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임직원들이 ‘영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글로벌화 속에 영어를 쓰는 환경에 노출되는 빈도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 위기’ 못지않게 공포스러운 ‘영어 위기’를 돌파할 방법은 없을까? Weekly BIZ가 영어를 극복한 기업인들의 노하우를 모았다.


처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라

비즈니스 영어 달인들은 ‘무엇보다 우선 자신이 영어를 써야 할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파악하라’고 충고한다. 이장우 이메이션 글로벌브랜드 총괄대표는 “회의인지, 일상적인 만남인지, 자신이 맡을 역할이 사회자인지 발표자인지 아니면 단순 패널인지에 따라 사용하는 영어가 확 달라진다”며 “상황에 맞는 영어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발표(프레젠테이션)라면 발표 자료를 수치와 그래프 위주로 준비하고, 강조할 문장을 3~4개 외우는 것만으로 ‘응급 처치’가 가능하다.


회의에선 서기, 협상에선 통역 쓰라

발표보다 더 어려운 것은 영어 회의 사회를 보는 일이다. 이럴 때는 사전에 양해를 구하고, 영어가 뛰어난 서기(書記)를 두는 것이 좋다. 특히 국적이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한다면 영어가 모국어인 서기를 두는 것이 필수다. 나라마다 다른 억양이나 발음 때문에 영어를 웬만큼 잘하는 이조차 알아듣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통역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는 “협상에서 상대방 언어를 쓰면 일단 기(氣)싸움에서부터 밀리고 시작부터 유리한 고지를 내주게 마련”이라며 “중요한 협상일수록 통역을 쓰라”고 조언했다. 중국 정부가 중국에서 하는 국제 협상의 경우 모두 중국어를 사용하고 통역을 시킨다고 신 교수는 전했다.


결론부터 말하고, 억양을 살리라

조태원 HP 부사장은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는’ 습관을 가질 것을 충고했다. 그는 “아시아 지역 미팅에 나가면 한국 사람들이 예를 들어 ‘예산이 더 필요하다’는 한마디를 하려고 20분 가까이 한국 사정을 지루하게 소개해 다른 나라 담당자들이 조는 모습이 흔하다”며 “먼저 자신의 핵심 메시지부터 전달한 뒤 이유를 설명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인이 영어 발표에서 흔하게 저지르는 다른 실수는 ‘붙여 말하기’다. 긴장한 나머지 외워둔 문구를 높낮이 없이 휙 한꺼번에 내뱉는 것이다. 김대진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 상무는 “훌륭한 문장도 높낮이와 끊기가 확실하지 않으면 전혀 전달되지 못하고 발표 전체가 엉망이 된다”면서 “비록 발음이 좋지 않아도 억양과 끊기만 확실하면 외국인은 쉽게 알아듣는다”고 말했다.


유머를 갈고닦으라

비공식적 자리에서 외국인의 ‘마음’을 잡기 위한 가장 큰 무기는 유머라는 게 영어 베테랑들의 조언이다. 최정화 교수는 “사교나 업무 동반자로서의 인기는 영어 실력의 완벽성보다는 재미있는 대화 소재나 유머의 자연스러운 구사와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영어는 영어대로, 또 재미있는 유머의 콘텐츠는 콘텐츠대로 갈고닦으라”고 말했다.

부족한 영어 실력 자체를 유머의 소재로 사용할 수도 있다. 고미야마 히로시(小宮山宏) 전 도쿄대 총장은 저서 ‘용기를 갖고 선두에 서라’에서 영어 연설에 앞서 자신의 부족한 영어 실력을 소재로 삼은 유머를 사용하곤 하는데 효과가 좋다며 권했다.


한국 문화도 대화의 좋은 무기

또 다른 조언은 한국의 ‘문화’를 대화 내용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한 외국인 회사의 서울 지사 임원은 “나이 든 상사 앞에서 고개를 돌려 마시는 주도(酒道)나 폭탄주 등 한국의 독특한 주법(酒法)을 설명하면 외국인들이 큰 호기심을 보여 분위기가 무르익는다”고 말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자리에서는 한국의 자랑인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면 좋다. 식사나 회식 자리에서 휴대전화에 저장한 가족사진을 보여주면, 편안한 대화 소재가 된다.


업무가 제일 좋은 영어 교재

김용수 야후코리아 이사는 이제 회사 내에서 ‘영어 잘하는 법’을 강의할 정도이지만, 초창기에는 영어 때문에 회사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 특히 콘퍼런스콜(전화 회의)은 악몽 그 자체였다. 처음 들어간 회의에서는 상대방의 질문 중 ‘한국(Korea)’이란 단어만 들렸을 정도였다. 그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토익, 1 대 1 대화, 영어 잡지 구독 등 안 해본 게 없다.

그의 해답은 업무 자체를 아예 영어 교재로 삼는 것이었다. 미국 본사에서 보내온 이메일 중에 자신의 업무와 관련된 것을 먼저 저장했다. 그리고 빈 회의실에 들어가 앞에 미국 본사 직원이 있다고 상상하고 혼자서 큰 소리로 읽었다. 듣기도 업무와 관련된 내용을 인터넷에서 내려받아 들었다. IT 미디어인 씨넷(CNET)에서 인터넷·모바일 비즈니스 관련 뉴스를 내려받고, 미국 본사 직원과의 콘퍼런스콜을 녹음해 들었다. 불과 한 달 만에 김 이사의 영어 실력은 자신도 느낄 정도로 달라졌다고 한다.


영화에서 배우라

다국적 기업인들이 추천하는 공통적인 영어 학습도구 중 하나가 바로 ‘스토리가 있는 영어’, 즉 영화다. 특히 기업이나 법정을 다룬 영화가 토론 실력을 늘려주는 데 도움이 된다. ‘어퓨굿맨’ ‘월스트리트’ 등에서는 현실 영어 토론에서 사용할 논리 전개법까지 배울 수 있다.

주변에서도 기회가 생기는 대로 영어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좋다. 가까운 곳에 대화 상대가 없다면 영상 메신저나 인터넷 전화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스카이프(Skype) 등 많은 인터넷 전화 서비스가 무료로 이용이 가능하다. 해외 바이어들에게 헤드셋과 마이크를 선물하고, 인터넷 전화로 대화를 나누면 훨씬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자신감을 가지라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감이다. 처음부터 주눅이 들어선 안 된다. 어차피 어릴 적부터 현지에서 배우지 않았다면, 원어민 영어를 할 수는 없다. 한국인인 내가 영어를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영어를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 안 들리면 ‘Excuse me?’ 하면 되고, 표현이 생각나지 않으면 풀어서 말하면 된다”며 용기를 준다.

한국인의 영어에는 독특한 악센트가 있지만, 굳이 고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너무 발음을 굴리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인다. 깊이 있는 콘텐츠를 갖춘 뒤 깨끗한 발음과 표현을 통해 ‘제2 언어’로 영어를 자신감 있게 구사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조언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정제된 반기문 UN 사무총장의 영어는 훌륭한 모범이다.