도가 심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베트남 다낭에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도 “미국은 불공정한 교역 관계를 용납하지 않겠다”며 “항상 ‘미국 우선주의’를 지향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리의 손을 묶는 다국적 무역협정에는 들어가지 않겠다”며 다자무역주의를 배격한 양자 간 협정 위주의 교역 정책을 펼치겠다는 뜻도 거듭 밝혔다. 미국과 유럽에 이어 인도가 같은 기간 400개의 보호무역주의 조치를 취했다. 그다음 순위로는 아르헨티나·러시아·일본 등이 각각 275개에서 365개 사이의 보호무역 조치를 시행했다.

인도는 지난 8월 중국산 석유화학, 화공, 철강, 비철금속, 섬유, 실, 기계류, 고무, 플라스틱, 전자제품, 소비품 등에 대규모 반덤핑관세를 부과해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도발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당시 중국 관영 영문지 글로벌타임스는 “인도는 이러한 조치들이 초래할 결과에 대해 뒷감당을 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도 보호무역주의의 비판을 피해가지 못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최근 자국 시장에 수출하려는 품목에 대해 사전에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하는 품목의 범위를 대폭 확대했다. 이에 대해 주변국들은 아르헨티나가 무역장벽을 강화하고 있다며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다. 최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주도하며 자유무역주의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는 일본도 뒤로는 보호무역 조치를 크게 늘린 국가로 지목됐다. 일본은 지난 4월 중국산 화학제품에 반덤핑관세를 최대 53% 부과한 바 있다. 러시아는 2013년 GTA 보호무역주의 보고서에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보호무역 조치를 취한 국가’로 꼽혔다.

영국 법률회사 가울링WLG의 데이비드 로웨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보호무역주의와 관련한 헤드라인을 모두 장식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모든 나라가 이를 이미 시행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보호무역주의의 흐름은 올해 더욱 강화됐다. 가울링WLG가 영국 글로벌 기업 350개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500명의 응답자 중 80%가 보호무역주의 조치는 앞으로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답했다.


4 | EU 결속력 흔드는 난민의 증가

영국의 브렉시트에 대항해 결속력을 강화한 EU 내에서는 난민 문제가 여전히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리비아에서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넘어오는 난민의 수가 급증하면서 반이민 정서가 확산하고 있지만, 유럽 각국은 뾰족한 대책을 내지 못하고 있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만 약 8만여명이 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14% 증가했다. 여기에 프랑스·오스트리아 등 이웃 국가가 국경을 걸어 잠그는 추세라 현재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 대부분이 이탈리아에 정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는 EU에 “더 이상 난민을 수용하기 어렵다”며 난민 구조선의 입항을 거부하겠다는 입장까지 내놨다.

반이민 정서의 주 표적은 난민 자체보다 지중해를 건너는 난민 구출에 나선 국제 비정부기구(NGO)다. 당국에서도 “일부 NGO가 불법 밀입국 알선업자와 결탁해 이민자를 지중해로 보낸 다음 구조받게 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대응해 난민의 유입을 막는 ‘반이민·반무슬림’ 유럽 청년집단도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온라인으로 약 7만유로의 후원금을 모금했다. 미국의 보수 주간지 ‘내셔널리뷰’는 “에마뉘엘 마크롱의 프랑스 대통령 당선으로 유럽은 브렉시트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난 듯 결속력을 과시하고 있지만 ‘유럽 난민위기’가 이 결속의 진정한 시험대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5 | 가짜뉴스 범람

지난해 영국 옥스퍼드 사전은 ‘탈진실(post-truth)’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영국의 사전출판사 콜린스는 ‘가짜뉴스(fake news)’를 올해의 단어로 꼽았다. 가짜뉴스는 뉴스 보도를 가장해 전파되는 허위 정보를 말한다.

콜린스는 지난해부터 ‘가짜뉴스’라는 단어 사용 빈도가 세 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는 가짜뉴스가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더군다나 트럼프는 CNN 같은 언론사를 ‘가짜뉴스’라고 공격하는 한편, 지지자들에게 오히려 ‘진짜’ 가짜뉴스를 믿게 만들어 스스로 가짜뉴스의 확산에 더 개입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온라인 매체 버즈피드의 분석에 따르면 2016년 11월 미국 대선 당시 가짜뉴스는 페이스북에서 19개 언론이 생산한  뉴스보다 더 많이 회자됐다.

마크쿨라센터의 샐리 레만 저널리즘 윤리 담당 이사는 “오늘날 디지털화되고 네트워크화된 세계에서는 정확한 보도·광고와 잘못된 정보를 구별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며 “가짜뉴스에 지친 독자들이 점점 회의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짜뉴스는 사회 혼란을 증폭시킨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대중의 두려움, 분노, 절망 등의 감정이 테러리스트를 모집하는 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아울러 더 경직된 사회 분위기와 극단주의적인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최근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테러 등이 단 적인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