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경제학상 수상자(2001년)인 마이클 스펜스(Michael Spence)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 교수는 2008년 미국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로 세계 경제의 올드 모델(old model)이 작동을 멈췄다고 진단했다. 국가 간의 글로벌 불균형을 해소하고 지속 가능한 뉴 모델(new model)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경제성장 분야 전문가인 스펜스 교수는 앞으로 세계적인 경제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들이 공조하는 ‘글로벌 거버넌스(global governance)’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특히 미국이 앞장서서 장기적인 전략을 마련하고 협상 테이블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저서 ‘넥스트 컨버전스(Next Convergence)’의 한글판을 2012년 1월 출간했다. Weekly BIZ가 2011년 12월 8일 뉴욕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중국의 12차 5개년 계획, 유럽의 재정통합 움직임을 염두엔 둔 듯 미국을 ‘거북이에게 뒤처진 토끼’에 비유했다.


미국의 시대는 끝났다는 이야기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단일 경제다. 미국의 GDP(14조6580억달러)는 세계 1위이며 전 세계 GDP의 23.3%를 차지한다. 세계 2위 중국의 GDP(5조8780억달러)는 미국의 40%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을 빼놓고 세계 경제를 말할 수 없다. 달러화가 기축통화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이 무역흑자로 확보한 외환보유액을 미국 국채에 투자했기 때문에 달러화가 기축통화 자리에서 밀려날 일도 별로 없다. 달러화가 무너지면 자신들의 자산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무엇을 해야 하나.
“세계 경제를 신흥국과 선진국, 수출국과 수입국, 채권국과 채무국 간의 글로벌 불균형으로 유지하던 올드 모델은 작동을 멈췄다.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으로 대표되는 신흥국의 발언권을 인정해주는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가 필요한 시점이다. 세계 최대 경제이며 선진국을 대표하는 미국이 나서야 한다. 미국은 자국의 경제를 되살리고 국제적 공조를 이뤄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현 상황에 대해 문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지금껏 시간이 흘러 상태가 호전되는 것에 기대면 안 된다. 미국 경제는 구조적인 변화 없이는 성장을 회복할 수 없다. 그다음은 일자리 만들기다. 1990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에서 생겨난 일자리는 2700만개였다. 이들의 98%가 해외 수출과는 무관한 정부기관·주택건설·건강관리·소매판매 등의 비(非)교역 부문에 해당된다. 이제 해외 수출을 하는 교역 부문에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결국 제조업이다. 미국 정부는 1980년대 이후로 제조업을 정책적 고려 대상에서 배제했다. 결과적으로 수출이 줄어서 경상수지 적자가 커졌다. 중간계층의 소득이 줄면서 양극화 문제도 생겼다. 경제구조에 근본적인 변화를 줘야 한다.”

미국이 벤치마킹할 나라가 있다면.
“독일이다. 2003년 사민당 정부는 경제개혁 프로그램 ‘어젠다 2010’을 가동했다. 당시 독일의 성장률은 0%로 떨어져 있었다. 경직된 노동시장, 지나친 기업활동 규제, 과도한 사회보장이 문제로 꼽혔다. 정부가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해고절차를 단순화하는 방법으로 임금을 낮췄다. 경쟁국은 임금이 오르는데 독일만 임금이 내려갔다. 독일 경제는 선진국 가운데 눈에 띄는 성장을 거듭했다.”

미국의 장기 전략은 어떤 내용이 돼야 하나.
“제조업을 되살려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경제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다. 먼저 인프라스트럭처 투자를 늘려야 한다. 소비 중심에서 투자 중심으로 경제 시스템을 전환해야 한다. 정부 지출을 줄이고 소비세율을 높여야 한다. 이와 함께 첨단산업이 요구하는 기능을 가진 고급인력을 키울 수 있는 수준으로 교육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재정위기에 빠진 유럽 경제가 성장과 안정성을 갖추려면.
“유로존(eurozone)은 통화통합만 이뤄진 상태에서 위기에 빠졌다. 유로존에서도 독일·프랑스 등 중심국가와 그리스·포르투갈 등 주변국가 간 불균형이 오랫동안 존재했다. 작년 12월 신(新)재정협약을 계기로 유로존은 재정통합을 모색하고 있다. 거대한 실험에 들어간 것이다. 이 실험이 성공한다면 유럽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의 성장과 안정성에 기여할 것이다.”

위기에 빠진 유럽은 시간이 없다. 당장 처리할 문제가 많다.
“그렇다. 유로존의 재정통합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빨리 처리할 문제가 있다. 우선 그리스를 적어도 한시적으로 유로존에서 나가도록 해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리스가 성장과 고용을 회복할 방법이 없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금리, 환율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가 자국 통화로 복귀해 평가 절하를 통해 경쟁력을 되찾게 해야 한다. 어려움이 있겠지만 가능하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어떤가.
“그리스와는 다르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경제규모가 훨씬 크다. 두 나라의 위기가 유로존 전체의 위기로 확산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독일의 주장처럼 EU 조약을 개정해 재정통합을 이루는 방법으로는 안 된다. 시간이 없다.”

중국의 12차 5개년 계획이 성공할 것인가.
“몇 가지 우려는 있지만 성공할 것으로 본다. 중국은 1978년 경제 개방 이후 상황 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해 온 경험을 가지고 있다. 정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 12차 5개년 계획도 상황 변화에 발맞춰 수출에서 내수로, 성장에서 분배로 초점을 옮겼다. 불평등 해소와 사회 안전망 문제에도 제대로 대응하고 있다.”

중국의 앞날은.
“10~15년 안에 미국·EU와 같은 경제 규모로 성장할 것이다. 선진국은 앞으로 상당 기간 고전할 것이다. 그동안 중국이 성장을 지속하지 않으면 세계 경제가 흔들릴 수 있다. 중국이 12차 5개년 계획에 성공해 국내 소비를 확대한다면 전 세계적으로 85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중국의 과제는.
“세계 경제가 중국의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수출과 무역흑자를 줄이고 위안화 절상을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1인당 GDP(4382달러)는 한국의 4분의 1, 미국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기존 방식의 성장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국이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를 위한 국제 공조에 선뜻 응하기 어려운 정치적·경제적 이유다.”


▒ 마이클 스펜스 Michael Spence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