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크루거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는 2009~2010년 미국 재무부에서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경제정책 차관보로 근무하며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 중소기업 지원 정책 등을 진행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 8월 그를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Council of Economic Advisers)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당시 미국 실업률은 9%가 넘는 상황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노동경제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크루거 교수에게 일자리 창출과 경제 회복의 중책을 맡긴 것이다. 그가 2013년 8월 CEA 위원장직에서 물러날 때 미국 실업률은 7.3%까지 떨어졌다.

크루거 교수는 2016년 10월 ‘위클리비즈 10주년 기념 경제·경영 글로벌 콘퍼런스’에 참석했다. 그는 기조강연이 끝난 후 고영선 고용노동부 차관(경제학 박사)과 대담 형식의 인터뷰에 응했다.


현재 미국 경제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나.
“미국 경제는 지난 7년간 꾸준히 회복해왔다. 기대한 만큼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회복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회복 흐름이 오래 이어져야 경제 곳곳에 남아 있는 문제들을 더 많이 해결할 수 있다. 과거에는 경제가 침체에 빠졌다가 회복할 때 고용 없는 회복이 이뤄졌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 미국 실업률은 5% 이하로 유지되고 있다. 2009년 10월 10%까지 치솟았던 실업률이 5%로 낮아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실업률이 5% 이하로 내려간 후 소득도 늘고 있다.”

미국 경기 회복세가 곧 끝날 것이라는 비관적 시각도 있다.
“소득 불평등이 심해지면서 소비가 둔화하는 현상은 우려스럽다. 미국은 소비가 경제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소비 중심적 시장이었지만, 지금은 저축 성향이 높아지고 있다. 저소득층은 소비보다 저축을 선호한다. 자동차 등 내구재 부문의 수요는 여전히 강하지만, 소비재 소비는 줄고 있다. 서비스 부문의 소비도 약해져 서비스 산업 실직자가 늘고, 이는 다시 가계 소비와 지출이 감소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내수 부진이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주택 수요가 여전히 높고 가계 신용 회복에 따라 대출 여건도 나아지고 있기 때문에 경제 회복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연준 내부에서는 이제 기준금리를 올릴 때라는 의견과 금리 인상을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는데.
“연준이 금리를 너무 빠르게, 급격히 인상하면 또 다른 경기 침체를 일으킬 수 있다. 지금 단계에서 다시 경기 침체에 빠지면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연준이 금리를 너무 늦게 올리면 경기가 과열될 위험이 있다. 미국 경제는 완전고용 단계로 거의 되돌아간 상황이다. 따라서 경기 회복이 내 예상대로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이어진다고 가정하면, 연준이 계속 금리를 동결하는 것보다는 조금 인상하는 쪽이 더 합리적인 결정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반(反)세계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세계화가 세계 경제를 번영하게 할 것이라는 낙관주의가 흔들리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 고립주의, 보호무역주의가 급부상하고 있다. 영국은 브렉시트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지 말았어야 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치우친 나머지 브렉시트가 결정될 경우 어떤 부정적 영향이 파생될지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세계화에서 등을 돌려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주의로 가는 것은 큰 실수다. 미국 대선에서도 보호무역주의가 기세를 떨치고 있지만, 무역 분야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민주당 대선후보)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트럼프는 무역이 제로섬(한쪽이 이익을 얻으면 다른 한쪽은 손해를 보는 것) 게임으로 미국 경제에 해를 끼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경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보호무역주의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는.
“임금 증가가 정체되고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선동 정치가들이 고립주의를 부추기고 보호무역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전 세계적으로는 지난 30년간 거대한 경제 발전을 이루면서 빈곤이 크게 줄었다. 그러나 일부 선진국 내에서는 불평등이 심해지면서 문제가 나타났다. 이민자 증가로 일자리를 뺏긴다는 불만도 생겨났다. 많은 국가에서 자녀의 교육 수준은 부모의 소득에 좌우된다. 불평등이 더 큰 불평등을 낳고 기회를 빼앗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점은 걱정스럽다.”

한국 경제는 수출 의존도가 커 보호무역주의 확산의 타격을 크게 받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국의 수출 주도형 경제성장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고 본다. 당분간 세계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을 것이고 세계 무역 위축으로 수출 증가를 통한 경제성장이 힘들 수 있다. 한국 경제는 미국에 비해 대외 의존도가 높아,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 생기는 변수에 더 취약하다. 국내 소비를 촉진하고 인프라와 연구·개발(R&D)에 투자를 늘릴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한국 경제가 과거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같은 장기 침체를 따라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비슷한 점이 많지만, 한국이 일본이 지나간 길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위기는 1990년대 금융위기로 시작됐다. 당시 일본에서는 상업용, 주거용 가릴 것 없이 부동산 시장에 거품이 심각했다. 한국은 일본이 겪은 불행을 피할 수 있다. 한국은 금융 시스템의 건전성을 강화해야 한다. 은행은 충분한 자본과 유동성을 갖춰야 하고, 금융 소비자가 감당하지 못할 수준의 대출을 받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한 일본의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정부의 경제성장정책)는 효과가 있다고 보나.
“일본이 통화정책으로 얻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양적 완화, 마이너스 금리 도입 등 통화정책 면에서 쓸 수 있는 카드는 거의 모두 썼다. 재정정책을 더 쓸 여지도 이제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 일본 정부는 더 많은 경쟁이 일어나고 경제가 역동성을 되찾도록 규제 개혁을 진지하게 추진해야 한다. 일본의 인구 구조는 노령화가 심각하므로 대책이 필요하다.”


▒ 앨런 크루거 Alan Krueger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